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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少儀曰 侍食於君子 則先飯而後已. 毋放飯 毋流歠 小飯而亟之 數噍毋爲口容 《禮記》〈少儀〉 〈少儀〉에 말하였다. “君子를 모시고 먹을 때는 먼저 밥 먹고 나중에 끝낸다. 밥을 크게 뜨지 말며, 후루룩 마시지 말며 조금씩 먹어 빨리 삼키며, 자주 씹어 입을 놀리는 모양을 내지 말아야 한다.” 【增註】 君子 三達尊之稱 君子는 三達尊을 칭한다. 【集說】 陳氏曰 先飯 猶嘗食之禮也 後已 猶勸食之意也 放飯流歠 見前. 小飯則無噦噎之患. 亟之 謂速咽下 備或有見問之言也. 數噍毋爲口容 言數數嚼之 不得弄口以爲容也. 陳氏가 말하였다. “밥을 먼저 먹음은 맛을 보는 禮와 같고, 나중에 끝냄은 밥 먹기를 권하는 뜻과 같다. 放飯과 流歠은 앞에 보인다. 밥을 조금씩 먹으면 구역질하거나 목이 메일 염려가 없다. 亟之는 밥을 빨리 삼켜 내..
凡六章 모두 6장이다. ○ 내편 - 경신 - 명음식지절 - 第四十一章 ○ 내편 - 경신 - 명음식지절 - 第四十二章 ○ 내편 - 경신 - 명음식지절 - 第四十三章 ○ 내편 - 경신 - 명음식지절 - 第四十四章 ○ 내편 - 경신 - 명음식지절 - 第四十五章 ○ 내편 - 경신 - 명음식지절 - 第四十六章
孔子曰 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論語》〈里仁〉 孔子가 말씀하셨다. “선비가 道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道를 의논할 수 없다. 【集解】 朱子曰 心欲求道 而以口體之奉不若人 爲恥 其識趣之卑陋甚矣 何足與議於道哉? 朱子가 말씀하였다. “마음으로는 道를 구하려 하면서 口體의 봉양이 남만 못함을 부끄러워하면 그 식견과 취향의 비루함이 심하니, 어찌 함께 道를 의논할 수 있겠는가?” 愚謂 惡衣 謂麤舊衣服 惡食 謂疏食菜羹之類. 내가 생각하건대, 惡衣는 거칠고 오래된 의복을 이르고, 惡食은 거친 밥과 나물국 따위를 이른다. 漢志 謂學以居位曰士. 漢志[《漢書》〈食貨志〉]에 이르기를, 배워서 벼슬자리에 있는 자를 士라 하였다. 然四民中 有志於學者 亦得稱爲士也. 그러나 四民[士..
禮記曰 童子 不裘不帛 不屨絇 《禮記》〈玉藻〉 《禮記》에 말하였다. “동자는 갖옷을 입지 않고, 비단옷을 입지 않으며, 신코에 끈을 매지 않는다.” 【集解】 不裘不帛 爲太溫也. 갖옷을 입지 않고 비단옷을 입지 않음은 너무 따뜻하기 때문이다. 絇 卽屨頭之綦 用以爲行戒者. 絇는 신코의 끈이니, 이것을 사용하여 다닐 때 경계하는 것이다. 不屨絇 未習行戒也 신코에 끈을 매지 않음은 다닐 때 경계함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孔子 羔裘玄冠 不以弔 《論語》〈鄕黨〉 孔子는 검은 염소갖옷과 검은 관으로 조문하지 않으셨다. 【集說】 陳氏曰 羔裘 用黑羊皮爲之 玄 黑色. 陳氏가 말하였다. “羔裘는 검은 양가죽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 玄은 흑색이다.” 朱子曰 喪主素 吉主玄 弔必變服 所以哀死 朱子가 말씀하였다. “喪事에는 흰색을 위주하고, 吉事에는 검정색을 위주하니, 弔問에 반드시 옷을 바꿈은 죽음을 슬퍼하는 까닭이다.”
去喪 無所不佩 《論語》〈鄕黨〉 喪期를 마치고 패물을 차지 않음이 없으셨다. 【集說】 朱子曰 君子無故 玉不去身 觿礪之屬 亦皆佩也. 朱子가 말씀하였다. “君子는 연고가 없으면 玉을 몸에서 제거하지 않고, 뿔송곳이나 숫돌 따위도 모두 차는 것이다.”
