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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被撻於室人 朝官有許姓者 性過柔 妻李 性鷙悍 李嘗作獅子吼則許畏縮屛氣 不敢出聲.朝官에 許氏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성격이 너무 부드러웠고, 아내인 李氏는 성격이 사나워서 이(李)가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면, 허(許)는 두려워서 움츠러들어 숨을 죽이고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鷙悍: 鷙(지): 猛禽. 사납다. 悍(한): 사납다.▶畏縮: 두려워서 몸을 움츠림.▶屛氣: 숨죽이다 一日 李盛怒 令許自揭露脚 撻之見血.하루는 李가 몹시 노해서, 許에게 스스로 종아리를 걷어 올리게 하고 회초리로 때리니 피가 났다. 一同僚 窃聞 他日 與許同坐 小吏犯罪 陽怒狀 若親撻.어떤 동료가 이 소문을 몰래 듣고, 뒷날 許와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가, 아전이 죄를 범하였으매 거짓으로 노하여 마치 몸소 회초리로 칠 듯이 했다.▶窃: =竊▶..
良膠 李斯文由義 髥禿.선비인 李由義는 수염이 없었다. 晩翠亭趙先生 戱曰我有良膠 得他髥粘之 終身不落.晩翠亭 趙先生이 놀렸다."내게 좋은 아교가 있는데, 남의 수염을 얻어서 붙이면 평생토록 떨어지지 않는다."▶ 晩翠亭 趙先生: 趙須로, 그의 호가 '만취정' 혹은 '송월당'이다. 李請其方 趙曰秘法不可浪傳 昔有隣翁 來捫膠篋還家 手氣所屬 陰陽相附 不離者數日 請醫附藥 醫附手 請呪呪之 呪者附口 請巫禱之 巫者附身 五人相附不離者數日矣.如此秘方 何以浪傳乎이(李)가 그 방법을 청하자, 조(趙)가 말하였다."비법을 함부로 전할 수 없다. 전에 이웃집 늙은이가 와서 아교 상자를 만져 보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닿았던 손 기운 때문에 음양(陰陽)이 붙어 버려서, 며칠이 지나도 떨어지지를 않았다. 의원을 청해 약을 발랐더니 의원..
老髡老虜 山僧惠眞 求新曆於書雲判事李陽達 李用舊曆 換初面贈眞 眞終年用之 晩乃得悟曰我於老虜 當有所報之.山僧인 惠眞이 書雲判事 李陽達에게 새 冊曆을 달라고 하자, 이(李)가 묵은 책력으로 첫 장만 바꾸어 惠眞에게 주었는데, 진은 1년이 다 가도록 그것을 쓰다가, 뒤늦게 깨닫고는 말하였다."내 늙은 오랑캐에게 마땅히 이 앙갚음을 해야 하리라"▶ 書雲判事: 書雲觀 判事이다. '서운관'은 세조 12년에 觀象監으로 고쳤다. 천문(天文)·재상(災祥)·역일(曆日)·추택(推擇) 등에 관한 일을 맡았던 관청이다.▶ 李陽達: 조선 초기의 유명한 術士였다.▶ 冊曆: 지구와 태양・달의 관계에서, 1년 동안에 해와 달의 뜨고 지는 일, 일식・월식・절기 기타 기상학상의 변동 및 그 밖의 사항을 날의 순으로 기재한 책을 말한다. 曆..
嫉人干請 許吏判誠 性執 嫉人干請 有請欲東則西 欲西則東 必反其意.이조판서 許誠은 고집이 세고 남이 청탁함을 싫어해서, 동쪽으로 가고 싶다는 청탁이 있으면 서쪽으로 보내고, 서쪽으로 가고 싶다는 청탁이 있으면 동쪽으로 보내어 반드시 그 뜻을 거슬렀다. 僧一雲 欲往斷俗寺 語許曰聞西都永明寺 山水之勝 甲於東韓 乞我一住 以償宿願.若住斷俗寺 吾事去矣.승려 一雲이 斷俗寺의 주지가 되고자 許에게 말하였다."들으니 평양의 永明寺는 山水의 빼어남이 우리나라에서 으뜸이라 합니다. 바라건대 저를 한번 주지가 되게 해 오랜 소원을 풀게 해 주십시오. 만약 단속사에 住錫하면 제 일은 틀어져 버립니다."▶ 斷俗寺: 지리산 동쪽에 있는 절이다.▶ 永明寺: 평양의 금수산 浮碧樓 서쪽 麒麟窟 위에 있는 절의 이름이다. 천하의 명승이라 ..
處女可論情 有一人 在諫院三年 無一讜論 語人曰 若杜口 諫官自好 어떤 사람이 司諫院에 3년 동안 있으면서, 바른 議論을 한 번도 하지 않고는, 남에게 말하였다."만약 입만 닫는다면 諫官이 절로 좋을 것이다"▶ 司諫院: 조선 시대 삼사(三司)의 하나로 임금에게 諫言하는 일을 맡았던 관청이다. 有良家女 年三十 未適人 隣有惡年少 夜夜踰墻相從 年少曰 卿 昏姻失時 年壯 尙爲處女 可惜 女曰 若與子 夜夜論情 處女 亦佳어떤 양갓집 딸이 나이 서른이었으나 아직 시집을 가지 못하다가, 이웃에 못된 젊은이가 있어 밤마다 담을 넘어 서로 사귀었는데, 젊은이가 말하기를,“그대가 결혼에 때를 놓쳐 나이가 찼는데도 아직 처녀이니 애석하도다.”라고 하자, 여자가 말하였다."만약 그대와 함께 밤마다 정(情)을 나눌 수 있다면 처녀라도 ..
