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恬은 전국시대 秦의 관료이자 장군이다. 秦將 蒙武의 아들이자 蒙毅의 형으로, 전국통일 이후에 북쪽의 흉노를 몰아내고 만리장성의 건축 및 북방의 수비를 감독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始皇의 신임을 얻고 그의 측근이 되어 권세를 누렸으나, 진시황제 사후에 조고 등에게 모함을 당하여 태자 부소가 자살한 후 2세 황제 胡亥의 압박에 못 이겨 자살하였다.
蒙恬者,其先齊人也。
蒙恬의 선조는 齊 사람이다.
恬大父蒙驁,自齊事秦昭王,官至上卿。
몽염의 할아버지 蒙驁는 齊에서 秦으로 와서 秦昭王을 섬기며 관직이 上卿에 이르렀다.
秦莊襄王元年,蒙驁為秦將,伐韓,取成皋、滎陽,作置三川郡。
秦莊襄王 원년(기원전249년), 몽오가 秦將이 되어 韓를 침공하여 成皋와 滎陽을 빼앗고 三川郡을 설치하였다.
二年,蒙驁攻趙,取三十七城。
장양왕2년(기원전248년), 몽오가 趙를 공격해 37개의 성을 빼앗았다.
始皇三年,蒙驁攻韓,取十三城。
始皇 3년(기원전244년), 몽오가 韓을 공격해 13개의 성을 빼앗았다.
五年,蒙驁攻魏,取二十城,作置東郡。
시황5년, 몽오가 魏를 공격해 20개의 성을 빼앗고 東郡을 설치하였다.
▶ 蒙驁: ?~기원전240년. 전국시대 말기 秦將. 본래 齊 사람이었는데, 秦昭王을 섬겨 벼슬이 上卿에 이르렀고, 후에 장수가 되어 여러 번 韓, 趙, 魏를 쳐서 전공을 세웠다.
▶ 先: 先朝.
▶ 大父: 祖父.
▶ 秦昭王: 기원전325년~기원전251년, 재위:기원전306년~기원전251년. 전국시대 秦의 제28대 군주이자 제3대 왕이다. 혜문왕의 서자이며, 성은 嬴, 휘는 稷이다. 효문왕의 아버지이다.
▶ 秦莊襄王: 기원전281 ~기원전247. 전국시대 秦의 왕으로 진시황제의 아버지이다. 초명은 嬴異人이었지만, 楚출신이었던 적모 효문왕의 정비의 양자가 된 후에 楚의 후예라는 뜻의 子楚로 개명하여 嬴子楚로 불렸다. 아버지는 효문왕. 어머니는 夏姫이다.
▶ 作置: 設置.
始皇七年,蒙驁卒。
始皇7년(기원전240년), 몽오가 죽었다.
驁子曰武,武子曰恬。
몽오의 아들은 蒙武이며, 몽무의 아들은 蒙恬이다.
恬嘗書獄典文學。
몽염은 일찍이 소송을 기록하는 관리가 되어 재판에 관한 문서를 담당하였다.
始皇二十三年,蒙武為秦裨將軍,與王翦攻楚,大破之,殺項燕。
始皇23년(기원전224년), 몽무가 秦의 裨將軍이 되어 王翦과 함께 楚를 공격하여 크게 무찌르고 項燕을 죽였다.
二十四年,蒙武攻楚,虜楚王。
始皇24년(기원전223년), 몽무가 楚를 공격하여 초왕을 사로잡았다.
蒙恬弟毅。
몽염의 동생은 蒙毅이다.
▶ 書獄: 소송에 관한 기록 업무. 獄은 소송.
▶ 典文學: 소송에 관한 문헌서적을 담당하다. 典은 主管함. 文學은 문헌서적. 문건과 자료.
▶ 裨將軍: 副將軍.
▶ 王翦: 전국시대 秦將으로 秦의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웠다.
