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103-錢塘勤上人詩集序(전당근상인시집서)-蘇軾(소식)

耽古樓主 2024. 4. 11. 16:42

古文眞寶(고문진보)

錢塘勤上人詩集序(전당근상인시집서)-蘇軾(소식)

 


昔翟公罷廷尉, 賓客無一人至者, 其後復用, 賓客欲往.
옛날 翟公이 廷尉 벼슬을 그만두자, 빈객 중에 찾아오는 자가 하나도 없었는데, 그 뒤에 다시 기용되자 빈객이 다시 찾아오려 하였다.
翟公(적공) : 漢 文帝 때 사람. 이 글에 나오는 정도의 사적이 알려져 있고 뒤에 그의 집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문에 참새 그물을 칠 만하게 되었다[門可羅雀]’는 말이 생겨났다.
廷尉 : 법과 형벌을 관장하던 대신.

翟公大書其門曰:
“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적공이 집 대문에 크게 써붙였다.
“한번 죽고 한번 살아나 보아야만 사귀던 정을 알 수 있고, 한번 가난해졌다가 한번 부유해져 보아야만 사귀던 실태를 알 수 있고, 한번 귀하였다가 한번 천해져야 사귀던 정이 드러난다.”

世以爲口實.
세상에서는 이것을 얘깃거리로 삼았다.
口實 : 얘깃거리.

然余嘗薄其爲人, 以爲客則陋矣, 而公之所以待客者, 獨不爲小哉.
그러나 나는 일찍이 그의 爲人을 천박하게 보고 빈객도 비루하다고 여겼으나, 적공이 빈객을 대하는 도리를 어찌 좀스럽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 : 천박하게 여기다. 시원찮게 보다.

故太子太師歐陽公好士, 爲天下第一.
옛날 太子太師였던 구양공이 선비를 좋아함은 천하에 제일이었다.
歐陽公(구양공) : 歐陽修.

士有一言中於道, 不遠千里而求之, 甚於士之求公.
선비에게 도리에 맞는 한마디 말이 있으면 불원천리하여 그를 찾으니, 선비가 공을 찾음보다 더욱 열심이었다.

以故盡致天下豪傑, 自庸衆人, 以顯於世者固多矣.
이렇게 하여 천하의 호걸을 모두 모으니, 보통사람으로서 세상에 유명해진 자가 매우 많았다.
庸衆人(용중인) : 용렬한 보통사람.

然士之負公者亦時有之.
그러나 선비로서 공을 등지는 자도 가끔 있었다.
負公(부공) : 공을 어기다. 공의 뜻을 배반하다.

蓋嘗慨然太息, 以人之難知, 爲好士者之戒.
일찍이 慷慨하여 한숨을 쉬면서,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움을 선비를 좋아하는 자의 경계로 삼았다.

意公之於士, 自是少倦, 而其退老於潁水之上, 余往見之, 則猶論士之賢者, 惟恐其不聞於世也,
공이 선비에 대하여 이로부터 약간 싫증이 났으리라 생각하고, 그가 潁水로 물러나 노년을 보내고 있을 때 내가 찾아가 뵈니, 여전히 선비 중의 賢者를 논하면서 그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까만 염려하셨다.
() : 생각하다.
退老(퇴로) : 벼슬에서 물러나 노년을 보내다.
潁水(영수) : 河南省에서 시작하여 安徽省太和·阜陽·潁上등의 현을 거쳐 淮水에 합쳐지는 강물 이름. '영수 가'란 영상을 가리킨다.

至於負者, 則曰:
“是罪在我, 非其過.”
배반한 자에 관하여 말하였다.
“이 죄는 나에게 있지 그의 잘못이 아니다.”

翟公之客, 負公於死生貴賤之間, 而公之士, 判公於瞬息俄頃之際, 翟公罪客, 而公罪己, 與士益厚, 賢於古人遠矣.
적공의 빈객은 生死·貴賤의 사이에서 적공을 배반하였고, 구양공의 선비는 瞬息俄頃의 시기에 구양공을 떠났는데, 적공은 빈객에게 죄를 돌렸으나 구양공은 죄를 자기에게 돌리고 선비들과 더욱 두터이 사귀었으매, 옛사람보다도 훨씬 현명한 것이다.
瞬息(순식) : 눈 깜빡거리고 숨 한번 쉬는 짧은 동안.
俄頃(아경) : 짧은동안, 갑작스런 동안.