論語曰 君子 不以紺緅 飾 《論語》〈鄕黨〉 《論語》에 말하였다. “君子[孔子]는 감색과 붉은색으로 옷깃에 선을 두르지 않으셨다. 【集說】 朱子曰 君子 謂孔子. 紺 深靑揚赤色 齊服也. 緅絳色 三年之喪 以飾練服者. 飾 領緣也. 朱子가 말씀하였다. “君子는 孔子를 이른다. 紺은 짙은 청색에 적색을 띤 것이니, 재계할 때의 의복이다. 緅는 붉은색으로 3년 상에 練服을 꾸미는 것이다. 飾은 목에 선을 두름이다.” 紅紫 不以爲褻服 홍색과 자주색으로 褻服[평복]을 만들지 않으셨다. 【集說】 朱子曰 紅紫 間色 不正 且近於婦人女子之服也. 褻服 私居服也. 言此則不以爲朝祭之服 可知. 朱子가 말씀하였다. “홍색과 자주색은 중간색이라 바르지 않고, 더구나 부인과 여자의 옷에 가깝기 때문이다. 褻服은 사사로이 거처할 때의 옷이다...
曲禮曰 爲人子者 父母存 冠衣 不純素 孤子當室 冠衣 不純采 《禮記》〈曲禮〉 〈曲禮〉에 말하였다. “자식은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冠과 옷을 흰색으로 선을 두르지 않으며, 孤子가 집안을 맡아서는 冠과 옷을 채색으로 선을 두르지 않는다.” 【集說】 孔氏曰 冠純 冠飾也 衣純 領緣也. 孔氏가 말하였다. “冠純은 관의 꾸밈이요, 衣純은 목에 선을 두름이다.” 呂氏曰 當室 謂爲父後者. 不純采者 雖除喪 猶純素也. 惟當室者行之 非當室者 不然也. 呂氏가 말하였다. “當室은 아버지의 후계자가 됨을 이른다. 채색으로 선을 두르지 않음은 비록 상을 벗더라도 그대로 흰색으로 선을 두른다. 오직 집안을 맡은 자만이 이것을 행하고, 집안을 맡은 자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士冠禮 始加 祝曰 〈士冠禮〉에 처음 치포관을 씌울 때 다음과 같은 祝辭를 한다. 令月吉日 始加元服 棄爾幼志 順爾成德 壽考維祺 介爾景福 《儀禮》〈士冠禮〉 “좋은 달 길한 날에 처음으로 너에게 元服[冠]을 加하노니, 너의 어린 마음을 버리고, 너의 德이룸을 순히 하면 壽考로 길하여 너의 큰 복을 크게 하리라.” 【集解】 士冠禮 儀禮篇名. 士冠禮는 《儀禮》의 편명이다. 禮 男子二十而冠 將冠 則筮日筮賓 及冠 則有三加之禮也 始加 用緇布冠. 禮에 남자는 20세에 冠禮를 하니, 장차 관례를 할 적에 날을 점치고 빈객을 점치며, 관례식에 이르면 三加[세번 관을 씌움]하는 禮가 있으니, 처음 加할 때는 치포관을 사용한다. 祝者 賓所祝之辭也. 祝은 빈객이 축원하는 말이다. 令, 吉 皆善也. 令과 吉은 모두 좋음이다. 元服..
1.정의 전통시대 중국과 한국의 관직명 또는 고위 官人을 일컫는 말. 2.개설 본래 중국 주나라에서 太師·太傅·太保를 3公, 그 아래의 少師·少傅·少保를 3孤라 하고, 다시 그 아래의 天官冢宰·地官大司徒·春官大宗伯·夏官大司馬·秋官大司寇·冬官大司空 등을 6卿이라 하였고, 3孤와 합쳐 9卿이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2.내용 『周禮』에 의하면, 관직에는 卿을 비롯해 中大夫·下大夫·上士·中士·下士의 등급이 있었다. 卿은 上大夫에 해당하며, 이로부터 ‘公-卿-大夫-士’의 位階가 성립함을 알 수 있다. 秦·漢代에는 중앙의 太常·光祿勳·衛尉·太僕·廷尉·大鴻臚·宗正·大司農·少府 등을 두고, 그 장관을 9경이라 하였다. ▶ 周禮 : 중국의 經書. ≪의례≫, ≪예기≫와 함께 三禮라 하며, 13經의 하나이다. 天·地·春·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