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

春興(춘흥) - 鄭夢周(정몽주)

耽古樓主 2023. 4. 8. 07:25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草芽多少生(초아다소생)

봄비는 가늘어서 방울지지 못하는데, 밤이 되니 나직이 소리가 들리네.

눈이 녹아서 남쪽 개울물이 불어나면, 풀싹이 얼마나 돋아나려나?

 

이 시는 고려 말의 문신 鄭夢周(정몽주, 1337~1392)의 ‘春興(춘흥, 봄의 흥취)’으로 눈에 아른거리며 가늘게 내린 비가 봄기운을 재촉하여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현상에 注目(주목)하고 있다.

너무 가늘어서 낮에는 물방울조차 이루지 못하던 봄비가 밤이 되어 四圍(사위)가 고요해지자 나직하게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끼게 됨을 말한 다음, 봄비가 내려서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내리게 되면 집 앞쪽의 개울물이 불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봄기운에 자극 받은 초목의 새싹도 파릇하게 돋아날 것을 예견하고 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서 나는 소리가 시인의 귀에 들릴 까닭이 없으니, 시인은 마음의 귀를 통하여 그 소리를 느끼는 것이다.

이런 계기를 바탕으로 초목의 萌芽(맹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머지않아 천지에 봄기운이 가득 차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발상이 정몽주만의 것은 아니다.

李壽福(이수복, 1924~1986)도 ‘봄비’에서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라고 하여 봄비가 대지를 푸르게 하고 종달새가 노래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 75년도 인문계고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됨>

 

고등학교 국어교과서-1975년

1975년부터 사용한 다음 국어 교과서의 차례를 올립니다. 국어 1 (1975년 발행 문교부) 국어 2 ( 〃 ) 국어 3 ( 〃 ) 인문계고등학교 국어 1 아름다운 청춘 1. 3월의 고향 박두진, 3월 1일의 하늘 이은상,

koahn.tistory.com

봄철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느끼는 애상은 생명의 탄생과 축복이라는 봄의 속성에서 오는 反作用(반작용)일 수 있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작자

 

정몽주(鄭夢周, 1337년 음력 12월 22일 ~ 1392년 음력 4월 4일)는 고려 말의 문신, 외교관, 유학자이다.

본관은 연일,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고려삼은의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 경상도 우항리와 고려 경상도 영천현을 거쳐 고려 개경에 거주하였던 그는 1360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로 출사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고 성균관대사성, 예의판서, 예문관제학, 수원군 등을 지내며 친명파 신진사대부로 활동하였으나 역성혁명과 고려개혁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을 때 온건개혁을 선택하였으며, 명나라에 외교관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관직은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과 익양군충의백에 이르렀다. 역성혁명파의 조선건국에 반대하다가 1392년(공양왕 4년) 4월 이성계의 문병차 돌아가던 길에 개경 선죽교에서 이방원 일파에 의해 암살되었다.

 

경상북도 우항리 출신이며, 이색의 문인이라고하나 기록은 없다. 그의 제자들 중 길재는 사림파의 비조가 되었고 권우는 세종대왕의 스승이 되었다. 그의 손녀는 정종의 서자 선성군의 부인 오천군부인이 되었고, 서손녀는 한명회의 첩이 되었다. 삼봉 정도전의 오랜 친구였으나 역성혁명과 온건개혁을 놓고 갈등하던 중 정적으로 돌변했다. 역성혁명에 반대하다가 이성계,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이방원 일파에 피살되었다. 암살 직후 역적으로 단죄되었으나, 후에 1401년(태종 1년) 태종의 손에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에 추증(追贈)되고, 익양부원군(益陽府院君)에 추봉되었다.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태종은 정도전, 남은을 제거한 후 정도전 등을 격하시키기 위해 조선 건국에 반대하고 피살당한 그를 의도적으로 충절의 상징으로 격상시켰으며, 이는 사림파가 집권한 후에도 그의 문하생이라서 그에 대한 현창과 성인화가 계속되었다. 그 뒤 1990년대에 와서 성인화된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나타나고 있다.

 

春興(춘흥) - 鄭夢周(정몽주)
春興(춘흥) - 鄭夢周(정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