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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9. 하면서주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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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9. 하면서주의

耽古樓主 2023. 6. 15. 08:56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미국 사람들은 상전의 사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업무에 종사하는 비서일지라도 정해진 업무 외에는 사적으로 예속받는 법이 없다.

 

원숭이성 때문에 우리 한국인은 서툴고 부지런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하는 '하면서주의', 곧 공과 사의 한계가 분명치 않은 또 다른 노동관의 특성을 형성해 놓고도 있다.

 

사자는 먹이를 잡을 때는 비록 그것이 조그마한 토끼일지라도 혼연의 힘을 집중하여 전력투구를 한다. 곧 일할 때는 그 일에 전념을 다한다. 일단 잡고 나면 편안히 누워서 쉰다. 일하고 일하지 않는 생활의 구분이 명확하다.

 

그런데 원숭이는 하루종일 먹기 위해 나부대고, 나부대면서 먹고, 먹으면서 쉬고, 쉬면서 먹는다. 곧 일한다는 것과 일하지 않는다는 생활의 구분이 애매하다.

 

미국 사람은 일단 직장에 출근하면 그 직장의 일에 열중하고 사사로운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 않게끔 사고방식이 돼 있고 또 하지 못하게끔 돼 있다.

 

미국의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가씨들로부터 '미국 사람들은 잔인할 정도로 비인간적으로 사람을 부려 먹는다’는 불평을 들은 일이 있다. 손님이 있을 때면 몰라도 손님이 없을 때도 앉아 있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앉아 있을 의자도 없거니와 기대어 쉬지도 못하게 한다고 했다. 그것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게 여겨진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적인 기준에서 판단된 한국인의 사정일 뿐이다. 일단 계약된 노동 시간은 전력투구하는 그들의 사자성이 손님이 없더라도 일은 하고 있게 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한국 사람은 출근을 하면 자기네 안방이라도 들어가듯이 슬리퍼로 신발을 갈아 신고 미스 김이 가져다주는 커피를 든다.

 

책상머리에 걸터앉아 사적인 전화를 걸고 사적인 손님과 느긋하게 잡담을 한다. 외상값 받으러 온 박 마담의 턱을 쓰다듬질 않나, 설렁탕을 시켜 먹고 늘어지게 한숨 자기도 하다. 퇴근 시간이 임박하면 집에 전화를 걸어 저녁 반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텔레비전의 양주 광고에 아내가 직장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반주는 뭘로 할까요 하고 묻는 것도 있었다. 지극히 한국적인 상업광고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한국인은 일하면서 쉬고 놀면서 일한다.

 

퇴근 후에도 완전히 직장의 일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잔무 근속을 하는가 하면, 직장의 일로 교제술을 마신다. 24시간 근무하면서 쉬고, 쉬면서 일한다.

 

일과 여가가 혼합되어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원숭이성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하는 '하면서주의자'다.

 

기차 여행을 할 때도 창밖의 풍물을 보면서 사색하기에 벅찬데 신문지 깔아놓고 화투를 친다. 여행하면서 섯다를 한다.

 

여름날, 등산길 시원한 고갯마루에 역시 신문지 깔아놓고 화투를 치는 등산객들을 자주 보는데, 이 역시 하면서주의자들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곧 그 고된 등산을 하면서 섯다를 한다. 커피 마시면서 결재를 하고, 밥 먹으면서 신문을 보고 뽕 따면서 임도 본다.

 

서울 도심지에 '구미호'란 별명을 가진 소문난 다방 마담을 알고 있다. 이 마담은 손님이 드나드는 문간에 서서 동시에 아홉 사람에게 추파를 던질 수 있는 하면서주의의 숙련된 챔피언이기에 이같은 별명이 붙은 것이다.

 

입으로는 A란 손님에게 애교를 부리고, 눈은 B라는 손님에게 윙크를 하며 왼손으로는 C라는 손님의 손을 잡고, 오른손 팔꿈치로는 D란 손님의 등을 친다. 무릎으로는 E란 손님, 엉덩이로는 F란 손님에게 액션을 가한다. 물론 이 같은 추파동작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과장이겠지만 보통 둘 내지 세 손님은 동시에 능란하게 다룬다.

 

그래서 '구미호'는 초식동물의 유전질을 가장 순수하게 물려내린 우리 한민족의 원형인 점에서 그 혈통이 우생학적으로 보존돼야 한다고 농을 걸기도 했던 것이다. 게오르규의 <25시>에 보면 게르만민족의 순종을 고르는 우스꽝스런 대목이 있지 않던가.

