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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by 耽古書生賈誼忌鵩- 賈誼는 服鳥를 꺼렸다. 前漢賈誼雒陽人.前漢 賈誼는 雒陽 사람이다.年十八 能誦詩書 屬文 稱於郡中.18세에 능히 시경과 서경을 외우고 글을 지으니 郡에서 칭찬을 받았다.河南守吳公聞其秀材 召置門下.河南太守 吳公이 그가 秀才임을 듣고, 불러서 門下에 두었다.及爲廷尉 迺言誼年少頗通諸家書.廷尉가 되자 이에 말하였다.“賈誼는 나이가 젊은데도 자못 諸家의 글에 능통합니다.”文帝召爲博士.文帝가 불러다가 博士로 삼았다.每詔令議下 諸老先生未能言 誼盡爲之對 人人各如其意所出.항상 詔令을 의논할 때, 여러 나이 든 선생들이 미처 말하기 전에, 가의가 모두 대답하는데, 사람마다 그들의 뜻을 말한 것 같았다.諸生以爲能.사람들이 재능이 있다고 여겼다.帝說之.황제가 기뻐하였다.超遷歲中至太充大夫.계급을 초월하여 ..

by 耽古書生莊周畏犧- 莊周는 희생소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莊子曰에 말하였다.或聘於莊子.어떤 이가 장자를 초빙하려 하였다.莊子應其使曰子見夫犧牛乎.衣以文綉 食以芻菽 及其牽而入於太廟 雖欲爲孤犢 其可得乎.장자가 그 사람에게 물었다.“그대는 희생에 쓰는 소를 보았는가?무늬를 수놓은 옷을 입고 꼴과 콩을 먹다가, 급기야 끌고 太廟로 들어가면, 비록 외로운 송아지가 되려고 해도 되겠는가?”史記曰莊周蒙人.嘗爲蒙漆園吏.與梁惠王同時.其學本於老子 著書率寓言.洸洋自恣以適己.故王公大人不能器之.에 일렀다.“莊周는 蒙縣 사람이다.일찍이 몽현의 漆園吏가 되었다.梁 惠王과 같은 시대였다.그 학문은 老子에 근본을 두었고 著書는 대체로 寓言이다.넓고 크며 제멋대로 자신에게 맞추었다.그런 까닭에 王公과 大人이 그를 인재로 평가하지..

by 耽古書生燕昭築臺- 燕昭王이 臺를 쌓고 賢士를 초빙하였다. 史記 사기에 일렀다.燕昭王卽位 卑身厚幣 以招賢者. 燕昭王이 즉위하자, 몸을 낮추고 폐백을 후하게 함으로써 賢者를 불렀다.謂郭隈曰 齊國因孤之國亂而襲破燕 孤極知燕小力少 不足以報. 然誠得賢士以共國 以雪先王之恥 孤之願也. 先生視可者. 得身事之.郭隈에게 일렀다.“齊가 孤之國亂을 틈타서 燕을 깨뜨렸지만, 나는 燕이 작고 힘이 모자라 족히 원수를 갚지 못할 줄 잘 아오. 그러나 진실로 賢士를 얻어서 나라를 함께하여 先王의 치욕을 씻음이 나의 소원이오. 선생이 그럴 만한 사람을 찾아서 얻으면 이 몸이 그를 섬기겠소.”隈曰 王必欲致士 先從隈始. 況賢於隈者 豈遠千里哉?곽외가 말하였다.“왕께서 꼭 선비가 이르게 하려면, 먼저 이 곽외로부터 시작하십시오. 하물며..

