諱辯(휘변)-韓愈(한유)
愈與進士李賀書, 勸賀擧進士, 賀擧進士有名.
내가 李賀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하에게 진사 시험에 응시하라고 권하였고, 이하가 진사에 합격하여 유명해졌다.
▶ 愈 : 작자의 이름. 자기를 가리키는 말.
▶ 與 : 주다, 보내다.
▶ 李賀 : 자는 長吉. 시와 문장에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鬼才로 불렸고 한유에게서 글을 배운 적이 있다. 憲宗 때 協律郞을 지냈으나 27세로 요절하였고 작품집으로 《昌谷集》을 남겼다.
▶ 擧 : 응시하다.
▶ 進士 : 본래는 과거의 과목명이었으나 후에는 합격자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與賀爭名者毁之曰:
“賀父名晉肅, 賀不擧進士爲是, 勸之擧者爲非.”
이하와 명성을 다투는 자가 貶毁하였다.
“이하의 아버지 이름이 晉肅(jìnsù)이니, 이하는 進士(jìnshì)에 뽑히지 말았어야 옳고, 그에게 응시하라고 권한 자도 옳지 않다.”
▶ 晉肅 : 李賀의 아버지 이름. 從事官을 지냈음. 그의 이름의 '晉'자와 進士의 '進'자가 음이 같고, '肅'자와 '士'자의 음이 비슷하여 이하가 진사에 합격함에 논란이 생긴 것이다.
聽者不察, 和而唱之, 同然一辭.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부화뇌동하여 떠들어대며 한결같이 같은 말을 한다.
▶ 和而唱之 : 한 사람의 말에 부화하여 그것을 떠들어대다.
▶ 一辭 : 같은 말.
皇甫湜曰:
“子與賀且得罪.”
皇甫湜이 말하였다.
“선생님과 이하는 장차 죄를 얻을 터입니다.”
▶ 皇甫湜 : 자가 持正이며 工部郎中을 지냈다. 한유의 문인이었고 이하를 위해 힘을 많이 썼다 함.
▶ 子 : 선생님. 한유를 가리킴.
▶ 且 : 장차.
愈曰:
내가 대답하였다.
“然.
“그렇다.
律曰: ‘二名不偏諱’,
釋之者曰:
‘謂若言徵不稱在, 言在不稱徵是也.’
律曰: ‘不諱嫌名.’
釋之者曰:
‘謂若禹與雨, 丘與蓲之類是也.’
율법에 이르기를, ‘두 글자의 이름 중 1자를 씀은 諱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해석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徵을 말하면 在를 말하지 않고, 재를 말하면 징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라고 하였고,
율법에 이르기를, ‘글자의 음이 비슷한 경우는 諱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해석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禹(yǔ)와 雨(yǔ), 공자의 이름인 丘(qiū)와 蓲(qiū) 따위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 律 : 율법. 고대의 율법이 실려 있는 《禮記》를 가리킴.
▶ 二名不偏諱 : 두 자로 된 이름은 그중 한 자를 쓸 때는 휘하지 않는다. 偏은 두 자 중 한 자를 씀. 諱는 왕이나 조상의 이름자를 피하여 쓰지 않음. 《예기》 曲禮 상에 ‘哭이 끝나면 곧 휘한다. 예에 따르면 음이 비슷한 글자는 휘하지 않으며, 두 글자로 된 이름을 한 자 한 자로 쓸 때는 휘하지 않는다(卒哭乃諱, 禮不諱嫌名, 二名不偏諱.)’라고 씌어 있다. 鄭玄의 注에 의하면 嫌名과 二名의 경우 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두 글자로 된 이름의 경우는 그 하나 하나를 휘할 필요는 없고 두 글자를 모두 함께 쓰는 경우만 피하면 된다는 뜻이다.
▶ 釋之者 : 그것을 해석한 사람. 주를 단 정현을 가리킴.
▶ 言徵不稱在 : 徵자를 말할 때는 在자를 부르지 않는다. 이는 정현이 二名의 경우를 해설한 것으로, 공자의 어머니 이름인 징재의 경우 징과 재를 따로 씀은 괜찮다고 말한 것이다.
▶ 不諱嫌名 : 음이 비슷한 글자는 휘하지 않는다. 嫌名은 휘하여야 할 자와 음이 같거나 비슷한 글자. 즉 음이 같더라도 뜻이 다르면 써도 괜찮다는 뜻이다.
