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

失題(실제) - 金可基(김가기)

耽古樓主 2023. 4. 17. 07:33

 

失題(실제) - 金可基(김가기)

大醉長安酒 狂歌日暮還(대취장안주 광가일모환)
蓬壺多俗物 遊戱且人間(봉호다속물유희차인간)

서울에서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해서, 해질 무렵 미친 듯이 노래하며 돌아오네.

봉래산에 속물이 너무 많기에, 유희하며 잠시 인간에 머무르오.

 

▶長安: 한나라의 도읍지. 수.당도 도읍으로 했다. 조선 때 慕華思想에 물든유학자들이 서울을 장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데서 일국의 수도를 가리키게 되었고, 여기서는 조선의 수도인 漢陽을 가리킨다.

 

▶蓬壺: 蓬萊山은 본래 道敎에서 神仙이 살고 있는 병 모양으로 생긴 산으로, 중국 전설에 나타나는 三神山 가운데 하나이다.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으며, 신선이 살고 不老草와 不死藥이 있다고 전한다.

 

▶해설

雲巢子 김가기(金可基)란 기인이 쓴 시다. 그는 생몰년도 알려지지 않은 조선 후기 사람으로 기행(奇行)을 일삼은 행적이 유명하다. 신선의 행적으로도 제법 알려져 있다.

어느 날 서울 술집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날이 저물어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자칭타칭 신선이란 자가 뭐가 그리 불만인지 미친 듯이 노래까지 불러댔다. 어디서나 흔하게 눈에 뜨이는 술주정뱅이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왜 그렇게 시장 바닥에서 술에 취해 사느냐고 묻는다면 내 말해주겠다.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에서 그대들은 살아본 적이 있던가?

내가 오래 살아봐서 잘 아네만, 거기도 속물들 천지일세.

선계(仙界)에서 벌어지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짓거리에 기가 막혀서 차라리 인간 세상에 내려가 살기로 했지.

건들건들 놀면서 여기 사는 게 겉은 고고하고 화려해도 실상은 천박한 속물들 틈에서 사느니보다 낫더군. '

 

다음은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의 김가기에 대한 기록이다

<金仙之名 何由而得哉
김신선이란 이름은 어떤 연유로 얻게 된 것인가?

 

少而無他異 合巹之夕 一擧而得一子 終身獨栖而已

젊을 적에는 별다른 점이 없었는데, 혼인한 첫날 밤에, 한번 합방하여 아들 하나를 얻고는, 평생 동안 홀로 기거하였다.

巹(근): 합환주잔 근. 옛날 혼례 때 쓰던 술잔

 

步蹀與人同而三入金剛 一屩不弊

걸음걸이가 남들과 똑같았지만 세 번이나 금강산에 들어 갔는데도, 신발이 한 켤레도 떨어지지 않았다.

蹀(접): 밟다.

屩(교): 짚신

 

正陽寺中有老釋 不食五穀 不出戶外 已十年

정양사(正陽寺)라는 절에, 한 노승이 있었는데, 오곡을 먹지 않고, 문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이, 이미 10년이나 되었다.

 

金仙入而視之 釋跏趺瞑目而坐.

김신선이 들어가 보니, 노승은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仙不交一語而對坐 有小誾梨進松花水於釋 次進於仙 仙合目不應.

김신선은 그와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마주 앉아 있었는데, 어린 중이 노승에게 송화수(松花水)를 올리고, 다음에는 김신선에게도 올렸으나, 그는 눈을 감은 채 응하지 않았다.

 

如是三日坐如故 釋乃愧謝之.

이렇게 사흘을, 그대로 앉아 있었더니, 노승은 이에 부끄럽게 여기고 그에게 사과를 하였다.

 

居家或晨起 至澗水處 露尻坐水 腹有聲 水從口中出.

집에 있을 때에는 간혹 새벽에 일어나, 시냇물에 가서, 엉덩이를 드러내고 물에 앉았는데, 배에서 소리가 나더니, 물이 입으로 나왔다.

 

已而以口吸泉 泉如寫自肛下.

조금 있다가, 입으로 들이 마시면, 물이 마치 항문으로 쏟아 지듯이 나왔다.

 

如是數回而止.

이와 같이 하기를 여러번 하고서야 그쳤다.

 

無疾而逝 異香滿室 數日不絶 人以爲尸解.

아무런 병도 없이 세상을 떠났는데, 이상한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여, 며칠이나 사라지지 않으니, 사람들은 그가 ‘시해(尸解)’한 것으로 여겼다.

 

金仙名可基 曾孫名守德尙存.

신선의 이름은 가기(可基)이고 증손자의 이름은 수덕(守德)인데 아직 생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