公不喜佛老, 其徒有治詩書學仁義之說者, 必引而進之.
구양공은 불교와 도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그 門徒 중에 《시경》·《서경》을 배우거나 仁義의 이론을 공부한 자가 있으면 항상 그를 인견하고 추천해주었다.
引而進之(인이진지) : 그를 끌어들여 밀어줌.

佛者惠勤, 從公遊三十餘年, 公嘗稱之爲聰明才智有學問者, 尤長於詩.
불교를 믿는 중 惠勤은 구양공을 따르며 30여 년이나 교유하였는데, 공이 일찍이 그를 칭찬하기를, 聰明才智에 학문을 갖춘 사람으로 더욱이 시에 長技가 있다고 하였다.
惠勤(혜근) : 杭州 西湖에 있던 중. 구양수는 그에게 山中樂 3을 지어준 일이 있다.


公薨於汝陰, 余哭之於其室, 其後見之, 語及於公, 未嘗不涕泣也.
구양공이 汝陰에서 돌아가시자 나는 그의 집에서 哭하였는데, 그 뒤에 혜근을 만났을 때 얘기가 구양공에 미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며 울지 않는 적이 없었다.
() : 돌아가다. 죽다.
汝陰 : 지금의 安徽省 阜陽縣. 潁上縣과 접해 있음.
() : 곡하다. 服喪을 함.
其室(기실) : 혜근의 집을 가리킴. 소식이 杭州通判으로 있을 때 구양수가 죽었는데, 소식은 혜근의 집에서 7년 동안 스승을 위하여 곡하였다 한다.

勤固無求於世, 而公又非有德於勤者, 其所以涕泣不忘, 豈爲利哉.
혜근은 본시 세상에서 구하는 바가 없어서 구양공도 혜근에게 은덕을 베푼 사람이 아닌데, 그가 눈물 흘리며 울면서 잊지 못하는 까닭이 어찌 이익 때문이겠는가?
有德於勤(유덕어근) : 혜근에게 은덕을 베푼 것이 있음.

余然後益知勤之賢, 使其得列於士大夫之間而從事於功名, 其不負公也審矣.
나는 그러고 나서야 더욱 혜근이 현명함을 알게 되었으니, 만약 그가 사대부 사이에 끼어서 功名에 종사한다면, 그가 구양공을 배반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 : 잘 안다. 확실하다.

熙寧七年, 予自錢塘, 將赴高密, 勤出其詩若干篇, 求予文以傳於世.
熙寧 7년에 내가 전당에서 高密로 떠나려 할 때, 혜근이 그의 시 약간 편을 내놓고 내게 글을 써주기 바라면서 그것을 후세에 전하겠다고 하였다.
熙寧(희령) : 神宗의 연호, 7년은 1074.
錢塘(전당) : 杭州의 별명. 소식은 그곳 통판으로 있었음.
高密(고밀) : 지금의 山東省 縣 서북쪽의 고을 이름. 그때 소식은 그곳을 관할하는 密州의 지사로 갔다.

余以爲詩, 非待文而傳者也, 若其爲人之大略, 則非斯文, 莫之傳也.
나는 시란 글을 통하여 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爲人의 대략은 이 글이 아니라면 전할 수가 없을 터이다.
爲人之大略(위인지대략) : 혜근의 사람됨에 관한 대략.


 

 해설


이 글은 '杭州의 惠勤 스님의 시집'에 서문으로 써준 글이다소식은 스승 歐陽修를 통하여 혜근을 알게 되었고그 뒤로 상당히 두터운 교분을 지녔다앞부분에서는 주인공인 혜근보다도혜근을 이끌어 준 스승 구양수의 인덕이 더 크게 드러나고 있다그러한 위대한 인덕의 품속에서 혜근 같은 훌륭한 중도 존재할 수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