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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求(몽구)42-鄭莊置驛(정장치역) 본문

蒙求(몽구)

蒙求(몽구)42-鄭莊置驛(정장치역)

耽古樓主 2023. 4. 15. 02:06

蒙求(몽구) 鄭莊置驛(정장치역)

by 耽古書生

鄭莊置驛- 鄭莊이 驛馬를 설치하고 빈객을 접견하였다. 

 

前漢鄭當時字莊 陳人.
前漢 鄭當時의 字는 莊이니, 陳縣 사람이다.

孝文時 以任俠自喜.
孝文帝 때에, 俠氣가 있음을 스스로 기뻐하였다.

脫張羽阨 聲聞梁楚閒.
張羽를 阨难에서 벗어나게 하였는데, 이 소문이 梁과 楚에 들렸다.

孝景時爲太子舍人.
孝景제 때에 太子의 舍人이 되었다.
太子舍人: 태자의 측근.


每五日洗沐 常置驛馬長安諸郊 請謝賓客 夜以繼日 常恐不徧.
휴가인 매월 5일에는 목욕하고, 항상 驛馬를 長安의 여러 郊里에 두고, 賓客을 밤낮으로 대접하되, 두루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였다.
請謝: 猶言迎來送往(마중하고 배웅함)


其知友皆大父行 天下有名之士.
그가 아는 벗은 모두 祖父의 항렬로서, 천하의 有名之士이었다.
大父: 촌수를 나타내는 계촌법에서는 10촌 이상의 조부항렬은 일반적으로 大父라고 하고, 촌수가 더 멀어져 10촌이 넘어가는 할아버지 항렬 이상은 大父 또는 族大父라고 합니다. 또한 사전적인 의미 풀이를 보면 大父는 할아버지와 같은 항렬인 유복친 외의 남자 친척. 族大父는 할아버지뻘 되는 같은 성의 먼 친척으로 풀어 놓은 것으로 보아 족대부대부보다 촌수가 더 먼 집안 내 남자 어른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武帝時 遷大司農. 當時爲大吏.
武帝 때에 大司農으로 옮겨졌는데 당시에 太史라고 하였다.

戒門下
客至亡貴賤 亡留門者 執賓主之禮 以其貴下人.
門下에 경계하였다.
“손님이 오면 귀천을 가리지 말고 문에다 붙잡아 두지 말라. 賓主의 禮를 견지하고, 귀한 신분일지라도 남에게 자신을 낮추어라.”

以貴下人: 나의 귀한 신분으로 남에게 굽힘. 겸허하게 남을 대함을 말한다.

其推轂士及官屬丞史 常引以爲賢於己.
士, 官屬, 丞史를 천거함에 항상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을 추천하였다.
推轂(추곡): 사람을 천거하다.


聞人之善言 進之上 唯恐後.
남이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임금에게 추천하면서 늦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山東諸公以此翕然稱鄭莊.
山東의 諸公이 이로써 모두 鄭莊을 칭찬하였다.
翕然: 和合하는 모양.


後陷罪 起爲汝南太守卒.
뒤에 죄에 빠졌으나 다시 汝南太守에 오르고 卒하였다.

家亡餘財.
죽었을 때 집에 남은 재산이 없었다.

先是下邽翟公爲廷尉 賓客亦塡門. 及廢門外可設爵羅.
이보다 먼저 하규의 翟公이 廷尉가 되었는데, 賓客이 문을 메우더니, 벼슬을 그만두자 문밖에 爵羅를 칠 정도였다.

後復爲廷尉. 客欲往.
뒤에 다시 廷尉가 되자 빈객들이 그의 집에 가려고 하였다.

翟公大署其門曰
一死一生 迺知交情 一貧一富 迺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적공은 큰 글씨로 그 문에 썼다.
“죽고 삶에서 비로소 사귀는 정을 알고, 가난하고 부유함에서 비로소 사귀는 태도를 안다고 하더니, 귀했다가 비천해지니 사귀는 정을 비로소 보는구나.”

 

[註解]

前漢- <한서> <열전> 20의 기사.

張羽- 나라 孝王의 장수. 나라 정승의 아우이다.

- 郊里. 郊外의 마을.

大司農- 농사와 곡식을 맡은 높은 벼슬아치. 큰 관리. <史記>에서는 太史로 적고 있다.

賓主- 손님과 주인.

丞史- 長官屬僚.

翟公- 나라 사람. 그가 廷尉가 되었을 때와 그만두었을 때의 감회를 문에 쓴 것으로 유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