 

이처럼 한국인은 여가를 노동화하고 노동을 여가화하는 '하면서주의자'다.

 

이 사자성과 원숭이성은 다같이 장점과 단점이 있다.

무엇인가 기다리지 못하고 초조해하는 것은 원숭이성의 결점일지는 몰라도 원숭이성의 부지런함은 굉장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한국인은 구미인이나 아랍 인에 비겨 부지런하며, 따라서 시간당 작업량도 훨씬 많다. 구미 사람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시간 안에 커다란 공사를 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원숭이성의 부지런함 때문인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인의 공과 사의 혼동은 다른 측면에서도 조명해 볼 수가 있다.

 

A 회사의 뉴욕 지점장은 단신으로 부임, 한국에서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전셋집을 물색하고 있었다. 지점장의 여비서로 있는 미국사람 브루스 부인이 이전에도 한국 사원들의 집을 자주 물색해 준 체험도 있고, 또 집의 방향을 가리는 것 등 한국 사람의 취향도 잘 알고 있다 하여 이 브루스 부인에게 의뢰를 했다. 브루스 부인은 전화를 받고 집보러 간다고 이따금 자리를 떴고, 주말에는 지점장과 더불어 집구경을 다니기도 했다.

 

이 능란한 중년 부인의 소개 솜씨로 맘에 드는 집을 빌 수가 있었고, 집 마련이 되자 곧 가족이 한국에서 날아왔다. 지점장 부인이 한국인 사원들을 위해 선물로써 오징어를 몇 축 사 갖고 왔다.

 

지점장은 이 오징어를 그 여비서에게 맡기면서 한국인 사원들의 집집에 돌려주도록 시켰던 것이다. 오징어처럼 비늘 없는 생선을 미국 사람들은 뱀처럼 싫어한다. 특히 그 냄새에는 질색을 한다.

 

하지만 친절한 브루스 부인은 왼쪽 손으로 코를 막고 이 오징어를 차에 실어 손수 배달해 주었던 것이다.

 

지점장은 여비서가 집을 물색해 주고 선물을 나눠준 일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총무담당 사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결재 서류를 갖고 들어왔다.

 

두 건의 그 결재 서류에는 브루스 부인이 낸 청구서가 붙어 있는데, 그 하나는 집을 물색하고 다니는 동안에 소비된 가솔린 값과 주말의 휴일에 집을 보러 다닌 시간을 계산한 휴일 근무수당의 청구서였다.

 

또 다른 청구서는 오징어를 분배, 배달할 때 소비된 가솔린 값과 배달하느라 근무 시간을 두 시간 초과했다면서 오버타임 수당의 청구서였다.

 

총무담당 사원은 다음과 같이 물었던 것이다. 브루스 부인에게 정해진 업무분담 이외의 일로 특별히 집 물색이나 오징어 분배를 의뢰했는지, 그리고 그 오버타임 수당의 청구를 특례로서 허가했는가고.

 

지점장은 이 여비서의 청구서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비단 이 지점장뿐 아니라 한국인이면 누구나 충격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비서가 자기 상사의 일, 비록 살 집을 물색하고 사원들에게 나눠준다는 그런 사적인 일일지라도 그것을 맡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데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비단 여비서가 아닌 평사원일지라도 그만한 사사로운 상사의 일을 보아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오히려 그런 사적인 일을 맡긴다는 것을 선망한다 해도 대과는 없을 줄 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상사의 사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업무에 종사하는 비서일지라도 정해진 업무 외에는 사적으로 예속받는 법이 없다.

 

그들이 어느 직장에 고용된다는 것은 정해진 업무에 고용되는 것이지 그 업무를 지배하고 감독하는 사람에게 고용된다는 법은 없다. 그 고용 업무와 고용인과의 사이에 선이 명백하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은 물론 정해진 업무 수행을 위해 고용되지만 그 고용자의 인간측면에서도 서로가 유대되고 배려하고 또 종속되는 인간적 고용도 아울러 병행한다.

 

바꿔 말하면 한국인은 사람에게 고용되고 그 사람이 맡기는 업무에 고용되는 인간 우선의 고용을 한다면, 미국 사람들은 인간적 요소를 가급적 배제하는 업무 우선의 고용을 한다. 그러기에 미국인은 계약된 업무에 들이는 노력 이외의 일에는 그 노력의 대가를 청구하는 것이 당연하며, 전인간적 고용을 하는 한국인은 비록 맡은 업무 이외에 고용자가 시키고 원하는 일이면 노력의 대가를 요구하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