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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唐詩 (初唐 · 盛唐) 1. 당시 개관 漢 이래로 문학이 점차 발전하다 唐대에 이르러 중국문학은 최고조에 이르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漢文, 唐詩, 宋詞, 元曲이라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장르는 바로 詩이다. 淸 康熙 연간에 나온 「全唐詩」에는 2,200여 시인이 만든 48,900여 수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는 西周부터 南北朝에 이르는 1,700년 동안에 나온 시의 3배에 달하는 수이다. 唐은 618년부터 906년까지 약 300여 년 동안 위세를 떨치다가 五代十國의 혼란기로 접어들게 되는데 보통 당대 문학의 발전 시기는 初ㆍ盛ㆍ中ㆍ晩唐 의 4시기로 구분한다. 이는 明代 高棅의 「唐詩品彙」에 기록된 것을 따른 것으로 시 속에는 각 시기별 정치, 경제, 문화적 특징들이 반영되어 ..
形態論 1. 品詞論 (1) 漢文의 品詞 漢文에서 品詞 分類를 시도한 역사는 대략 1898년 마건충(馬建忠)이 馬氏文通을 저술한 후부터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문법이 서구의 문법을 받아들이면서 성립된 것과 거의 같은 시기라고 여겨진다. 서구 문법 체계에 따라 품사를 분류하다 보면 여러 가지 불합리한 주장이 중국인들에게서조차 많다. (2) 品詞 설정 기준 일반적으로 품사 분류의 기준으로 形態(form) 意味(meaning) 機能(function)이 제시되고 있다. 한문의 품사 분류는 그 기준이 한자와 한문의 특성을 전제로 세워져야 하며 우리 국문법에 짜 맞추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한문 교육에서의 품사 분류 기준은 한자와 한문의 특성을 전제로 세워야 하며 어느 정도 한문 교육과정을 생각하..
統辭論1. 漢字語의 生成과 漢文構造 한문 문장과 한자어의 구조가 유사하고 실제로 한문 문장에서 유래한 한자어가 많으므로, 한자어의 구성 방식을 알면 한문 문장의 뜻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1) 漢字語의 生成 1) 日出(統辭式―主述式) : 日出於東山(해가 동산에서 나왔다.) 2) 登山(統辭式―述目式) : 登高山而望四海(높은 산에 올라 사해를 바라본다.) 3) 松柏(竝列式 類似) :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날씨가 차가워진 연후라야 소나무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안다.) 4) 讀書(統辭式―述目式) : 讀書百遍義自見(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5) 修身(統辭式―述目式) : 欲齊其家者先修其身(그 집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그 몸을 닦는다.) 6) 惻隱(竝列式 類似) : 惻隱之心仁之端也(측은히 ..
詞論(單語論) 1. 字와 詞의 구별 (1) 字 : 언어를 기록하는 부호 音形 최소단위(不可分析) (2) 詞 : 언어를 운용하는 최소의 단위 音義 意味 단위1) 1자 : 山. 木. 人.2) 2자 : 蟋蟀. 螳螂.3) 4자 : 民主主義. (3) 詞組(句) : 둘 혹은 둘 이상의 詞가 결합된 것이지만 완전한 문장을 이루지는 못한다. 合成詞는 결구가 긴밀하고 의미가 고정되어 있는데 반해 詞組는 일반적으로 분리하여 사용할 수 있다. 2. 詞의 結合單位 字 → 詞 → 詞組(短語) → 文章(單文) 3. 詞의 結合方式 (1)單純詞(衍聲複詞) 1) 雙聲詞 : 두 글자의 음절의 聲母가 서로 같은 것 ― 蟋蟀 · 鴛鴦 등 2) 疊韻詞 : 두 글자의 음절의 韻母가 서로 같은 것 ― 窈窕 · 螳螂 등 3) 非雙..
지은이에 관하여 서거정은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字)는 강중(剛中), 호는 四佳亭 혹은 亭亭亭인데 흔히는 四佳라고 한다. 본관은 達城이고, 태어난 곳은 대구이며, 牧使 彌性의 아들이자 陽村 權近의 외손자이다. 당대 제일의 관료적 문인으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문학을 수행하는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조선 전기문학을 집대성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된다. 조선 초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연결해 이해할 때, 조선 건국의 이념을 문학적으로 충실히 뒷받침하고 구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 전기에 관료적 문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학적 영예를 누린 것이 서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25세 되던 해인 세종 26년(1444) 式年文科에 급제하고, 집현전 박사・부수찬・응교 등을 역임했다. 세..
