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菩薩閣記(사보살각기)-蘇軾(소식)
始吾先君於物無所好, 燕居如齋, 言笑有時, 顧嘗嗜畵.
본시 나의 선친께서는 물건을 좋아함이 없었고, 평소의 생활도 齋戒하듯 하셔서 말하고 웃음에도 정해진 때가 있었으나, 다만 일찍부터 그림은 좋아하셨다.
▶ 先君 : 선친 소식의 아버지 蘇洵을 가리킴.
▶ 燕居如齋(연거여재) : 평소 생활을 재계하듯 함. 평소 생활을 근엄하게 함.
▶ 言笑有時(언소유시) : 말하고 웃고 함이 일정한 때가 있음. 아무 때나 말하고 웃고 하지 않음.
▶ 顧 : 도리어. 그러나.
弟子門人, 無以悅之, 則爭致其所嗜, 庶幾一解其顔.
제자와 門人이 기쁘게 할 것이 없으므로, 다투어 선친이 좋아하실 것을 가져와 선친께서 한 번이라도 얼굴을 펴시기를 바랐다.
▶ 庶幾(서기) : 바라다.
▶ 一解其顔(일해기안) : 그의 얼굴을 한번 펴게 하다. 그를 한번 즐겁게 해주다.
故雖爲布衣, 而致畵與公卿等.
그러므로 비록 평민의 신분이었으나 모인 그림은 公卿과 같았다.
長安有故藏經龕, 唐明皇帝所建.
長安에는 오래된 藏經龕이 있는데 唐나라 玄宗이 세운 것이다.
▶ 藏經龕(장경감) : 불경을 넣어두는 龕室.
▶ 明皇帝(명황제) : 당나라 玄宗.
▶ 四達八板(사달팔판) : 사방의 문이 여덟 쪽으로 이루어져 있다.
其門四達八板, 皆吳道子畵.
그 문은 사방 여덟 쪽인데 모두 吳道子가 그림을 그렸다.
▶ 吳道子(오도자) : 이름은 道玄. 도자는 그의 자이며, 당나라 때의 유명한 화가. 특히 불상과 산수에 뛰어났다.
陽爲菩薩, 陰爲天王, 凡十有六軀.
겉은 菩薩 그림이고 안은 天王 그림으로 모두 열여섯 軀이었다.
▶ 陽(양) : 겉.
▶ 菩薩(보살) : 梵語로 正士의 뜻이며 佛果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통칭임.
▶ 陰(음) :뒤쪽. 안.
▶ 天王(천왕) : 곧 四天王. 불경에 의하면 須彌山 중턱의 由犍陀羅산의 네 봉우리에 각각 있으면서 세상의 여러 가지를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 軀(구) : 몸. 像의 수를 세는 단위.
廣明之亂, 爲賊所焚, 有僧忘其名, 於兵火中, 拔其四板以逃, 旣重不可負, 又迫於賊. 恐不能皆全. 遂竅其兩板以受荷.
廣明 연간(880) 黃巢의 난 때 賊徒에게 불타매, 이름 모를 어떤 중이 兵火 속에서 그중의 네 쪽을 떼어 도망쳤으나, 무거워서 짊어질 수 없는 데다가 적도에게 쫓기기도 하매, 전부를 보전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그 두 쪽에 구멍을 뚫어서 짊어졌다.
▶ 廣明之亂(광명지란) : 광명은 당나라 僖宗의 연호(880). 이 해에 黃巢의 난이 일어났다.
▶ 覈(규) : 구멍. 구멍을 뚫다.
西奔於岐, 而託死於烏牙之僧舍, 板留於是, 百八十年矣.
서쪽 岐山으로 달아나 烏牙의 절간에 죽을 때까지 몸을 의탁하여, 문짝이 여기에 머문 지 180년이 되었다.
▶ 岐(기) : 岐山. 陝西省 岐山縣 동북쪽에 있다.
