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蒙求(몽구)1-王戎簡要(왕융간요) 본문
by 耽古書生
王戎簡要- 王戎은 간단하고 요령이 있었다.
晉書 王戎字濬沖 琅邪臨沂人.
<晉書>에 보면, 王戎의 字는 濬沖이니, 琅邪의 臨沂사람이다.
幼而穎悟 神彩秀徹 視日不眩.
어렸을 때부터 뛰어나게 총명하고, 정신과 안색이 남달랐으며, 眼力이 날카로워서 태양을 한참 보고 있어도 눈이 부시는 법이 없었다.
裴楷見而目之曰, 戎眼爛爛如巖下電.
배해가 그를 보고 평하기를, “왕융의 눈은 빛나서 마치 바위 아래에서 번개를 봄과 같다.”라고 하였다.
阮籍素與戎父渾爲友.
완적은 평소 왕융의 아버지 왕혼을 친구로 사귀었다.
戎年十五隨渾在郞舍.
왕융의 나이 15세 때에 왕혼을 따라서 郞舍에 살고 있었다.
少籍二十歲 籍與之交.
완적보다 20세나 젊었으나, 완적은 왕융과 사귀고 있었다.
籍每適渾去 輒過視戎 良久然後出 謂渾曰,
濬沖淸賞 非卿倫也 共卿言 不如共阿戎談.
완적이 매양 왕혼을 찾아올 때마다, 왕융에게 들러 그를 만나보고 한참 후에 나와서 말하였다.
“준충은 머리가 맑고 뛰어나서, 그대의 유가 아닐세. 그대와 이야기함이 阿戎과 이야기함만 못하네.”
歷官至司徒.
왕융은 여러 벼슬을 거쳐 司徒에 이르렀다.
[註解]
▶晉書- 진나라의 역사책. 《진서》<열전>13에 있는 이야기임.
▶裵楷- 진나라 문희 사람. 밝고 총명하여 아는 것이 많았다. 사람들이 그를 옥인이라고 일렀다. 젊어서부터 왕융과 함께 이름이 높았다.
▶阮籍- 진대의 명사로서 죽림칠현의 한 사람임.
▶司徒- 육경의 하나로서 교육을 맡은 최고의 벼슬.
▶왕융
중국 진나라의 문인·정치가. 자는 준충.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유유자적하고 노장사상을 선호하여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작품에 <주덕송> 따위가 있다.
鑽核이란 고사성어로 유명하기도 한 인물이다. 찬핵이란, ‘씨에 구멍을 뚫는다’는 뜻으로 사람됨이 용렬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魏시대 초기에 老莊의 허무사상을 숭상하고 유교의 형식주의를 배격하여 죽림에 모여 淸談을 일삼던 일곱 명의 선비가 있었다. 이들을 竹林七賢이라 부른다. 鑽核은 이 칠현 중 王戎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왕융은 어린 시절부터 눈빛이 날카로워 해를 보고도 눈을 감지 않았다 한다. 당시 사람들은 왕융의 눈빛을 번갯불에 비유하곤하였다. 역시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인 완적은 그의 재주를 사랑하여 왕융이 스무 살이나 아래였지만 왕융과 서로 친하게 사귀었다 한다. 그러나 왕융의 이같은 평가는 어쩌면,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와 관련한 부정적인 이야기 또한 전해지기 때문이다.
왕융의 집에는 맛있는 오얏이 열리는 오얏나무가 있었다 한다. 왕융은 이 열매를 팔아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웃 사람들이 혹시 그 오얏 씨를 가져다 심을까 염려하여 오얏의 씨앗에 구멍을 뚫었다는 것이다. 즉 왕융은 대단히 용렬한 이면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의 이규보도 왕융이 어찌 죽림7현에 꼽히는지 의문을 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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