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태평한화골계전111- 해설 본문
해설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은 서거정[徐居正, 세종 2년(1420~ 성종 19년(1148)]이 지은 笑話集이다. 지었다고 했지만 오늘날의 창작이라는 개념과는 달리 이런저런 자리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억나는 대로 기록한 것이다. 국문학사상 현전하는 최초의 대규모 순수 설화자료집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서거정은 ≪태평한화골계전≫ 서문에서 이 책을 짓게 된 동기에 대해
“일찍이 일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있을 때 글을 쓰는 것을 놀이로 삼았다. 이에 일찍이 친구들과 우스갯소리 했던 바를 써서 ≪골계전(滑稽傳)≫이라 불렀다”
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기록한 이 책에 대해 자신을 책망하는 사람에게 변명하는 형식으로, 창작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다시 설명하고 있다.
“그대의 말씀이 옳도다. 그러나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우스갯소리를 잘하신다’라는 말과, ‘文王과 武王도 한 번 당겼다 한 번 늦추었다 하는 방법을 쓰셨다’라는 것을.
齊諧가 ≪南華≫에 기록되어 있고, 滑稽는 ≪班史≫에 列傳이 있다. 서거정이 이 傳을 지음은 처음부터 後世에 전하려는 데 뜻을 두지 않았고, 다만 세상에 대한 근심을 잊어버리고자 한 것이다.
대개 이에 돌아갈 뿐이다. 하물며 孔子께서도 장기나 바둑을 하는 것도 마음을 아무 곳에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셨다.
이것 또한 서거정이 아무 곳에도 마음 쓰지 않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고자 할 따름이다.”
▶ 우스갯소리를 잘하신다: 善戲謔兮. <시경> <위풍>의 ‘淇奧’이라는 시에 나온 구절이다. 나라를 德으로 잘 다스린 위나라 武公이 우스갯소리를 잘했다는 기록이 있다.
▶ 齊諧: 옛책의 이름이자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 一說에는 제나라 때의 우스갯소리[諧謔]를 담은 책이라고도 하고, 또 괴담을 잘했던 사람의 이름이라고도 한다.
▶ ≪南華≫: ≪南華經≫, ≪南華眞經≫, 南華眞人이 지은 참된 경전이라는 뜻으로, <장자>를 높여 일컫는 말이다.
▶ 齊諧志於南華: <장자>에는 제해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말이다. ≪장자≫의 제일 첫 번째 편인 <소요유>의 첫머리가 鵬에 대한 설명으로 되어 있고, 그 후반부에 다음과 같이 '붕'에 대한 제해의 설명이 인용되어 있다.
“鵬은 鯤이 변한 것으로 바람이 움직이면 南冥으로 날아간다고 한 제해는 기괴한 이야기를 잘 아는 사람인데, 諧가 '붕이 남명으로 옮길 때에는 물결이 3000리나 솟구친다. 9만 리나 바람을 타고 오르고, 여섯 달을 날아간 뒤에야 쉰다'라고 했다-齊諧者志怪者也 諧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 滑稽: 사마천의 <사기> <列傳>에 있는 篇名인 <滑稽列傳>을 말한 것이다.
▶ ≪班史≫: 班固가 지은 역사책으로 ≪漢書≫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 列傳: 紀傳體로 된 역사책에서 本紀의 뒤에 붙어 있는 한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논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가려 쓴 그의 일대기를 말하며, <사기> <열전>에서 비롯되었다. 기전체란 본기와 열전이 중심이 되는 역사책이다.
▶ 이 傳: ≪태평한화골계전≫을 말한 것이다.
▶ 공자: 원문에서는 孔聖이라고 했는데 이는 공자를 높여 부른 것이다. 공자는 大聖人이었다는 뜻에서 흔히 大聖이라고 했다. 이에 비해 맹자는 亞聖이라고 한다.
▶ 공자께서도 ... 낫다고 하셨다: 원문은 孔聖以博奕 爲賢於無所用心者이다. <논어> <陽貨> 편에 “공자께서 '배불리 먹고 하루 종일 마음 쓰는 데가 없다면 어려운 노릇이다. 장기와 바둑이라도 있지 않느냐? 그런 것이라도 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라고 하셨다.”라는 대목이 있다.
論語集註 陽貨 第十七(논어집주 양화 제십칠) 第二十二章
▣ 第二十二章 子曰: 「飽食終日,無所用心,難矣哉! 不有博弈者乎,為之猶賢乎已。」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배부르게 먹고 하루해를 마치면서 마음을 쓰는 곳이 없다면 어렵다. 장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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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 문맥상 ≪태평한화골계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고, 아니면 <태평한화골계전≫을 쓴 이유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설명에 따르면 서거정은 이 책을 쓰는 일이 자신의 명성에 손상을 줄 수도 있으며 사람들의 비난거리가 될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이 책을 써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 나름의 명확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그는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에도 삶의 진실과 지혜가 들어 있으매, 그것은 기록으로 남겨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믿었다.
이 책은 성종 8년(1477)에 지어져서 성종 13년(1482)경에 간행되었는데, 姜希孟의 <滑稽傳敍>에 의하면 본래 4권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 원본이 전하지 않아서 완전한 모습은 알 수 없다.
