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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孟子曰: 「諸侯之寶三: 土地, 人民, 政事. 寶珠玉者, 殃必及身.」 孟子가 말하였다. “諸侯의 보배는 세 가지로 土地와 人民과 政事이다. 珠玉을 보배로 여기는 자는 殃禍가 반드시 몸에 미친다.” 尹氏曰: 「言寶得其寶者安, 寶失其寶者危.」 尹氏가 말하였다. “ ‘자신에게 보배가 되는 것을 얻은 자는 편안하고, 자신에게 보배가 되는 것을 잃는 자는 위태롭다.’라는 말이다.’
盆成括仕於齊. 孟子曰: 「死矣盆成括!」 盆成括이 齊나라에 벼슬하는데 孟子가 말하였다. “죽겠구나, 盆成括이여!” 盆成括見殺. 盆成括이 죽임을 당하였다. 門人問曰: 「夫子何以知其將見殺?」 門人이 물었다. “夫子께서는 어떻게 그가 죽임을 당할 줄 아셨습니까?” 曰: 「其爲人也小有才, 未聞君子之大道也, 則足以殺其軀而已矣.」 孟子가 말하였다. “그의 사람됨에 조금 재주가 있으나 君子의 大道를 알지 못했으니, 족히 그 몸을 죽이고 만다.” 盆成, 姓; 括, 名也. 盆成은 姓이요 括은 이름이다. 恃才妄作, 所以取禍. 재주를 믿고 망령되이 행동함은 禍를 取하는 까닭이다. 徐氏曰: 「君子道其常而已. 括有死之道焉, 設使幸而獲免, 孟子之言猶信也.」 徐氏가 말하였다. ‘君子는 그 常道를 말할 뿐이다. 盆成括에게 죽을 이치가..
孟子之滕, 館於上宮. 有業屨於牖上, 館人求之弗得. 孟子께서 滕나라에 가서 上宮에 머무르시었다. 작업하던 신이 창문 위에 있었는데 旅館주인이 찾아도 얻지 못하였다. 館, 舍也. 館은 머무름이다. 上宮, 別宮名. 上宮은 別宮의 이름이다. 業屨, 織之有次業而未成者, 蓋館人所作, 置之牖上而失之也. 業屨는 짚신을 삼다가 다음 작업이 있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여관주인이 만들던 것을 창 위에 놓아두었다가 잃어버린 듯하다. 或問之曰: 「若是乎從者之廋也?」 혹자가 물었다. “이렇게 從者들이 물건을 숨기고 있단 말입니까?” 曰: 「子以是爲竊屨來與?」 孟子가 말하였다. “그대는 그들이 신을 훔치러 왔다고 여기는가?” 曰: 「殆非也. 夫子之設科也, 往者不追, 來者不距. 苟以是心至, 斯受之而已矣.」 대답하였다...
孟子曰: 「人皆有所不忍, 達之於其所忍, 仁也; 人皆有所不爲, 達之於其所爲, 義也. 孟子가 말하였다. “사람에게 모두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으니, 그 차마 하는 바에 도달한다면 仁이요, 사람에게 모두 하지 않는 바가 있으니, 하는 바에 도달한다면 義이다. 惻隱羞惡之心, 人皆有之, 故莫不有所不忍不爲, 此仁義之端也. 惻隱之心과 羞惡之心을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으므로, 차마 못 하는 바와 하지 않는 바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仁과 義의 단서이다. 然以氣質之偏·物欲之蔽, 則於他事或有不能者. 그러나 氣質이 편벽되고 物慾에 가려져서 곧 다른 일엔 혹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但推所能, 達之於所不能, 則無非仁義矣. 그러나 능한 바를 미루어서 능하지 못한 바에까지 도달한다면, 仁과 義가 아님이 없다...
孟子曰: 「言近而指遠者, 善言也; 守約而施博者, 善道也. 君子之言也, 不下帶而道存焉. 孟子가 말하였다. “말이 가까우면서도 뜻이 깊은 것이 좋은 말이요, 자신을 지킴이 간략하면서 베풂이 넓은 것이 좋은 道理이다. 君子의 말은 띠보다 내려가지 않아도 道가 그곳에 있다. 古人視不下於帶, 則帶之上, 乃目前常見至近之處也. 옛사람의 視線은 띠보다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띠 위는 바로 目前에 항상 볼 수 있는 지극히 가까운 곳이다. 擧目前之近事, 而至理存焉, 所以爲言近而指遠也. 目前의 가까운 일을 거론하여도 지극한 이치가 거기에 있으니, 말이 가까우면서도 뜻은 원대한 까닭이다. 君子之守, 修其身而天下平. 君子의 지킴은 자신을 닦아서 천하가 和平해지는 것이다. 此所謂守約而施博也. 이것이 이른바 지킴은 요..
