藍田縣丞廳壁記(남전현승청벽기)-韓愈(한유)
丞之職,所以貳令,於一邑無所不當問。
縣丞이란 직책은 현령의 副官이니, 한 고을에 있어서 물어서 안 되는 것은 없다.
▶ 貳令 : 현령의 官을 뜻함.
其下主簿、尉,主簿、尉乃有分職。丞位高而偪,例以嫌不可否事。
그 아래 벼슬은 主簿와 縣尉인데, 主簿와 縣尉에게는 분담하는 직책이 있으나, 현승은 지위가 높고 權座에 가까워도, 관례상 의심스러워도 일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 偪 : 핍근하다. 권좌에 가까운 자리임을 뜻함.
文書行,吏抱成案詣丞,卷其前,鉗以左手,右手摘紙尾,雁鶩行以進,平立睨丞曰:
「當署」。
문서를 돌릴 적에는 속리가 초안을 만들어서 현승을 찾아뵙는데, 그 앞쪽은 말아서 왼손으로 쥐고 오른손으로 종이의 꼬리 쪽을 펴서 기러기나 오리걸음으로 걸어가서 平常으로 서서 현승을 흘겨보며 말한다.
“서명하시지요.”
▶ 吏抱成案 : 담당관리가 초안을 만듦.
▶ 鉗 : 움켜쥐다. 잡다.
▶ 雁鶩(안목행) : 기러기와 오리가 걸어가듯 걸어감.
▶ 睨(예) : 흘겨보다.
丞涉筆占位署惟謹,目吏,問可不可,吏曰得則退,不敢略省,漫不知何事。
현승이 붓을 움직여 위치를 찾아 서명함에 오직 삼가고, 관리를 쳐다보고 ‘되었소’ 또는 ‘안 되었소’하고 물어서, 관리가 되었다고 하면 물러가는데, 감히 절차를 생략하지 못했고, 아득히 무슨 일인지 알지도 못했었다.
▶ 涉筆 : 붓을 종이 위에 움직이다.
▶ 占位署 : 제자리를 찾아 거기에 서명함.
▶ 漫 : 아득한 모양.
官雖尊,力勢反出主簿、尉下。
官位가 비록 높았으나 권력은 도리어 主簿와 縣尉의 아래 있었다.
諺數慢,必曰「丞」,至以相訾謷。
속담에 법도가 허술하면 항상 '현승'이라고 하면서, 서로 흉보며 중얼거리는 지경이었다.
▶ 諺 : 속담.
▶ 數慢 : 법도나 법식이 허술한 것.
▶ 訾謷 : 흉보고 중얼거리다.
丞之設,豈端使然哉!
현승을 설치함이 대관절 그렇게 하라고 시켰겠는가?
博陵崔斯立種學績文,以蓄其有,浤涵演迤,日大以肆。
博陵의 崔斯立은 학문을 닦고 글공부를 하면서 그의 素養을 쌓아가니, 큰물이 넘쳐 흘러가듯 날로 커져서 거침이 없었다.
▶ 博陵 : 지금의 河北省에 있던 縣 이름
▶ 崔斯立 : 貞元 4년(788)에 과거를 보아 進士가 되었던 사람.
▶ 種學績文 : 학문을 닦고 글공부를 함.
▶ 泓涵(홍함) : 큰물이 넘쳐흐르는 모양.
▶ 演迤(연이) : 물이 넓게 흘러가는 것.
▶ 日大以肆 : 날로 커지고 거침이 없음.
貞元初,挾其能,戰藝於京師,再進再屈於人。
貞元 초(788년경)에 그의 재능을 가지고 장안으로 와 과거를 보았는데, 두 번 나아가서 두 번 남을 굴복시켰다.
▶ 戰藝 : 학술로써 싸우다. 곧 과거를 보다.
▶ 屈於人 : 사람들에게 굴복당하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였으므로 ‘사람들을 굴복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於자가 잘못된 듯하며, 판본에 따라 이 구절에 차이가 있고 또 학자들의 의견도 구구하다.
元和初,以前大理評事言得失黜官,再轉而為丞茲邑。
元和 초(806년경)에는 前 大理評事의 신분으로 잘잘못을 논하여 관직에서 쫓겨났다가 재차 轉任되어 이 고을의 현승이 되었다.
▶ 大理評事 : 刑獄을 관장하던 大理寺의 낮은 屬官 명칭임.
始至,喟曰:
「官無卑,顧材不足塞職。」
처음 부임하여 탄식하였다.
“벼슬에 낮은 것이란 없는 법이나, 다만 내 재능이 직책을 감당하기에 부족하다.”
▶ 塞職 : 직책을 담당함.
既噤不得施用,又喟曰:
「丞哉,丞哉!余不負丞,而丞負余。」
입을 다물고 있어 쓰이지 않자, 또 탄식하였다.
“현승이여, 현승이여! 나는 현승 벼슬을 저버리지 않지만 현승 벼슬이 나를 저버리는구나!”
則盡孼去牙角,一躡故跡,破崖岸而為之。
그리고는 뻣뻣하고 모난 점을 모두 없애버리고 한결같이 옛 현승의 발자취를 밟으며 오만함을 깨뜨리고 그 직위를 지켰다.
▶ 孼去(얼거) : 없애버리다.
▶ 牙角 : 모나고 남과 부딪치는 것.
▶ 崖岸 : 오만하다. 성격이 모가 나서 남과 어울리지 못하다.
丞廳故有記,壞漏汚不可讀,斯立易桷與瓦,墁治壁,悉書前任人名氏。
현승의 청사에는 옛날부터 기록이 있었는데 무너지고 비가 새어 더러워져 읽을 수가 없었으므로, 최사립이 서까래와 기와를 바꾸고 흙손질로 벽을 수리하고 전임자의 성명을 모두 적어 놓았다.
▶ 桷與瓦(각여와) : 네모진 서까래와 기와
▶ 慢 : 흙손으로 벽에 흙을 바르다.
庭有老槐四行,南牆鉅竹千梃,儼立若相持,水㶁㶁循除鳴.
정원에 늙은 회화나무 네 줄이 있고, 남쪽 담 밑에는 굵은 대 1천 줄기가 서로 의지하듯 엄연히 서 있고, 물은 줄줄 섬돌을 따라 소리내며 흐르고 있었다.
▶ 槐(괴) : 회화나무.
▶ 鉅竹千挺 : 큰 대나무 천 줄기.
▶ 㶁㶁(괵괵) : 물이 줄줄 소리내며 흐르는 모양. 이除(제 : 섬돌. 26 (아 : 읊조리다, 시를 읊다.
斯立痛掃溉,對樹二松,日哦其間。有問者,輒對曰:
「余方有公事,子姑去。」
최사립은 그곳을 깨끗이 소제하고 물뿌린 다음, 맞은편에 소나무 두 그루를 심어놓고 매일 그곳에서 시를 읊조리면서, 혹시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마다 대답하기를,
“나는 지금 公事를 보고 있으니 당신은 잠시 돌아가야겠소.”라고 하였다.
考功郎中知制誥韓愈記。
考功郞中 知制誥한유가 적음.
해설
藍田은 지금의 陝西省 長安縣 동남쪽에 있던 고을 이름.
崔斯立이란 사람이 그곳 縣丞이란 지위만 높고 할 일은 없는 직위에 부임하여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하였다.
작자 한유는 그러한 최사립의 고고한 모습과 깨끗한 사람됨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글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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