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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by 耽古書生 匡衡鑿壁- 匡衡이 벽을 뚫고 빛을 끌어다 공부하였다. 前漢匡衡字稚圭 東海承人. 前漢 匡衡의 字는 稚圭이니, 東海郡 承縣 사람이다. 父世農夫. 그 아버지는 대대로 농부였다. 至衡好學家貧 庸作以供資用. 匡衡에 이르러 학문을 좋아했으나 집이 가난하여, 품을 팔아서 생활용품을 공급하였다. 尤精力過絶人. 諸儒爲之語曰 無說詩 匡鼎來. 더욱이 精力이 남보다 지나쳐서, 선비들이 그에 대해서 말하였다. “을 말하지 말라. 匡衡이 온다.” 匡說詩解人頤. 射策甲科. 元帝時爲丞相. 광형이 시경을 말하면 사람들이 웃기를 그치지 않게 하더니, 射策甲科에 합격하여 元帝 때에 丞相이 되었다. 西京雜記曰 衡勤學無燭. 隣舍有燭而不逮. 衡乃穿壁 引其光而讀之. 邑大姓文不識名家富多書. 衡乃與其客作 而不求償. 願得書遍讀之. 主人..

by 耽古書生 孫敬閉戶- 孫敬이 문을 닫고 노끈을 목에 매고 공부하였다. 楚國先賢傳 에 일렀다. 孫敬字文寶. 孫敬의 字는 文寶이다. 常閉戶讀書 睡則以繩繫頸 懸之梁上. 항상 문을 닫고 글을 읽다가, 졸리면 노끈으로 목을 매어 대들보에 매달았다. 嘗入市. 市人見之皆曰 閉戶先生來也. 일찍이 저자에 갔더니, 저자의 사람들이 그를 보고 모두 말하였다 “閉戶先生이 왔다.” 辟命不至. 임금의 명령으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註解] ㅇ楚國先賢傳- 晉나라 張方이 撰한 책. ㅇ閉戶先生- 문을 닫고 글을 읽었기 때문에 이른 말임.

by 耽古書生 郅都蒼鷹- 郅都는 푸른 매이다. 前漢郅都河東大陽人. 前漢의 郅都는 河東 大陽 사람이다. 景帝時爲中郞將 敢直諫面折大臣於朝. 景帝 때에 中郞將이 되었는데, 조정에서 천자에게 直諫하고, 大臣에게 얼굴을 맞대고 꾸짖었다. 遷中尉. 是時民樸畏罪自重. 中尉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때 백성들은 죄를 두려워하여 스스로 몸조심을 했다. 而都獨先嚴酷 致行法 不避貴戚. 그러나 질도는 홀로 앞장서서 혹독하게 법을 집행하여, 귀족과 姻戚을 피하지 않았다. 列侯宗室見都 皆側目而視 號曰蒼鷹. 列侯와 宗室들이 모두 질시하여 이름을 짓기를, 蒼鷹(푸른 매)이라고 하였다. 拜鴈門大守. 匈奴素聞都節 擧邊爲引去 竟都死不近鴈門. 鴈門太守에 임명되자, 匈奴가 평소 질도의 節行을 아는 터라, 변방의 군사를 거느리고 떠났고, 질도가 ..

by 耽古書生 寗成乳虎- 寗成과 젖 먹이는 호랑이처럼 사나웠다. 前漢寗成南陽穰人. 前漢의 寗成은 南陽 穰땅의 사람이다. 以郞謁者事景帝. 郞謁者가 되어 景帝를 섬겼다. 好氣 俠氣를 좋아했다. 爲小吏必陵其長吏. 처음에 小吏가 되었을 때 반드시 長吏를 업신여겼다. 爲人上操下急 如束濕薪. 사람됨이 위아래 사람에게 操急하여, 마치 젖은 나무를 묶듯이 하였다. 爲中尉, 其治効郅都 其廉弗如. 中尉가 되자 그의 정치는 郅都를 본받았으나, 그의 청렴함은 郅都만 못하였다. 武帝卽位 徙爲內史. 外戚多毁其短抵罪. 武帝가 즉위하자 內史로 옮겼는데, 外戚들이 그의 단점을 많이 헐뜯어 죄에 부닥뜨렸다. 後上欲以爲郡守. 황제가 그를 郡守로 삼으려고 하였다. 公孫弘曰 臣爲小吏時 成爲濟南都尉. 其治如狼牧羊 不可使治民. 公孫弘이 말하였다..

by 耽古書生 周嵩狼抗- 周嵩은 강직했다. 晉書 에 일렀다. 周嵩字仲智 兄顗字伯仁 汝南安成人. 周嵩의 字는 仲智요, 형인 周顗의 字는 伯仁이니, 汝南의 安成 사람이다. 中興時 顗等竝列貴位. 元帝가 晉나라를 中興했을 때, 周顗 등이 모두 귀한 지위에 있었다. 嘗冬至置酒, 其母擧觴乍賜三子曰 吾本渡江 託足無所. 不謂爾等竝貴 列吾目前. 吾復何憂. 일찍이 冬至에 술을 차려 놓고, 그의 어머니가 술잔을 들어 세 아들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내가 본래 양자강을 건너올 때 발붙일 곳이 없었다. 뜻밖에 너희들이 모두 귀하게 되어 내 눈앞에서 서 있으니, 내가 다시 무엇을 근심하겠느냐?” 嵩起曰 恐不如尊旨. 伯仁志大而才短 名重而識闇 好乘人之弊. 非自全之道. 嵩性抗直 亦不容於世. 唯阿奴碌碌 當在阿母目下耳. 주숭이 일어나서 ..

