소는 재(財)라는 확고한 생각이 불교의 윤회사상과 복합되어 남에게 빚을 갚지 않고 죽으면 후생에 소로 태어난다는 생각도 옛 우리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한 핏줄의 가족을 식구(食口)라 하고 식구와 구별하기 위해 생구(生口)란 말이 따로 있었다. 식구와 한 핏줄은 아니지만 한집에서 밥을 먹고 사는 종, 곧 노비를 그렇게 불렀다. 주의를 끄는 것은 생구 속에 사람 아닌 짐승 하나를 유일하게 끼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과 똑같은 특혜를 받았던 존재가 다름 아닌 바로 소였다. 농경 민족에게 있어 노역(勞役)을 대신해주는 소는 그만큼 소중했고, 소중했기에 그만한 대접을 해주었음 직하다.
그래서 노비를 사고파는 인신매매를 할 때 그 단가는 소 한 마리 값이 고대부터 극히 근대까지 상식이 되어 있었다. 20대 전후의 건장한 사내종은 황소 한 마리 값이요, 건장한 계집종은 새끼를 잘 낳는 암소 한 마리 값으로 흥정됐던 것이다.
소는 우리 선조들에게 있어 사람 값과 맞먹는 엄청난 '재(財)’였다. 그래선지 지리 풍수에서 와우형(臥牛形)은 재를 몰아온다고 예언받았고, 소꿈은 예외없이 재수(財數)가 좋다는 길몽으로 해석받았다. 소는 재라는 확고한 생각이 불교의 윤회사상과 복합되어 남에 게 빚을 갚지 않고 죽으면 후생에 소로 태어난다는 생각도 옛 우리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변(卞)씨라는 사람의 아버지가 어찌나 인색하고 구두쇠였던지 집을 짓게 하고는 집 지은 삯을 주질 않았다. 삯을 달라고 하면 허리에 검은 纏帶를 차고 있으면서도 '죽어서 너의 집 송아지로 태어나면 그만 아니냐'면서 매질을 하여 내쫓곤 했다.
변씨 아버지가 죽던 날 빚 받을 사람 집에 노란 송아지가 태어났는데, 송아지 허리에 전대 모양의 검은 띠가 둘려 있었다. 얼마나 인색했던지 소로 태어나면서까지도 전대를 풀지 않았던 것이다. 빚 받을 사람이 송아지 앞에서,
“변공, 왜 빚을 갚지 않고서 이 꼴이 되었소”
하고 혀를 차자, 송아지는 앞발로 전대 무늬를 가리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소로 태어났을망정 돈은 못 갚겠다는 집요한 집념이었다. 이말을 듣고 그의 아들이 십만 금을 챙겨 빚을 갚으려 했으나 소주인의 고집도 대단하여 그 거금을 받질 않고 이 소를 고되게 혹사함으로써 앙갚음을 한다는 이야기다. 무서운 인간 집념의 극한을 빗대는 이야기이나 소를 재(財)로 알았던 한국인의 전통적 우관(牛觀)이 실감나게 드러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값이 떨어지면 앉아서 흉년을 맞는 천재(天災)라 하여 우제(牛祭)까지 지냈을 만큼 나라의 대사(大事)로 알았으니 대단한 동물관(動物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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