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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求(몽구)7-謝安高潔(사안고결) 본문

蒙求(몽구)

蒙求(몽구)7-謝安高潔(사안고결)

耽古樓主 2023. 4. 16. 16:04

蒙求(몽구) 謝安高潔(사안고결)

by 耽古書生

謝安高潔- 謝安은 고상하고 깨끗했다. 

 

晉書
<晉書>에 일렀다.

安字安石 陳國陽夏人.
謝安의 字는 安石이니, 陳國 陽夏 사람이다.

年四歲桓彛見而嘆曰 此兒風神秀徹. 後當不減王東海.
나이 4세 때에 桓彛가 그를 보고 감탄하기를,
“이 아이는 풍채가 빼어나고 밝으니, 훗날 마땅히 王東海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王導亦深器之.
王導도 깊이 그를 人材로 여겼다.

由是少有重名.
이로 말미암아 어려서부터 무거운 名望이 있었다.

初辟除 並以疾辭.
처음에 불러서 벼슬을 제수했으나, 모두 병을 핑계하고 사양하였다.

有司奏 安被召歷年不至 禁錮終身.
이에 有司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謝安이 부름을 받은 지 여러 해인데도 오지 않으니, 終身토록 禁錮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못함) 하소서.”

遂棲遲東土.
그래서 동쪽 땅에 머물러 살았다.

常往臨安山中 放情丘壑.
항상 臨安山에 들어가서 山水間에서 회포를 풀었다.

然每遊賞必以妓女從.
그러나 매양 놀 때는 반드시 妓女가 따르게 하였다.

時弟萬爲西中郞將 總藩任之重. 安雖處衡門 名出其右 有公輔望.
이때 아우 謝萬은 西中郞將이 되어 藩의 중임을 모두 맡았는데, 사안은 비록 衡門에 살고 있어도 이름은 그 위에 거론되어, 三公의 名望이 있었다.

年四十餘始有仕志.
나이 40이 넘어서 비로소 벼슬할 뜻을 가졌다.

征西大將軍桓溫請爲司馬. 朝士咸送.
征西大將軍 桓溫이 청하여 司馬로 삼으니, 조정의 선비들이 모두 전송하였다.

中丞高崧戱之曰 卿屢違朝旨 高臥東山. 諸人每相與言 安石不肯出 將如蒼生何. 今蒼生亦將如卿何.
中丞 高崧은 그를 희롱하였다.
“그대는 여러 번 조정의 뜻을 어기고, 높이 동쪽 산에 은둔하고 있었지. 사람들이 항상 서로 말하기를, ‘安石이 出仕하려 하지 않으니, 장차 蒼生을 어찌하나?’라고 하였네. 이번에는 창생들이 말하기를 ‘장차 사안을 어찌하나?’라고 하네.”

安有愧色.
謝安은 부끄러운 기색이 있었다.

後拜吏部尙書. 時孝武立 政不自己. 桓溫威振內外.
뒤에 吏部尙書에 임명되었다. 이때 孝武帝가 황제의 자리에 있었으나, 정치가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고, 桓溫의 위엄이 안팎에 떨쳤다.

安盡忠匡翼 終能輯穆.
謝安은 충성을 다하여 도와서, 마침내 능히 황제와 환온 사이를 화목하게 하였다.

進中書監錄尙書事.
中書監 錄尙書事에 승진하였다.

苻堅率衆 次淮肥. 加安征討大都督.
苻堅이 군사를 거느리고, 淮肥로 나왔는데, 謝安에게 征討大都督을 더했다.

旣破堅 以總統功進, 太保.
사안이 부견을 깨뜨리자, 그 공으로 總統에서 太保에 승진했다.

薨贈太傅 諡文靖.
죽은 후에 태부太傅를 贈職했으며 諡號는 文靖이었다.

風神: 風采
王東海: 王承. 당시 사람들은 문학을 좋아했는데, 왕승은 儒業을 좋아하여 벼슬이 國子博士에 이르고 東海太守가 됨.
禁錮: 벼슬길을 막음
衡門: 두 개의 기둥에 한 개의 橫木을 가로질러서 만든 허술한 문.
謝安: 東晉의 정치가이다. 安石이며 지금의 河南省 大康 사람이다. 원래 土族 출신으로 東山이란 산속에서 40년간 은거생활을 하며 공부하여 제 9 대 왕 孝武帝宰相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桓溫은 동진의 제2대 왕 明帝의 사위로써, 安徽省 懷遠사람이다. 세 차례에 걸친 北伐에 성공한 훌륭한 전략가이다. 하루는 사안이 桓溫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약초가 든 바구니를 환온에게 주고 나가 버렸다. 환온은 그 약초 바구니에서 한가지 약초를 꺼내어 사안에게 보여주며 이 약초의 이름은 원지라고도 부르고 小草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어째서 한 가지 약초에 두 가지 이름이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라고 물었다. 사안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방안에 함께 있던 郝隆이란 장군이 답하기를, “원지의 이름이 두 가지인 이유는 아주 쉽습니다. 즉 은거 생활을 오랫동안 할 때는 원지(遠志)이고 산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小草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안을 풍자한 말이었다. 사안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환온은 사안의 얼굴 표정을 살피더니 웃으면서, “학륭장군이 사안을 풍자한 것은 악의가 없으니 이해하여 주십시오. 어떻게 우연의 일치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註解

晉書 - 진서> <열전> 47에 있는 이야기임.

桓彝- 나라 사람, 성질이 통달하고 명랑하여 인륜을 아는 지식이 있었다. 벼슬이 尙書吏部郎에 이르렀다.

風神- 風采.

王東海- 東海太守 王承. 나라 사람. 자는 安期. 당시 사람들은 문학을 좋아했는데 은 홀로 儒業을 좋아하여 벼슬이 國子博士에 이르고 뒤에 東海太守가 됨.

禁固- 벼슬길을 막음.

衡門- 두 개의 기둥에 한 개의 橫木을 가로질러서 만든 허술한 문.

桓溫- 나라 사람. 桓彝의 아들. 明帝 을 쳐서 征西大將軍이 되고 벼슬이 大司馬都督 中外諸軍事에 이르러 南郡公에 봉하고 九錫을 더하여 위엄과 세력이 크게 빛났다. 이에 신하 노릇을 하지 않을 마음이 있더니 뒤에 나라를 치다가 패해서 돌아왔다. 이때 帝 奕을 폐하고 簡文帝를 세우는데 簒奪을 꾀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安石- 謝安.

蒼生- 백성.

符堅- 符秦의 군주, 처음엔 王猛을 등용하여 세력을 떨치다가 에게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