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자 한문 공부 (253)
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한문의 허사(虛詞) 阿阿堵 이것 阿儂 나 阿奴 나 阿你 너 너희들 阿誰 누구“阿호칭아”는 고대 이래 명사의 접두사로 쓰였다. 阿는 ① 대부분 行列이나 兒名 혹은 姓 앞에 쓰여 친밀한 뜻을 나타내며, ② 친족 관계의 칭호 앞에 쓰인다. 阿母常仁惻. 《後漢蔡文姬詩》-어머니께서는 항상 매우 사랑해주셨다. 阿婆不嫁女, 那得外孫抱? 《樂府詩集 梁折楊柳枝歌》 -어머니는 딸을 시집보내지 않았는데, 어디서 외손주를 안아보나? 阿爺無大兒. 《木蘭詩》 -아버지는 큰아들이 없었다. “阿姨”[이모, 아주머니]는 현대 생활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阿姨欲去何處? 《雜阿含經卷45》 -아주머니는 어디로 가고자 하십니까? ☞그밖에 阿는 중고 시대에 쓰였던 “이” · “이것”을 가리키는 近指代名詞인 “..
한문의 허사(虛詞) 尋尋而 곧 尋은 尋覓[찾다] 尋訪[방문하다]과 같이 동사로 쓰인다. 허사로서는 시간 부사로 쓰인다. 시간상으로 오래지 않아 곧 발생하는 것을 나타낸다. “곧” · “오래지 않아” “尋而”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復征, 再遷漁陽太守, 尋轉蜀郡太守. 《後漢書 李膺傳》 -다시 임용되어서, 어양군 태수로 옮겼다가, 촉군 태수로 전임되었다. 詔書特下, 拜臣郞中; 尋蒙國恩, 除臣洗馬. 《李密: 陳情表》 -조서를 특별히 내려서 저를 낭중으로 임명하시었고, 얼마 되지 않아 나라의 은혜를 입어, 저에게 선마의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梁冀旣誅, 琼首居公位, 海內翕然望之. 尋而五侯擅權, 傾動內外. 自度力不能匡, 乃稱疾不起.《後漢書 黃琼傳》 -양기는 이미 피살되었고, 황경이 공경 중에 가장 윗자리에 앉게..
한문의 허사(虛詞) 悉悉皆 모두 “悉갖출 실”은 “모두” “전부” “다하다”를 뜻한다.주로 부사로 쓰이며, 만약 동사가 생략되어 있다면, 부사 겸 동사로 보아야 하고, 이런 때에는 동사로 볼 수 있다. (1) “悉”은 부사로 쓰여 “모두” · “온통”을 의미한다.項羽悉引兵渡河, 遂破章邯. 《史記 張耳列傳》 -항우는 모든 군대를 인솔하여 황하를 건너, 장한군을 격파했다. 斯長男由爲三川守, 諸男皆尙秦公主, 女悉嫁秦諸公子. 《史記 李斯列傳》 -이사의 장남 이유는 삼천군 태수가 되었고, 아들은 모두 진나라 공주를 처로 삼았으며, 딸들은 모두 진나라 공자에게 시집갔다. 男女衣著悉如外人. 《陶潛: 桃花源記》 -남녀가 있는데 옷을 입은 것을 보니, 모두 외부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其一株上有七、八根生者, 悉皆斫去,..
한문의 허사(虛詞) 矧矧亦“矧 하물며 신”은 《書經》의 주나라 초기 문헌 중에 ① “또한”이라는 뜻의 부사로 쓰였으며, 연문(連文)으로 “矧亦”[또한]을 쓰기도 했다. 이러한 용법은 춘추시대 이후에는 소멸했다. 또한 ② “하물며”라는 뜻의 접속사로서도 쓰였다. 況且, 何況, 而況 등과 뜻과 용법이 똑같다. (1) 矧은 부사로 쓰인다. '또' · '또한'¶ 汝劼毖殷獻臣, 侯甸男衛, 矧太史友、內史友, 越獻臣百宗工, 矧惟爾事, 服休服采. 矧惟若疇圻父, 薄違農父, 若保宏父定辟. 矧汝, 剛制于酒. 《書經 酒誥》 ○ 너는 은나라의 어진 유신과, 후복、전복、남복、위복의 제후들에게 결연하게 명령해야 하며, 또한 태사 친구, 내사 친구, 어진 신하와 여러 높은 관리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너를 섬..
한문의 허사(虛詞) 信信은 信用, 信息[소식, 정보]과 같이 명사로 쓰이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信從[믿고 따르다] · 信任[신임하다] 등에 있어서와 같이 동사로 쓰인다. 허사적 용법으로서는 한 가지가 있는데 표태부사로서 “확실히, 정말로”의 뜻으로 쓰인다.子晳信美矣, 抑子南, 夫也. 《左傳 昭公元年》-자석은 정말로 미남자이나, 도리어 자남이 남자답습니다. 信知生男惡, 反是生女好. 生女猶得嫁比鄰, 生男埋沒隨百草!《杜甫: 兵車行》-정말로 알겠노라, 남자 낳기는 싫어하고, 도리어 여자 낳기 좋아하는 것을. 딸을 낳으면 이웃집에 시집보낼 수 있지만, 아들 낳으면 잡초 속에 묻히기 때문이라네!
