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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文章/조선명인전 101

70.조선-휴정(休靜)

권상로(權相老) 1879∼1965. 승려, 불교학자. 호 퇴경(退耕). 경북 문경 생. 문경 금룡사에서 승려가 된 후 불교전문강원을 수료, 동국대 초대 총장 등을 역임. 사망 후 대종사(大宗師)의 법계(法階)에 오름. 저서에 「조선문학사」, 「퇴경역시집(退耕譯詩集)」, 「고사성어사전」, 「조선불교약사(朝鮮佛敎略史)」,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 한국지명연혁고(韓國地名沿革考)」 등이 있음. 1. 서언(緖言) 인도의 불교가 지나를 거쳐서 조선에 들어온 지 무릇 1,560여 년 동안에 고승의 배출이 도마죽위(稻麻竹葦)1)같았지마는 그중에서 가장 교초(翹楚)2)될 만한 대표적 인물을 들자면 누구나 주저치 않고 신라의 원효, 의상, 혜초, 자장, 고구려의 아도(阿道), 보덕(普德), 백제의 겸익(謙益), 고려의..

69.조선-신사임당(申師任堂)

이병기(李秉岐) 1891~1968. 시조시인, 국문학자, 수필가. 호 가람(嘉藍). 전북 익산 생. 한성사범을 거쳐 조선어강습원을 수료.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했으며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 서울대, 단국대 교수, 학술원 임명 회원 등을 역임. 저서에 「국문학전사(國文學全史)」, 「역대시조선(歷代詩調選)」,「시조의 개설과 창작」, 「국문학개론」 등이 있으며 시조집으로 「가람시조집」, 「가람문선」 등이 있음. 중종 때에 윤상공(尹相公) 은보(殷輔), 남공(南公) 효의(孝義) 등이 현량(賢良)으로 추천하여도 굳이 사양하고 다만 진사로 늙어 죽은 신명화(申命和)는 본디 평산(平山)의 대성(大姓)으로서 세업을 혁혁하게 이어왔으나 천성이 순실(淳實)하고 지조와 기개가 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하되 詞章만 읽는 것이..

68.조선-황진이(黃眞伊)

김태준(金台俊) 생몰 연대 미상. 평론가. 성대(城大) 조선문학과 졸업. 점차 극좌적인 평론 활동을 하다 6·25 전에 월북․ 저서에 「조선소설사」, 「고려가사 주해」, 「조선문학사」, 「조선가요집성」, 「청구영언」등이 있음. 황진이는 황진(黃眞) 혹은 진랑(眞娘)이라고도 한다. 개성 황진사의 외딸로서 실절(失節)한 후 기생이 되었다고도 하며 혹은 개성 천가(賤家) 맹녀(盲女)의 딸이었다고도 한다. 인물이 절색일 뿐 아니라 시에 능하여 스스로 말하되 서화담 선생과 박연폭포와 자기를 합해서 송도3절(松都三絶)이라고 하였다. 서화담 선생으로 말하면 동시의 송도 선배로 도학의 명망이 일국에 관(冠)한 분이요, 박연폭포도 그 형승(形勝)이 동국에 으뜸이 되는 것인데 자기를 그와 합해서 3절이라 한 것은 그의 자..

67.조선-이황(李滉)

이병도(李丙燾) 1896~ 사학자. 호 두계(斗溪), 경기도 용인 생.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 사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장, 진단학회 회장, 학술원 회장 등을 역임. 근대한국사학 수립에 막대한 공을 세움. 저서에 「한국사대관」, 「한국사(고대편 중세편)」, 「한국 고대사회와 그 문화」등이 있음. 이황은 ‘동방의 주부자(朱夫子)’로 일컫던 퇴계 그 사람이니 율곡 이이와 한가지로 조선의 유학계를 대표한 최고봉으로 그 품격과 학문에 있어 각기 후인에 끼친 영향은 절대하였다. 특히 퇴계는 영남학인(嶺南學人)의 종사(宗師)로, 율곡은 기호학인(畿湖學人)의 종장(宗匠)으로 유달리 숭배되어 오던 이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퇴계는 율곡보다 35년이나 장(長)한 선진(先進)이니 연산군 7년 신유(1501) 12월 2..

66.조선-이준경(李浚慶)

신석호(申奭鎬) 1904~1981. 사학자.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졸업.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수사관(修史官), 국사편찬위원회 사무국장, 서울시사편찬위원회 부원장, 학술원 회원,고려대, 성균관대, 동국대 교수 역임. 저서에 「한국사료해설집」, 「국사신강」, 「국사개요」등이 있음. ▶堪 견딜 감 이준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370년 전 조선 명종, 선조 양조의 名相으로 그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만큼 그의 사업은 큰 것이 많으며 그의 일생에는 파란곡절도 또한 많았었다. 지금 연대를 좇아 그의 일대 전기를 적어 보려 한다. 그런데 기사 중에 간혹 그의 연보와 행장에 상위(相違)되는 점이 있으나 이것이 모두 「이조실록」으로 정정한 것이니 독자는 양찰하기를 바란다. 준경은 광주 이씨로 자는 원길(原吉)이요 호는 ..

