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蒙求(몽구)524-申嘉私謁(신도사알) 본문

申嘉私謁- 申屠嘉은 사사로운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前漢申屠嘉梁人.
前漢 申屠嘉는 梁나라 사람이다.
以材官蹶張
지방의 예비군으로 쇠뇌 [弩]를 발로 펼 정도였다.
▶材官: 1.谓区别各物的特性而加以利用,使物尽其能。 2.秦汉始置的一种地方预备兵兵种。 3.武卒或供差遣的低级武职。 4.主管工匠﹑土木之事的官署。
▶蹶張: 1.亦作"蹷张"。 2.以脚踏强弩,使之张开。谓勇健有力。 3.借指弩箭。 4.气势汹汹的样子。 5.以手足支撑物体。 6.引申为勉力支拄。
從高帝擊楚.
고조를 좇아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孝文時稍遷至丞相.
孝文帝 때에 벼슬이 차츰 승진하여 승상에 이르렀다.
爲人廉直 門不受私謁.
사람됨이 청렴하고 곧았으므로, 집에서 사사로운 면회를 받지 않았다.
時鄧通方愛幸 居上旁 有怠慢之禮.
이때 鄧通이 바야흐로 임금의 사랑을 받아서, 舊臣을 뛰어넘어 지나치게 승진하였으며, 예절에 태만하였다.
▶居上: 신입이 구참보다 앞섬.
▶旁: 邪、偏:~门左道。
嘉奏曰
陛下幸愛群臣 則富貴之.
至於朝廷之禮 不可以不肅.
申屠嘉가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모든 신하들을 사랑하시어 그들을 부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조정의 예법에 있어서는 엄숙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陛下幸愛群臣 則富貴之: 모든 신하를 부귀하게 하지 않고, 등통에게만 구리 광산과 鑄錢의 권리를 준 것을 말함. 주해의 不名一錢 참조
罷朝坐府中 爲檄召通 詣丞相府 不來且斬通.
조회가 파하자 승상부에 앉아서 檄書를 내어 등통을 丞相府로 불렀는데, 만약 오지 않으면 그를 참수할 생각이었다.
通恐入言上. 上曰
汝第往.
吾今使人召若.
등통은 두려워하고 들어가서 아뢰자, 임금이 말하였다.
“너는 그래도 가거라.
과인이 곧 사람을 시켜 너를 부르겠다.”
通至 免冠徒跣 頓首謝嘉.
등통이 가서 冠을 벗고 맨발로 머리를 조아리며 신도가에게 사죄하였다.
嘉責曰
夫朝廷者高皇帝之朝廷也.
通小臣戱殿上大不敬.
當斬.
申屠嘉가 질책하였다.
“저 조정은 高皇帝의 조정이다.
그런데 그대는 지위가 낮은 신하로서 천자를 희롱하니 크게 不敬하다.
斬首에 해당한다.”
通頓首出血不解.
등통은 머리를 바닥에 짓찧어서 피가 났지만 풀어주지 않았다.
上度丞相已困通 使使持節召通而謝丞相
是吾弄臣也.
임금은 승상이 지금쯤 등통을 충분히 혼내었을 것이라 짐작하고, 使者에게 符節을 가지고 가서 등통을 부르고 승상에게 사과하게 하였다.
“이 자는 나에게 익살을 떠는 신하일 뿐이니 용서하시오.”
▶弄臣: 古代宫廷中以插科打诨来为君王消烦解闷的人物
▶插科: “科”,古曲戏曲中的表情动作。穿插在戏曲表演中的能使观众发笑的表演与道白。亦泛指引人发笑的动作与言谈
▶打诨: 通常解释为开玩笑,逗趣;也指戏曲演出中的即兴说笑逗乐
乃釋之.
이에 석방하였다.
[註解]
▶前漢- <漢書> <列傳> 12의 기사임.
▶鄧通- 漢나라 蜀郡 南安 사람. 문제의 종기를 빨아줄 정도로 비위를 맞추어 임금의 총애를 받았고 上大夫가 되었다. 구리 광산을 하사받고, 개인이 鑄錢하는 권한을 가졌으나, 결국 가산을 몰수당하고, “不名一錢” 古事의 주인공이 되어 가난하게 일생을 마쳤다.
