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50. 한국인, 왜 일하는가 본문
아무리 돈이 많은 거부가 돼도 한국인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법이 없다. 오히려 할 일이 없다는 공백은 한국인에게 있어 불행과 공포로 작용한다.
신록이 물든 5월의 들판에서 모를 심고 있는 농부에게 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왜 모를 심고 있습니까?”
“왜 지금 일을 하고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한국 농부들은 왜 이같은 질문을 하는가 뜻을 몰라 그저 이상한 눈으로 훑어볼 뿐 대꾸를 하지 못할 것이다.
혹시 당신 좀 돈 사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이론적으로 따진다면 가을의 수확을 위해 지금 심고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흉년이 들지도 모를 일이기에 지금부터 수확의 일을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론은 그렇고 실제로는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모를 심고 있는 것이다. '왜냐'라는 이유는 한국인에게 별반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요, 관심도 없다. '어떻게'라는 질문 같으면 손쉽게 대꾸하겠지만 '왜'는 한국인에게 별반 아랑곳이 없다.
만약 구미인에게 당신은 지금 왜 일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것이 많고 또 대답할 자료도 선명하다.
여름 바캉스에 해외 여행을 하기 위해서 벌고 있다느니, 연금으로 살 수 있지만 고아를 돕기 위해 일하고 있다느니, 정년이 되면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 벌고 있다느니………… ‘왜’의 목적이 선명하다.
물론 우리 한국인도 시집갈 비용을 벌기 위해 일한다느니, 동생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한다느니, 내 집 마련을 위해 일한다느니, 일하는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한다는 것이 근본이 되고 난 다음의 명분이요 목적이지, 구미인처럼 목적이 선행되어 그 목적을 위해 일한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인은 농부들이 사시사철 뚜렷한 목적 없이 제철 되면 그에 부응해서 일하듯이 목적이 있든 없든 또 목적이 어떻게 다르건 간에 먼저 일은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집을 마련할 목적으로 일자리를 구해 일을 한다고 하자. 그래서 그 목적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 일을 그만둔다는 법이 없다. 이제 그는 자가용을 사야겠다고 목적을 세울 것이다. 그 자가용을 샀다 해서 그는 그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있어 일은, 신체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한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이요, ‘왜냐’는 목적은 그 근본적으로 유지되는 일 다음에 선호적으로 있을 수 있는 제2의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아무리 돈이 많은 거부가 돼도 한국인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법이 없다. 오히려 할 일이 없다는 공백은 한국인에게 있어 불행과 공포로 작용한다.
나는 한국 문화의 특징으로서 이 해야 할 일이 없다는 시간적 공백을 무화시키려는 '탈여가'의 문화를 들어왔다.
눈빛이 물색으로 무디어져서 이제 눈물이나 흘리는 구실을 하는 게 고작인 눈, 한숨의 헛바람을 두 갈래로 불러내는 송곳니 하나, 좋은 날씨를 짜리하게 느낀다는 뼈마디만이 살아 있는 그런 몸이 감물들인 누더기, 갈증이 옷 속에 앙상하게 담겨져 있는 할매.
수년 전 제주도 민속을 채집하러 다녔을 때, 나는 5백여 가지의 노동요를 외고 있다는 이 할매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남제주 성산면 온평리, 자란(紫蘭)이 피어 있는 바닷가에 살고 있던 강기빈(康起賓) 할매는 당시 88세의 노구였기로 지금쯤은 작고했을 것이다.
할매는 보릿짚이 늘핏한 뜰에 홀로 앉아 보리이삭 서너 줌을 펴놓고 방망이 타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방망이 타작에 주의를 하였다. 보리를 베면 타작을 해서 알곡으로 보관, 그 알곡을 찧고 갈아 삶아 먹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할매는 보리를 베어 이삭을 낱낱이 잘라 이삭째로 보관해둔다. 즉 타작해서 알곡으로 만들어 보관하거나 방아를 쪄 정곡으로 보관하는 그런 편리한 방법을 택하지는 않는다.
할매는 그 끼니에 식구가 먹을 몫만큼만 이삭을 꺼내들고 와서 방망이로 미리 타작을 한다. 그 알곡을 키질해서 물기를 약간 주어 절구질을 한다. 다시 맷돌에 갈아서 삶았다가 밥을 지어 먹는다. 이 번거로운 과정을 반감 또는 그보다 더 줄일 수도 있었을 텐데 할매는 끼니마다 이 번거로움과 노력을 되풀이한다.
즉, 일부러 사서 일을 더한다.
이와 같은 번거로움을 사서 밥을 짓는 풍조는 옛 제주도 여인들 간에는 공통된 풍습이었다 했다.