▶ 禹與雨 : 우왕의 禹와 비 雨 두 자는 중국음으로 음이 같으나 뜻이 다르다.
▶ 丘與蓲 : 공자의 이름 丘와 풀의 한 종류인 蓲 역시 음은 같으나 뜻이 다르다.
今賀父名晉肅, 賀擧進士, 爲犯二名律乎?
그런데 이하의 아버지 이름이 晉肅(jìnsù)인데, 이하가 進士(jìnshì)로 뽑힌 것이 二名律을 범하였는가?
▶ 二名律 : 두 자로 된 이름의 휘법. 즉 두 이름자와 꼭같은 두 글를 씀을 피하는 법칙.
爲犯嫌名律乎?
嫌名律을 범하였는가?
▶ 嫌名律 : 휘하여야 할 자와 음이 같거나 비슷하더라도 뜻이 다르면 휘하지 않아도 되는 법칙, 즉 字와 음과 뜻이 같은 글자만을 피하는 법칙. 결국 이하의 아버지 이름인 晉肅은 進士와 두 글자가 다 같은 것도 아니며, 음은 비슷해도 뜻이 다르니 휘법상 아무런 저촉됨이 없다는 뜻이다.
父名晉肅, 子不得擧進士; 若父名仁, 子不得爲人乎?
아버지의 이름이 진숙이라 하여 아들이 진사에 천거될 수 없다면, 만일 아버지의 이름이 仁(rén)인 경우에는 아들은 人(rén)이 될 수도 없단 말인가?
▶ 不得爲人 : 사람이 되지 못하다. 곧 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휘해야 한다면 아버지 이름이 仁인 사람은 그와 음이 비슷한 人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夫諱始於何時?
대체 諱法이 언제 시작되었는가?
作法制以敎天下者, 非周公ㆍ孔子歟?
법제를 만들어 천하 사람을 가르친 사람은 周公과 孔子가 아니었던가?
周公作詩不諱, 孔子不偏諱二名, 『春秋』不譏不諱嫌名.
주공이 詩를 지음에 있어 휘하지 않았고, 공자는 두 글자 이름의 경우 한 자를 씀에 휘하지 않았으며, 《春秋》에서는 비슷한 음을 가진 이름 字를 휘하지 않았다고 하여 나무라지 않았다.
▶ 周公作詩不諱 : 주공은 시를 지음에 있어 휘하지 않았다. 주공의 아버지 文王의 이름은 昌이고 형인 武王의 이름은 發이었는데, 주공이 그 두 사람을 제사지내는 시를 지음에 있어 그 두 자를 휘하지 않았던 것을 《시경》 周頌의 詩에 ‘發’자와 ‘昌’자가 보임,
▶ 孔子不偏諱二名 : 공자는 두 글자로 된 이름을 한 자 한자를 쓸 때는 휘하지 않았다. 앞에 나왔듯이, 공자가 어머니 이름인 徵在를 한 자씩 씀은 피하지 않은 것을 《論語》八佾篇에 徵자가 홀로 쓰인 예가 보임.
▶ 春秋 : 공자가 썼다는 史書로 魯나라 隱公부터 哀公까지 242년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 不譏不諱嫌名 : 음이 비슷한 글자를 휘하지 않은 것을 탓하지 않다.
康王釗之孫, 實爲昭王, 曾參之父名晳, 曾子不諱昔.
周나라 康王 釗(zhāo)의 자손이 실제로 昭(zhāo)왕이었고, 曾參의 아버지 이름은 晳(x ī)인데 증자는 昔(xī)자를 휘하지 않았다.
▶ 康王 : 周나라 成王의 아들이며 이름이 釗였음.
▶ 昭王 : 王의 아들로 이름이 瑕임.
▶ 會參 : 공자의 제자로 이름이 子輿이며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음.
▶ 晳 : 증삼의 아버지의 자. 이름은 點이매 한유가 잘못 알고 이름을 晳이라 한 듯하다.
▶ 曾子 : 증삼을 가리킴.
▶ 不諱昔 : 昔자를 피하지 않다. 《논어》 泰伯篇에 晳과 음이 같은 昔자가 쓰였다(昔者吾友.)
周之時, 有騏期; 漢之時, 有杜度, 此其子宜如何諱?
周나라 때에는 騏期(qíqí)라는 사람이 있었고, 漢나라 때에는 杜度(dùdù)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자손들이 어떻게 휘하여야 하는가?
▶ 騏期 : 주나라 때 사람.