해설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은 서거정[徐居正, 세종 2년(1420~ 성종 19년(1148)]이 지은 笑話集이다. 지었다고 했지만 오늘날의 창작이라는 개념과는 달리 이런저런 자리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억나는 대로 기록한 것이다. 국문학사상 현전하는 최초의 대규모 순수 설화자료집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서거정은 ≪태평한화골계전≫ 서문에서 이 책을 짓게 된 동기에 대해 “일찍이 일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있을 때 글을 쓰는 것을 놀이로 삼았다. 이에 일찍이 친구들과 우스갯소리 했던 바를 써서 ≪골계전(滑稽傳)≫이라 불렀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기록한 이 책에 대해 자신을 책망하는 사람에게 변명하는 형식으로, 창작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다시 설명하고 있다. “그대의 말씀이 옳도다...
寧食魚頭 公山有吏兒 嘗從州牧兒 讀書.公山에 衙前의 아들이 있었는데, 일찍이 州의 牧使 아들을 따라 글을 읽었다.▶ 牧使: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관찰사 아래에서 지방의 각 목(牧)을 다스리던 정삼품 외직 문관 벼슬이다. 여기서는 공주목사를 말한 것이다. 牧兒得熊掌而食 與吏兒魚頭曰何不食熊足 목사의 아들이 곰 발바닥을 얻어서 먹는데, 아전 아들에게 생선 대가리를 주면서 말하였다.“왜 곰의 발을 먹지 않느냐?”▶ 熊掌: 곰의 발바닥으로 만든 요리로, 매우 진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팔진미 가운데 하나다. 맹자> 고자장구 상>에 이에 관한 대목이 있다. 맹자집주 고자장구 상 제10장孟子曰: 孟子가 말하였다. 「魚, 我所欲也; 熊掌,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魚物은 내가 원하는 ..
騎牛之辯 有一達官未達時 常騎牛出郊.어떤 높은 관리가 아직 출세하지 못했을 때, 언제나 소를 타고 郊外로 나갔다. 人譏之曰何不騎馬而牛乎 사람들이 그것을 기롱하였다.“왜 말을 타지 않고 소를 타십니까?” 答曰馬者午也 縮頭爲午 出頭爲牛 此吾出頭象也 그가 대답하였다.“말은 午이니, 머리를 움츠리면 午이고, 머리를 내면 牛가 된다. 이것은 내가 머리를 드러내는 象이다."▶ 支干으로 午는 馬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午가 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은 말띠고, 午가 붙은 날은 말날이다.▶ 이것은 문맥상으로는 '내가 말을 타지 않고 소를 타는 까닭은'이라는 뜻이다. 人皆奇之 後脫麻至達顯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생각했더니, 뒷날 麻衣에서 벗어나 높은 관리에 이르렀다.▶ 脫麻: 벼슬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에서 몸..
寃哉牛乎 李孝權夢牛則吉 孔頎夢牛則凶.李孝權이 소 꿈을 꾸면 吉하고, 孔頎가 소 꿈을 꾸면 凶했다.▶ 李孝權: 이 이야기에 선비로 되어 있으나 더 이상은 알 수 없다. 二人將赴會圍 李熟睡 孔假寐 忽有牛大如巨岳 暫過於庭 向孔吼曰子欲不見 我來見子 두 사람이 장차 會試에 응시하려고 할 제, 이(李)는 깊이 잠들고, 공(孔)은 살풋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큰 산 같은 소가 잠깐 마당을 지나가면서, 孔을 보고 울고는 말하였다."그대가 보지 않으려 하므로 내가 그대를 보러 왔다."▶ 會試: 文武科의 初試 급제자가 서울에 모여 다시 보는 과거 시험을 말한다. 覆試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합격하면 다시 殿試를 보게 되어 있었다. 會圍: 회시(會試)를 보는 시험장. 孔蹴李曰子亦見之乎 曰不見 孔이 李를 툭툭 차면서 말하기..
別安東妓 有一朝官姓金者 別安東妓於豊山郡 痛哭移時 行四五里 見路傍古墳 下馬拜哭.성이 김씨(金氏)인 朝官이 豊山郡에서 安東 기생을 이별하면서 통곡하고 떠날 때, 한참을 지나 네댓 마장을 가서는 길가의 오래된 무덤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곡했다.▶ 豊山郡: 여기서는 郡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縣이었고, 풍산현은 安東府에 속해 있었다.▶ 安東: 안동부, 安東人都護府. 경상도에 속했던 지명으로 오늘날의 경상북도 안동이다. 有老奴曰郎君何哭之哀也.늙은 종이 말하였다."서방님께서는 어찌해서 곡을 하며 슬퍼하십니까?" 郎君曰此吾先祖墳也 餘二十年 今來過謁 是以哭之.郎君이 말하였다"이것은 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무덤이다. 20여 년 만에 지나다가 뵙게 되었기에 곡하였다." 奴曰郎君與娘氏相別 痛哭之後 涕淚盈睫 餘哀未盡.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