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으로 울적함이나 불만이나 갈등이나 고독이나 질투 같은 오염을 자체 내에서 지워 없애려는 청결에의 꿈과 안간힘이 닦는 동작으로 직결되어 나타난다고 했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며느리가 되고 아내가 되고 지어미가 되면 ‘부(婦)’라고 불린다. 이 '婦'란 한문 글씨를 뜯어보면 빗자루나 걸레〔帚〕를 들고 있는 여자(女)란 모둠 글씨임을 알 수 있다. ‘妻’도 정갈스럽게 다듬고 쓸고 닦는 도구를 들고 있는 여자로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쓸고 닦는다는 일이 여자의 일생에 또 여자의 운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만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 같다. 꼭 사내아이를 낳아야만 한다는 생산 도구로서의 여자, 그리고 쓸고 닦는 가사 노동력으로서의 여자 이외의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데 인색했던 여성 천대의 동양 사회에서만 있었던 역사 현상일 뿐 전세계적인 현상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쓸고 닦는다는 동사(動詞)와 여성과의 함수관계는 동서양 가림없이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동서의 많은 사상가들은 이 닦는다는 것과 여자의 운명 함수를 풀고자 무척 고심했다.
물론 이 해석을 여자가 닦고 살지 않고 배겨나지 못하는 선천성을 전제로 한 것임을 미리 살펴 둘 필요가 있다. 그 하나로 선악설(善惡說)을 들 수 있다. 이 세상은 선과 악이 야합되어 상극(相克) 상충(相衝)하며 영위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비단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대부분의 종교가 이 선악이원론(善惡二元論)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악의 원리에 도전하여 멸망시키고 추방함으로써 선의 원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구체적이며 가장 몸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닦고 쓰는 일이다. 마루며 방이며 가구며 그릇에 틈만 있으면 침투해 드는 오예(汚)라는 악의 원리와 여자는 하루종일 공격하고 추격하는 선의 전사들인 것이다. 죄와 대결해서 싸우고 사탄과 맞대어 싸우듯이 여자가 때와 먼지와 대결해서 싸우는 것은 가장 순수한 종교심의 발로요, 원초적인 종교 활동이라는 것이다.
또 닦는다는 일의 되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자의 일생을 시지프적인 겁벌로 풀이하는 이도 있다.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바윗돌을 굴려 올리게끔 숙명지어진 시지프, 가파른 비탈을 따라 바위를 굴려 올리면 다시 굴러내리고 다시 굴려 올리면 다시 굴러내리는 그런 영원한 되풀이로 벌을 받고 있듯이 여자는 닦으면 또 먼지가 내려앉고 다시 닦으면 때가 묻는……… 그래서 영원히 닦는 일을 되풀이하는 겁벌의 복역수라고 풀이한 것은 <제2의 성(性)〉을 쓴 보브아르이다. 그녀는 미국 남부의 한 가난한 백인 부인이 누추하고 더러운 집안을 닦고 쓸고 다듬고 청결하게 하고자 지칠 대로 지쳐가는 비극적인 운명을 인용하고 '다수의 여인들의 운명이 이처럼 승리를 결코 약속받지 못한 투쟁 속에서 시지프처럼 피로를 되풀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며느리 마음은 부엌이 거울
닦는다는 여자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분은 가스통 바슐라르다. 그는 여성이 집안이나 가구를 닦아 윤을 내고 빛을 낼 때는 자신 속의 침체되거나 누적되거나 어른거리는 부정적 요소를 닦아내는 무의식적인 交感(교감)이 작용하여 남이 보아서 그만 닦아도 될 곳을 닦고 또 닦곤 한다는 것이다.
곧 정신적으로 울적함이나 불만이나 갈등이나 고독이나 질투 같은 오염을 자체 내에서 지워 없애려는 청결에의 꿈과 안간힘이 닦는 동작으로 직결되어 나타난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녀가 테이블을 닦고 은그릇을 닦을 때 그 물질을 닦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닦는다고 했다. 마들레느 불도크스는 <마리를 찾아서>란 소설의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부엌에서 금속 식기를 닦는 기쁨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그녀의 손바닥과 닦이는 물체 사이에 완전한 양해와 우정이 오가는 것을 느꼈다.'라고 했다.
이 논리는 마음속에 누적되는 그 많은 부정적 정신 요소를 외향적으로 발산시킬 수 없는 여자로서 내향적으로 발산시키는 매체로 닦는다는 동작의 좌표를 잡고 있으며, 한국 여인의 경우에 가장 크게 꼭 들어맞는 논리이기도 하다.
우리 속담에 '며느리 마음은 부엌이 거울'이라는 게 있다. 곧 부억의 정돈이나 정결 같은 솥뚜껑의 윤기나 또 밥상, 밥그릇의 청결도로 며느리의 마음을 거울 보듯 들여다보았다는 것은 과학적이랄 수 있다.