▶ 朴度 : 漢대 사람. 자가 백도이며 한대에 유행했던 草書體인 章草에 뛰어났음. 기기와 두도 두 사람의 경우 姓과 名의 음이 같으므로, 만일 음이 같다고 하여 휘해야 한다면 그 자손들은 성을 바꿔야 한다.
將諱其嫌, 遂諱其姓乎?
만일 그 비슷한 음의 글자를 휘한다면 결국 그 姓을 휘해야 하지 않는가?
將不諱其嫌者乎?
아니면 음이 비슷한 글자를 휘하지 말아야 하는가?
漢諱武帝名徹, 爲通, 不聞又諱車轍之轍, 爲某字也;
諱呂后名雉, 爲野鷄, 不聞又諱治天下之治, 爲某字也;
今上章及詔, 不聞諱滸勢秉饑也.
漢대에는 武帝의 이름인 徹자를 휘하여 通으로 썼으나, 또 車轍의 轍자를 휘하여 다른 글자로 바꿔 썼다고 듣지 못하였고,
呂后의 이름 雉자를 휘하여 野鷄로 썼으나, 또 治天下의 治자를 휘하여 다른 자로 바꿔 썼다고 듣지 못하였고,
오늘날 위로 올리는 글인 章으로부터 아래로 내리는 글인 詔에 이르기까지 滸·勢·秉·饑 등의 글자를 [嫌名이 된다 하여] 휘하였다고 듣지 못하였다.
▶ 車轍 : 수레바퀴 자국.
▶ 呂后 : 漢나라 高祖의 황후.
▶ 章 : 신하가 천자에게 올리는 글. 劉勰의 《文心雕龍》 章表篇에 따르면 은혜에 감사드리는 글.
▶ 詔 : 천자가내리는 글. 조칙.
▶ 滸·勢·秉·饑 : 滸는 唐 太祖의 이름인 虎와 음이 같고, 勢 太宗의 이름인 世民의 世와 음이 같고, 秉은 世祖의 炳과 음이 같으며, 饑는 玄宗의 이름 隆基의 基와 음이 같다. 즉 당나라 황제들의 이름과 음이 같은 嫌名의 글자들.
惟宦官宮妾, 乃不敢言諭及機, 以爲觸犯.
다만 宦官이나 궁녀가 [代宗의 諱字인 豫와 현종의 휘자인 隆基와 비슷한 글자인] 諭·機를 감히 말하지 못하며, 그렇게 하면 휘법에 저촉된다고 여긴다.
▶ 諭及機 : 유와 機, 諭는 代宗의 이름 豫와 음이 같고, 機는 현종의 이름 隆基의 基와 음이 같다.
▶ 以爲觸犯 : 휘법에 저촉된다고 여기다.
士君子立言行事, 宜何所法守也?
선비나 군자로서 말하고 일을 행함에 있어서 어느 것을 본받아 지킴이 마땅하겠는가?
今考之於經, 質之於律, 稽之以國家之典, 賀擧進士爲可耶? 爲不可耶?
지금 經書에서 고찰해보고, 律法에 따져보고, 국가의 법전에서 헤아려보건대, 이하가 진사에 뽑힘이 옳은 일인가 옳지 못한 일인가?
▶ 考之於經 : 經書에 비추어 그것을 고찰하다. 올바른 휘법이 어떤 것인가를 경서를 통해 고찰하다.
▶ 質之於律 : 율법에 그것을 따져보다. 質은 의심스러운 것을 물어 확실히 함.
▶ 稽之以國家之典 : 나라의 법전을 통해 그것을 생각해보다. 여기에서의 법전은 법조문이라기보다 현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규를 뜻한다.
凡事父母, 得如曾參, 可以無譏矣; 作人得如周公ㆍ孔子, 亦可以止矣.
무릇 부모를 섬김에 있어 曾參과 같을 수 있다면, 나무랄 것이 없고, 사람됨에 있어서 주공이나 공자와 같을 수 있다면 역시 더 바랄 것이 없다.
▶ 得如 : ~만큼 해내다.
▶ 無譏 : 나무랄 것이 없다.
▶ 可以止矣 : 그칠 만하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뜻.
今世之士, 不務行曾參ㆍ周公ㆍ孔子之行, 而諱親之名, 則務勝於曾參ㆍ周公ㆍ孔子, 亦見其惑也.
