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8-6-2-29.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二十九章 본문

小學集註(소학집주)

8-6-2-29.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二十九章

耽古樓主 2024. 1. 18. 07:17

소학집주

曹爽從弟文叔妻 譙郡夏侯文寧之女 名令女.
曹爽의 從弟인 文叔의 아내는 譙郡 夏侯文寧의 딸로 이름이 令女였다.

文叔蚤死服闋 自以年少無子 恐家必嫁己 乃斷髮爲信.
文叔이 일찍 죽자 상을 마치고스스로 나이가 젊고 자식이 없으니 親家에서 틀림없이 자기를 시집보낼까 염려하여머리털을 잘라 맹세하였다.

其後 家果欲嫁之 令女聞 卽復以刀 截兩耳 居止 常依爽.
그 후 친가에서 과연 시집보내려고 하자令女는 이 말을 듣고 다시 칼로 두 귀를 베고거처를 항상 曹爽에게 의지하였다.

及爽被誅 曹氏盡死 令女叔父上書 與曹氏絶婚 彊迎令女歸 《三國志》〈魏志 曹爽列傳註〉《資治通鑑》〈魏邵陵公紀〉
曹爽이 誅殺당하고 曹氏가 다 죽자令女의 숙부는 임금께 글을 올려曹氏와 혼인 관계를 끊고 강제로 令女를 맞아 돌아갔다.

【集說】
吳氏曰
曹爽 魏宗室.
從弟 同祖之弟.
郡 今縣.
夏侯 覆姓 文寧 名也
吳氏가 말하였다.
曹爽나라 宗室이다.
從弟는 할아버지가 같은 동생이다.
은 지금의 이다.
夏侯覆姓이요 文寧은 이름이다.”

時 文寧 爲梁相(一作州憐其少執義 又曹氏無遺類 冀其意沮 乃微使人風之.
이때 夏侯文寧은 나라의 이 되었는데[一本에는 이 로 되었다], 그가 젊은 나이에 절의를 지킴을 가엽게 여기고또 曹氏에 살아남은 일가붙이가 없으므로 그가 절개를 지키려는 뜻이 막히기를 기대하여은밀히 사람을 시켜 풍자하게 하였다.

令女嘆且泣曰
吾亦惟之 許之是也.
令女는 탄식하고 또 울면서 말하였다.
나도 생각해 보니 시집가기를 허락함이 옳겠다.”

家以爲信 防之少懈.
친가에서는 이 말을 사실로 믿고 방비하기를 다소 게을리하였다.

令女於是 竊入寢室 以刀斷鼻 蒙被而臥.
令女는 이에 남몰래 침실로 들어가 칼로 코를 자르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其母呼與語 不應 發被視之 血流滿牀席.
그의 어머니가 불러 함께 말을 해도 응답하지 않으므로 이불을 들추고 보니피가 흘러 침상과 자리에 가득하였다.

擧家驚惶 往視之 莫不酸鼻.
온집안 식구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가서 보고는 코가 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集說】
陳氏曰
無遺類 盡死也.
冀其意阻 幸其阻守義之意而改適也.
風 謂以言動之.
惟之 思之也
陳氏가 말하였다.
無遺類는 다 죽음이다.
그 뜻이 막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 절의를 지키려는 뜻을 막아 개가시키려 함이다. 은 말로써 감동시킴을 이른다.
惟之는 생각함이다.”

或 謂之曰
人生世間 如輕塵棲弱草耳 何辛苦乃爾?
且夫家夷滅已盡 守此欲誰爲哉?
혹자가 그에게 말하였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은 가벼운 먼지가 약한 풀에 붙음과 같은데어찌하여 辛苦하기를 이와 같게 하는가?
더구나 남편의 집안이 멸족하여 이미 없어졌으니이렇게 절개를 지킴은 누구를 위하고자 해서인가?”

令女曰
聞 仁者不以盛衰改節 義者不以存亡易心.
曹氏全盛之時 尙欲保終 況今衰亡 何忍棄之?
禽獸之行 吾豈爲乎?

令女가 말하였다.
듣기에仁者는 성쇠에 따라 節義를 고치지 않고義者는 존망에 따라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曹氏가 전성했을 때조차 끝까지 보존하고자 할 터인데하물며 지금 쇠망하였으니 어찌 차마 버리겠는가?
금수의 행위를 내 어찌 하겠는가?”

【集說】
熊氏曰
輕塵易散 弱草難依 非有纏固也.
熊氏가 말하였다.
가벼운 먼지는 흩어지기 쉽고 약한 풀은 의지하기 어려우니, 단단히 얽어놓음이 있지 않다.”

吳氏曰
人之所以異於禽獸者 以其有仁義也.
若以盛衰存亡而改節易心 則不仁不義禽獸之行也 令女之所以不爲者 其有見於此也.
夫魏晉之際 廉恥道喪 背君父而事仇讎者比肩接跡 聞令女之言 觀令女之行 寧不愧乎?
吳氏가 말하였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까닭은 그에게 仁義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성쇠와 존망에 따라 절개를 고치고 마음을 바꾼다면 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금수의 행위이니, 令女가 하지 않은 것은 그에게 이에 대한 견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염치의 가 상실되어 君父를 배반하고 원수를 섬기는 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자취를 이었으니, 令女의 말을 듣고 令女의 행실을 본다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後司馬懿聞而嘉之 聽令女養子 爲曹氏後.
훗날 司馬懿가 이 소식을 듣고 가상하게 여기고, 令女가 양자를 들여 曹氏의 후손으로 삼도록 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