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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求(몽구)4-呂望非熊(여망비웅) 본문

蒙求(몽구)

蒙求(몽구)4-呂望非熊(여망비웅)

구글서생 2023. 4. 17. 01:43

蒙求(몽구) 呂望非熊(여망비웅)

by 耽古書生

呂望非熊- 여망은 곰이 아니다. 

 

六韜曰
<六韜>에 말하였다.

 

文王將田, 史編布卜曰 田於渭陽 將大得焉, 非龍 非彲 非虎 非羆. 兆得公侯, 天遣汝師 以之佐昌 施及三王.
文王이 장차 사냥을 나가려고 하는데, 太史 史編이 점을 치고 말하기를, “대왕께서 渭水의 남쪽에서 사냥하시면, 장차 큰 것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은 龍도 아니고 이무기(彲)도 아니며, 虎도 아니며 큰곰(羆)도 아닙니다. 公侯를 얻을 징조이니, 하늘이 전하의 스승을 보내어 전하를 돕고, 전하를 三王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文王曰

兆致是也.
문왕이 말하기를, “징조가 이러한 것을 나타내는가?”라고 하였다.

史編曰

編之太祖史疇爲舜占得皐陶. 兆比於此.
사편이 말하기를, “저의 先祖 史疇가 舜임금을 위하여 점을 쳐서 皐陶를 얻었으므로, 점을 쳐서 이에 비교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文王乃齊三日 田於渭陽 卒見太公坐茅以漁.
이에 문왕은 3일 동안 齋戒하고 渭水 남쪽에서 사냥하다가 太公을 만나니, 그는 띠풀 위에 앉아서 낚시하고 있었다.


文王勞而問之 乃載與歸 立爲師.
문왕은 위로한 다음, 수레에 태워 함께 돌아와서 자신의 스승으로 세웠다.

皐陶: 순임금의 名臣
: 이무기
: 큰 곰.
呂望: 본명은 呂尙. 姜太公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격파하고 나라의 로 봉해졌다. 태공망이라는 명칭은, 주나라 文王渭水에서 낚시질하고 있던 여상을 만나 先君太公이 오랫동안 바라던() 어진 인물이라고 여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체로 태공망은 주나라와 대대로 혼인 관계를 맺어온 姜氏 부족의 대표로서 주나라의 군대를 지휘한 인물로 추측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병법을 세운 시조로 여겨져 <太公六韜>등의 병법 서적이 그의 이름으로 나와 있다. 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부름도 태공망에서 유래한다. 姜姓으로 姜尙으로도 불린다. 이며, 東海바닷가에서 살던 사람이다. 炎帝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학문이 깊고 박학다식하였다. 紂王 밑에서 일했는데, 주나라 신하로 成王을 섬기게 된 데는 여러 설이 있으나, 강상이 노년에 낚시질하다 우연히 문왕을 만났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문왕이 그와 대화하여보니 과연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에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선군 太公이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한 성인이 로 올 것이며, 주나라는 그를 얻어 크게 흥성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당신이야말로 그 聖人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태공망(太公望: 문왕의 아버지인 태공이 바라던 인물이라는 뜻)’이라 부르고 국사(스승)로 모셨다.
文王呂尙의 보좌를 받아 덕을 쌓고 선행을 거듭하였으며 훌륭한 인물들을 찾아 나서니, 백성들이 기뻐하고 제후들이 그를 따랐으며, 명망이 널리 퍼졌다. 밖으로 정벌에 나서 우선 서쪽의 견융족을 정벌하였고 다시 密須(감숙성 영대지역)를 정벌했으며 黎國등을 정벌하였다.
주문왕이 태공에게 어떻게 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태공이 답하였다.
왕자의 나라에서는 백성들이 부유하고, 覇者 국에서는 관리들만 부유하며, 겨우 먹고 사는 근근한 나라에서는 사대부들만 부유해지는 법입니다. 또한 무도한 나라에서는 국고만 가득차게 됩니다. 자고로 위가 새면 아래도 샌다고 합니다
문왕이 지당한 말이라 여기고 즉시 창고를 열어 돈과 식량을 풀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리하여 주나라 국력은 날로 흥성해지고 세력은 더욱 뻗어나가 천하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문왕이 죽고 무왕이 뒤를 잇자, 여상이 사()가 되고 [사상보(師尙父; 스승으로 존경하고 아버지로 모신다는 뜻)] 주공 이 보좌하였다. 필공의 무리들이 왕을 도와 문왕의 창업을 육성했다. 여상이 보좌하여 盟津에서 제후들과 회합하여, 상나라 紂王을 토벌키로 하여, 牧野에서 紂王의 군대와 부딪쳤다. 태공이 선제공격을 하여 쳐들어가니 주왕은 대패하여 스스로 불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이로써 상나라가 망하고, 武王나라를 세웠다. 무왕이 왕위에 오른 지 3일째 되는 날, 태공은 무왕에게 丹書를 강술하여, 인애치국의 도에 대해 말하였고 후에 무왕은 태공을 나라에 봉했다. 성왕때 여태공은 주공을 도와 武庚의 난을 평정했다. 성왕은 태공의 제나라로 하여금 죄를 짓는 제후들을 징벌토록 명하였으며, 이로서 제나라는 제후국 중 가장 강성한 나라가 되었다. 여태공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상벌을 분명히 하였으며, 어업을 발전시키고 소금생산과 수공업을 장려하였다. 이로써 얼마 가지 아니하여, 제나라는 제후국중 가장 번성하였다. 전설에는 여태공이 백 세가 넘게 살았다 하며 호경에 묻혔다. 伊尹은 상나라를 보좌했고, 여상은 주나라를 보좌했으니 이 두 사람은 모두 개국공신들이다. 후세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伊呂라 불렀다.

 

[註解]

六韜- 兵法書, 太公望이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혹 後世僞作이라고도 한다.

- 이무기. 뿔이 없는 용.

- 큰 곰, 보통 곰보다 큰 곰을 가리킴.

- 文王의 이름.

皐陶- 임금의 名臣. '고요'라고 읽는다. 의 정치를 도와준 사람.

-齋戒. 不淨하고 몸을 깨끗이 함.

太公-太公望. 성명은 姜尙, 그의 先祖땅에 봉해져서 呂尙이라고도 했다. 文王渭水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나의 先君太公이 그대를 바라기 []가 오래였다'면서 그를 스승으로 삼았고 太公望이라 불렀다. 오늘날 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