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論語集註 季氏 第十六(논어집주 계씨 제십육) 第一章

구글서생 2023. 2. 23. 03:19

▣ 季氏 第十六

 

洪氏曰:
「此篇或以為齊論。」

洪氏가 말하였다.

이 을 혹자는 齊論[나라 論語]이라 한다.”

 

凡十四章。
모두 14이다.

 

▣ 第一章

季氏將伐顓臾。
季氏가 顓臾를 치려 하였다.

顓臾,國名。魯附庸也。
顓臾는 나라 이름이니, 나라의 附庸國이다.

 

冉有、季路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

冉有와 季路가 孔子를 뵙고 말하였다.
“季氏가 顓臾에게 전쟁을 벌이려고 합니다.”
전쟁

按左傳史記,二子仕季氏不同時。
左傳史記를 살펴보면, 두 사람이 季氏에게 벼슬한 것은 때가 같지 않다.


此云爾者,疑子路嘗從孔子自衛反魯,再仕季氏,不久而復之衛也。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마도 子路孔子를 모시고 나라로부터 나라로 돌아와 다시 季氏에게 벼슬하였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나라로 간 듯하다.

:陪從

 

孔子曰:
「求!無乃爾是過與?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求[염유]야! 네가 이 일에 잘못한 것이 아니냐?”

冉求為季氏聚斂,尤用事。故夫子獨責之。
季氏를 위하여 지나치게 세금을 거두어들여, 더욱이 일을 주도하였으므로, 夫子께서 유독 그를 꾸짖으셨다.

 

夫顓臾,昔者先王以為東蒙主,且在邦域之中矣,是社稷之臣也。何以伐為?」
“저 顓臾는 옛적에 先王께서 그를 東쪽 蒙山의 祭主로 삼으셨고, 또한 우리나라 안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는 社稷의 신하이다. 무엇 때문에 정벌하겠는가?”

東蒙,山名。
東蒙이름이다.


先王封於此山之下,使主其祭,在魯地七百里之中。
先王顓臾를 이 에 봉하여 그 祭祀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나라 7안에 있었다.


社稷,猶雲公家。
社稷公家란 말과 같다.


是時四分魯國,季氏取其二,孟孫叔孫各有其一。
이때 나라를 分割하여 季氏가 그중 둘을 차지하고, 孟孫·叔孫이 각각 그 하나씩을 차지하였다.


獨附庸之國尚為公臣,季氏又欲取以自益。
오직 附庸國만이 아직도 나라의 公臣이었는데, 季氏가 또 이것을 취해서 자기에게 보태려고 하였다.


故孔子言顓臾乃先王封國,則不可伐;在邦域之中,則不必伐;是社稷之臣,則非季氏所當伐也。
그러므로 孔子께서 顓臾는 바로 先王이 봉한 나라이니 정벌해서는 안 되고, 나라 안에 있으니 정벌할 필요가 없으며, 이 나라는 社稷의 신하이니 季氏가 정벌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此事理之至當,不易之定體,而一言盡其曲折如此,非聖人不能也。
이것은 事理에 지극히 마땅하고 바꿀 수 없는 정해진 大體인데, 한 마디로 그 曲折을 모두 드러내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니, 聖人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冉有曰:
「夫子欲之,吾二臣者皆不欲也。」

冉有가 말하였다.
“夫子[季孫]가 하려는 것이지, 저희 두 신하는 모두 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夫子,指季孫。
夫子季孫을 가리킨다.

春秋時代大夫를 부자라고 칭하였다.


冉有實與謀,以孔子非之,故歸咎於季氏。
冉有는 실제로 모의에 참여하였으나, 夫子께서 그 일을 나쁘다 하셨으므로 季氏에게 허물을 돌렸다.

 

孔子曰:
「求!周任有言曰:陳力就列,不能者止。
危而不持,顛而不扶,則將焉用彼相矣?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求야! 周任이 말하기를, ‘자신의 능력을 펴서 신하의 반열에 나아가 능히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는 자는 그만두라.’라고 하였으니, 위태로운데도 붙잡지 않으며 넘어졌는데도 부축하지 않는다면 장차 저 瞽相[도와주는 신하]을 어디에다 쓰겠느냐?

周任,古之良史。
周任은 옛날의 어진 史官이다.


陳,布也。
은 폄이다.


列,位也。
은 자리이다.


相,瞽者之相也。
瞽者[봉사][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言二子不欲則當諫,諫而不聽,則當去也。
두 사람이 하고자 하지 않았다면 마땅히 간해야 하고, 간해도 듣지 않으면 마땅히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且爾言過矣。
또 네 말이 잘못되었다.

虎兕出於柙,龜玉毀於櫝中,是誰之過與?」
호랑이와 들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며, 龜甲[거북 등 껍질]과 玉이 궤 속에서 망가졌다면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兕,野牛也。
는 들소이다.


柙,檻也。
은 우리이다.


櫝,匱也。
은 궤이다.


言在柙而逸,在櫝而毀,典守者不得辭其過。
우리에 있으면서 뛰쳐나오며, 궤 속에서 망가졌다면 맡아 지키는 자가 그 잘못을 회피할 수 없음을 말씀하셨다.


明二子居其位而不去,則季氏之惡,己不得不任其責也。
두 사람이 그 지위에 있으면서 떠나지 않았으면 季氏의 악행을 그들이 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히셨다.