한문의 허사(虛詞) 時時時 간혹 時는 實詞로서는 의미가 대단히 많다. 虛詞로서는 “지시사” 또는 “부사”로 쓰인다. (1) 時는 지시대명사로 쓰여 '이' · '이것'을 의미한다.☞西周 때의 작품인 《書經》과 《詩經》에 많이 보이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이후에는 “是”자를 대체자로 썼다. 厥初生民, 時維姜嫄. 《詩經 大雅 生民》 -처음 백성을 내신 분은, 바로 ─ ‘후직’의 모친인 ─ 이 강원이란 분이네. 載生載育, 時維后稷. 《詩經 大雅 生民》 -아기 낳아 기르시니, 이분이 바로 ‘후직’이시다. 京師之野, 于時處處, 于時廬旅, 于時言言, 于時語語. 《詩經 大雅 公劉》 -경 고을의 뜰, 여기에 살 곳을 정하셨도다. 여기 머물러 살며, 여기에서 서로 말하고, 여기에서 서로 얘기하셨다. (2) 時는 관형..
한문의 허사(虛詞) 是是以 이 때문에 是用 이로 인해 是故 이런 까닭으로 由是 때문에 是는 현대 중국어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連繫性動詞로 쓰인다. 고대인들은 연계성동사를 거의 생략하여 쓰고 있었지만, 간혹 생략하지 않는 경우 예를 들면, 《左傳 襄公5年》조에서 볼 수 있는 “惠公謂我諸戎是四岳之裔胄也. 毋是翦棄” “혜공은 ‘우리 각 부락의 융인들은 모두 사악의 후손들이다. 능멸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말했다.”의 용례와 같다. 고대인들은 판단문 중에 부사가 있으면 그 부사가 연계성동사를 겸하도록 하고 “是”자를 덧붙여 쓰지 않았다. 아주 드물게 보이는 예외로써, 《孟子 告子上》에 보이는 “鈞是人也”[사람은 똑같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에서는 “鈞”자가 연계성동사를 겸하는 “똑같게”..
한문의 허사(虛詞) 孰孰與 어찌~만하랴 孰若 비교선택孰은 허사 중에서 오직 의문사로만 쓰이는 글자이며, 거의 항상 의문대명사로 쓰인다. 또한 형용사(관형어) 및 부사(상황어)로서도 쓰이는데, 상고 문헌 중에 그리 많이 보이는 용법은 아니다. 이러한 용법으로는 후한 시대 이후에는 아무도 쓴 일이 없다. (1) 孰은 사람 또는 사물을 대신하는 의문대명사로 쓰인다. “누구” · “무엇”漢王曰: 孰能爲我使淮南, 令之發兵倍楚? 《史記 黥布列傳》-한왕 유방이 말했다: “누가 나를 위하여 회남에 사자로 가서 영포로 하여금 발병하여 초군을 배반하게 하겠는가”?▶倍: 배반. 반란 孰知賦斂之毒有甚是蛇者乎? 《柳宗元: 捕蛇者说》-세금을 거둬들이는 혹독함이 그 뱀보다 더욱 심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상기 예문의 孰은 사람..
한문의 허사(虛詞) 雖雖然 비록 雖使 설사 雖復 설사雖는 가설 접속사로서 “설령 …하더라도”의 뜻을 나타낸다. 상고 시대에는 또한 “오직”이란 뜻으로도 쓰였으며, 이 용법은 《墨子》에 비교적 많이 나온다. 때로는 “어찌 …하겠는가?”란 뜻으로도 쓰였으나 이후 모두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1) 雖는 가설 접속사 또는 양보 접속사라고도 부른다.☞일반적으로 복합문의 상분구에 사용하며, 사실 혹은 가설을 진술한다. 雖然이라고도 쓴다. 雖然은 현대 중국어에서도 쓴다. 고대인들은 간혹 雖使라고도 썼다. “설령 …하더라도” “설사 …일지라도” 門雖設而常關. 《陶潛: 歸去來辭》-문은 비록 나 있으나, 늘 닫아 두고 있네. 雖長不滿七尺, 而心雄萬夫 《李白: 與韓荊州書》-비록 키가 7척을 넘지 못하지만, 마음은 만명의 ..
한문의 허사(虛詞) 誰 誰何 誰는 “누구”라는 뜻으로 현대 중국어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誰”는 또한 사물을 물을 때 “무엇” “어떠한”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고대인들은 “소유격[領位]”에서는 일반적으로 之자를 추가했다. “誰之 + 명사”와 “誰 + 명사”를 구별하여 썼다. 또한 誰何도 “누구”의 뜻으로 썼다. 誰昔은 誰자의 의미는 없어지고 그냥 “옛날”이란 뜻으로 쓰였다. 예를 들면 《詩經 陳風 墓門》에 보이는 知而不已 誰昔然矣[알고 있어도 고치지 못하니, 예부터 그랬었다]에 나오는 誰昔은 疇昔과 같은 뜻으로 誰자의 본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옛날”이란 뜻이다. 이에 관하여 여기에서는 상론하지 않는다. (1) 誰는 의문대명사로 쓰인다. “누구” ¶ 寡人有子, 未知其誰立焉. 《左傳 閔公2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