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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by 耽古書生 樊噲排闥- 樊噲가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前漢樊噲沛人. 前漢의 樊噲는 沛縣 사람이다. 以屠狗爲事. 개를 도축함을 직업으로 삼았다. 從高祖定天下 以功封舞陽侯. 高祖를 좇아 천하를 평정하고, 그 공으로 舞陽侯에 봉해졌다. 帝嘗病 惡見人臥禁中 詔戶者無得入群臣. 고조가 일찍이 병이 있어서,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고 禁中에 누워 있었다. 詔書를 내리어 문지기에게 신하들을 들이지 말게 하였다. ▲戶者: 守门的人 群臣絳‧灌等莫敢入十餘日. 신하들 중에 周勃과 灌嬰도 감히 들어가지 못한 지가 10여 일이 되었다. 噲乃排闥直入 大臣隨之. 번쾌가 이에 문을 밀치고 바로 들어가니, 大臣들도 따라서 들어갔다. 上獨枕一宦者臥. 고조는 홀로 한 사람의 宦官을 베고 누워 있었다. 噲等流涕曰 始陛下與臣等起豊‧沛定天下. 何..

by 耽古書生 辛毗引裾- 辛毗가 옷자락을 당기며 급하게 諫言하였다. 魏志 에 일렀다. 辛毘字佐治 穎川陽翟人. 辛毘의 자는 佐治이니, 穎川 陽翟 사람이다. ▶辛毗: 신평의 동생이다. 원담을 섬기다가 조조에게 투항하고 신평의 가족을 몰살한 심배를 조조에게 읍소하여 죽게 한다. 사민정책 반대, 사냥 절제, 오나라 정벌 반대, 궁궐신축 반대,권신에게 아부하지 않음, 정월 개정 등 위나라의 정치에 기여한 바가 컸다. 에서는 220년 조조가 죽고 맏아들 조비가 조조의 뒤를 잇자, 화흠,왕랑 등과 함께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에게 양위를 강요하는 것으로 나온다. 文帝踐阼 遷侍中. 文帝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侍中으로 옮겼다. ▶踐阼: 亦作“践胙”、“践祚”。即位;登基。 帝欲徙冀州士家十萬戶實河南. 문제는 冀州의 士..

by 耽古書生 孫楚漱石- 孫楚는 돌로 양치질한다고 변명하였다. 晉書 에 일렀다. 孫楚字子荊 太原中都人. 孫楚의 자는 子荊이니, 太原의 中都 사람이다. 才藻卓絶 爽邁不群 多所陵傲 缺鄕曲之譽. 재주와 문채가 뛰어나서 시원하고 출중하였는데, 업신여기고 거만하게 굴어서 고향 사람들의 칭찬을 듣지 못하였다. ▶才藻: 才华文采 (재주가 화려하고 문장이 아름다움) 年四什與始參鎭東軍事 終馮翊太守. 나이 40이 넘어 비로소 鎭東軍事에 참여하여, 馮翊太守로 마쳤다. 初楚少時欲隱居. 謂王濟曰 當欲枕石漱流 誤云漱石枕流. 손초는 젊었을 때 隱居하고자 하여 王濟에게 말하기를, 마땅히 “돌을 베개삼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한다.”라고 할 것을 “돌에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濟曰 流非可枕 石非可漱. 왕제가..

by 耽古書生 郝隆曬書- 郝隆이 책을 햇볕에 말리다. 世說 에 일렀다. 郝隆七月七日 出日中仰臥. 郝隆이 7월 7일에 햇볕에 나가서, 드러누워 있었다. 人問其故 曰 我曬腹中書也.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였다. “나는 내 뱃속의 책을 햇볕에 쬐고 있소.” ▶曬(쇄): 쬐다 ▶曝(폭): 쬐다 ▶曝曬: 서적 따위를 볕에 쬐어 말림 [註解] ▶世說- 에 있는 이야기임. ▶郝隆 - 자는 仕治, 汲郡 사람, 벼슬하여 征西將軍 桓溫의 參軍이 되었다.

by 耽古書生 枚皐詣闕- 枚皐가 대궐에 가서 自薦하였다 前漢枚皐字少孺. 前漢 枚皐의 자는 少孺이다. 至長安上書北闕 自陳枚乘之子. 長安에 이르러 北闕에 글을 올려 스스로 枚乘의 아들이라고 밝혔다. 始乘死 詔問乘子. 無能爲文者. 일찍이 매승이 죽을 때 임금이 조서를 내려 묻기를, 매승의 아들에 글을 잘하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始: 过去,从前 [past] 公侯之子孙,必复其始。——《左传》 曾,尝 [before long] 以为凡是州之山水有异态者,皆我有也;而未始知西山之怪特。——柳宗元《始得西山宴游记》 乘在梁時 取皐母爲小妻. 매승이 梁나라에 있을 때 매고의 어머니를 데려다가 소실로 삼았다. 及東歸 皐母不肯隨. 留與母居. 매승이 동쪽으로 돌아갈 때 매고의 어머니는 따라가려 하지 않아서, 어머니와 매고는 고향에 남..