by 耽古書生鄭莊置驛- 鄭莊이 驛馬를 설치하고 빈객을 접견하였다. 前漢鄭當時字莊 陳人. 前漢 鄭當時의 字는 莊이니, 陳縣 사람이다.孝文時 以任俠自喜. 孝文帝 때에, 俠氣가 있음을 스스로 기뻐하였다.脫張羽阨 聲聞梁楚閒. 張羽를 阨难에서 벗어나게 하였는데, 이 소문이 梁과 楚에 들렸다.孝景時爲太子舍人. 孝景제 때에 太子의 舍人이 되었다.▲太子舍人: 태자의 측근.每五日洗沐 常置驛馬長安諸郊 請謝賓客 夜以繼日 常恐不徧. 휴가인 매월 5일에는 목욕하고, 항상 驛馬를 長安의 여러 郊里에 두고, 賓客을 밤낮으로 대접하되, 두루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였다.▲請謝: 猶言迎來送往。(마중하고 배웅함)其知友皆大父行 天下有名之士. 그가 아는 벗은 모두 祖父의 항렬로서, 천하의 有名之士이었다.▲大父: 촌수를 나타내는 계촌법에서는 ..

by 耽古書生瓘靖二妙- 衛瓘과 索靖은 서예에 精妙하였다. 晉書 晉書에 일렀다.衛瓘字伯玉 河東安邑人. 衛瓘의 字는 伯玉이니 河東의 安邑 사람이다.武帝時 拜尙書令 加侍中. 武帝 때 尙書令에 임명되었고 侍中을 더하였다.▲尙書: 尙書省의 천자와 조신 사이에 왕래하는 문서를 맡아보던 관직. 尙書令 밑에서 정무를 분장하였다. 尙書令-尙書-尙書郞性嚴整以法御下. 성격이 엄격하고 단정하였는데 법으로써 아랫사람을 제어하였다.視尙書若參佐 郞若掾屬. 尙書를 마치 幕僚를 보듯 하고, 尙書郞을 보기를 아전을 보듯 하였다.▲參佐: 幕僚. 屬僚. ▲掾屬: 아전. 관속瓘學問深博 明習文藝. 與尙書郞索靖俱善草書. 時號一臺二妙.衛瓘의 학문은 깊고도 넓어서 文藝를 밝게 익혔거니와, 尙書郞 索靖과 함께 모두 草書에 능하니, 당시에 一臺二妙라..

by 耽古書生岳湛連璧- 潘岳과 夏侯湛은 연이은 구슬이다. 晉潘岳字安仁 滎陽中牟人. 晉 潘岳의 字는 安仁이니, 滎陽의 中牟 사람이다.少以才穎見稱. 鄕邑號爲奇童 謂終賈之儔也. 젊어서 재주가 있고 총명하기로 일컬어지더니, 고향 고을에서 奇童이라 하였고, 終軍과 賈誼와 동류라고 여겼다.▲終軍: 몽구 402참조 . 한무제때 문관.▲賈誼( 기원전 200년 ~ 기원전 168년)는 중국 전한 초기의 사상가.▲儔(주): 동류. 짝 夏侯湛字孝若 譙國譙人也. 夏侯湛의 字는 孝若이니, 譙國의 譙縣 사람이다.幼有盛才. 文章宏富 善構新詞. 어려서 뛰어난 재주가 있고 문장이 넓고 풍부해서, 새로운 詞句를 잘 구성하였다.美容觀 與潘岳友善. 每行止同輿接茵. 京都謂之連璧. 얼굴과 용모가 아름다웠는데 潘岳과 친하게 사귀어, 매양 행동거..

by 耽古書生郤詵一枝- 郤詵은 한 가지의 계수나무이다. 晉書 에 일렀다.郤詵字廣基 濟陰單父人. 郤詵(극선)의 字는 廣基이니, 濟陰 單父 사람이다.▲郤:= 틈. 사이. ‘隙’와 통용.博學多才 瓌偉倜儻 不拘細行 州郡禮命竝不應. 博學多才하고 기이하고 기개가 커서, 조그만 행동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州郡의 禮命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泰始中擧賢良 對策上第. 泰始 연중에 賢良科에 뽑혔고, 對策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拜議郞 遷雍州刺史. 議郞에 임명되었다가, 雍州刺史로 옮겼다.武帝於東堂會送 問詵曰 卿自以爲何如. 무제가 東堂에 신하들을 모으고 그를 보낼 때 극선에게 물었다.“그대는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가?”對曰 臣擧賢良 對策爲天下第一 猶桂林一枝崑山片玉. 극선이 대답하였다.“臣이 賢良科의 대책에 뽑혔으니 천하제일로 생..

