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文章/살리고 싶은 버릇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53. 밥상머리 예절

耽古樓主 2023. 6. 15. 09:00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숟가락을 먼저 들지 않는 것은 지키기에 수월한 법이지만 밥을 다 먹고도 숟가락을 놓지 말아야하는 것은 지키기 괴롭고 고달픈 법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소학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할아버지와 겸상을 해서 밥을 먹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조(祖孫)간의 겸상은 관습이 아니라 멀어지기 쉬운 조손 간의 정을 가깝게 하려는 실생활의 버릇이 가르치는 가정교육의 한 교과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숟가락을 들어서는 안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놓기 전에 숟가락을 놓아서도 안 되었다.

 

숟가락을 먼저 들지 않는 것은 지키기에 수월한 법도이지만 밥을 다 먹고도 숟가락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키기 괴롭고 고달픈 법도가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이가 약하셔서 느리게 먹기 일쑤이고 이에 비해 아이들의 식사 속도는 반비례하여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식사 속도를 가늠하여 조절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고 밥을 먹었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았던 기억이 선하다.

 

뿐만 아니라 무슨 반찬이든 할아버지가 먼저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댄 다음에야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식사 예법이었다. 할아버지가 먹기 싫은 반찬이면 나는 먹지 않는다든지 너나 먹으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젓가락을 댈 수 있었다.

 

또 김치나 나물을 집을 때 집힌 대로 먹어야지 집은 분량이 많든 적든 간에 다시 두 번 젓가락질을 하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맛있게 먹고 싶어서 계속해서 두 번 숟가락이나 젓가락질을 해서도 안 되었다. 상추같이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부라려야 하는 음식을 먹을 때는 할아버지로부터 고개를 돌려 옆을 보고 먹어야 했다.

 

드물게 상에 오르는 육류성 반찬은 할아버지가 아무리 먹으라고 해도 손을 대서는 안 된다. 할아버지가 집어서 밥 위에 놓아주었을 때만 먹도록 법도가 돼 있었다.

 

그래서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육류성 반찬이 오르는 날이면 밥상이 들어오기 직전에 어머니가 문 틈으로 손을 넣어 손가락으로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밥상머리에 세워 놓고 이것 저것을 손대지 말라는 통고를 미리 받게 마련이었다.

 

이같이 먹지 말라는 금기 식품의 지정을 받지 않았던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이다. 할아버지와 겸상을 하고 저녁밥을 먹는데, 뚝배기에 숟가락을 넣어 된장찌개를 떴다. 그런데 그 숟가락에 돼지고기의 비곗덩어리가 건져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물건 훔치고 들킨 것처럼 반사적으로 숟가락을 든 채 멈칫했다. 그리고 나서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된장찌개를 먹어야 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의 고민인 것이다.

 

전례로 보아 된장찌개는 금기 음식이 아니기에 먹어도 되고 또 밥상 들어오기 전에 금기 식품으로 통고를 받지 않았으니 먹어도 된다는 생각과, 하지만 비곗덩어리는 분명히 고기요, 고기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상충하고 있었다.

이 두 갈래의 고민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기에는 지능이 모자랐던지 엉겁결에 엄마를 불렀다. 문밖에서 왜 그러느냐는 엄마에게 이 된장찌개 먹어도 되느냐고 큰 소리로 물었다. 바로 할아버지 앞에서 말이다.

 

웃어른과의 겸상에서 고기 반찬을 먹고 먹지 않고는 은밀히 가르쳐지고 또 은밀히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데 가정교육에 있어 바로 은밀의 조건이 탄로나고 만 것이다. 그 당장에 어머니에게 멱살을 잡힌 채 개 끌리듯 끌려나와 뒤꼍 호젓한 데 가서 흠씬 얻어맞았던 것이다.

 

우리 집은 6대 판서가 난 양반 가문도 아니다. 가까운 선대에는 종9품의 말단직인 참봉 벼슬을 한 사람도 없던 평범한 상민의 가문이다.

 

이 상민의 가문에게까지 이만한 가정교육의 법도가 전승돼 내려갔다면 한국에 있어 가정교육의 보편성과 그 엄연성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이율곡 선생은 가정교육에 있어 삼가야 할 열일곱 개의 조목을 정하고 중한 것은 한 번만 범해도 벌을 주며, 가벼운 것은 세 번 범하면 벌을 주었다. 이 가정교육의 법도는 율곡 가문에 대대로 전승된 가풍이 되어 내려갔는데 그 17조목은 다음과 같다.

 

1. 교훈을 따르지 않고 다른 일에 마음을 쓰는 일

 

2. 부모가 명령한 것을 즉시 시행하지 않는 일

 

3. 형이나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말을 포악하게 하는 일

 

4. 형제간에 우애가 없이 서로 다투는 일

 

5. 음식을 서로 다투고 사양하지 않는 일

 

6. 다른 아이들을 해치고 업신여겨 서로 다투는 일

 

7. 서로 경계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망하고 노여운 마음을 드러내는 일

 

8. 두 손을 단정하지 못하게 마주 잡거나 옷소매를 풀어 헤치고, 한 다리에 기대서는 일

 

9. 걸음걸이를 경솔히 하여 뛰어다니고 넘어다니는 일

 

10. 실없는 농담을 좋아하고 말소리나 웃음소리가 시끄러운 일

 

11. 이익 없고 관계없는 것을 하기 좋아하는 일

 

12. 밤에는 일찍 자고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는 등 게을러서 글을 읽지 않는 일

 

13. 글 읽을 때 서로 돌아보며 잡담하는 일

 

14. 방심하고 혼매하여 앉아서 조는 일

 

15. 단점을 두호(斗護)하고 과실을 숨기며 언어가 진실하지 못한 일

 

16. 한가한 사람을 대하여 잡담하기를 좋아하고 학업을 폐하는 일

 

17. 초서와 난필로 종이 더럽히기를 좋아하는 일

 

18세기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도 가정교육 지침서인 《사소절(士小節)》을 남기고 있는데, 그중 욕심을 억제시키는 것을 제일로 삼으라고 했다.

 

'자녀들을 가르치는 데서 먼저 음식 탐내는 것을 금해야 한다.

딸의 경우는 조금도 용서해 주어서는 안 된다.

음식을 탐내게 되면 팔다리와 목이 가늘어지는 병이 생길 뿐 아니라 그 탐욕으로 인하여 사치한 마음이 생기고 사치로 인하여 도둑의 마음이 생긴다.

음식을 탐내는 부녀가 남의 집을 망치지 않은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라

고 쓰고 있다.

 

어린이의 욕심을 정 때문에 이겨내지 못하겠으면 법도가 엄한 남의 집에 일정기간 동안 기탁하여 기르는 의탁 가정교육 풍습도 있었다. 연산군은 어릴 때부터 포악했는지 당시 장안에서 법도와 기품이 엄하기로 소문났던 남대문 밖 강희맹(姜希孟)의 집에 의탁하여 양육시키고 있다.

 

현대 사회가 상실한 전통적 유산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그중 가장 큰 상실품이 선비들의 가정교육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