始皇二十六年,蒙恬因家世得為秦將,攻齊,大破之,拜為內史。
始皇26년(기원전221년), 몽염은 가문으로 인하여 秦將이 되어, 齊를 공격하여 크게 무찌르고, 內史로 임명되었다.
秦已并天下,乃使蒙恬將三十萬眾北逐戎狄,收河南。
秦이 천하를 병합하자 몽염에게 30만 軍士를 이끌고 북쪽으로 戎狄을 쫓아내게 하니 河南을 점거하였다.
筑長城,因地形,用制險塞,起臨洮,至遼東,延袤萬餘里。
장성을 쌓으며 지형에 따라서 험난한 요새를 만들었으며, 서쪽 臨洮에서 동쪽 遼東까지 길이가 일만여 리를 뻗어갔다.
於是渡河,據陽山,逶蛇而北。
황하를 건너 陽山을 거점으로 하여 구불구불 북쪽으로 이어갔다.
暴師於外十餘年,居上郡。
군대가 비바람을 맞으며 외지를 10여 년간 전전하다 上郡에 주둔하게 되었다.
是時蒙恬威振匈奴。
이때 몽염의 위세가 匈奴에 떨쳤다.
始皇甚尊寵蒙氏,信任賢之。
始皇은 몽씨 일족을 매우 존중하고 총애하며 신임했으며 현명하다고 여겼다.
而親近蒙毅,位至上卿,出則參乘,入則御前。
몽의와 친근하게 지냄에, 몽의의 지위가 상경에 이르렀고, 출궁함에 수레를 함께 탔고 입궁해서는 곁에 두었다.
恬任外事而毅常為內謀,名為忠信,故雖諸將相莫敢與之爭焉。
몽염은 궁 밖의 일을 맡고 몽의는 언제나 궁 안에서 계책을 세우며, 忠信의 명성이 있으니 비록 장수나 相國들도 감히 이들과 다투려 하지 않았다.
▶ 因家世得為秦將: 蒙恬과 蒙毅는 형제이며, 조부는蒙驁이고 아버지는 蒙武로 몽염의 집안은 始皇 때 대표적 武家였다.
▶ 拜: 벼슬을 주다.
▶ 內史: 朝廷 및 宮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記錄한다.
▶ 戎狄: 야만족. 고대 중국에서 서쪽 이민족을 戎이라 하고, 북쪽 이민족을 狄이라 하였다.
▶ 用制險塞: 험난한 요새를 만들다. 險塞는 험악한 지세를 이용하여 쌓아 만든 要塞. 制는 設立.
▶ 延袤: 延은 東西, 袤는 南北의 뜻으로 넓고 멀리 뻗은 길이.
▶ 逶蛇: 逶迤를 뜻한다. 길이 구불구불 멀리 이어진 모양. 蛇는 구불구불 갈 ‘이’.
▶ 暴師:軍隊가 비바람과 햇빛을 받음을 말한다. 暴은 曝과 같다.
▶ 參乘: 높은 사람을 모시고 탐.
趙高者,諸趙疏遠屬也。
趙高는 趙씨의 먼 친족이었다.
趙高昆弟數人,皆生隱宮,其母被刑僇,世世卑賤。
조고의 형제 몇 명은 모두 환관으로 살았고 그의 어머니는 형벌을 받아 죽었으므로 대대로 비천하였다.
秦王聞高彊力,通於獄法,舉以為中車府令。
진왕은 조고가 능력이 뛰어나고 형법에 능통하다고 듣고 등용해 中車府令으로 삼았다.
高既私事公子胡亥,喻之決獄。
조고는 개인적으로 공자 胡亥를 섬기었고 獄事의 판결을 가르쳤다.
高有大罪,秦王令蒙毅法治之。
조고가 큰 죄를 짓자 진왕은 몽의에게 법대로 다스리라고 명하였다.
毅不敢阿法,當高罪死,除其宦籍。
몽의는 감히 법을 어기지 못하여, 조고의 죄가 사형에 해당하나 그의 宦籍을 삭제하였다.
