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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箕子者 紂親戚也. 紂始爲象箸 箕子嘆曰 彼爲象箸 必爲玉杯 爲玉杯 則必思遠方珍怪之物而御之矣 輿馬宮室之漸 自此始 不可振也 《史記》〈宋微子世家〉 箕子는 紂王의 친척이다. 紂王이 처음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箕子가 한탄하며 말씀하였다. “그가 상아 젓가락을 만들었으니, 반드시 옥 술잔을 만들 터이고, 옥 술잔을 만들면, 반드시 먼 지방의 진기한 물건들을 생각하여 사용할 터이니, 수레와 말과 宮室에 점점 사치함이 이로부터 시작되어 구제하지 못하리라.” 【集說】 陳氏曰 箕 國名 子 爵也 箕子 紂諸父. 紂 商王受也. 御 用也 振 救也. 陳氏가 말하였다. “箕는 나라 이름이요, 子는 작위이니, 其子는 紂王의 諸父[숙부]이다. 紂는 商나라 임금 受이다. 御는 사용함이요, 振은 구제함이다.” 紂爲淫泆 箕子諫 紂不聽而囚之. ..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論語》〈泰伯〉 曾子에게 병환이 있으매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 내 발을 열어 보며, 내 손을 열어 보아라. 《詩經》에 일렀다.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며, 얇은 얼음을 밟는 듯하라.’ 지금 이후에야 나는 벗어날 수 있음을 알겠노라. 小子들아!” 【集說】 朱子曰 啓 開也 . 曾子平日 以爲身體 受於父母 不敢毁傷. 故 於此 使弟子開其衾而視之 . 詩 小旻之篇. 戰戰 恐懼 兢兢 戒謹. 臨淵 恐墜 履氷 恐陷也 . 曾子以其所保之全 示門人 而言其所以保之之難 如此 至於將死而後 知其得免於毁傷也. 小子 門人也 語畢而又呼之 以致反復丁寧之意 其警之也深矣 朱子가 말씀하였다. “啓는 엶이다. 曾子는 평일..
顔丁 善居喪 始死 皇皇焉如有求而弗得 旣殯 望望焉如有從而弗及 旣葬 慨然如不及其反而息 《禮記》〈檀弓〉 顔丁이 居喪하기를 잘하여, 처음 죽었을 때는 皇皇해하며 구함이 있되 얻지 못하는 듯하며, 빈소를 차리고 나서는 望望然히 따르되 미치지 못하는 듯하였고, 장례하고 나서는 慨然히 돌아옴에 미치지 못하여 기다리는 듯하였다. 【集說】 陳氏曰 顔丁 魯人. 皇皇 猶栖栖也. 望望 往而不顧之貌 慨 感悵之意. 始死 形可見也 旣殯 柩可見也 葬則無所見矣. 如有從而弗及 似有可及之處也. 葬後則不復如有所從矣 故但言如不及其反. 又云而息者 息 猶待也 不忍決忘其親 猶且行且止 以待其親之反也 陳氏가 말하였다. “顔丁은 魯나라 사람이다. 皇皇은 栖栖[경황이 없음]와 같다. 望望은 가고 돌아보지 않는 모양이요, 慨는 感悵하는 뜻이다. 처음 죽었..
高子皐之執親之喪也 泣血三年 未嘗見齒 君子以爲難 《禮記》〈檀弓〉 高子皐가 부모의 상을 집행함에 피눈물을 3년 동안 흘리고, 이를 드러내고 웃은 적이 없으니, 君子가 어려운 일이라고 칭찬하였다. 【集解】 子皐 名柴 孔子弟子. 子皐는 이름이 柴이니, 孔子의 제자이다. 孔氏曰 人涕淚 必因悲聲而出 血出則不由聲也. 子皐悲無聲 其涕亦出 如血之出 故云泣血. 不見齒 謂不笑也 孔氏가 말하였다. “사람의 눈물은 반드시 슬픈 소리로 인하여 나오는데, 피를 흘림은 소리에 말미암지 않는다. 高子皐는 슬퍼하여 소리가 없으면서도 눈물이 나옴이 마치 피가 나오는 듯하였으매 泣血이라고 말하였다. 不見齒는 웃지 않았다는 말이다.”
少連, 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月不解 期悲哀 三年憂 東夷之子也 《禮記》〈雜記〉 少連과 大連이 居喪하기를 잘하여 부모가 죽은 지 3일 동안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3개월 동안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1년 동안 슬퍼하였으며, 3년 동안 근심하였으니, 東夷族의 자식이었다. 【集說】 陳氏曰 三日 親始死時也. 不怠 謂哀痛之切 雖不食而能自力以致其禮也. 三月 親喪在殯時也. 解 與懈同 倦也. 憂 謂憂戚憔悴. 陳氏가 말하였다. “3일은 부모가 처음 죽었을 때이다. 不怠는 애통함이 간절하여 먹지 않으면서도 자력으로 그 禮를 다함을 이른다. 3월은 부모의 시신이 빈소에 있을 때이다. 解는 懈와 같으니, 게으름이다. 憂는 걱정하여 초췌함을 말한다.” 陳氏曰 此 孔子之言也. 陳氏가 말하였다. “이것은 孔子의 말씀이다.” 【集解】 ..