不名一錢(불명일전)의 고사
不名一錢은 자기 명의로 돈이 한 푼도 없이 몹시 가난함을 말한다. 동전을 주조할 권한을 갖고 억만금의 호사를 누리다 마지막엔 자신의 이름으로 한 푼의 돈이 없이 굶어 죽었다는 鄧通의 고사
koahn.tistory.com
▶不名一錢의 고사
不名一錢은 자기 명의로 돈이 한 푼도 없이 몹시 가난함을 말한다. 동전을 주조할 권한을 갖고 억만금의 호사를 누리다 마지막엔 자신의 이름으로 한 푼의 돈이 없이 굶어 죽었다는 鄧通의 고사가 있다.
<사기>에서 등통의 일을 알아 보자.
漢孝文帝(기원전 180~157) 때 총애를 받은 신하로 鄧通이 있었다. 등통은 蜀郡의 南安 사람으로 별다른 재주가 없었다.
그는 배를 잘 저었기 때문에 황제가 타는 배의 선장이었다.
어느 날, 효문제가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효문제는 하늘에 오르려 했으나 오르지 못하고 있던 차에 배를 젓는 어떤 선장이 자기의 등을 밀어주어 하늘에 오를 수 있었다.
효문제는 잠에서 깨어난 뒤, 꿈에서 자신을 밀어준 그 뱃사공을 찾았는데, 뜻밖에도 등통의 모습이 꿈속에서 보았던 그 선장의 모습과 같았다효문제는 몹시 기뻐하며 등통을 총애하였다.
등통은 높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며 아첨을 잘하였다. 효문제는 이에 억만 전을 내리기를 십여 차례 하였고, 벼슬은 上大夫에 이르게 했다.
문제는 수시로 등통의 집에 가서 놀았다. 그러나 등통에게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으니 인재를 추천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자기 한 몸 근신하며 주상의 비위를 맞출 뿐이었다.
文帝가 관상 잘 보는 사람에게 등통의 관상을 보게 했더니
“가난을 맞이하여 굶어죽을 터것입니다.”라고 했다.
문제는
“등통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거늘, 어찌 가난 운운하는가?”라고 하고 등통에게 촉군 嚴道의 銅鑛山을 주어 스스로 돈을 주조할 수 있게 하니 ‘鄧氏錢’이 천하에 퍼졌다.
그의 부유함이 이 정도였다.
문제가 일찍이 종기를 앓은 적이 있는데, 등통은 늘 황제를 위해서 종기의 고름을 빨아냈다.
문제는 마음이 편치 않아 조용히 등통에게
“천하에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겠느냐?”라고 물었다.
등통은 “태자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태자가 문병을 오자 문제는 태자에게 종기를 빨라고 시켰다. 태자가 종기를 빨기는 했으나 내키지 않았다.
얼마 뒤 태자는 등통이 늘 황제를 위해서 고름을 빨아낸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했고, 이로써 등통을 원망했다.
문제가 죽고 景帝가 즉위하자 등통은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되었다. 누군가 등통이 몰래 국경 밖으로 그가 주조한 돈을 실어내고 있다고 고발했다. 관리에게 넘겨 조사하게 했는데 그런 일이 많았다. 마침내 결국 죄를 물어 등통의 집 재산을 모조리 몰수하고 수만 금의 빚을 지게 만들었다.
長公主가 등통에게 재물을 내렸으나 관리가 재빨리 그것을 몰수했기 때문에 등통은 비녀 하나조차 몸에 지닐 수 없었다. 이에 장공주는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등통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보내주었다.
등통은 끝내 단 한 푼의 돈도 없이 남의 집에 빌붙어 살다가 죽었다(竟不得名一錢,寄死人家).
속담에 “힘써 농사지음이 풍년이 드는 것만 못하고, 착하게 벼슬함이 군주에게 잘 보이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여자만 미색으로 잘 보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벼슬살이에도 그런 것이 있다(諺曰「力田不如逢年, 善仕不如遇合」,固無虛言. 非獨女以色媚, 而士宦亦有之).
가난은 불명예가 아니고 단지 살아가는 데 불편을 느끼게 할 뿐이다. 옛사람이 가난을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강조하지만 그 불편을 사서 할 사람은 없을 터이다. 어쩔 수 없이 닥친 가난을 극복하는 사람을 예찬하지만, 그 상황에 자신이 직접 부딪치기는 싫어한다.
'蒙求(몽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蒙求(몽구)522-須賈擢髮(수가탁발) (0) | 2023.03.27 |
---|---|
蒙求(몽구)523-孔翊絶書(공익절서) (0) | 2023.03.27 |
蒙求(몽구)525-淵明把菊(연명파국) (0) | 2023.03.27 |
蒙求(몽구)526-眞長望月(진장망월) (0) | 2023.03.27 |
蒙求(몽구)527-子房取履(자방취리) (0) | 2023.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