帝以高之敦於事也,赦之,復其官爵。
始皇는 조고가 일 처리가 익숙하다며 사면하고 그 관작을 회복시켰다.
▶ 諸趙: 조씨 왕족의 각 파.
▶ 疏遠屬: 먼 친족.
▶ 昆弟: 어머니가 같은 형제.
▶ 隱宮: 宮刑을 받은 자는 어두운 방에 있으므로 隱宮이라고 한 것이다. 宮은 음란한 자에게 내리는 형벌로 남자는 거세하고 婦人은 幽閉한다.
▶ 刑僇: 형벌을 받다. 僇은 戮과 통한다.
▶ 法治: 법에 따라 심리하다.
▶ 阿法: 법을 위배하다.
始皇欲游天下,道九原,直抵甘泉,乃使蒙恬通道,自九原抵甘泉,塹山堙谷,千八百里。
始皇는 천하를 유람하고자 九原을 경유하여 곧장 甘泉宮에 이르도록 몽염을 시켜 길을 닦도록 하니, 구원에서 감천궁까지 산을 깎고 계곡을 메움이 1,800리에 달하였다.
道未就。
그러나 길은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다.
始皇三十七年冬,行出游會稽,并海上,北走瑯邪。
始皇37년(기원전210년)겨울, 출행하여 會稽를 유람하고, 해상으로 북으로 낭야에 갔다.
道病,使蒙毅還禱山川,未反。
도중에 병에 나서 몽의를 시켜 도성으로 돌아가 산천에 기도하게 했으나 아직 돌아가지 못하였다.
始皇至沙丘崩,祕之,群臣莫知。
始皇이 沙丘에 이르러 붕어함에, 비밀에 부치니 신하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是時丞相李斯、公子胡亥、中車府令趙高常從。
당시 승상 李斯, 공자 胡亥, 중거부령 趙高가 늘 始皇을 수행하고 있었다.
高雅得幸於胡亥,欲立之,又怨蒙毅法治之而不為己也。
조고는 평소 호해에게 총애를 받았으므로 그를 옹립하고자 했으며, 또 蒙毅가 법대로 다스려 자기를 봐주지 않았음에 원한을 갖고 있었다.
因有賊心,乃與丞相李斯、公子胡亥陰謀,立胡亥為太子。
이로 인하여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승상 이사·공자 호해와 음모하여 胡亥를 태자로 세웠다.
▶ 道: 경유하다.
▶ 直抵: 곧장 ~에 이르다.
▶ 塹山堙谷: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우다. 塹은파다.
▶ 未就: 완성하지 못함. 就는 완성. 길이 완성되기 전에 始皇가 서거하였다.
▶ 始皇至沙丘崩: ≪資治通鑑綱目≫에서 “秦始皇은 辛卯(기원전210년秦始皇帝 37년) 가을 9월에 沙丘에 이르러 崩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李斯列傳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사기 권87李斯列傳>
▶ 雅: 평소.
▶ 幸: 총애.
▶ 賊心: 해치려는 마음. 사악한 생각.
太子已立,遣使者以罪賜公子扶蘇、蒙恬死。
태자로 즉위하자 사자를 보내어 공자 扶蘇와 몽염에게 죄를 씌우고 죽음을 내렸다.
扶蘇已死,蒙恬疑而復請之。
부소는 죽었으나 몽염은 의심하며 다시 명령을 청하였다.
使者以蒙恬屬吏,更置。
사자는 몽염을 관리에게 넘기고, 사람을 바꾸어 배치하였다.
胡亥以李斯舍人為護軍。
호해는 이사의 舍人을 護軍으로 삼았다.
使者還報,胡亥已聞扶蘇死,即欲釋蒙恬。
사자가 돌아와서 보고하여 호해는 부소가 죽었음을 알고 몽염을 풀어주려고 하였다.
