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文章/살리고 싶은 버릇 93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83. 측간 문화

측문화(厠文化)를 뒤돌아보면 배설물을 멀리 처리하는 원측문화(遠厠文化)와 가깝게 처리하는 근측문화(近厠文化)로 대별할 수 있다. 1백여 년 전만 해도 수세식 변기가 있고 욕조(浴槽), 샤워기가 있으며 꼭지만 틀면 물이 쏟아지는 세면대가 갖추어진 화장실은 유럽의 왕후 귀족만이 누릴 수 있었던 사치스러운 공간이었다. 수세식 변기가 특허권을 얻은 것은 1775년의 영국에서였는데 공공하수도가 돼 있질 않아 실용화되지 못하다가 1880년대에 들어서야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1백여 년 전 파리의 경우 수세식 변기의 보급률은 20퍼센트에 불과했으며, 그 80년 후인 1968년까지만 해도 겨우 55퍼센트에 불과했으니 의외로 느린 보급속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옛 한국에서처럼 요강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세..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82. 기심(機心)

강에서 날아다니는 새나 산에서 달리는 짐승들이 사람을 피하는 것은 기심 때문이며, 기심을 갖지 않고 천연스러우면 금수와 친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莊子다. 옛날 강가에 한 어부가 살았다. 그는 고기잡이하면서 해오라기와 친하게 되어 가까이 와서 놀고 어깨에 올라앉기까지 했다. 그는 해오라기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아내는 그 해오라기 한 마리를 잡아 오라고 하였다. 이튿날 어부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강가에 나갔더니 그토록 많이 날아오던 해오라기가 한 마리도 가까이 날아오질 않았다. 이것은 어부에게 해오라기를 잡으려는 기심(機心)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심은 밖으로는 그러하지 않은 체하고 속으로 품는 사심이다. 강에서 날아다니는 새나 산에서 달리는 짐승들이 사람을 피하는 것은 기심 때문이며, 기심을 갖지 않..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81. 백수민속

공동체로서의 구심력을 잃고 됫박에서 흩어져 나간 콩알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 인력(引力)을 잃고 사는 현대인의 상황에서 백수문이라는 정신민속이 별나게 싱그럽고 새삼스럽기만 하다. 일심동체로 뜻을 모으고 그 뜻을 다지며 기원하는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구심매체로서 '백수(白首文)'이라는 게 있었다. 어느 한 친지의 자제가 돌을 맞거나 서당에 입학을 하면 1천 명의 친지들이 각자 한 자씩 《천자문(千字文)》을 써서 책으로 엮어 그 아이에게 선물함으로써 면학(勉學)과 장수를 축원했던 것도 백수문의 하나다. 백수(白首)는 하얀 머리, 곧 장수(長壽)를 뜻하니 백수문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장수를 기원하는 글이란 뜻이다. 몇 해 전에 서울에서 열린 한국출판판매 주식회사 주최 희귀도서전에 1937년 3월 1일이 돌..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80. 명교(名敎)

지금 생각으로는 가장 가벼운 학대 같지만 선비사회에 있어 이름을 훼손한다는 것은 죽음에 버금가는 모독이요, 불명예요, 고통이었던 것이다. 옛날 관청에 첫 부임을 하면 고참(古參)들이 신참(新參)에게 갖은 학대를 가한 끝에 酒宴 강요하는 악습이 보편화돼 있었다.을이를 '면신례(免新禮)’ 또는 ‘신래침학(新來侵虐)’이라 했는데, 미친 계집의 오줌을 얼굴에 칠하기도 하고 성기를 노출시켜 먹칠을 하기도 했다. 심한 경우에는 발뒤꿈치에 말굽쇠를 박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율곡(栗谷)선생도 이 '면신례'의 희생자였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발령을 받았을 때 이 면신례의 학대에 분통을 터뜨리고 사직, 낙향해서 이 폐풍에 대해 상소를 올리고 있다.별의별 학대 가운데 가장 참을 수 ..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79. 씨불

헌 불을 끄고 새 불로 가는 시간적 필요성에서 한식날만은 불을 써선 안 되도록 되어 있었기에 찬밥 먹는 날이 돼 버린 것이다. 고대 로마의 중심부에 베스터라 불리던 불의 신전(神殿)이 있었다. 그 신전의 복판에 성화대(聖火臺)가 있어 연중 불이 타올랐는데, 매년 정초마다 베스터리스라 불리던 여사제(女司祭)가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킨 뒤 헌 불을 끄고 새 불로 갈았다. 그리고 이 새 불을 로마의 모든 귀족과 시민과 노예들이 반화(頻火)받아 오로지이 한 불을 나누어 쓰는 대가족으로 강한 공동체의식을 지니고 살았던 것이다. 기본의 《로마제국멸망사》에 보면 로마가 그토록 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16세기까지 끊이질 않고 타올랐던 이 베스터의 성화를 나누어 쓰는 결속된 공동체요, 숙명체라는 자..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78. 마당바위

