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49-殿中少監馬君墓銘(전중소감마군묘명)-韓愈(한유)

耽古樓主 2024. 3. 23. 06:03

古文眞寶(고문진보)

 殿中少監馬君墓銘(전중소감마군묘명)-韓愈(한유)



君諱繼祖, 司徒贈太師北平莊武王之孫, 少府監贈太子少傳諱暢之子.
馬君의 이름은 繼祖인데, 司徒로서 太師北平莊武王이 추증되었던 馬燧의 손자이고, 少府監으로서 太子少傅가 추증되었던 馬暢의 아들이다.
: 죽은 사람의 이름.

生四歲以門功, 拜太子舍人, 積三十四年, 五轉而至殿中少監.
출생후 네 살 때 가문의 공로로 太子舍人 벼슬이 내려졌고, 34년 동안 다섯 번 벼슬이 승진되어 殿中少監에 이르렀다.
門功 : 집안의 공로
殿中少監 : 궁중의 물자보급을 관장하는 殿中省殿中監 바로 밑의 자리임.

年三十七以卒, 有男八人女二人.
나이 37세로 죽었는데, 아들 여덟 명과 딸 두 명을 두었다.

始余初冠, 應進士貢在京師, 窮不能自存.
처음 내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長安으로 과거를 보러 왔었는데, 궁하여 살아갈 수가 없을 형편이었다.
初冠 : 20세가 되자마자. 옛날에는 20세에 보통 冠禮를 치렀다.
進士貢 : 중앙의 과거 시험. 로도 씀.

以故人稚弟, 拜北平王於馬前, 王問而憐之. 因得見於安邑里第.
(작고한 형이 잘 아는 사이여서) 故人의 어린 동생의 신분으로 北平王 마수를 말머리에서 뵈었는데, 북평왕은 몇마디 물어보고는 나를 동정하였으므로 安邑의 里第(마을에 있는 집)에서 뵐 수 있었다.
以故人稚弟 : 죽은 이의 어린 동생이라는 이유로 여기서 '죽은 이'는 한유의 형 한엄을 가리킨다. 한엄은 정원 3(787) 平凉에서 吐蕃이 난을 일으켰을 때, 殿中侍御史馬燧 밑에 있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王軫其寒飢, 賜食與衣, 召二子, 使爲之主, 其季遇我特厚, 少府監贈太子少傅者也.
북평왕께서 내가 헐벗고 굶주림을 애달파하면서 음식과 옷을 내려주셨고, 두 아드님을 불러 주인노릇을 하도록 하셨는데, 그중 동생이 특별히 나를 후하게 대접했으니, 그이가 소부감으로 태자소부에 추증되신 분이다.
() : 가슴아파함.
: 형제 중 막내. 작은아들.

姆抱幼子立側, 眉眼如畵, 髮漆黑, 肌肉玉雪可念, 殿中君也.
유모가 어린 아들을 안고 옆에 서 있었는데, 눈썹과 눈이 그림 같고 머리털은 새까맣고, 살갗은 옥이나 눈 같았던 생각이 나는데, 그가 바로 전중소감 마군이었다.
() : 유모
傑魁(걸괴) : 인물이 뛰어난 것. 걸출한 것.

當是時, 見王於北亭, 猶高山深林, 龍虎變化不測, 傑魁人也.
그때에 北亭에서 북평왕을 뵈니, 마치 高山·深林과 같고 龍虎처럼 변화를 헤아리지 못할 英傑이었다.

退見少傅, 翠竹碧梧, 鸞鵠停峙, 能守其業者也.
물러나와 태자소부를 뵈니 翠竹·碧梧와 같고 난새나 고니가 산마루에 머물러 있어서 그의 家業을 잘 지킬 듯하였다.
鴛鵠停峙(난곡정치) : 봉황 종류인 난새와 고니가 산마루에 머물러 있음.

幼子娟好靜秀, 瑤環瑜珥, 蘭茁其芽, 稱其家兒也.
어린 아들은 예쁘고 잘생긴 위에 얌전하고 빼어났으며, 좋은 옥과도 같고 난초 싹이 솟아남과 같아서 그 집안 아들로서 걸맞았다.
娟好 : 예쁘고 잘생긴 것.
瑤環瑜珥(요환유이) : 모두 좋은 옥의 이름.

後四五年, 吾成進士, 去而東游, 哭北平王於客舍.
그 뒤 4,5년 만에 나는 進士가 되어 장안을 떠나 동쪽에서 객지생활을 하다가, 객사에서 북평왕의 죽음에 곡하였다.
東都 : 洛陽을 가리킴.

後十五六年, 吾爲尙書都官郞, 分司東都, 而少傅卒, 哭之.
다시 그 뒤 15~6년 되는 해에 나는 尙書都官郎이 되어 東都를 나누어 맡고 있었는데, 태자소부께서 돌아가시어 곡하였다.

又十餘年至今, 哭少監焉.
다시 10여 년이 지나 지금은 소감 마군의 죽음을 곡하게 되었다.

鳴呼! 吾未老耄, 自始至今, 未四十年, 而哭其祖子孫三世, 于人世何如也?
아아! 나는 아직 80 늙은이도 못되었고,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0년도 못 되었는데, 그들 할아버지·아들·손자 3대의 죽음에 곡하였으니, 인간세상에서 느낌이 어떠하겠는가?
: 8, 90세 노인.

人欲久不死而觀居此世者何也?
사람들이 오래도록 죽지 않고 이 세상을 보며 살려고 함은 무엇 때문일까?
觀居此世 : 이 세상을 구경하며 살아감.

 

 

 해설


글의 제명은 墓銘이지만 내용은 추도문 같은 글이다. 한유가 그의 집안과 친교가 있던 馬繼祖의 죽음을 당하여,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까지 3대를 떠올리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迂齋云:
우재가 말했다.

“叙事有法辭極簡嚴而意味深長結尾絶佳.
“일을 서술함에 법도가 있고 말이 극히 간결하고 엄하며 의미가 심장하며 결말은 매우 아름답다.

感慨傷悼之情見於言外三世皆有舊故其言如此.
감개하고 애도하는 정이 말의 바깥에 드러나니, 3대와 모두 舊交가 있었으매 말이 이와 같았다.

退之所作墓誌最多篇篇各有體製未嘗相襲.”
퇴지가 지은 묘지명이 매우 많은데 각 편마다 각각의 체제가 있어일찍이 서로 답습하지 않았다.”

◯ 退之墓誌銘最多最古雅叙事有法得史筆.
퇴지가 지은 묘지명이 매우 많은데 매우 古雅하며일을 서술함에 법도가 있어 역사가의 필법을 터득했다.

眞西山選在『文章正宗』者稍多.
서산 眞德秀가 선집한 『문장정종』에 있는 것이 조금 많다.

今以他篇長不暇選姑選其簡者此篇所以簡略亦以其人勳臣子孫生平自無可見者故只叙其家世及我所感慨耳.
이제 다른 편은 길어서 선집할 겨를이 없고우선 간단한 것을 선집하되이 글이 간략한 까닭은 역시 그가 勳臣의 자손으로 평생 자신이 보여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다만 가계와 자신의 감개만을 서술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