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가족을 위해서 일할 때 가족의식이 촉발되며 이 가족의식은 이해나 타산이나 피로나 권태나 불만이나 그 모든 이기적 조건을 이타적으로 승화시킨다.
어머니는 서천에 달이 지기 전에 일어난다. 그리고 하루종일 자식들을 위하여 지치도록 일하고 젖먹이 팔베개 베우고 재우면서 늦은 겨울밤에는 자신의 등이 노출된 것도 모르고 곤히 잠든다.
대개 자시(子時)가 넘을 무렵이기 마련이다.
그동안 어머니는 부엌일이며, 빨래며, 남새갈이며, 남의 집일 품앗이며, 바느질이며, 길쌈이며, 잠시도 쉬질 않고 고되게 일한다.
일제시대 때 한 학자가 한국 여인의 노동량을 측정, 비교한 논문에 보면 한국 남자보다 76퍼센트나 더 고되게 일을 하며, 일본 여인보다는 82퍼센트, 영국의 여인보다는 212퍼센트, 미국 여인보다는 380퍼센트나 더 고되게 일한다고 밝혀놓고 있다.
그렇게 고되게 일하면서도 한국의 어머니가 언제 한번 피로한 기색을 보이고, 과대한 일에 불만의 기색을 보인 일이 있었던가.
어머니도 사람이니까 피로며 권태며 불만이 없을 수야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반드시 가부장제도 하의 강압된 물리적 인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그것 말고도 플러스 알파가 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영국이나 미국의 어머니들에 비해, 같은 단위시간에 같은 분량의 노동을 했다 하더라도 영국, 미국의 어머니들이 느낀 피로나 권태나 불만의 분량보다 현격하게 적은 분량의 피로나 권태나 불만을 느낄 따름인 것이다. 이 플러스 알파의 작용 때문에 그토록 과중한 일일지라도 담담하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플러스 알파가 작용하지 않았던들 우리 한국의 어머니는 평생토록 그 과중한 일을 해낼 수도 없었으려니와,
“네 애비는 여덟시간 밖에 일 안 하는데 왜 내가 열시간 노동을 해? 그렇게 못하겠어!”
하며 노동량에 타산을 하고 토라졌을 것이다.
이 플러스 알파가 무엇인가. 한국인에게 유별나게 강한 가족의식이 그것이다. 한국 사람은 가족을 위해서 일할 때 이 가족의식이 촉발되며 이 가족의식은 이해나 타산이나 피로나 권태나 불만이나 그 모든 이기적 조건이 이타적으로 승화된다. 그러기에 노동의 밀도도 높아지고 또한 노동의 질도 양질화된다.
이 바람직한 고밀도, 양질의 노동 수단을 가능케 한 가족의식을 여느 일반 노동에 촉발시킬 수만 있다면 노동 효과는 엄청나게 상승될 것이며 이 양질의 노동 수단은 곧 경제력 향상과 직결될 것이다. 미국 사람의 합리주의적이고 타산적인 사고방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엄청난 저돌성의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요인을 이 한국인에게 유별나게 강한 가족의식이 비장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는 영국 경제가 세계를 지배했던 세기요, 20세기는 미국 경제가 세계를 지배했던 세기다. 앞으로의 세기는 어느 나라의 경제가 세계를 지배할 만큼 발달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두고 1976년도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 지가 정초에 특집으로 다룬 일이 있었다.
이 특집에는 온 세계의 내노라 하는 경제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 미래학자 등 수백 명의 두뇌가 동원되었으며, 이 두뇌들이 내린 결론은 '태평양 연안에서 세계 경제를 지배할 만한 경제가 발달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런 결론을 내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앞으로는 영국처럼 식민으로 경제력을 부양시킬 수도 없고, 영국처럼 어느 한 나라에 세계 경제를 지배할 만한 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도 없다고 전제하고,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이미 있는 부(富)로써 세계의 경제를 지배한다는 법은 없을 것이라 하고, 이제부터는 어느 나라에서 경제력을 형성시키는 보다 양질의 정신 수단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지구상에는 종교나 제도, 문화에 따라 많은 정신 수단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사람의 퓨리터니즘이나 프런티어십, 영국 사람의 해양주의, 그리고 동양 사람의 가족의식 등 35종의 경제력 형성의 정신 수단을 나열하고, 전기 세계의 두뇌들에게 어떤 정신 수단이 최양질의 수단인가 하고 설문을 했더니 무려 82퍼센트가 동양인의 가족의식을 들었고, 이 현존 수단 가운데 최양질의 수단을 지니고 있는 태평양 연안에서 경제가 발달할 것이라는 예언은 이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를 믿는다면 태평양 연안 국가에서도 가장 가족의식이 강한 한국에서 미래의 세계를 지배할 경제가 발달한다는 것이 된다. 미래의 일이기에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지만 가족의식을 잘 촉발하고 잘 관리만 한다면 세계를 지배할 만한 크기는 못 될지라도 비약적인 발달이 가능한 정신적 자원을 갖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이 정신적 자원은 어쩌면 우리나라 땅덩이가 석유 위에 떠 있다는 그런 물질적 자원보다 더 많은 경제적 발전을 약속해 주는 자원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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