정치란 하늘이 두렵지 않고 또한 백성이 두렵지 않은 공개 정치여야 한다는 원리를 이 암대정치와 합문정치가 훌륭하게 수행해 주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황금빛 나는 바위의 성전(聖殿)이다. 기독교도들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희생한 신단(神壇)이 바로 그 바위라 하고, 유대교도들은 솔로몬의 신전이 서 있던 자리가 바로 그 바위라 하고, 회교도들은 마호메트가 승천한 자리가 바로 그 바위라 한다. 하지만 사가(史家)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신정(神政)을 베풀던 현장으로 못박고 있다. 이처럼 노천(露天)의 바위에서 신이 내려다보고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정치를 베풀었던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신전 아래에 있는 아고라도 중인(衆人)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치를 베풀었던..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77. 그네

그네는 북방기마민족(騎馬民族)들이 城塞를 뛰어넘고 몸을 날렵하게 하는 무술(武術)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50세 이상 된 분으로 시골에서 자란 분이면 오월 단오날의 그네뛰기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자나무에 그네를 매고 권투나 역도 체급 가르듯이 장정그네 · 댕기(處女)그네 · 때때(어린이)그네로 나누어 높이뛰기, 방울차기, 쌍그네를 겨루었던 것이다. 남녀노소가 더불어 겨루고 어울려 즐기는 이만한 스포츠성(性)의 오락이 그네 말고 또 있었던가 싶다. 보다 높이 매어놓은 방울을 찰 때마다 성장한 치어 걸(妓女)들이 지화자를 외치며 너울너울 춤을 추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뽑힌 챔피언을 장사(壯士), 댕기 챔피언을 장녀(壯女)라 했는데, 이들을 마련된 꽃바구니에 태워 공중 높이 던지는 것으로 그네잔치가 ..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76. 미역과 김

에서도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을 뜯어 먹음으로써 상처가 아물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부에게 먹인다고 했다. 몇 년 전에 발생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原電) 폭발로 유럽 사람들의 공포가 대단했던 것 같다. 오염이 예상되는 야채와 우유는 시장에 산적된 채 썩어 문드러지고, 대신 일상생활에서 천대받던 통조림이 동이 났으며, 아예 뉴스를 접한 날부터 단식한 사람도 수두룩했다 한다. 나들이할 때 볕이 내리쬐는데도 우산을 받고 나가고 신발에 비닐 덧신을 신고 다니기도 했다. 기형아를 두려워하여 낙태하려는 부인이 줄지어 서고 돈 많은 사람은 남미로 피난을 떠나기도 했다 한다. 낙진(落塵) 오염에 가장 예민한 인체의 부위가 갑상선(甲狀腺)이며 이를 예방하는 데 요드 성분이 많은 해조류(海藻類)가 좋다는 ..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75. 똑바로 알아야 할 우리의 것

우리 선조들은 서양사람들처럼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을 믿지 않았지만 나의 잘못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불행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죄의식을 원천적으로 지니고 살았다.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 조간신문까지만 해도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이나 저수지 바닥의 사진이 났고, 바다의 소금물이 강줄기를 따라 역류한다고 보도되었다. 아침에 세수하는 어린 아들놈이 물을 헤프게 쓰기에 아껴 쓰도록 꾸짖고 나온 터였다. 마음에도 습기가 말라 마치 육포나 북어 겉처럼 거칠거칠 메마른 그 마음의 살갗에 비듬이 일 것만 같은 각박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 각박한 안팎에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빌딩 사무실 창밖으로 손바닥을 내어 밀고 비를 반기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래층, 위층 사무실마다 창을 열고서 비를..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74. 장인 정신

장인정신이란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과 자랑을 갖고 또 숙련과 연마의 고된 시련에 긍지를 가지며 자기가 하는 일이나 도구, 기계에 애착심을 가지는 것이다. 옛날 중국의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높은 다락에 기대어 독서를 하고 있는데, 수레바퀴를 만드는 편(扁)이란 노인이 다락 아래로 지나가면서 물었다. "환공께서는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옛날 성인들의 책이네." 하고 환공이 대꾸하자, "옛날 사람들의 찌꺼기 같은 걸 읽고 계십니까?" 하고 당돌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환공은 옛 성인에 대해 모독하는 것이 이에 더할 수 있으며, 임금에게 대한 불손이 이에 더할 수 있느냐고 꾸짖었다. 이에 편(扁)은 엎드려 다음과 같이 여쭈었던 것이다. “신은 평생 수레바퀴를 깎아 벌어먹어 온 장인(匠人)이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