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4889)
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蘇瓊除南淸河太守 有百姓乙普明兄弟爭田 積年不斷 各相援據 乃至百人. 蘇瓊이 南淸河太守에 제수되었는데, 백성 중에 乙普明 형제가 토지를 다투어 여러 해가 지나도록 판결이 나지 않아, 각각 서로 증인을 끌어들여 증인이 마침내 백 명에 이르렀다. 瓊 召普明兄弟 諭之曰 天下難得者 兄弟 易求者田地. 假令得田地 失兄弟心 如何? 蘇瓊이 乙普明 형제를 불러 타일렀다. “천하에 얻기 어려운 것이 형제요, 구하기 쉬운 것이 田地이다. 가령 농토를 얻었더라도, 형제간의 마음을 잃는다면 어찌하겠느냐?” 因而下淚 諸證人莫不灑泣. 인하여 눈물을 떨구자, 증인들도 눈물을 뿌려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普明兄弟叩頭 乞外更思. 乙普明 형제는 머리를 조아리고 밖으로 나가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빌었다. 分異十年 遂還同住 《北齊書》〈循吏列傳〉..
繆肜少孤 兄弟四人皆同財業 及各取妻 諸婦遂求分異 又數有鬪爭之言. 繆肜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어, 형제 네 명이 재산과 가업을 함께 하였는데, 각각 아내를 맞이함에 이르러, 아내들이 마침내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살기를 요구하였으며 또 자주 다투는 말이 있었다. 肜深懷忿嘆 乃掩戶自撾曰 繆 汝修身謹行 學聖人之法 將以齊整風俗 奈何 不能正其家乎? 繆은 깊이 분노와 한탄을 품고, 문을 닫고 스스로 종아리를 치며 말하였다. “繆肜아! 네가 몸을 닦고 행실을 삼가하여 聖人의 법을 배움은 장차 풍속을 정돈하려 함인데, 어찌하여 그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느냐?” 弟及諸婦聞之 悉叩頭謝罪 遂更爲敦睦之行 《後漢書》〈獨行列傳〉 아우와 아내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마침내 고쳐서 돈독하고 화목한 행실을 하였다. ..
唐奉天竇氏二女生長草野 幼有志操. 唐나라 奉天에 竇氏의 두 딸은 초야에서 생장하였으나, 어려서부터 지조가 있었다. 永泰中 群盜數千人 剽掠其村落 二女皆有容色 長者年十九 幼者年十六. 永泰 年間에 떼도적 수천 명이 그 촌락을 노략질하였는데, 두 딸에게 모두 容色[미모]이 있어 맏이는 나이가 열아홉이었고, 어린 자는 나이가 열여섯이었다. 匿巖冗間 曳出之 驅迫以前. 바위 굴 사이에 숨어있었는데, 도적들이 끌어내어 몰아 핍박하여 앞세우고 갔다. 區壑谷深數百尺 其姊先曰 吾寧就死 義不受辱. 골짜기의 깊이가 수백 자나 되는 곳에 이르자, 그 언니가 먼저 말하였다. “내 차라리 죽음에 나아갈지언정 의리상 욕됨을 받지 않겠다.” 卽投崖下而死. 즉시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盜方驚駭 其妹繼之自投 折足破面流血. 도적들이 막 ..
唐鄭義宗妻盧氏 略涉書史 事舅姑 甚得婦道. 唐나라 鄭義宗의 아내 盧氏는 글과 역사책을 대략 섭렵하였으며, 시부모를 섬김에 며느리의 도리에 매우 합당하였다. 嘗夜 有强盜數十 持杖鼓譟 踰垣而入 家人悉奔竄 唯有姑自在室. 언젠가 밤에 강도 수십 명이 몽둥이를 들고 북을 치고 떠들며 담을 넘어 들어오니, 집안사람들이 모두 도망쳐 숨고 오직 시어머니만이 그대로 방에 남아 있었다. 盧冒白刃 往至姑側 爲賊捶擊 幾死 《唐書》〈列女列傳〉 盧氏는 시퍼런 칼날을 무릅쓰고 시어머니 곁으로 가서 도적에게 맞아 거의 죽게 되었다. 【集解】 鼓譟 鼓舞呼也 奔竄 奔走竄匿也. 鼓는 북치고 춤추며 소리쳐 떠듦이요, 奔竄은 도망쳐 숨음이다. 姑老不能出避 盧冒白刃而往者 義欲救姑 不顧其身也. 시어머니가 늙어서 나가 피하지 못하자, 盧氏가 시퍼런..
曹爽從弟文叔妻 譙郡夏侯文寧之女 名令女. 曹爽의 從弟인 文叔의 아내는 譙郡 夏侯文寧의 딸로 이름이 令女였다. 文叔蚤死服闋 自以年少無子 恐家必嫁己 乃斷髮爲信. 文叔이 일찍 죽자 상을 마치고, 스스로 나이가 젊고 자식이 없으니 親家에서 틀림없이 자기를 시집보낼까 염려하여, 머리털을 잘라 맹세하였다. 其後 家果欲嫁之 令女聞 卽復以刀 截兩耳 居止 常依爽. 그 후 친가에서 과연 시집보내려고 하자, 令女는 이 말을 듣고 다시 칼로 두 귀를 베고, 거처를 항상 曹爽에게 의지하였다. 及爽被誅 曹氏盡死 令女叔父上書 與曹氏絶婚 彊迎令女歸 《三國志》〈魏志 曹爽列傳註〉, 《資治通鑑》〈魏邵陵公紀〉 曹爽이 誅殺당하고 曹氏가 다 죽자, 令女의 숙부는 임금께 글을 올려, 曹氏와 혼인 관계를 끊고 강제로 令女를 맞아 돌아갔다. 【集說】..