公明宣 學於曾子 三年 不讀書 曾子曰 宣 爾居參之門 三年 不學何也? 《說苑》〈反質〉 公明宣이 曾子에게 배우기 3년에 글을 읽지 않자 曾子가 말씀하셨다. “宣아! 네가 나의 문하에 있은 지가 3년이로되, 배우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集說】 陳氏曰 公明姓 宣名 曾子弟子. 陳氏가 말하였다. “公明은 姓이요, 宣은 이름이니, 曾子의 제자이다.” 公明宣曰 安敢不學? 宣見夫子居庭 親在 叱咤之聲 未嘗至於犬馬 宣說之 學而未能. 宣見夫子之應賓客 恭儉而不懈惰 宣說之 學而未能. 宣見夫子之居朝廷 嚴臨下而不毁傷 宣說之 學而未能. 宣說此三者 學而未能 宣安敢不學而居夫子之門乎? 公明宣이 말하였다. “어찌 감히 배우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夫子[曾子]께서 뜰에 계심을 보니, 부모가 계시면 꾸짖는 소리가 개와 말에 이른 적이 없으시므로,..
伯兪有過 其母笞之 泣 其母曰 他日笞 子未嘗泣 今泣 何也? 對曰 兪得罪 笞常痛 今母之力 不能使痛 是以泣 《說苑》〈建本〉 伯兪에게 잘못이 있으므로 그 어머니가 매를 때리자 눈물을 흘리므로 그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이전에 매를 때릴 때는 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가 이제 우니, 무엇 때문이냐?” 伯兪가 대답하였다. “제가 죄를 지어 매를 맞으면 항상 아프더니, 지금은 어머니의 힘이 아프게 하지 못하매 눈물을 흘립니다.” 【集說】 陳氏曰 伯兪 姓韓 名兪. 笞 擊也 . 泣 涕出而無聲也. 伯兪之泣 悲母力之衰耳. 事見說苑. 陳氏가 말하였다. “伯兪는 姓이 韓이요, 이름이 兪이다. 笞는 회초리로 때림이다. 泣은 눈물은 나오면서 울음소리가 없음이다. 伯兪之泣은 어머니의 힘이 쇠함을 슬퍼해서 일 뿐이다. 이 사실이 〈..
樂正子春 下堂而傷其足 數月不出 猶有憂色. 樂正子春이 堂에서 내려오다가 그 발을 다치고 수개월 동안 나가지 않고서 아직도 근심하는 기색이 있었다. 門弟子曰 夫子之足癒矣 數月不出 猶有憂色 何也? 《禮記》〈祭義〉 문하의 제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발이 나으셨는데도 수개월 동안 나가지 않고서, 아직도 근심하는 기색이 있음은 어째서입니까?” 【集解】 樂正姓 子春名 曾子弟子 愈也 樂正은 姓이요 子春은 이름이니, 曾子의 弟子이다. 癒는 나음이다. 樂正子春曰 善 如爾之問也 善 如爾之問也. 吾 聞諸曾子 曾子 聞諸夫子 曰 天之所生 地之所養 惟人爲大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可謂孝矣. 不虧其體 不辱其身 可謂全矣. 故 君子 頃步而不敢忘孝也. 今予忘孝之道 予是以有憂色也. 一擧足而不敢忘父母 是故 道而不徑 舟而不游 不敢以先父母之遺..
老萊子孝奉二親. 行年七十 作嬰兒戱 身著五色斑斕之衣 嘗取水上堂 詐跌臥地 爲小兒啼 弄雛於親側 欲親之喜 《高士傳》 老萊子는 兩親을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나이 70세에 아이들의 장난을 하여 몸에 오색 무늬의 얼룩 옷을 입었으며, 일찍이 물을 떠가지고 堂에 오르다가 거짓으로 넘어져 땅에 엎어져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냈으며, 새 새끼를 부모 곁에서 희롱하여, 부모를 기쁘게 하고자 하였다. 【集說】 吳氏曰 老萊子 楚人. 孝事二親 年老而爲兒之事於親旁 蓋恐親見子之老而生悲感. 故 爲是以娛其心也 吳氏가 말하였다. “老萊子는 楚나라 사람이다. 양친을 효성으로 섬겨, 나이가 늙었으나 어린아이의 일을 부모 곁에서 하였으니, 이는 어버이가 자식이 늙음을 보고 슬픈 감회를 일으킬까 염려해서였다. 그러므로 이런 짓을 하여 그 마음을 ..
孔子曰 孝哉 閔子騫!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 《論語》〈先進〉 孔子가 말씀하셨다. “효성스럽구나. 閔子騫이여! 사람들이 그의 부모 형제가 그를 칭찬하는 말에 흠잡지 않도다.” 【集解】 閔子騫 孔子弟子 名損. 閔子騫은 孔子의 弟子이니, 이름은 損이다. 胡氏曰 父母兄弟稱其孝友 人皆信之 無異辭者 蓋其孝友之實 有以積於中而著於外. 故 夫子嘆而美之 胡氏가 말하였다. “부모 형제가 효도하고 우애한다고 칭찬함에, 사람들이 모두 그 말을 믿어 다른 말이 없었음은 그 효도와 우애의 실상이 속에 쌓여서 밖에 드러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孔子께서 감탄하여 찬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