by 耽古書生 充國自贊- 趙充國은 자신을 칭찬하였다. 前漢趙充國字翁孫 隴西上邽人. 前漢 趙充國의 자는 翁孫이니, 隴西 上邽 사람이다. 善騎射 補羽林. 말타고 활쏘기에 능하여, 羽林에 임명되었다. ▶羽林: 우림군. 古代 禁衛軍의 별칭. 새처럼 빠르고 숲처럼 많다 해서 붙여진 이름. 爲人沈勇有大略. 사람됨이 침착하고 용맹스러웠으며 큰 지략을 가졌다. 少好將帥之節而學兵法 通知四夷事. 젊어서 장수의 節操를 좋아하여 병법을 배웠고 四夷의 일을 모두 통하여 알았다. 宣帝時爲後將軍 封營平侯. 선제때 後將軍이 되고, 營平侯에 봉하였다. 神爵初諸羌背叛犯塞. 神爵 초년에 羌人들이 반란을 일으켜 국경을 침범했다. 時充國年七十餘. 이때 조충국의 나이 70세 남짓이었다. 上老之 使御史大夫丙吉問誰可將者. 황제는 그를 늙었다고 생..

by 耽古書生 王衍風鑒- 王衍을 山濤가 風鑒하였다. 晉書 에 일렀다. 王衍字夷甫. 王衍의 자는 夷甫이다. 神情明秀 風姿詳雅. 정신이 맑게 빼어나고, 풍채가 자상하고 단아하였다. 嘗造山濤 旣去. 濤目送之曰 何物老嫗生寧馨兒. 然誤天下蒼生者 未必非此人. 일찍이 山濤를 찾아 갔다가 떠나니, 산도가 目送하며 말하였다. “어떤 늙은 할미가 이와 같은 아이를 낳았는가? 그러나 천하의 백성을 그르칠 자는 틀림없이 이 사람일 터이다.” ▶目送: 눈으로 전송하다. ▶寧馨: 이와 같은. 그 같은. (→丁寧) 武帝聞其名 問其從兄戎曰 夷甫當世誰比. 武帝가 그 명성을 듣고 그 종형인 王戎에게 물었다. “夷甫를 當世의 누구와 견주겠소?” 戎曰 未見其比 當從古人中求耳. 왕융이 대답하였다. “그와 견줄 사람을 알지 못하니, 옛사람 중..

by 耽古書生 許劭月旦- 許劭는 月旦에 사람을 품평하였다. 後漢許邵字子將 汝南平輿人. 後漢 許邵의 자는 子將이니, 汝南의 平輿 사람이다. 少峻名節 好人倫 多所賞識. 젊어서 名節을 높이 여기고 사람을 評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사람들이 그의 평가를 많이 알아주었다. 時郭太亦知人. 이때 郭太 역시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았다. 故天下言拔士者 稱許‧郭. 그리하여 천하 사람들이 말하기를, 선비를 발탁하는 자는 허소와 곽태가 일컬어진다고 하였다. 曹操微時 常卑辭厚禮 求爲己目. 曹操가 아직 寒微할 때, 말을 겸손히 하고 예물을 두텁게 준비하여, 자기의 평판을 구하였다. 邵鄙其人曰 君淸平之姦賊 亂世之英雄. 허소는 그 사람됨을 비루하게 여겨 말하였다. “그대는 태평성대의 姦賊이요, 난세의 英雄이다.” 操大悅而去. 조조가 크게..

by 耽古書生 賀循儒宗- 賀循은 儒學의 宗師이다. 晉書 에 일렀다. 賀循字彦先 會稽山陰人. 賀循의 자는 彦先이고, 會稽의 山陰 사람이다. 操尙高厲 童齔不群. 지조가 높고 엄함을 숭상하였다. 어릴 때부터 출중하였다. 言行進止 必以禮讓. 言行과 進退에 반드시 예로써 사양하였다. 建武初爲中書令 加散騎常侍 固辭. 建武 초년에 中書令이 되고 散騎常侍를 더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다. 改拜太常 朝廷疑滯皆諮之. 고쳐서 太常에 임명하였다. 조정에서 의심나고 결정할 수 없는 일은 모두 하순에게 諮問하였다. 循輒依經禮而對. 그는 항상 經典과 儀禮에 따라 대답하였다. 爲世儒宗. 세상의 儒學 宗師가 되었다. [註解] ▶晉書- 38의 기사 ▶太常- 九卿의 하나로서 宗廟 등의 제사를 맡은 벼슬. ▶儒宗- 儒學者의 우두머리.

by 耽古書生 孫綽才冠- 孫綽은 글재주로서 으뜸이었다. 晉書 에 일렀다. 孫綽字興公 馮翊太守楚之子. 孫綽의 자는 興公이니, 馮翊太守 孫楚의 아들이다. 博學善屬文. 넓게 배우고 문장에 능하였다. ▶属:(촉) 글을 짓다. 잇다. 부탁하다 (속) 무리. 거느리다. 복종하다 居會稽 遊遊山水十餘年 節重張衡‧左思賦. 會稽에 살며 山水에 노닌 지 10여 년이 되었다. 張衡과 左思의 賦를 몹시 소중하게 여겼다. 每云 三都二京 五經之鼓吹也. 항상 일렀다. “左思의 三都賦와 張衡의 二京賦가 五經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될 터이다.” 嘗作天台山賦 辭致甚工. 일찍이 를 지었는데, 글 솜씨가 몹시 교묘하였다. 初成 以示友人范榮期云 卿試擲地. 當作金石聲. 처음에 글이 이루어지자, 친구인 范榮期에게 보이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시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