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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70

列傳권90-魏豹彭越列傳(위표팽월열전)

魏豹彭越列傳은 魏豹와 彭越의 합전이다. 魏豹(?~B.C. 204)는 魏王실의 일족으로 魏咎의 사촌 동생인데 陳勝의 반란 이후 周市과 함께 형 위구를 魏王으로 옹립하였다. 이후 章邯의 공격을 받아 형 위구가 죽자 楚로 도망가서 楚懷王에게 군사를 빌려 魏 영토를 회복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항우가 大梁의 땅을 탐내어 西魏王에 봉했으나 항우를 배반하고 劉邦에게로 귀순하였다. 기원전 205년 유방에 의해 대원수로 임명되어 60만 대군을 이끌고 항우와 彭城 대전을 치렀으나 漢이 항우에게 크게 패하고 魏豹 역시 중상을 입었다. 그 후에 본국 魏로 돌아가 유방을 배신하고 유방이 보낸 사신 酈食其의 설득도 받아들이지 않다가, 韓信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하여 滎陽으로 끌려갔다. 형양에서 유방의 명령으로 楚軍 방어하고 ..

史記/列傳 2023.08.19

列傳권89.張耳陳餘列傳(장이진여열전)

張耳陳餘列傳은 刎頸之交를 맺은 張耳와 陳餘의 合傳이다. 張耳와 陳餘는 전국 시대 말기 魏의 大梁 사람이다. 장이는 陳餘와 함께 刎頸之交를 맺었으며, 秦 2세 황제 호해 원년에 陳涉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여와 함께 校尉가 되어 武臣을 따라 趙 땅을 정벌하였다. 무신이 趙王이 되자 장이는 右丞相에 올랐고, 진여는 大將軍이 되었다. 그 후 장이와 진여는 사이가 벌어져 진여가 장이를 공격하자 장이는 劉邦에게 투항했고, 진여는 趙王 헐을 도와 趙王으로 세웠으나 漢의 장수 한신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楚漢戰爭 : 기원전 206년 秦의 멸망 후 서쪽의 楚霸王 항우와 漢王 유방과의 5년에 걸친 전쟁. 秦의 급격한 통일 정책과 농민에 대한 과중한 賦役으로 기원전 210년 시황제의 죽음 이후 각지에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史記/列傳 2023.08.18

列傳88-蒙恬列傳(몽념열전)

蒙恬은 전국시대 秦의 관료이자 장군이다. 秦將 蒙武의 아들이자 蒙毅의 형으로, 전국통일 이후에 북쪽의 흉노를 몰아내고 만리장성의 건축 및 북방의 수비를 감독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始皇의 신임을 얻고 그의 측근이 되어 권세를 누렸으나, 진시황제 사후에 조고 등에게 모함을 당하여 태자 부소가 자살한 후 2세 황제 胡亥의 압박에 못 이겨 자살하였다. 蒙恬者,其先齊人也。 蒙恬의 선조는 齊 사람이다. 恬大父蒙驁,自齊事秦昭王,官至上卿。 몽염의 할아버지 蒙驁는 齊에서 秦으로 와서 秦昭王을 섬기며 관직이 上卿에 이르렀다. 秦莊襄王元年,蒙驁為秦將,伐韓,取成皋、滎陽,作置三川郡。 秦莊襄王 원년(기원전249년), 몽오가 秦將이 되어 韓를 침공하여 成皋와 滎陽을 빼앗고 三川郡을 설치하였다. 二年,蒙驁攻趙,取三十七城。 장양왕2..

史記/列傳 2023.08.17

列傳87-李斯列傳(이사열전)

李斯는 楚의 上蔡출신으로 秦 法家流의 정치가(? ~ BC 208)이다. 荀子에게 배우고 秦으로 가서 丞相 呂不韋에게 발탁되어 客卿이 되었다. 鄭國渠라는 운하를 완성하는 데 노력하였으며, 始皇帝가 6국을 통일한 후에는 봉건제에 반대하고 郡縣制를 진언하여 丞相이 되었으며, 焚書坑儒를 단행하게 하였다. 시황제가 죽은 후 환관 趙高와 공모하여 막내아들 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고 시황제의 장자 扶蘇와 장군 蒙恬을 자살하게 하였는데, 조고의 참소로 투옥되어 그 아들과 함께 처형당했으며 三族이 몰살되었다. 李斯者,楚上蔡人也。 李斯는 楚 上蔡사람이다. 年少時,為郡小吏,見吏舍廁中鼠食不絜,近人犬,數驚恐之。 젊은 시절에는 郡의 하급관리였는데 吏舍의 변소의 쥐가 불결한 것을 먹다가도 사람이나 개에 가까워지면 자주 놀라고 두..

史記/列傳 2023.08.16

列傳권86-刺客列傳(자객열전)

刺客列傳에서는 魯의 曹沫, 吳의 專諸, 晉의 豫讓, 韓의 聶政, 燕의 荊軻 다섯 명의 刺客을 다루었다. 司馬遷은 “조말로부터 형가에 이르기까지 다섯 명의 자객은 그 의행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목적은 뚜렷하였으며 자신의 뜻을 욕되게 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이름을 후세에 전함이 어찌 망령되겠는가!”라고 평하였다.​ 曹沫은 曹劌, 曹翽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魯 大夫로 지략과 의리가 뛰어났다고 하며 魯의 莊公을 섬긴 장군이다. 魯와 인접하여 있던 강국 齊는 번번이 노를 침략했고, 조말은 노의 장군으로 이를 막았으나 세 번이나 패하고 노는 영토를 잃게 되었다. 제환공 5년에 불리해진 魯는 遂邑을 바치는 조건으로 齊와 회맹을 맺게 되었는데, 맹약하는 자리에서 장공이 바치는 수읍을 헌상한다는..