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을 번거롭게 할까. 보리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선가. 그건 아니다. 밥맛이 조금 있을지 몰라도 그들 민요에 나타난 대로 평생 잠수업을 해도 배알(배꼽) 감출 베나부랭이 걸치기 어렵고 방아 찧어 품 팔자니 치맛자락 다 누덕나며, 맷돌 갈아 팔려니 적삼배알 다 해진다는 그 가난한 생계에서 조금 더 나은 밥맛을 위해 그 같은 노력과 번거로움을 사양 않는 '사치'는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런 번거로움을 번거롭다고 느낄 수 없는 우둔함 때문인가.
그건 더욱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수백만 명이 이어왔을 그 생활풍습은 항상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당대에 가장 현명한 테두리에 머물어 있게 마련이다. 즉 그 사서 일하는 관습에는 걸핏 보아서 판단하는 인지(人智)보다는 수천 년, 수백 명의 衆智가 결정하여 형성된 것이다.
그럼 그게 뭘까.
그들은 할 일이 없다는 내면적 무(無)의 공포를 무의식중에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할 일이 없다는 편하고 이상적인 상태가 두려움으로 작용하는 데는 여가를 비여가화하는 한국인의 노동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더욱이 활동 범위가 담 안으로 제한받고 모든 동작이 극도로 제한받으며 무식할수록 부덕을 높이 평가받고 옷에 돈 때가 묻는다는 것은 간음이나 당한 것처럼 기피해야 했던 한국 여성에게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여가'는 공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 무의식중의 시행착오와 그런 여건에의 적응이 일부러 번거롭게 품을 더해 사서 일하는 무의식 속의 지혜로 굳어졌을 것이다.
삼남지방에 예쁜 며느리 갈퀴나무로 불때게 하는 풍습이 있다.
아궁이 땔감은 갈퀴나무와 삭정이나무, 장작나무로 대별된다. 갈퀴나무는 아궁이 앞에 붙어 앉아 때야만 하는 비여가적인 불편한 땔감이요, 장작나무는 여가적인 편리한 땔감이다. 그렇다면 미운 며느리에게 갈퀴나무를 때게끔 해야 이치가 맞는다. 한데 예쁜 며느리에게 비여가적인 불편한 일을 시킨 것은 '여가'와 '불편'이 '여가'와 '편리'보다 가치를 두었다는 것이 된다.
장작불을 땜으로써 생기는 여가를 불행한 것으로 간주한 데서 이같은 풍습과 속담이 생겨났을 것이 뻔하다. 이 말은 한국 부녀자에게 꾸준히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의 표현이기도 하다. '빌이집 나간다'하여 가난한 집 부인들의 불청 노동 습속도 일련의 여가의 기피 속에서 이해된다.
가난한 부인들은 틈이 나면 청하지도 않았는데 부잣집 밭에 가 김을 매거나 청하지도 않은 설거지, 청하지도 않은 쓰레질을 한다. 청하지도 않았기에 무슨 보수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주인이 나락 됫박이나 남은 밥을 주면 그것을 받아 온다.
이 습속을 '빌이집 간다'고 한다. 이 습속을 가난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자선적 전시촌락체제의 유속(遺俗)으로 이해되기도 하나 가난할수록 여가가 많이 나는 옛부녀자들의 현명한 지혜라고도 볼 수가 있다.
그 무엇보다도 이 여가를 갖지 않으려는 한국 옛 부녀자들의 무의식적인 집념은 흰옷의 집요한 집념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흰옷처럼 품을 많이 소요하는 옷은 없다. 물에 주물주물해서 한번 털어 입어도 되는 나이론 옷과 비겨 그것은 어마어마한 작업량의 차이가 있다.
사나흘이면 때 묻는 흰옷이다. 그 옷을 낱낱 뜯어 말라놓은 원형으로 환원시켜 잿물받아 빤다. 빨아서 말리고 말려서 풀을 먹여 다시 말린다. 굳은 무명질을 펴게 하기 위해 다듬이질을 하고 다시 윤기를 내기 위해 홍두깨질을 한다. 인두를 곁에 두고 바느질로 재구성을 하여 다리미로 다린 다음 입는다. 사나흘 후면 다시 환원작업을 되풀이한다. 이 번거롭고 불편한 작업을 수천 년 수백만 명이 겪어오면서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번거로움을 알면서도 보다 번거롭게 일을 늘려 온 저변에 우리는 한국 부녀자의 가엾은, 하지만 현명한 지혜를 인정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일제 때 일본 학자들이 한국 주부들의 노동량 조사에서 흰옷 때문에 소요되는 노동량이 전 노동량의 45퍼센트가 된다고 밝혀놓은 논문을 보았다. 그리고 침략 위정자들은 백의를 입지 않으므로 한국부녀자의 노동량이 반감한다고 무척들 선전하였다.
그토록 일을 덜어주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데도 흰옷을 버리지 않는 한국 부녀자들을 두고 그들은 미개하고 우둔하고 발전성이 없는 민족이라고 개탄하고 있는 것도 보았다.