또 정신 분석학적으로 이 닦는 동작을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말에 潔癖(결벽)이라는 게 있는데, 병적으로 주변을 닦고 깨끗이해 놓으며 그 청결함 속에 오염 요인의 침입을 병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이를테면 냉감증(冷感症)이거나 올드 미스이거나 배신당한 부인이나 일에 바쁜 남편 때문에 고독한 여인들이 곧잘 신경병에 걸리거나 이 같은 뭣인가 닦지 않고 견디지 못하는 결벽에 빠진다. 곧 하나의 여인으로서 여인이 갖는 본능적 욕구를 못다했을 때 자학적 보상으로 닦고 닦고 또 닦는다. 마루나 방이나 가재가 별나게 잘 정돈되고 깨끗하면 과부집이라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상식이었다.
이 섹스 알리바이에의 보상 동작이 닦는다는 것으로 나타난 데 대한 잔인한 해석도 있다. 그 해석은 닦는다는 동작을 섹스 동작에 유감(類感)시켜 성부재(性不在)의 여인들일수록 그 선망 동작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친정 아버지의 확들이 행차
닦는다는 동작과 여자의 운명 함수는 물론 한국 여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한국 여인에게도 똑같이 내포된 복합 요인인 것이다.
다만 한국 여인에게만 가능한 특수한 함수 하나가 더 있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 여성의 행동 반경은 대체로 살고 있는 집의 담에 국한돼 있었다. 여자가 담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 좁디좁은 행동반경 속에서 아무리 할 일이 많다 해도 여인의 시간은 남게 마련이다. 곧 여가가 생긴다. 집 밖에 나가 쇼핑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드라이브도 하며 또 굳이 집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독서를 한다든지 서예, 꽃꽂이를 한다든지 하는 문화 활동이 가능하고 보장되어 있으면 여기는 많을수록 좋다 하겠지만 이 같은 활동들이 윤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전통사회에서는 할 일이 없다는 상황은 할 일이 있다는 상황보다 감당하기가 벅차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 한국의 가사 문화의 서글픈 특성 가운데 하나로서 할 일이 없는 여가를 무화(無化)시키는 관행이 고도로 발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일부러 만들어서 한다든지 빨리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느리게 역효과적으로 한다든지 하여 남을 수도 있는 여가시간을 없애는 가사 관행은 비일비재하다.
현명한 시어머니들은 밥 지을 쌀 한 말당 한 줌씩의 뉘(찧어지지 않은 나락)를 일부러 집어넣는 야릇한 속이 있었다. 며느리는 밥 짓기 전에 그 밥쌀에 섞여 있는 뉘를 가려내야 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며느리를 골탕먹이려는 시어머니의 짓궂은 행위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뉘를 고른다는, 힘들지 않지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그런 일을 일부러 만들어 줌으로써 할 일이 없다는 고달픈 여가를 말살시켜 주는 현명한 지혜에서 생겨난 속인 것이다.
씨할망이 뉘 한 줌
씨어멍이 뉘 한 줌
씨누이가 뉘 한줌
뉘가리상 쌓겠다 뉘라
뉘가리발 눈이 붓네ㅡ남도민요(南道民謠)
뉘가리가 며느리에게는 이같이 비정적으로 받아들여졌을지는 모르나 한국적 가사 문화 측면에서는 인정적이랄 수가 있다.
남도에는 친정아버지가 시집간 딸을 1년 만에 찾아보는 습속이 있었다. 이 딸네 집에 갈 때 아버지는 선물로서 돌확(石臼)을 갖고 가는 것이 상례였다. 그래서 이 친정아버지 행차를 확들이라 했다.
이 돌확은 내부가 매끄럽게 정제(精製)돼서는 안 된다. 그 돌확에 보리를 닦고자 갈면 보리알이 틈틈이 박힐 만큼 거칠게 쪼아진 조제품(粗製品)이어야 했다. 곧 확들이 확은 거칠수록 좋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확이 어느 만큼 길이 났느냐의 정도에 따라 새며느리의 평가나 이미지를 가늠했던 것이다. 많이 갈고 닦을수록 길이 나며 '돌확 속에 길이 날 때 남편 맛을 안다'는 속담까지도 있다. 곧 닦는다는 동작의 섹스 유감을 볼 수 있다.
거친 확을 들여놓는 습속을 두고, 부녀자를 노예시했던 시절인지라 일을 보다 많이 시키기 위한 곧 며느리로부터 보다 많은 노동량을 착취해 내기 위한 효과를 노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불행으로 작용하게 마련인 여가로부터 내 딸을 구제해 주기 위한 친정아버지의 애틋한 애정의 표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는 여기에는 닦고 간다는 철학을 시집살이 초기에 익히게 한다는 저의도 내포되어 있었다. 여자가 닦고 있을 때 눈물도, 슬픔도, 미움도, 갈등도 가장 잘 삭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말 때까지만 해도 창덕궁에는 1백여 명의 무수리가 있었다. 무수리란 밥 짓고 물긷는 잡역 담당의 궁녀였다. 그런데 이만큼 많은 무수리가 하루종일 일할 수 있을 만큼의 잡역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을사조약 후 이등박문이 궁중 개혁을 단행했을 때 이 무수리의 수를 3분의 1로 줄였던 것도 궁중의 잡역이 그 3분의 1로도 충분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무수리들에게는 한국 여성에게 불행으로 작용했던 여가가 너무 남아돌았다. 이 여가를 없애 주고자 궁중에는 유기방(鍮器房)이라는 작업장이 그 수요에 비겨 별나게 넓고 크게 마련돼 있었다. 무수리들은 잡역만 끝내면 유기방으로 간다. 그곳에는 궁중에서 쓰는 각종제기(祭器), 식기들이 산적돼 있었다.