趙高恐蒙氏復貴而用事,怨之。
조고는 몽씨가 다시 귀하게 되어 정권을 잡아서 자신에게 원한을 가짐이 두려웠다.
▶ 屬吏: 주관하는 관리에게 처리하도록 넘김.
▶ 更置: 대체하다.
▶ 舍人: 측근. 시종
▶ 用事: 정권을 잡다.
毅還至,趙高因為胡亥忠計,欲以滅蒙氏,乃言曰:
「臣聞先帝欲舉賢立太子久矣,而毅諫曰『不可』。
若知賢而俞弗立,則是不忠而惑主也。
以臣愚意,不若誅之。」
몽의가 산천에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자 조고는 호해를 위해 충성스러운 계책을 낸다면서 몽씨를 없애버리고자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선제께서 현명한 아들을 태자를 세우려고 한 지 오래되었으나 몽의가, ‘안 됩니다.’라고 간하였다 합니다.
만약 현명함을 알면서도 세우지 말라고 대답하였다면 불충이요, 군주를 미혹함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그를 죽임이 낫겠습니다.”
胡亥聽而系蒙毅於代。
호해는 이 말을 듣고 몽의를 代에 가두었다.
前已囚蒙恬於陽周。
앞서 몽염을 이미 陽周에 가두었다.
喪至咸陽,已葬,太子立為二世皇帝,而趙高親近,日夜毀惡蒙氏,求其罪過,舉劾之。
시신이 咸陽에 도착하여 장례가 끝나자 태자가 즉위하여 二世皇帝가 되었으며, 조고가 가까이 모시면서 밤낮으로 몽씨를 헐뜯으며 그 죄과를 찾아내고 죄상을 들어 탄핵하였다.
▶ 先帝: 始皇를 말한다.
▶ 惑: 미혹.
▶ 系: 구금하다.
▶ 喪: 運柩.
▶ 舉劾: 죄상을 들어 탄핵하다. 列举罪行、过失加以弹劾
子嬰進諫曰:
子嬰이 간언하였다.
「臣聞故趙王遷殺其良臣李牧而用顏聚,燕王喜陰用荊軻之謀而倍秦之約,齊王建殺其故世忠臣而用后勝之議。
“신이 듣기에 옛날 趙王 遷은 良臣 李牧을 죽이고 顏聚를 등용했고, 燕王 喜는 은밀히 荊軻의 계책을 써서 秦과의 약속을 배반했으며, 齊王 建은 선대의 충신을 죽이고 后勝의 건의를 채용하였습니다.
此三君者,皆各以變古者失其國而殃及其身。
이 세 군주는 모두 각각 옛것을 바꾸어, 나라를 잃었고 재앙이 그들 몸에 닥쳤습니다.
今蒙氏,秦之大臣謀士也,而主欲一旦棄去之,臣竊以為不可。
지금 몽씨는 秦의 대신이며 모사인데 주상께서 하루아침에 이들을 버리려 하니, 신은 삼가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臣聞輕慮者不可以治國,獨智者不可以存君。
신이 알기로는, 경솔한 생각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으며, 혼자의 지혜로는 군주의 자리를 보전할 수 없습니다.
誅殺忠臣而立無節行之人,是內使群臣不相信而外使鬬士之意離也,臣竊以為不可。」
충신을 죽이고 절조가 없는 자를 기용하면, 안으로는 신하들이 서로 믿지 않게 하고, 밖으로는 戰士의 마음을 離反시킬 터이니, 신은 삼가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 子嬰: 嬴子嬰. 始皇의 황태자 扶蘇의 장남.