▶ 託死(탁사) : 죽음을 기탁하다. 죽도록 자기 몸을 의탁하고 살다.
▶ 烏牙(오아) : 기산의 절 이름.
客有以錢十萬, 得之以示軾者, 軾歸其直而取之, 以獻諸先君. 先君之所嗜, 百有餘品, 一旦以是四板爲甲.
손님에 10만 錢으로 그것을 사서 내게 보여주는 자가 있어, 내가 그 값을 물어주고 사서 선친에게 갖다 드리매, 선친께서 좋아하시는 그림이 백여 점이나 있었으나 하루아침에 이 네 판자를 으뜸으로 쳤다.
▶ 歸其直(귀기치) : 그 값을 돌려주다.
▶ 爲甲(위갑) : 첫째가 되다. 최고의 것이 되다.
治平四年, 先君沒于京師, 軾自汴入淮, 泝于江, 載是四板以歸.
治平 4년(1067)에 선친께서 서울에서 돌아가시매 내가 汴京에서 회수로 들어와서 江水를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이 네 쪽의 그림은 싣고 돌아왔다.
▶ 治平(치평) : 송나라 英宗 때의 연호. 그 4년은 1067. 실제로 소순은 치평 3년 4월에 죽어, 소식이 護喪葬하였다. 여기에서 4년이라 한 것은 착각인 듯하다.
▶ 汴(변) : 汴京. 지금의 河南省 開封. 북송 때의 서울임.
▶ 淮(회) : 淮水. 하남성에서 시작하여 安徽·江蘇 두 성의 북부를 거쳐 바다로 흘러든다. 소식은 歸葬하려고 먼저 배로 회수를 따라 바다로 나와 다시 長江을 거슬러 올라가 四川省으로 갔던 것이다.
▶ 泝(소) : 물길을 거슬러 올라감.
▶ 江(강) : 長江. 揚子江.
旣免喪, 所嘗與往來浮屠人惟簡, 誦其師之言, 敎軾爲先君捨施, 必所甚愛, 與所不忍捨者,
脫喪하고 나서, 일찍부터 서로 왕래하던 승려 惟簡이 자기 스승의 말을 암송하면서 나에게 선친을 위하여 施主하되, 반드시 매우 아끼고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 浮屠(부도) : 범어로 붓다[佛陀]의 譯. 불교를 뜻함.
▶ 惟簡(유간) : 중의 이름.
▶ 捨施(사시) : 부처님께 시주함.
軾用其說, 思先君之所甚愛, 軾之所不忍捨者, 莫若是板.
내가 그 말을 채용하여 선친께서 매우 아끼시던 물건과 내가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생각해 보니 이 판자보다 더한 것이 없었다.
故遂以與之, 且告之曰:
그리하여 마침내 그것을 주며 말하였다.
“此明皇帝之所不能守而焚於賊者也, 而況於余乎.
“이것은 당나라 현종도 지키지 못하여 적도에게 불탔던 것이니, 하물며 나에게 있어서랴?
余視天下之蓄此者多矣, 有能及三世者乎.
내가 보건대 천하에 이런 것을 지닌 자가 많지만, 삼대를 보전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其始求之若不及, 旣得惟恐失之, 而其子孫, 不以易衣食者鮮矣.
처음에는 그것을 구함에 미치지 못할 듯이 하고, 취득하고 나서는 그것을 잃을까 걱정하나, 그 자손은 그것으로 衣食과 바꾸지 않는 자가 드뭅니다.
▶ 若不及(약불급) : 미치지 못하는 듯이 하다. 손에 넣지 못할까 걱정하면서 구함.
余自度不能長守此也, 是以予子, 子將何以守之?”
내가 스스로 판단하기에 이것을 오래도록 지킬 수 없으매 이것을 그대에게 주는데, 그대는 어떻게 그것을 지켜내겠습니까?”
簡曰:
“吾以身守之, 吾眼可矐, 吾足可斮, 吾畵不可奪, 若是足以守之歟.”