 

冉有曰:
「今夫顓臾,固而近於費。
今不取,後世必為子孫憂。」

冉有가 말하였다.
“지금 저 顓臾는 <성곽이> 견고하며 費邑에 가깝습니다.
지금 점령하지 않으면 後世에 틀림없이 子孫의 憂患이 될 터입니다.”

固,謂城郭完固。
城郭完固함을 말한다.


費,季氏之私邑。
季氏의 사사로운 이다.


此則冉求之飾辭,然亦可見其實與季氏之謀矣。
이것은 염유가 꾸며대는 말이지만, 그가 실제로 季氏의 모의에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孔子曰:
「求!君子疾夫舍曰欲之,而必為之辭。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求야! 君子는 이익을 탐한다고 말하지 않고 굳이 그것을 위하여 변명하는 것을 미워한다.”
의 뜻이다

欲之,謂貪其利。
欲之는 그 이익을 탐함을 말한다.

 

丘也聞有國有家者,不患寡而患不均,不患貧而患不安。
[]는 들으니, 나라를 소유하고 집을 소유한 대부는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자기 몫이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며,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상하가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고 한다.
蓋均無貧,和無寡,安無傾。
몫이 고르면 가난함이 없고, 和穆하면 백성이 적음이 없고, 편안하면 기울어짐이 없다.

 

寡,謂民少。
는 백성이 적음을 말한다.


貧,謂財乏。
은 재물이 모자람을 말한다.


均,謂各得其分。
은 각기 그 몫을 얻음을 말한다.


安,謂上下相安。
上下가 편안함을 말한다.


季氏之欲取顓臾,患寡與貧耳。
季氏顓臾를 빼앗으려 한 것은 <백성의> 적음과 가난함을 근심해서이다.


然是時季氏據國,而魯公無民,則不均矣。
그러나 이때 季氏國柄을 점거하고 나라 君主는 백성이 없었으니, 고르지 못한 것이다.


君弱臣強,互生嫌隙,則不安矣。
君主는 약하고 臣下는 강하여 서로 혐의하여 틈이 생겼으니,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均則不患於貧而和,和則不患於寡而安,安則不相疑忌,而無傾覆之患。
분배가 고르면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아 하고, 하면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아 편안하며, 편안하면 서로 의심하거나 시기하지 않아 나라가 기울고 전복되는 근심이 없게 된다.

 

夫如是,故遠人不服,則修文德以來之。既來之,則安之。
이와 같으므로 먼 지방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 文德을 행하여 그들을 오게 하고, 오게 하고 나서는 편안하게 한다.

 

內治修,然後遠人服。
안의 다스림이 행하여진 뒤에야 먼 지방 사람이 복종한다.


有不服,則修德以來之,亦不當勤兵於遠。
복종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을 닦아서 오게 하여야 하고, 또한 먼 곳에 군사를 동원해서는 안 된다.

 

今由與求也,相夫子,遠人不服而不能來也;邦分崩離析而不能守也。
지금 夫子[季氏]를 돕되, 먼 지방 사람이 복종하지 않는데도 오게 하지 못하며, 나라가 분열되고 무너지는데도 능히 지키지 못한다.

 

子路雖不與謀,而素不能輔之以義,亦不得為無罪,故並責之。
子路는 비록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평소 로써 輔弼하지 못하였으니, 또한 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울러 꾸짖으셨다.


遠人,謂顓臾。
遠人顓臾를 이른다.


分崩離析,謂四分公室,家臣屢叛。
分崩離折公室을 넷으로 나누고 家臣이 여러 번 반란함을 말한다.

 

而謀動干戈於邦內。吾恐季孫之憂,不在顓臾,而在蕭牆之內也。」
그런데도 나라 안에서 전쟁을 일으키려 꾀하니, 나는 季孫의 근심이 顓臾에 있지 않고 병풍 안에 있을까 두렵노라.”

干,楯也。戈,戟也。
은 방패이며, 는 창이다.


蕭牆,屏也。
蕭墻은 병풍이다.


言不均不和,內變將作。
분배가 고르지 못하고 하지 못하면 內部變亂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其後哀公果欲以越伐魯而去季氏。
그 뒤에 과연 哀公나라의 병력으로 나라를 쳐서 季氏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謝氏曰:
「當是時,三家強,公室弱,冉求又欲伐顓臾以附益之。
夫子所以深罪之,為其瘠魯以肥三家也。」

謝氏가 말하였다.

이때를 당하여 三家[季孫氏·孟孫氏·叔孫氏]가 강하고 公室이 약했는데, 冉求가 또 顓臾를 정벌하여 그에게 덧붙여주려 하였다.

夫子께서 깊이 治罪하신 까닭은 그 나라를 수척하게 해서 三家를 살찌게 하였기 때문이다.”

 

洪氏曰:
「二子仕於季氏,凡季氏所欲為,必以告於夫子。
則因夫子之言而救止者,宜亦多矣。
伐顓臾之事,不見於經傳,其以夫子之言而止也與?」

洪氏가 말하였다.

두 사람이 季氏에게 벼슬하면서 季氏가 하려 한 일을 모두 틀림없이 夫子에게 아뢨으니, 그렇다면 夫子의 말씀으로 인하여 만류해서 中止시킨 것도 마땅히 많았을 터이다.

顓臾를 정벌한 일이 經傳에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夫子의 말씀 때문에 中止하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