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蒙求(몽구)155-逸少傾寫(일소경사)

구글서생 2023. 4. 11. 00:42

蒙求(몽구) 逸少傾寫(일소경사)

by 耽古書生

逸少傾寫-逸少왕희지는 물이 쏟아지듯 거침없었다.
傾寫傾瀉釋義指液體從高處傾倒或流瀉下來

 

晉書
<晉書>에 일렀다.

王羲之字逸少 司徒導從子.
王羲之의 字는 逸少이니 司徒 王導의 從姪이다.

年十三謁周顗 顗異之.
; 아뢸 알, 뵐 알
; 근엄할 의
나이 열세 살에 주의를 뵈었는데, 주의가 남다르게 여겼다.

時重牛心炙. 坐客未噉 顗先割啗之.
; 고기 구울 자
; 씹을 담
; 먹일 담
당시에 소의 심장 구이를 귀중하게 여겼는데, 좌중의 손님들이 아직 그것을 먹지 않고 있는데, 주의가 먼저 그것을 잘라서 그에게 먹였다.

於是始知名.
이에 비로소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及長辯贍. 以骨骾稱.
; 말 잘 할 변
; 넉넉할 섬
; 걸릴 경
骨骾: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듣기에 괴로운 직언
장성해서는 辯舌이 넉넉해서 骨骾이라고 칭했다.

尤善隸書 爲古今之冠.
더욱이 예서를 잘 써서 古今의 으뜸이었다.

太尉郗鑒使門生求女壻於導. 導令徧觀子弟.
太尉 郗鑒이 門生을 시켜 왕도에게서 사윗감을 구하게 하였는데, 왕도가 자제들을 두루 보게 하였다.

門生歸謂鑒曰
王氏諸少並佳.
然聞信至 咸自矜持.
惟一人在東床 坦腹食 獨若不聞.
; 평탄하다. 마음이 평안하다. 드러내다.
문생이 돌아와서 치감에게 말하였다.
“왕씨의 여러 젊은이들은 모두 훌륭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위를 고르는 사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잘 보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다만 한 사람이 동쪽의 평상에서 배를 드러내고 음식을 먹는데, 홀로 소식을 듣지 못한 듯하였습니다.”

鑒曰
正此佳壻邪.
치감이 말하였다.
“바로 이 사람이 좋은 사윗감이야.”

訪之乃羲之也. 遂妻之.
그를 찾아가니 바로 왕희지였고 그리하여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仕至右軍將軍會稽內史.
벼슬하여 右軍將軍‧會稽內史에 이르렀다.

世說曰
郗夫人謂二弟司空中郞曰
王家見二謝傾筐倒庋.
見汝來平平耳. 無煩復往.
; 광주리 광
; 시렁 기
; 화평할 음
; 흐릴 담
<세설신어>에 일렀다.
郗夫人이 두 아우 司空(부승상)과 中郞(숙위의 장)에게 말하였다.
“왕씨 집안에서는 두 謝氏를 만나면 광주리와 시렁을 기울여 대접한다.
너희들이 오면 평평하게 할 뿐이다.
번거롭게 다시 오지 말아라.”

二弟愔與曇也.
두 아우는 郗愔과 郗曇이다.

二謝安石與萬石也.
두 사씨는 安石(謝安)과 萬石(謝萬)이다.

 

[註解]
晉書- <진서> <열전> 50 에 있는 이야기임.
- 王導. 나라 臨沂 사람. 젊어서부터 風鑑했고 識量이 맑고 원대했다. 벼슬이 太傅에 이르렀다.
周顗- 나라 安城 사람. 젊어서 명성이 높았는데 술을 몹시 좋아했다. 벼슬이 尙書左僕射에 이르렀으나 여러 번 술로 인하여 벼슬을 잃었다.
隷書- 書體의 이름. 篆書의 자획을 간략하게 고친 것임.
郗鑒- 나라 사람. 자는 道徽. 經籍을 널리 보았는데 明帝安西將軍에 임명하고 다시 車騎將軍으로 옮겼다.

-나라 사람, 郗鑒의 아들,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의 벼슬을 이어받아 臨海太守가 되었고 뒤에 司空에 올랐다.
- 郗鑒 아들이요 郗愔의 아우. 젊어서 東安縣伯이 되고 뒤에 徐州兗州 등 두 고을의 刺史가 되었다.
謝安石- 謝安의 자가 安石. 나라 陽夏사람으로 풍채와 도량이 뛰어나고 지식이 민첩하여 명성이 높았다. 뒤에 苻堅이 반란을 일으키자 도읍 안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했으나 사안이 征討大都督指揮將軍이 되어 크게 깨치고 太保에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