현재 전하는 異本은 모두 5종이다.
고려대학교 晩松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목판본(흔히 晚松本이라고 부른다),
서울대학교 도서관과 영남대학교 도서관 도남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一蓑 方鍾鉉 선생 舊藏本을 등사한 프린트본[흔히 一蓑本이라고 부른다],
民俗學資料刊行會에서 간행한 ≪古今笑叢≫ 속 프린트본(흔히 民資本이라고 부른다),
일본 天理大學校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順庵 安鼎福선생 구장본의 필사본(흔히 順庵本이라고 부른다),
白影 鄭炳昱 선생이 소장하고 계시던 필사본(흔히 白影本이라고 부른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異本들은 ≪태평한화골계전≫ 전 4권의 완질본이 아니라, 그중 일부의 내용들만 남아 있는 것들이다.
즉, 일사본과 민자본은 제1권과 제2권의 내용만을 담고 있고, 만송본은 제1권과 제2권의 내용 중 앞뒤의 몇 장씩이 떨어져 나간 落張木이다.
순암본과 백영본은 전4권 중 일부를 임의로 발췌한 것이다.
따라서 이 5종의 異本은 卷次가 있고 제1권과 제2권의 내용만을 담고 있는 만송본 · 일사본 · 민자본과 권차가 없고 4권 전체에서 발췌한 순암본 · 백영본의 두 가지 계열로 나눌 수 있다.
만송본 · 일사본 · 민자본 계열은 話順과 字句에 얼마간의 넘나듦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계열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따라서 거기에 실려 있는 이야기도 기본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만송본은 후반부가 낙장되었기 때문에 일사본 · 민자본에 실려 있는 이야기 가운데 뒷부분에 있던 이야기들은 떨어져 나가고 없다.
순암본과 백영본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저본이 된 것이 아니라, 원본을 각각 발췌한 것이기 때문에 실린 이야기들 가운데에는 서로 다른 것도 있고, 한쪽에 있는 것이 다른 쪽에는 없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만송본 · 일사본 · 민자본을 통해서 원본 ≪태평한화골계전≫ 제1권과 제2권의 再構는 가능하다. 그러나 제3권과 제4권은 순암본과 백영본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再構만 가능할 뿐 그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다.
5종의 이본에 실려 있는 이야기 중 중복된 것을 하나로 계산하면 모두 267화이다.
5종의 이본들 중 가장 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현전 유일의 목판본인 만송본에는 134화가 실려 있다.
일사본에는 146화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민자본은 일사본을 저본으로 해 필사자가 약간의 첨삭을 가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話數는 역시 146화다.
순암본은 187화로 되어 있는데 만송본 · 일본 · 민자본 계열에 들어 있지 않은 이야기 96화가 있다.
백영본은 113화로 되어 있는데 다른 이본들에는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이야기 25화가 있다.
따라서 제1권과 제2권에 실린 이야기가 146화고, 나머지 121화는 제3권과 제4권에 실려 있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현재 전하지 않고 있는 ≪태평한화골계전≫ 제3권과 제4권에 실린 이야기의 수가 제1권과 제2권에 실린 이야기의 수인 146화와 같다면, 현재 20화 정도의 이야기가 전하지 않는다는 계산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단순 비교일 뿐 그 실상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본은 아니지만 ≪태평한화골계전≫과 관계있는 다른 자료로는 權鼈의 ≪해동잡록(海東雜錄)≫, 許篈의 ≪해동야언(海東野言)≫,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동인시화(東人詩話)≫, 成俔의 ≪용재총화傭齋叢話)≫,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이 있다.
특히 ≪해동잡록≫은 62화에 달하는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고, 믿을 만한 저본을 바탕으로 첨삭・개작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신뢰할 수 있으며, ≪태평한화골계전≫의 이본들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은 이야기가 4화나 들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해동잡록≫에 ≪태평한화골계전≫이 출전이라고 밝혀져 있는 4화가 더 있으므로, 현재 재구가 가능한 ≪태평한화골계전≫의 총화수는 271화가 된다. 현재 재구가 가능한 271화가 원본 ≪태평한화골계전> 전 4권에 실렸던 이야기의 전부일 수 있고, 어쩌면 현재 전하지 않는 이야기의 수가 20화를 상당히 상회하는 숫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271화의 이야기를 정밀하게 대조하고 주석한 두 권의 책이 ≪대교 · 역주 태평한화골계전≫이라는 이름으로 1998년에 출간되었다. 제1권이 608쪽, 제2권이 686쪽으로 된 상당히 큰 책으로, 전문 학자들을 위한 자료집으로 편찬된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너무 번다하고 무거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태평한화골계전≫은 전문 학자들만 연구하고 말 책이 아니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는 조선 초기 식자층들이 즐겼던 笑話이기 때문에 우선 이야기가 재미있고 여유가 있으며, 당대 식자층들의 삶은 물론 서민들의 삶의 일부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일반 독자들을 위해 부담이 가지 않으면서도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선별해 이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총 271화의 이야기 중 110화를 가리고 번다한 주석들을 과감하게 생략해서, 독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독자들은 ≪대교 · 역주 태평한화골계전≫을 참고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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