한민족의 습득이나 지혜를 그 같은 피상적인 합리성이나 계산성으로 당해 낼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미개하고 우둔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토록 번거롭고 불편한 흰옷의 전통을 이어 내렸고 또 버릴 수 있었음은 여가의 불행, 비여가의 행복이 무의식중에 체질화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처럼 일은 한국인에게 있어 굳이 즐거운 것은 못 되더라도 구미인의 노동관처럼 형벌처럼 여긴다는 법은 없으며, 그저 사는 것이 일하는 것이요, 일하는 것이 사는 것으로, 삶과 일을 불가분의 요소로 화합시키며 살아온 것이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너무나 할 일이 많고 또 많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 할 일이 없다는 상태는 선망되고 또 그 상태에 놓이고 싶은 이상적 상태로 안다. 그리하여 무한히 그 선망되는 상태를 향해 발돋움한다.
해방 후, 한국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 대가족제도의 붕괴, 개인주의로의 변천, 교육수준의 향상 등 여러 가지 여건으로 선망된 단계를 향해 꾸준히 발돋움해 왔다.
시집에서 해방되어 소가족제도의 주인이 되면서부터, 즉 주부권이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로 옮겨지면서부터 그 권리로 그 많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방기해 왔다.
식모를 들여 부엌일에서 해방된다.
김동인의 소설에서 그토록 미화되었던, 유기 닦는 눈빛에서 느꼈던 옛 주부의 희열 같은 건 없다.
또 젖을 가급적 빨리 떼어 우유로 대체하면서 아이들로부터 해방된다.
릴케의 시에서 그토록 미화되었던 아기의 뺨에서 느끼는 유방의 촉감 같은 건 없다.
빨래는 세탁소로 방기한다.
선교사 게일이 '한국이 숨쉬는 소리'로 미화했던 다듬이 소리는 그래서 없다.
머리 손질은 미장원으로 인해 포기된다.
'머리 다듬는 작업이 수양이나 하나의 도처럼 승화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고 펄 벅이 반했던 머리 손질은 없다.
바느질은 양장점에다 포기하고 아이들 교육은 가정교사에게 포기한다.
만약 그 밖에 주부들이 할 일이 생긴다면 주부는 그것을 가차없이 포기해 버릴 것이다.
나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그곳 상류사회의 서구화한 가족들 간에 생활을 완전히 포기하고 사는 풍습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놀란 일이 있다.
부부가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밥을 지어 먹는 취사'를 생활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끼니때가 되면 나란히 나가 외식을 한다.
그와 같은 상태를 아프리카 서민들은 서양 문명의 극치라 하여 부러워들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근로층 부부들 간에 취사를 생활에서 아예 도외시하는 풍조가 널리 일고 있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가정생활에서의 주부들의 주부업 포기도 끝이 없다.
이같이 하여 할 일이 없는 이상적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제주도 강기빈 할매와는 정반대의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처지를 체험한 여성들은 의식하든 무의식하든 보다 두려운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내면의 무에 대해 사람은 두려워합니다. 어릴 적 귀신보다, 소녀적 밤길의 악한보다 더 두려워합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 자기 자신의 무로부터 탈주를 하게 됩니다. 즉 그는 자기 혼자 있다는 사실로부터 도망칩니다. 왜냐하면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자기 자신 혼자서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밤과 안개'로 유명한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빅토르 프란클이 한 말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 할 일이 없다는 데서 생기는 정신이상을 한 분야로서 독립시키기까지 했다. 학자에 따라 그 병을 '일요 신경병','매니저 부인병(婦人病)'이라 하고 학술용어로는 '실존적 욕구불만(frustration)’이라고 한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의 이 실존적 욕구불만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어떤 의미에서 실존적 욕구불만은 매니저 부인병이라 할 수가 있다. 매니저가 너무 바빠 휴식할 수도 또 자신을 돌볼 수도 없듯이 그들 부인들은 너무나 여가가 남아돌아 이 여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모르는 상태에서 생기는 정신이상이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내과 교수 푸르케 박사는 최근 5백 개의 자살미수 사례의 케이스의 원인 분석에서 자살 동기가 병이나 경제적, 직업적 그리고 여느 다른 갈등 때문이 아닌 혹심한 권태, 생활 내용의 공허에 집약되었다고 가려내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1970년도 한국 자살센터의 자살미수자 동기분석에서도 완연히 드러나고 있다. 즉 선망했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상태는 죽음에 이르는 또는 광인이 되게 하는 병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여가병은 한국에서 야릇하게 예방되고 있다고도 보아진다.
