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蒙求(몽구)5-楊震關西(양진관서) 본문
by 耽古書生
楊震關西- 楊震은 關西의 孔子이다.
後漢楊震字伯起 弘農華陰人.
後漢 楊震의 字는 伯起이다.
少好學明經 博覽無不窮究.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經書에 밝았으며, 널리 보고 깊이 연구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諸儒爲之語曰 關西孔子楊伯起.
선비들이 그를 가리켜 “關西의 孔子 楊伯起”라고 하였다.
常客居於湖 不答州郡禮命數十年 衆謂之晩暮.
항상 나그네로 湖北에 살았는데, 고을에서 예로써 초빙하여도 받지 않은 지 수십 년이 되니, 사람들이 이르기를 벼슬이 늦었다고 하였다.
而志愈篤.
그러나 그는 뜻이 더욱 도타웠다.
後有鸛雀 銜三鱣魚 飛集講堂前.
그 뒤 황새가 세 마리의 뱀장어를 물고, 그가 강의하는 講堂에 날아와서 모였다.
都講取魚進曰
蛇鱣者卿大夫服之象也. 數三者法三台也. 先生自此升矣.
都講이 물고기를 가져다 바치며 말하였다.
“뱀장어는 卿大夫의 옷 모양이요, 수효가 셋이라는 것은 三公을 뜻하니, 선생님은 이로부터 출세하실 것입니다”
年五十乃始州郡 安帝時爲太尉.
나이 50에 비로소 고을에 벼슬을 하였고, 安帝 때에 太尉가 되었다.
▲禮命:指礼聘与任命。
▲楊震:중국 후한시기의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關西孔子라는 미명이 있었으며 형주자사, 탁군태수, 사도, 태위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가 태위로 있을 때 안제의 乳母인 王聖 및 중상시 樊豊 등의 세력이 강하여 조정의 부패가 만연하였으므로, 양진은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간절히 간언하였다. 번풍의 모함으로 파면당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사지 선생’이라는 별명이 있다. 지금의 陝西성 華山 근처에서 열심히 제자를 키웠다. 특히 사람의 있고 없음, 잘나고 못남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가르친 덕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곳에서 키운 제자만 2000여 명. 그는 나중에 근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 제자 1000여 명을 더 가르쳤다. 황제에 대한 간언을 서슴지 않고 자식들을 절제와 청렴으로 가르친 그의 이름은 지금껏 청백리의 상징으로 남았다. 고사성어 [四知]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四知는 <후한서>의 楊震傳에 나오는 말로, 두 사람만의 비밀이라도 어느 때고 반드시 남이 알게 된다는 뜻이다. 楊震이 荊州刺史로 부임했을 때, 제자 王密이 銀 뭉치를 내놓으면서, “은혜에 보답코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양진은 “네가 나를 잘 알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이냐”고 꾸짖는다. 양밀은, “밤이라서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양진은 이에 그 유명한 대답을 내놓는다. “하늘이 알고, 神明이 알며, 내가 알고, 네가 아는데, 왜 아무도 모른다고 하느냐?”
왕밀이 부끄러워 쫓기듯 방을 나간 것은 불문가지다. 과거 한문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말이다. 너와 나, 하늘과 땅이 모두 안다고 해서 ‘四知’다. 황제에 대한 간언을 서슴지 않고 자식들을 절제와 청렴으로 가르친 그의 이름은 지금껏 청백리의 상징으로 남았다.
[註解]
▶ 後漢- 《後漢書》〈列傳〉44에 있는 이야기임.
▶ 弘農- 地名.
▶ 關西- 중국 函谷關의 서쪽.
▶ 楊伯起- 伯起는 楊震의 字. 四知의 故事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 鶴雀- 황새. 학과 같은데 목이 길고 부리가 붉다.
▶ 集講堂前- 강당 앞에 모이다.
▶ 都講- 學舍의 어른을 말함.
▶ 三台- 三公. 後漢 때는 太尉·司徒·司空을 삼공이라고 했음.
▶ 太尉- 삼공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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