漢鮑宣 妻桓氏 字少君. 漢나라 鮑宣의 아내 桓氏는 字가 少君이다. 宣嘗就少君父學 父奇其淸苦 以女妻之 裝送資賄甚盛. 宣은 일찍이 少君의 아버지에게 나아가 배웠는데, 少君의 아버지가 그의 淸苦함을 기특하게 여겨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었는데, 치장하여 보내는 재물이 매우 풍성하였다. 宣不悅 謂妻曰 少君生富驕 習美飾 而吾實貧賤 不敢當禮. 鮑宣은 기뻐하지 않으며 아내에게 말하였다. “少君은 부유하고 교만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아름답게 꾸밈을 익혔는데, 나는 진실로 가난하고 천하니 그 禮를 감당할 수 없다.” 妻曰 大人 以先生修德守約故 使賤妾 侍執巾櫛. 旣奉承君子 惟命是從. 아내가 말하였다. “大人[아버지]께서는 선생이 덕행을 닦고 검약을 지키기 때문에 천첩에게 시켜 모시고 수건과 빗을 잡게 하셨습니다. 이미 君子[남..
漢陳孝婦 年十六而嫁 未有子 其夫當行戍 且行時 屬孝婦曰 我生死 未可知 幸有老母 無他兄弟備養 吾不還 汝肯養吾母乎? 婦應曰 諾 《後漢書》〈列女傳〉 漢나라 陳州의 孝婦는 나이 16세에 시집와서 아직 자식을 두지 못하였는데, 그 남편이 변방을 지키러 가게 되어 떠나려 할 적에 孝婦에게 부탁하였다. “내 生死를 알 수 없고, 다행히 늙은 어머니가 계시나 다른 형제로서 봉양을 갖출 사람이 없으니, 내가 돌아오지 못으면 당신은 기꺼이 내 어머니를 봉양하겠소?” 孝婦가 대답하였다. ‘예’ 【集解】 孝婦 後漢時人. 孝婦는 後漢 사람이다. 守邊曰戍. 변방을 지킴을 戍라고 한다. 屬 付託也 屬은 부탁이다. 夫果死不還 婦養姑不衰 慈愛愈固 紡績織紝 以爲家業 終無嫁意 남편이 과연 죽고 돌아오지 않자, 孝婦가 시어머니 봉양함이 쇠하..
呂滎公自少 官守處 未嘗干人擧薦. 呂滎公이 젊었을 때부터 벼슬을 맡은 곳에서 남에게 천거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 其子舜從 守官會稽 人或譏其不求知者 舜從 對曰 勤於職事 其他不敢不愼 乃所以求知也 《童蒙訓》,《伊洛淵源錄》 그의 아들 舜從이 會稽에서 벼슬을 맡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혹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음을 譏弄하자, 舜從이 대답하였다. “직책과 일에 부지런하고, 그 나머지를 감히 삼가지 않음이 없노니, 이것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방법이다.” 【集解】 舜從 滎公第二子 名疑問 舜從字也. 舜從은 滎公의 둘째 아들이니, 이름은 疑問이요, 舜從은 字이다. 滎公生平未嘗求擧於人. 滎公은 生平에 남에게 천거해주기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 故舜從 克紹父志 嘗曰 職事不敢不勤 他事不敢不愼 此雖不求知 而人必自知也. 그러므로..
伊川先生曰 安定之門人 往往 知稽古愛民矣 則於爲政也 何有? 《二程全書》〈遺書〉,《近思錄》 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安定先生[胡瑗]의 문하생들은 왕왕 옛날을 고찰하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알았으니, 정사를 봄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增註】 門人 如劉彛·錢藻·孫覺·范純仁·錢公輔 是也. 門人은 劉彛·錢藻·孫覺·范純仁·錢公輔와 같은 이들이다. 何有 言不難也 何有는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劉器之待制初登科 與二同年 謁張觀參政. 三人同起身 請敎 張曰 某自守官以來 常持四字 勤謹和緩. 中間一後生 應聲曰 勤謹和 旣聞命矣 緩之一字 某所未聞. 張正色作氣曰 何嘗敎賢緩不及事? 且道世間甚事不因忙後錯了 《宋名臣言行錄》,《呂氏雜錄》 劉器之 待制가 처음 과거에 급제하여 두 同年[동방급제자]과 함께 張觀 參政을 알현하였다. 세 사람이 함께 몸을 일으켜 가르침을 청하자, 張氏가 말하였다. “나는 관직을 맡은 이래로 항상 네 글자를 지키노니, 勤·謹·和·緩이다.” 말하는 중간에 한 後生이 즉각 응하여 말하였다. “勤·謹·和는 이미 가르침을 들었습니다마는 緩이라는 한 글자는 제가 아직 듣지 못한 바입니다.” 張氏는 정색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하였다. “내 언제 일찍이 그대들에게 느리게 하여 일에 미치지 못하라고 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