오늘날의 선비들이 증삼·주공·공자의 행실을 행하고자 힘쓰지 않으면서, 어버이의 이름을 휘함에 있어서는 증삼·주공·공자보다 낫고자 힘쓰고 있으니, 역시 그들의 미혹됨을 알겠다.
▶ 其惑 : 그 미혹됨.
夫周公ㆍ孔子ㆍ曾參, 卒不可勝, 勝周公ㆍ孔子ㆍ曾參, 乃比於宦官宮妾, 則是宦官宮妾之孝於其親, 賢於周公ㆍ孔子ㆍ曾參者耶?”
주공·공자·증삼은 아무리 해도 그들보다 나을 수 없는 분들인데, 주공·공자·증삼보다 심하게 환관·궁녀와 나란히 휘하고 있으니, 환관이나 궁녀가 어버이에 효도함이 주공·공자·증삼보다 현명하다는 말인가?.
▶ 卒不可勝 : 끝내 이길 수 없다. 즉 아무리 해도 더 나을 수 없다는 뜻.
해설
중국에서는 군주나 부모의 死後에 예를 지키고자 생전의 이름자를 피하여 쓰지 않는 諱法이 지켜졌었다. 이러한 습관은 周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는데, 秦漢 이후로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도 피하여 쓰지 않게 되었고[生諱], 唐대에 와서는 더욱 까다로워지고 엄격해져서 본래의 취지를 상실하였다.
한유가 이 글을 지은 것은 물론 자신이 천거했던 李賀가 휘법과 관련되어 비난받음을 변호하고 시비를 가리고자 한 것이지만, 아울러 근거없는 휘법에 맹종하는 세태에 일침을 가하려는 의도도 곁들여져 있다.
먼저 휘에 관한 규칙이 적혀있는 《禮記》, 권위있는 경서 및 성인들의 諱例, 그리고 한유가 살았던 당시 시행되던 휘법에 비추어 따져볼 때 이하의 경우 아무런 저촉됨이 없음을 조리있게 밝혔다. 그런 다음, 휘자와 음이 비슷한 글자를 쓰지 않는 경우는 환관이나 궁녀들뿐이니, 성인의 휘법을 따르지 않고 그것을 따르려 하느냐는 물음으로 끝을 맺고 있다.
실로 반론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통쾌한 論辯文이다.
洪曰:
홍씨가 말했다.
“李賀父晉肅, 邊上從事, 賀年七歲, 以長短之製, 名動京華.
“이하의 아버지 진숙이 변방에서 종사했는데 이하가 7살 때에 장단구의 시구를 지음으써 명성이 서울을 진동했다.
時愈與皇甫湜, 覽賀所業, 奇之.
이때 한유와 황보식이 이하가 수업한 것을 보고는 기특하게 여겼다.
會有以晉肅行上言者, 二公聯騎造門, 請見其子.
마침 진숙의 행실로 상언하는 사람이 있어, 두 공은 연이어 말을 타고 문에 이르러 그 아들을 보길 청하였다.
▶上言: 신하가 임금에게 사사로운 일을 글로 올리던 일
旣而總角荷衣而出, 面試一篇, 承命欣然, 傍若無人, 仍目曰高軒過, 二公大驚, 命聯鑣而還所居, 親爲束髮.
이윽고 총각을 틀고 연꽃 옷을 입고 나오매, 면대하며 한 편의 글로 시험하니, 흔쾌히 명을 받들고 곁에 사람이 없는 듯이 짓고 ‘高軒過’라 제목하니 두 공이 매우 놀라서 연이어 말재갈 물리길 명하여 거소로 돌아와서 친히 머리를 묶어주었다.
年未弱冠, 丁內艱, 它日擧進士, 或謗賀不避家諱, 文公時著「諱辨」一篇.
나이가 약관도 되지 않아 內艱(모친상)을 겪었고, 훗날 진사과에 응시하니 혹자는 이하가 집안의 휘를 피하지 않았다고 비방하매, 문공이 이때 「휘변」 한편을 저술했다.
張昭論舊君諱云:
장소가 옛 군왕의 휘를 논하며 말했다.
‘周穆王諱滿, 至定王時, 有王孫滿者, 厲王諱胡, 至莊王之子名胡, 其比衆多.’
‘주목왕의 휘는 滿인데 정왕 때에 이르러 王孫滿이 있었고 여왕은 胡를 휘했는데 장왕의 아들에 이르러 胡라 이름 지었으니 이런 선례가 많고도 많다.’
退之「諱辨」, 取此意.”
퇴지의 「휘변」은 이런 뜻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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