孟子曰: 「堯舜, 性者也; 湯武, 反之也. 孟子가 말하였다. “堯舜은 본성대로 하셨고, 湯武는 본성으로 돌아갔다. 性者, 得全於天, 無所汙壞, 不假修爲, 聖之至也. 性者란 온전함을 하늘에서 얻어 더럽히거나 파괴한 바가 없어서, 修爲할 필요가 없으니 聖人의 지극함이다. 反之者, 修爲以復其性, 而至於聖人也. 反之는 修爲하여 그 性을 회복해서 聖人에 이르는 것이다. 程子曰: 「性之反之, 古未有此語, 蓋自孟子發之.」 程子가 말하였다. ‘性之와 反之는 옛날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지 않았는데, 孟子로부터 發明된 듯하다.’ 呂氏曰: 「無意而安行, 性者也, 有意利行, 而至於無意, 復性者也. 堯舜不失其性, 湯武善反其性, 及其成功則一也.」 呂氏가 말하였다. ‘뜻이 없이 편안히 행함은 性 그대로 하는 것이다. 뜻이 있어 이롭..
孟子曰: 「說大人, 則藐之, 勿視其巍巍然. 孟子가 말하였다. “大人에게 유세할 때에는 가볍게 여겨서 그 높음을 보지 말아야 한다. 趙氏曰: 「大人, 當時尊貴者也. 藐, 輕之也. 巍巍, 富貴高顯之貌. 藐焉而不畏之, 則志意舒展, 言語得盡也.」 趙氏가 말하였다. ‘大人은 當時의 尊貴한 자이다. 藐(묘)는 가벼이 여김이다. 巍巍는 富貴하고 高顯(높고 드러남)한 모양이다. 하찮게 여기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뜻이 펴져서, 말을 다할 수 있다.’ 堂高數仞, 榱題數尺, 我得志弗爲也; 食前方丈, 侍妾數百人, 我得志弗爲也; 般樂飮酒, 驅騁田獵, 後車千乘, 我得志弗爲也. 在彼者, 皆我所不爲也; 在我者, 皆古之制也, 吾何畏彼哉?」 堂의 높이가 몇 길이 되며 서까래 머리가 몇 자 되는 것을, 나는 뜻을 얻더라도 하지 않으며, ..
孟子曰: 「養心莫善於寡欲. 其爲人也寡欲, 雖有不存焉者, 寡矣; 其爲人也多欲, 雖有存焉者, 寡矣.」 孟子가 말하였다. “마음을 수양함에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그 사람됨이 욕심이 적으면 비록 보존되지 못함이 있더라도 적을 터이요, 그 사람됨이 욕심이 많으면 비록 보존됨이 있더라도 적을 터이다. 欲, 如口鼻耳目四支之欲, 雖人之所不能無, 然多而不節, 未有不失其本心者, 學者所當深戒也. 欲은 입과 코와 귀와 눈과 四肢의 욕망 같은 것이니, 비록 사람이 능히 없앨 수 없는 것이나, 그러나 많은데도 절제하지 않는다면, 그 本心을 잃지 않을 자가 없으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깊이 경계하여야 한다. 程子曰: 「所欲不必沈溺, 只有所向便是欲.」 程子가 말하였다. ‘所欲은 반드시 빠지는 것만이 아니요, 다..
曾晳嗜羊棗, 而曾子不忍食羊棗. 曾晳이 羊棗를 좋아하더니, 曾子가 차마 羊棗를 먹지 못하였다. 羊棗, 實小黑而圓, 又謂之羊矢棗. 羊棗는 열매가 작고 색이 검으며 둥그니, 또 羊矢棗(고욤)라고도 이른다. 曾子以父嗜之, 父歿之後, 食必思親, 故不忍食也. 曾子는 아버지가 양조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별세한 뒤에 먹을 때마다 필시 어버이가 생각났으므로 차마 먹지 못하였다. 公孫丑問曰: 「膾炙與羊棗孰美?」 公孫丑가 물었다. “膾炙와 羊棗는 어느 것이 더 맛있습니까?” 孟子曰: 「膾炙哉!」 孟子가 말하였다. “膾炙이지.” 公孫丑曰: 「然則曾子何爲食膾炙而不食羊棗?」 공손추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曾子는 어찌하여 膾炙는 잡수시면서 羊棗는 잡수시지 않았습니까?” 曰: 「膾炙所同也, 羊棗所獨也. 諱名不諱姓, 姓所同也..
萬章問曰: 「孔子在陳曰: 『盍歸乎來! 吾黨之士狂簡, 進取, 不忘其初.』 孔子在陳, 何思魯之狂士?」 萬章이 물었다. “孔子께서 진나라에 계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吾黨의 선비가 狂簡하여 진취적이되 그 처음을 버리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孔子께서 陳나라에 계시면서 어찌하여 魯나라의 狂士를 생각하셨습니까?” 盍, 何不也. 합(盍)은 어찌 아니랴 이다. 狂簡, 謂志大而略於事. 狂簡은 뜻은 크되 일에 소략함을 이른다. 進取, 謂求望高遠. 進取는 高遠한 것을 구하고 바람을 이른다. 不忘其初, 謂不能改其舊也. 不忘其初란 그 옛 잘못을 고치지 못함을 이른다. 此語與論語小異. 이 말은 論語와 조금 다르다. 孟子曰: 「孔子 『不得中道而與之, 必也狂獧乎! 狂者進取, 獧者有所不爲也』 . 孔子豈不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