史記/列傳 2023.08.14

列傳권85-呂不韋列傳(여불위열전)

呂不韋(기원전292~기원전235년)는 趙의 商人 출신으로 秦의 정치가이다. 莊襄王 때 승상이 되었으며, 장양왕이 즉위한 지 3년 만에 죽자 여불위의 친자식이라고 기록된 태자 政이 왕위에 올랐으며 그가 진시황제이다. 이에 여불위는 相國을 지냈으며, 전국 말기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 呂氏春秋를 3000여 명의 빈객들의 학식을 모아 편찬하였다. 최고의 相國이 되어 仲父라는 칭호로 불리며 중용되었으나 太后와 밀통관계를 유지하였다. 여불위는 이 관계가 들통날까 두려워 노애라는 사내를 태후에게 보내어 정을 통하게 하였다. 태자 정이 성장하여 이 관계를 눈치채자 노애가 태자를 제거하려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극형을 당하였다. 여불위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상국에서 파면되어 촉 땅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여불위는 점점 압박..

史記/列傳 2023.08.12

列傳권84-屈原賈生列傳(굴원가생열전)

屈原賈生列傳은 전국시대 楚의 屈原과 前漢의 賈誼 두 사람의 전기이다. 살았던 시대가 서로 달랐지만 不遇한 운명이 유사하다. 屈原(기원전340년~기원전278년)은 전국시대 楚의 시인이며, 정치가이다. 성은 羋, 씨는 屈, 이름은 平이며 자는 原이다. 楚의 왕족으로 태어나 楚의 회왕 때 좌도에 임명되었다. 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 정치가였으며, 회왕의 상담역으로 국사를 도모하고,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으나, 모함을 받아 신임을 잃고 끝내 자살하였다. 그는 이러한 아픔을 離騷에 담아내었다. 태사공은 “나는 굴원의 離騷, 天問, 招魂, 哀郢을 읽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長沙에 와서 멱라강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인간됨에 대해 오래 상념에 잠겼다.”라고 평하였다. 賈誼(기원전..

史記/列傳 2023.08.12

列傳권83-魯仲連鄒陽列傳(노중련추양열전)

이 편은 齊의 魯仲連과 韓 鄒陽의 합전이며, 노중련은 전국시대 齊 사람(기원전305년경~기원전245년)으로 유세가이며 魯連이라고도 칭한다. 密陽 魯氏의 시조격이다. 秦이 趙를 공격하여 수도 邯鄲을 포위하자, 제후들이 秦을 두려워하여 감히 趙를 구원하지 못하였다. 魏의 安釐王은 新垣衍이란 辯士를 趙에 보내, 秦王을 황제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는 계책을 고하게 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魯仲連이 “포악한 秦이 방자하게 황제를 칭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겠다.”라고 하니, 제후들이 이 말을 듣고 연합하여 秦軍을 패퇴시켰다. 후에 齊將 田單이 燕에게 빼앗긴 聊城을 되찾기 위해 軍을 동원하여 공격했으나 여러 달이 지나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이에 노중련은 이해득실을 논하는 편지를 한 통 써서 화살에 매..

史記/列傳 2023.08.10

列傳권82-田單列傳(전단열전)

田單은 臨淄사람으로 성은 媯(규)이고, 氏는 田, 이름은 單이다. 원래 齊의 종친의 먼 친척으로 처음에는 수도 臨淄의 小吏였으나 燕과 전쟁 때 卽墨싸움에서 火牛陣의 전법으로 燕軍을 대패시키고 齊를 수복하여 安平君에 봉해져 相國이 되었다. 田單者,齊諸田疏屬也。 田単은 齊 全氏의 먼 친족이었다. 湣王時,單為臨菑市掾,不見知。 湣王때 전단은 임치에서 시장을 감독하는 관리이었지만 알려지지 못하였다. 及燕使樂毅伐破齊,齊湣王出奔,已而保莒城。 燕이 악의를 보내 제를 공격하여 패퇴시키자, 齊湣王은 달아나 莒城을 지켰다. 燕師長驅平齊,而田單走安平,令其宗人盡斷其車軸末而傅鐵籠。 燕軍이 멀리까지 쫓아와 齊를 평정하였으므로 전단은 安平으로 달아났는데, 집안사람에게 수레바퀴 축의 양 끝을 모두 자르고 쇠로 테를 씌우도록 하였다. ..

史記/列傳 2023.08.08

列傳권81-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이 篇은 趙 말기에 활약했던 명장인 廉頗와 藺相如를 爲主하고 趙奢, 李牧 등의 열전을 함께 묶어서 구성한 것이다. 염파는 趙의 명장으로 秦과 魏 등과 싸워 여러 차례 적을 물리쳤으며 信平君의 칭호를 받았다. 같은 시대에 활약한 趙의 相國 藺相如와의 교우는 刎頸之交라는 고사의 유래가 되기도 하였다. 藺相如는 전국시대 趙의 相國으로, 秦이 속임수를 써서 뺏으려던 和氏璧을 지켜내고, 趙將 廉頗와 합심하여 趙를 굳건하게 지켜낸 일로 유명하다. 인상여가 秦의 사신으로 가서 화씨의 벽을 되찾아오는 데 공을 세워 相國의 자리에 올랐으나, 이를 시기한 염파를 자기편으로 끌여들여 負荊請罪로 刎頸之交가 된 고사는 유명하며, 完璧, 布衣之交, 兩鼠鬪穴, 膠柱鼓瑟 등의 고사성어가 나온다. 廉頗者,趙之良將也。 廉頗는 趙의 뛰어..

史記/列傳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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