by 耽古書生戴憑重席- 戴憑이 거듭하여 자리를 차지하다. 後漢戴憑字次中 汝南平輿人. 後漢 戴憑의 字는 次中이니, 汝南의 平輿 사람이다.光武時擧明經 試博士. 光武帝 때에 明經科에 뽑혀, 博士가 되었다.後拜侍中. 뒤에 侍中이 되었다.正旦朝賀 百僚畢會. 정월 초하룻날 朝賀에 百僚들이 모두 모였다. ▶畢: 모두帝令群臣能說經者 更相難詰 義有不通 輒奪其席 以益通者. 황제가 群臣에게 명령하여, 능히 경서를 해설하는 자는 서로 따져 묻게 하여, 뜻을 알지 못하면 문득 그의 자리를 빼앗고 아는 자를 앉게 하였다.▶難詰: 따져 묻다. 詰問辯難;質詢。憑遂重坐五十餘席. 대빙이 50여 자리를 거듭 앉았다.故京師爲之語曰 解經不窮戴侍中. 도읍에서 이 때문에 말하였다.“경서를 푸는 데 막힘이 없는 사람은 戴侍中이다.”舊本憑作馮誤...

by 耽古書生鄒陽長裾- 鄒陽이 긴 옷자락을 끌며 벼슬하다. 前漢鄒陽齊人. 前漢의 鄒陽은 齊나라 사람이다.爲人有智略. 慷慨不苟合. 사람됨이 智略이 있고, 慷慨하여 구차하게 시속에 영합하지 않았다.漢興 諸侯王皆自治民騁賢. 漢나라가 일어나자, 諸侯王들이 모두 백성을 잘 다스리고 賢士를 招聘하였다.吳王濞招致四方游士. 吳王 濞는 벼슬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방의 선비를 招致하였다.陽仕吳 以文辯著名. 추양은 오나라에 벼슬하여, 문장과 변론으로 이름이 났다.久之吳王以太子事怨望 稱疾不朝. 오래된 뒤에 오왕이 太子의 일로 원망하니, 병을 핑계하고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陰有邪謀. 陽奏書諫. 略曰今臣盡智畢議 易精極慮 則無國不可奸 飾固陋之心 則何王之門 不可曳長裾乎.然臣所以歷數王之朝 背淮千里而自致者 非惡臣國而樂吳民也. 竊高下風..

by 耽古書生 王符縫掖- 王符의 縫掖이 가치가 있다. 後漢王符字節信 安定臨涇人. 後漢 王符의 字는 節信이니, 安定의 臨涇 사람이다. 少好學. 有志操. 耿介不同於俗. 젊어서 학문을 좋아하고 지조가 있었으며, 강용(剛勇)하고 세속에 부화뇌동하지 않았다. ▲耿介: 바르고 곧다. 강직하다 以此遂不得升進. 乃隱居著書三十餘篇 以譏當時失得. 號潛夫論. 이 때문에 승진하지 못하자, 은거하여 30여 편의 책을 저술하여, 이로써 당시 정치와 도덕의 장단점을 지적하였는데, 라고 이름하였다. 後度遼將軍皇甫規解官歸. 뒤에 度遼將軍 皇甫規가 벼슬을 내놓고 돌아왔다. 鄕人有以貨得鴈門太守者. 亦去職還家 書刺謁規. 同鄕 사람으로 돈을 써서 鴈門太守가 된 사람이 있어서, 역시 벼슬을 내놓고 집에 돌아와서, 명함에 서명하여 황보규를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