卞九祥公事 卞先生九祥 博學善詞章 拙於吏事.卞九祥 선생은 박학하고 문장을 잘했지만, 관리로서의 일에는 졸렬했다.▶ 卞九祥(생몰 연대 미상): 문신으로 본관은 密陽이고, 右副承旨 仲郞의 아들이다. 세종 1년增廣文科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거쳐 司藝에 이르렀다. 詩에 특히 뛰어나 卞詩魔라 불리었다. 嘗爲漢城參軍 訟者盈庭 甲爭辨百端 卞曰 爾言似 乙又如是 卞曰 爾言似 一不可否 仰天嘆曰 此誠國論之難斷者也.일찍이 漢城參軍이 되었는데, 송사(訟事)를 하는 사람들이 官庭에 그득하고, 甲이 온갖 말로 따져서 주장하면, 卞이 “네 말이 그럴듯하다”라고 하고, 乙이 또한 이와 같이 하면, 卞이 “네 말이 그럴듯하다”라고 하다가, 옳고 그름을 하나도 가리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이것은 참으로 國論의 판단하기 어려운..
比類之法 客有詠唐人鳥宿池中樹僧敲月下門之句者.손님 가운데 唐나라 사람의 詩句를 외우는 사람이 있었다.“새는 못 가운데의 나무에서 자는데 스님은 달 아래에서 문을 두드리네.”▶ 이 구절은 당나라 시인 賈島의 題李凝幽居詩>의 頷聯으로, '推敲'라는 말이 바로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중(中): '邊'의 잘못으로 보는 것이 옳겠다. 孔先生頎曰 以鳥對僧 甚爲的當 頃見卍雨和尙 吾亦云云.孔頎선생이 말하였다.“새를 스님과 대비시킨 것이 매우 적실하고 마땅하다. 얼마 전에 卍雨和尙을 만났을 때 내가 또한 그렇게 말했다.”▶ 卍雨和尙: 麗末鮮初, 특히 세종 때 상당히 이름 있었던 승려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선종(禪宗) 계통의 승려로 李穡・李崇仁과 시를 논할 정도의 詩僧이었고, 講主僧과 회암사와 흥천사의 주지를 ..
自居口辯 興德寺僧一雲 自矜口才 天下無雙 有日者崔揚善 以好辯自居.興德寺의 승려 一雲은 말재주가 세상에서 짝이 없다고 스스로 뻐겼는데, 日者인 崔揚善이라는 사람도 말을 잘한다고 자처하고 있었다.▶ 興德寺: 현재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1가에 있었던 절인데, 지금은 그 절터만 남아 있다. 흥덕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흥덕골" 또는 "흥덕동(興德洞)이라고 불렀다. 산수가 매우맑고 아름다운 가운데 온갖 꽃나무, 화려한 누각, 큰 연못들이 있어서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이 연달아 피어 늘 꽃동산을 이루었기 때문에, 京都十詠의 하나인 興德賞花 또는 興德賞蓮으로 이름났던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동부 燕喜坊에 있던 敎宗 사찰에 흥덕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있었다. 이 절은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세워졌으며, 권근(..
天下癡兒是士流 有一士子別公山妓於錦江舟中 妓痛哭欲墮水死.어떤 선비가 公山 기생을 錦江의 나룻배 안에서 이별할 제, 기생이 통곡하며 물에 빠져 죽으려 했다.▶ 公山: 충청도 公州를 말한다. 공주의 鎭山이 公山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錦江: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사이를 흐르는 강이다. 朝官亦垂淚撫妓背而止之曰 兒乎兒乎 愼勿爲我捐生也 仍贈銀甌.朝官 또한 눈물을 흘리면서 기생의 등을 쓰다듬으며 “얘야, 얘야. 삼가서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 마라”라고 말리면서, 은 주발을 주었다. 纔別妓長歌懽笑.이별하자마자 기생은 길게 노래 부르고 즐거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其友諫曰 別淚未乾長歌自若 似無情信.그의 친구가 간(諫)했다.“이별의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았는데 길게 노래하면서 태연함이 정(情)도 신의(信義)도 없는 듯..
墮老嫗術中 有一朝官別商山妓於鳥岾 相携痛哭 傍有鄕吏驛卒老婆亦哭.어떤 朝官이 商山 기생을 새재[鳥嶺]에서 이별하며 서로 붙들고 통곡했는데, 옆에 있던 시골 鄕吏와 驛卒과 늙은 할미 또한 울었다.▶ 商山: 경상도 尙州의 다른 이름이다. 상주목(尙州牧). ▶ 鳥岾: 조령(鳥嶺), 경상북도 문경군과 충청북도 괴산군 사이에 있는 고개로, 높이는 1017m다. 영남 지방에서 서울로 갈 때 거쳐 가는 고개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朝官問驛卒曰 何哭 曰 家有牝馬 昨夜因産故失 是以哭 조정 관리가 역졸에게 묻기를,"왜 우느냐?“라고 하였더니, 역졸이 말하였다.“집에 암말이 있었는데, 어젯밤에 새끼를 낳다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웁니다.” 問鄕吏曰 何哭 曰 五日送迎 賫三日粮 二日枵服 是以哭 鄕吏에게 “왜 우느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