65.조선-서경덕(徐敬德)

황의돈(黃義敦) 1891~1969. 사학자. 충남 생. 어릴 때 한학을 수학. 평양 대성학교, 휘문의숙, 보성고보교원을 거쳐 조선일보 사원, 문교부 편수관, 동국대 교수 역임. 저서에 「신편조선역사(新編朝鮮歷史)」, 「중등조선역사」등이 있음. 1. 선생의 탄생과 유년시대 선생의 성은 서(徐), 휘는 경덕(敬德)이요, 관(貫)은 당성(唐城)이며 자는 가구(可久), 호는 복재(復齋)요 송도 동문 밖 화담(花潭) 위에 은거 수도하므로 세인이 화담선생이라 지칭하였다. 이조 성종 20년(기유) 거금 451년 전 2월 17일로, 조선문화의 개척자인 화담선생은 500년 문화적 고도(故都)로서 성거산(聖居山)이 높고 화계수(花溪水)가 맑은 송도 화정리(禾井里), 침묵한 전사(舍) 일우(一隅)에서 고고의 성을 들렸다. ..

64.조선-조광조(趙光祖)

이병도(李丙燾) 1896∼ . 사학자. 호 두계(斗溪). 경기도 용인 생.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 사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장, 진단학회 회장, 학술원 회장 등을 역임. 근대 한국사학 수립에 막대한 공을 세움. 저서에 「한국사대관」, 「한국사(고대편, 중세편)」, 「한국 고대사회와 그 문화」 등이 있음. 1 도학(道學) 즉 성리학(性理學 ; 또는 宋學)이 반도에 수입되기는 이미 고려 말기에 시작하여 이래 국학(國學;성균관)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여온 것이지만 연말 선초에는 아직 그것이 학자층 일반에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또 거기에 정통한 유자(儒者)라도 대개는 사장(詞章)의 학(學) 즉 문학을 주로 숭상하였다. 특히 세종, 세조 및 성종의 치대(治代)에는 국가에서 성히 편찬 저술의 업을 일으키고 실..

63.조선-박은(朴誾)

차상찬(車相瓚) 1887~1946. 저널리스트, 한시 시인, 수필가. 호 청오(靑吾). 강원도 춘천 생.보성전문졸업. 「개벽」의 창간 동인이며 신간 「개벽」의 발행인. 이어 「별건곤(別乾坤)」, 「신여성」, 「농민」, 「학생」등을 발간, 〈관동잡영(關東雜詠)〉 등의 한시 및 사화(史話), 수필 등 다수를 발표. 저서에 「조선사 천년비사」, 「해동염사(海東艶史)」, 「조선야담사화전집」 등이 있음. 연산군 10년 갑자에 일어난 소위 갑자사화는 전날 무오사화(연산군 4년)보다도 더 심혹(甚酷)한 사화로 당시 명유(名儒)의 피해한 이가 퍽 많지마는 그중에 가장 연소하고 가장 인물이 청수(淸秀)하며 또 시(詩)의천재가 있어서 누구나 애석하게 여기던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읍취헌(挹翠軒) 박은이다. 그의 자(字)는 ..

62.조선-최세진(崔世珍)

최현배 (崔鉉培) 1894~1970. 국어학자, 문학박사. 호 외솔. 경남 울산 생. 주시경의 문하. 일본 히로시마(廣島) 고등사범 문과를 거쳐 교토(京都) 제국대학 철학과 졸업. 연대 교수, 한글학회 이사장, 학술원 부원장 등을 역임. 철저한 한글전용주의자로 외래어를 우리말로 풀어 쓰는 운동을 전개. 저서에 「우리말본」, 「한글갈」, 「우리말 큰 사전」 등이 있음. 1. 생애 최세진은 「훈몽자회(訓蒙字會)」의 저자로 그리하여 한글 발달의 역사에 한 용의적(庸醫的) 수술을 한 부족한 한글학자로 오늘날 일반으로 인정되어 있는 모양이나 기실 그는 한글학자라 하기보다 훨씬 더 뚜렷한 한학자 즉 지나어학자(支那語學者)로서 이조 500년간에 거의 유례가 없다 할 만큼 다대한 어학자적 업적을 끼친 사람이다. 그뿐 ..

61.조선-이현보(李賢輔)

조윤제(趙潤濟) 1904-1976. 국문학자, 문학박사. 호 도남(陶南). 경북 예천 생. 경성제대 조선문학과 졸업. 서울대, 청구대, 영남대 교수와 학술원 회원 역임. 진단학회(震檀學會) 결성에 참여. 국문학 연구에 있어 실증주의의 초석을 놓고 나아가 민족사관의 학풍을 확립. 저서에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 「한국 시가의 연구」, 「국문학사」 등이 있음 이현보의 자는 비중, 호는 농암(聾巖)이라 하였다. 세조 13년에 예안현(禮安縣) 분천에서 출생하니, 나면서부터 영매(穎邁)1)하였으며 또 골상(骨相)이 비범하였다 한다. 그러나 지기가 상탕(爽宕)2)하고 구검(拘檢)3)이 없어 어려서는 과렵(戈獵)4)을 좋아하고 학업에 전력하지 않더니 약관에 향교에 들어서 비로소 발분 독서하여 제배(儕輩)5)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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