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1. 천단(天壇) 본문
정치 제도가 태고적부터 구관(九官), 곧 삼정승 육판서로 벼슬의 품계를 수천 년 고수해 내려 온 것도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리를 다스린다는 뿌리 깊은 구천 사상에서 비롯되고 있다.
광주(廣州) 삼성산(三聖山)에 있는 고대 백제의 성터에서 구각정(九角亭)을 세운 듯한 아홉 기둥의 주추가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이 축조물의 쓰임새가 달라질 수 있으나 천제(天帝)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는 천단(天壇)이었을 확률이 크다. 곧 임금님이 천제의 뜻을 받드는 천정정치(天政政治)의 신성한 현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에는 구천(九天)이 있어 각기 아홉 명의 천제가 구궁(九宮)을 지어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한무제(漢武帝)는 천제의 뜻을 받들어 제사하는 신성한 집을 짓고 구천대(九天臺,神明臺)라 이름하였다. 이 구천대에는 아홉 모가 난 구각(九角) 집을 짓고 방을 아홉 개 두어 구천도사(九天道士)라는 제관(祭官)으로 하여금 제사를 받들게 하고 있다.
지금도 북경에 있는 천단은 아홉 계단으로 오르게 돼 있고 단이나 층이나 넓이나 높이 그리고 단에 깐 디딤돌도 모두 3×3의 배수로 돼 있다.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아홉 군데에 희생을 하고 구배(九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구천 사상(思想)은 궁궐 또는 도성 축조에도 고스란히 도입되고 있다. 궁궐이나 도성의 문은 구천문이라 하여 아홉 개 이상이나 이하로 내지 않게 돼 있었고 천자(天子)는 항상 구빈(九嬪)이라 하여 아홉 명의 시녀를 거느리고 거둥했으며 허리에 두르는 띠도 구환대(九還帶), 그리고 수라상도 아홉 개의 못을 박아 만든 구정반(九釘盤)이어야 했다. 아홉 가지 각기 다른 색깔의 음식을 담는 우리나라의 구절판(九折坂)도 그 뿌리를 소급해 오르면 이 구천 사상에 귀결되는 신성 음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 제도도 태고적부터 구관(九官), 곧 삼정승 육판서로 벼슬의 품계도 9품계를 수천 년 고수해 내려온 것도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린다는 뿌리깊은 구천 사상에서 비롯되고 있다.
사람의 몸에 아홉 구멍, 곧 구혈(九穴)이 나 있으며 사람이 먹는 식이 구곡(九穀)이요, 덕도 아홉 개(九德), 근심도 아홉 개[九憂], 정도 아홉 개(九情)로서 구천 사상은 동양 사람의 그 모든 것을 지배해 왔다. 땅과 하늘을 결속하는 탑 가운데 구층탑이 가장 많은 것도 불교와 구천 사상이 절충된 것이 아닌가 싶다.
천제의 뜻을 받드는 천단을 원구단(園丘壇)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이 원구신앙(園丘信仰)이 없지 않았으나 천제의 뜻은 오로지 천자만이 받들 수 있다 하여 조선을 속국시한 역대 중국에서 그 신앙을 압력으로 짓눌러왔던 것이다. 한말의 고종이 중국의 기반을 벗어나 황제로 즉위할 때 남별궁(南別宮)에 중국 북경의 천단을 축소한 원구단을 짓고 그곳에서 즉위식을 올렸던 것은 알려진 일이다. 고대 백제의 구각(九角) 축조물은 이 구천 사상에 뿌리를 둔 천단일 것이며, 중국의 정치적 오염이나 사대적 오염에 때묻지 않은 신선했던 백제 주체사상이 재조명 · 재평가되는 뜻있는 사상적 기념비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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