by 耽古書生 梁冀跋扈- 梁冀는 제멋대로 날뛰었다. 後漢梁冀字伯卓 褒親愍侯竦之曾孫. 後漢 梁冀의 字는 伯卓이니, 褒親愍侯 梁竦의 曾孫이다. 爲人鳶肩豹目 洞精瞠眄 口吟舌言. 사람됨이 솔개의 어깨에 표범의 눈으로서, 사팔뜨기여서 눈동자로 곁눈질하며, 말이 분명하지 않았다. 拜大將軍 侈暴滋甚. 大將軍에 임명되었는데, 사치하고 사납기가 매우 심하였다. 冲帝崩 冀立質帝. 少聰惠 知冀驕橫. 冲帝가 죽자, 양기는 質帝를 세웠는데, 질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웠고 양기의 교만하고 방자함을 알고 있었다. 嘗朝群臣 目冀曰 此跋扈將軍也. 신하들과 조회를 열었을 적에 양기를 평하여 말하기를, “이자는 跋扈將軍)이다.”라고 하였다. 冀聞深惡之 遂鴆殺. 양기가 이 말을 듣고 몹시 미워하여, 드디어 鴆酒를 먹여 죽였다. 復立..

by 耽古書生 郗超髥參- 郗超는 수염이 난 參軍이었다. 晉書 에 일렀다. 郗超字景興 大尉鑒之孫. 郗超의 字는 景興이니, 大尉 郗鑒의 손자이다. 少卓犖不羈 有曠世之度. 젊어서부터 才知에 뛰어나 얽매이는 일이 없었으며, 세상에 견줄 자가 없는 度量이 있었다. 善談論 義理精微. 담론을 잘하였는데, 義理가 정밀하였다. 大司馬桓溫辟爲參軍. 大司馬 桓溫이 불러 參軍을 삼았다. 溫英氣高邁 罕有所推 與超言 常謂不能測. 遂傾意禮待. 超亦深自結納. 환온은 영특한 기운이 뛰어나서 남을 추천함이 드물었으나, 치초와 더불어 말을 해보고는 항상 속마음을 측량할 수 없다고 여기고, 뜻을 기울여 예우하니, 치초도 깊이 맺어서 받아들였다. 時王珣爲溫主簿 亦爲溫所重. 府中語曰 髥將軍短主簿 能令公喜 能令公怒. 이때 王珣이 桓溫의 主簿가 ..

by 耽古書生 王珣短簿- 王珣은 키가 작은 主簿이다. 晉王珣字元琳 丞相導之孫. 晉나라 王珣의 字는 元琳이니, 丞相 王導의 손자이다. 弱冠與謝玄爲溫掾. 溫嘗謂之曰 謝掾年四十必擁旄杖節. 王掾當作黑頭公. 皆未易才也. 弱冠에 謝玄과 함께 桓溫의 속관이 되었는데 환온이 일찍이 말하기를, “謝玄은 나이 40이면 반드시 군사를 통솔할 것이요, 王珣은 마땅히 젊어서 三公이 될 터이니, 이들은 모두 쉽게 얻을 수 있는 인재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擁旄: 统率军队 杖節: 执持旄节 ▲黑頭公: 人在壮年而位列三公。(젊은 나이에 3공이 됨). 붓의 별칭 孝武時 爲僕射領吏部. 帝雅好典籍 以才學文章見昵. 孝武帝 때 僕射가 되어 吏部를 거느렸는데, 황제는 典籍을 좋아했으므로, 재주와 학문과 문장으로 황제와 친하게 되었다. ▲昵(닐..

by 耽古書生 伏波標柱- 伏波장군이 기둥으로 국경을 표시하였다. 後漢馬援字文淵 扶風茂陵人. 後漢 馬援의 자는 文淵이니, 扶風 茂陵 사람이다. 少有大志 嘗謂賓客曰 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 젊어서부터 큰 뜻이 있어, 일찍이 빈객들에게 말하였다. “장부가 뜻을 가져서 궁할수록 더욱 굳고, 늙을수록 더욱 씩씩해야 한다.” 建武中歷虎賁中郞將 數被進見. 建武 연중에 虎賁中郞將에 임명되었고, 황제를 자주 알현하였다. 爲人明鬚髮 眉目如畵 閑於進對. 사람됨이 수염과 머리칼이 아름답고, 눈과 눈썹이 그림과 같았는데, 進對에 뛰어났었다. 又善兵策. 또 군사를 부리는 책략에도 능란하였다. 帝嘗言 伏波論兵 與我意合. 황제가 일찍이 말하였다. “복파가 군사를 의논하면, 나와 뜻이 부합한다.” 有謀未嘗不用. 그의 계모를 쓰지 ..

by 耽古書生 博望尋河- 博望侯가 河水의 근원을 찾아내다. 前漢張騫漢中人. 前漢의 張騫은 漢中 사람이다. 建元中爲郞. 武帝方欲事滅胡 迺募能使者. 騫應募 使月氏. 建元 연중에 郞官이 되었는데, 武帝가 바야흐로 匈奴를 멸하고자 하여, 이에 능히 사신으로 갈 자를 모집하였다. 騫應募 使月氏. 장건이 모집에 응하여 月氏國에 사신이 되었다. 徑匈奴 留十餘歲 持漢節不失. 길이 흉노를 거치게 되어 붙잡혀서 10여 년간 머물며 符節을 지녀 잃지 않았다. 因與其屬亡鄕月氏. 後亡歸 拜太中大夫. 그 관속과 함께 도망하여 월지국으로 갔다가, 뒤에 도망쳐 돌아와서 太中大夫에 배수되었다. 騫身所至者 大宛‧大月氏‧大夏‧康居 而傳聞其旁大國五六 具爲天子言其地形所有. 장건의 몸이 이른 곳은, 大宛·大月氏·大夏·康居 등이고 전하기를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