수년래 크게 사회 문제화되어 왔고 앞으로도 되어 나갈 각종 치맛바람의 원인을, 그것이 곗바람일 때 부인들의 과열한 식재욕(殖財慾)으로, 또 그것이 학교의 치맛바람일 때 부인들의 과열한 과보호로, 또 그것이 자가용 바람일 때 부인들의 과열한 사치지향으로 따진다.
그렇게 원인을 따진다는 것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여가병의 증세로 이해돼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자기 자신의 내면의 '무(無)’,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그 두려운 ‘무’로부터의 탈출이 그런 각종 '바람'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무의식중에 바람으로 변질된다. 만약 이 같은 변질 과정의 적응(adaptation)이 없다면 이 여가를 가진 여인은 죽음에 이르는 또는 광인에 이르는 매니저 부인병에 걸리고 말 것이다.
즉, 한국 부인 사회에 있어 '바람'은 필연이다. 만약 한국 여성이 지닌 지성의 역량이 이 민주주의와 소가족제도의 보너스인 생활이 여가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 즉 포기했던 생활에서의 일을 현명하게 되찾아 들인다면 그 가혹한 치맛바람은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잔잔히 자고 말 것이다.
구미의 '일'이 시계에 의해 엄하게 통제되는 데 비해 한국의 일은 시계와 시간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도 이 노동관의 차이에서 해석될 수가 있다. 일하는 시간과 일이 끝나는 시간의 구분이 흑백처럼 선명할 뿐 아니라 한 시간에 몇 개, 30분에 몇 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간당 직무량이 가혹하다.
No work no pay. The more work the more pay.
하지만 한국에서는 퇴근 시간을 좀 초과해서 일한다는 것에 경제 감각이 둔하다. 곧 근무시간이 회색성이다. 단위 시간에 좀 더 일해도, 좀 덜 일해도 별반 그것이 조사되거나 또 벌이에 연관된다는 법도 없다.
일의 실질적인 측정도 없고 또 사실 불가능하다. 한국인에게 있어 오후 6시의 퇴근 시간은 구미인처럼 노예와 자유인의 경계선이 아니며 오후 6시가 어느 한 사람의 하루 스케줄에 별반 큰 분기점이 된다는 법도 없다. 오전 8시에 출근할 때부터 오후 6시만 되면 감옥같은 직장을 빠져나갈 것을 생각한다는 법도 없다. 따라서 노예처럼 일에 얽매인다는 법도 없다. 그래서 구미에 비해 일의 밀도가 높지 못하다는 결함도 없지 않다. 신문도 보고 차도 마시고 문상도 다녀오는 그런 생활의 일부로서 일한다. 공과 사가 섞인 저밀도의 집무태도라 하여 후진성으로 곧잘 지탄받지만 그것은 노동관의 차원에서 따져질 문제지 선후진의 차원에서 따져질 문제가 아닌 것이다. 출근시간과 더불어 굴레를 쓰거나 足枷가 채워진 노예 같은 의식으로 고밀도 작업을 한다는 것과, 가정 생활의 연장이요, 삶의 증명이라는 의식으로 저밀도 작업을 한다는 것과 그 작업의 능률 측면에서는 오히려 후자의 경우가 효율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저 타산감 없이 꾸준히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중요할 뿐 덜 일하고 더 일하고자 하는 시간 감각이 결여된다.
구미에서는 일에서 얻는 만족감을 중요시하고 산업혁명 이래 일의 괴로움, 염증, 단조로움과 악전고투해 왔다. 곧 구미에서는 적절한 동기가 부여돼야만 이 일을 하는 것으로 돼 있는 만큼 일은 싫고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에서 일의 단조함이나 만족감이 그렇게 중요시된다는 법이 없었고 지금도 구미의 경우와 비겨 그다지 대단한 문제는 못 되고 있다. 곧 한국에서 살아 있기에 일하고, 일하는 것으로 산다는 증명을 하고 있기에 굳이 동기 부여가 필요없다. 따라서 동기 부여도 제2의적인 것이다.
조선왕조 중엽 이래 마을마다 번졌던 향약이라는 촌락자치제도가 있었다. 향약에 규약된 사항을 어기면 그에 대한 제재가 자치적으로 가해지는데 그 형벌 가운데 하나로서 상벌은 한 달 동안 일을 못하게 하고 중벌은 보름, 하벌은 닷새 동안 일을 못하게 하는 세상에도 이상한 형벌이 가해졌던 것이다.
구미식 사고로는 노동형이라 하여 일을 시키는 것이 형벌이 되는데 오히려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 형벌이 되는 논리는 이 한국인의 노동관의 이해 없이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물론 그 犯約者가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집 농사가 지체되거나 가족들의 노동이 가중된다는 그런 경제 형성의 요소도 없지 않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생존의 부재증명이요, 촌락 사회에서의 소외조건이며 농경 사회에서의 파문 표현이기에 그 같은 너무나 한국적인 형벌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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