유간이 대답하였다.
“나는 몸으로 지켜서, 내 눈을 멀게 할 수 있고 내 다리를 자를 수 있겠으나, 그림은 빼앗지 못할 터이니, 그렇게 하면 충분히 지킬 수 있겠지요?”
▶ 矐(회) : 눈이 멂.
▶ 斮(착) : 베다. 자르다.
軾曰:
“未也. 足以終子之世而已.”
내가 말하였다.
“부족합니다. 그대의 세대를 마칠 때까지 충분할 따름입니다.”
▶ 終子之世(종자지세) : 그대의 평생이 끝나도록. 그대의 평생 동안
簡曰:
“吾又盟於佛而以鬼守之, 凡取是者, 與凡以是予人者, 其罪如律, 若是足以守之歟.”
유간이 말하였다.
"내가 또 부처님께 맹세하고 귀신에게 지키도록 하여, 누구든 이것을 가지는 자와 이것을 남에게 주는 자는 그 죄를 율법을 따르게 하면, 이것을 충분히 지킬 수 있겠지요?"
▶ 如律(여율) : 율법대로 하다. 율법을 따라 엄벌함을 뜻함.
軾曰:
“未也. 世有無佛而蔑鬼者.”
내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상에는 부처님을 무시하고 귀신을 업신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然則何以守之?”
“그러면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曰:
“軾之以是予子者, 凡以爲先君捨也, 天下豈有無父之人歟. 其誰忍取之.
“내가 이것을 스님께 줌은 선친을 위하여 喜捨하는 것이니, 천하에 어찌 아비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 누가 차마 가져가겠습니까?
若其聞是而不悛, 不惟一觀而已, 將必取之然後爲快, 則其人之賢愚, 與廣明之焚此者一也, 全其子孫難矣, 而況能久有此乎.
만약 이런 사정을 듣고도 改悛하지 않아서, 한 번 보면 그만이지 않고 기어이 가져야 마음이 시원해진다면, 그 사람의 어리석음은 광명 연간에 이것을 불태웠던 자와 한가지여서, 그의 자손을 보전하기 어려울 터인데 하물며 오래 지닐 수가 있겠습니까?
▶ 悛(전) : 잘못을 고치다. 그치다.
且夫不可取者, 存乎子, 取不取者, 存乎人, 子勉之矣.
더구나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도리는 그대에게 존재하고, 가져가고 가져가지 않음은 남에게 달려 있으니, 그대는 힘써야 합니다.
▶ 存乎子(존호자) : 그대에게 존재하다. 그대에게 간직되어 있다.
爲子之不可取者而已, 又何知焉.”
그대가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말면, 더욱이 남은 어찌 알겠습니까?“
旣以予簡, 簡以錢百萬, 度爲閣以藏之.
그런 후 유간에게 주자, 유간은 백만 錢으로 누각을 지어 그것을 보관하려 계획하였다.
且畵先君像其上, 軾助錢二十之一, 期以明年冬閣成.
또 선친의 초상을 그 위에 그리기로 하매 나는 금전 20분지 1을 보조하고, 내년 겨울에 누각을 낙성하기로 기약하였다.
熙寧元年十月日記.
熙寧 1068 시월 모일 씀.
▶ 熙寧(희령) : 송나라 神宗의 연호. 그 원년은 1068.
해설
이 글은 소식이 예전에 구하여 그림을 좋아하는 아버지 蘇洵에게 드렸던 唐 玄宗 때의 화가 吳道子가 그린 네 像에 관한 글이다.
소순이 죽은 뒤 소식은 자기와 친한 중 惟簡의 권유로 소순이 가장 좋아하던 이 보살상을 아버지를 위하여 절에 시주한다.
그리고, 이 그림의 보관에 조심하기를 각별히 부탁하매, 유간은 특별히 '四菩薩閣'을 지어 이 그림과 함께 소순의 화상까지 모시기로 한다. 소식이 '사보살각'이 건립된 유래를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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