그 유기를 닦음으로써 여가를 비여가화시켰던 것이다.
궁중에 놋그릇을 댔던 안성 군수는 놋그릇의 궁중 소비 기간을 한 달로 잡는 것이 상식이었다 한다. 여느 사람 같으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놋그릇이 한 달 동안에 못 쓰게 된 사유는 이 수많은 무수리들이 비여가화의 도구라는 부가 가치 때문이었다.
즉 윤이나 광을 내기 위한다는 본래의 작업 목적보다 무수리의 비여가화라는 한국적 가사 문화가 놋그릇을 마멸시켜 갔던 것이다.
궁녀들이 그릇을 닦는 것으로 시간을 죽이는 습속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격식도 엄했던 닦는 자세
10여 년 전 아프리카 우간다 왕조의 왕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왕은 망명해서 죽고 왕족들은 미국에 이주해 살고 있었으나 왕의 후궁들 너댓 명이 그 왕궁을 지키고 있었다.
옛 궁중법도를 지키며 살고 있는 이 노후궁들이 하고 있는 일은 하루종일 역대 왕묘에 차려 놓을 제기를 닦는 일이라 했다. 필자가 갔을 때도 눈이 부시게 윤이 나는 제기들을 거의 기계적인 동작으로 닦고 있었다. 또한 후궁들은 인근 나일강 유역에서 나는 갈대로 돗자리를 짜는 일을 한다고 했다. 보다 많이, 보다 좋게 짜면 왕이 별입시(別入侍)를 허락하여 환락의 보너스를 주는 제도도 있었다 한다.
궁중 여가의 비여가가 어느 만큼 심각한 문제였던가를 엿보게 해준다.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사는 문화권보다 집안에서 신발을 벗고 사는 문화권이 보다 닦을 공간 면적이 넓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신발을 벗고 사는 전형적인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다. 한데 일본은 거주 공간의 8할을 차지하는 방은 다다미로 한국의 온돌에 비해 닦는 밀도가 한결 낮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닦을 공간을 가장 많이 누리고 가장 많이 닦아 온 것이 한국 여성이다. 그것도 부족해서 농짝 하나 만들더라도 그토록 다닥다닥 금속물로 장식을 하여 닦지 않을 수 없게 해놓고 있다. 가구에 금속 장식이 어지럽게 붙어 있는 것도 이 닦는다는 동작의 심리적 함수를 한국 여성의 일생이 가장 벅차게 수요로 하고 있다는 발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루나 방을 닦을 때 걸레에 물이 많을수록 마찰을 적게 하여 힘이 덜 든다. 하지만 수분이 많으면 물이 씻긴 때를 분산시켜 묻혀두는 것이 되고, 또 틈이나 곁에 때를 축적시키는 것이 되며 윤기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걸레 냄새를 남긴다. 그래서 특수한 이물질을 닦아낸다거나 습도가 높은 날 수분을 머금은 먼지가 닦여지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는 마른걸레를 썼다. 법도 있는 집안에서는 전날 밤 걸레를 빨아 바싹 짜 말려 두었던 것이다. 요즘은 탈수기로 3분간 말린 정도로 수분을 극소화시켜 닦는다. 걸레의 크기도 다섯 손가락을 최대로 펴 그 손바닥과 표면 내에 분산된 역학(力學)을 골고루 받을 수 있는 넓이로 하여 힘을 아꼈다.
닦는 자세에도 예절이 있었다. 여자는 방이나 마루를 닦을 때 엉덩이와 무릎의 위치에 무척 까다로운 매너를 요구받았다. 원숭이가 네 발로 걸을 때처럼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닦는 것은 천격(賤格)이다. 작업에는 능률적이지만 그 작태가 음탕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지면에서 약간 띄어 닦는 것은 상격(常格)이라 하여 상것들의 작태로 역시 좋지 않게 여겼다. 이 역시 둔부의 육선(肉線)이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엉덩이를 지면에 대고 무릎을 번갈아 곧추 세워가며 닦는 작업 역학상 가장 비능률적인 자세였던 것이다. 닦는 자세에까지 이렇게 도덕이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지 않은 안정된 자세로 오랫동안 되풀이 닦음으로서 마음 속의 슬픔이나 고통이나 고독 같은 것을 닦아내고 마음의 무중력 상태를 유지시키는 데 십상인 자세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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