▶ 趙王遷: 趙王 遷7년(기원전229년), 秦이 趙에 반간계를 써서 이목과 사마상이 반란을 꾀한다하니 조왕 천은 이목을 죽이고 안취를 장군으로 삼았는데 대패하여 趙가 멸망하였다. <사기 권81廉頗藺相如列傳>
▶ 燕王喜陰用荊軻: 荊軻는 燕의 사신으로 위장하여 값진 보물과 함께 땅을 바치겠다는 뜻으로 督亢이란 지역의 지도를 바치기로 하였다. 진왕 정이 백관들을 모아놓고 사신을 접견하였는데, 이때 荊軻가 지도 속에 감춰둔 단검을 빼 들고 진왕 정을 죽이려고 하다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사기 권86. 자객열전>
▶ 倍: 背와 통하여 배반하다.
▶ 齊王 建: 기원전221년 秦이 齊를 공격하자 齊王 建은 卽墨大夫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後勝의 말을 들어 秦에 항복하였다. 秦에서는 그를 共城의 숲속에 가두어 굶어죽였다. <사기 권46. 田敬仲完世家>
▶ 殃及: 재앙이 미침.
▶ 輕慮: 경솔한 생각. 얕은 생각.
▶ 節行: 절개 있는 행실.
胡亥不聽。
호해가 듣지 않았다.
而遣御史曲宮乘傳之代,令蒙毅曰:
御史 曲宮을 驛車를 타고 代로 보내어 몽의에게 명령하였다.
「先主欲立太子而卿難之。
“선제께서 태자를 세우려 함에 경은 그것을 꺼렸다.
今丞相以卿為不忠,罪及其宗。
그래서 승상은 경이 불충하니 죄가 일족에 미치게 하라고 한다.
朕不忍,乃賜卿死,亦甚幸矣。
짐은 차마 그지 못하여 경에게 죽음을 내리니, 그나마 매우 다행이다.
卿其圖之!」
경은 깊이 생각해 보라!”
▶ 乘傳: 驛車를 타다(명을 받들어 사신으로 감을 뜻함). 乘坐驿车. 傳은 驛, 驛站, 驛車
▶ 難: 非難.
▶ 圖: 고려. 깊이 생각하여 헤아림.
毅對曰:
몽의가 말하였다.
「以臣不能得先主之意,則臣少宦,順幸沒世。
“신이 선제의 뜻을 몰랐음에 대하여 말하자면, 신은 젊어서 벼슬하여 붕어하실 때까지 총애를 받았습니다.
可謂知意矣。
뜻을 알았다고 말할 만합니다.
以臣不知太子之能,則太子獨從,周旋天下,去諸公子絕遠,臣無所疑矣。
신이 태자의 능력을 몰랐음에 대하여 말하자면, 태자만이 홀로 隨從하며 천하를 두루 돌아보셨으니, 공자들보다 훨씬 뛰어남을 신은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夫先主之舉用太子,數年之積也,臣乃何言之敢諫,何慮之敢謀!
선제께서 태자로 삼음은 몇 년 동안의 결과인데, 신이 무슨 말로 감히 간언하고, 무슨 생각으로 모의하겠습니까!
非敢飾辭以避死也,為羞累先主之名,願大夫為慮焉,使臣得死情實。
감히 핑계를 대어서 죽음을 피함이 아니라, 선제의 명예에 누를 끼침이 부끄럽기 때문이니, 대부께서는 이 점을 헤아리셔서 신이 실정을 알고 죽게 해주십시오.
且夫順成全者,道之所貴也;
刑殺者,道之所卒也。
순리에 따라 생명을 보전함이 도에서 귀하게 여기는 바이며,
형벌로 죽임은 도에서 낮게 여기는 바입니다.
昔者秦穆公殺三良而死,罪百里奚而非其罪也,故立號曰『繆』。
옛날 秦穆公이 세 명의 어진 신하를 죽였고, 百里奚에게 죄를 물었으나 죄를 물을 일이 아니었으므로, <繆>이라는 시호를 주었습니다.
昭襄王殺武安君白起。
昭襄王은 武安君 白起를 죽였습니다.
楚平王殺伍奢。
楚平王은 伍奢를 죽였습니다.
吳王夫差殺伍子胥。
오왕 夫差는 伍子胥를 죽였습니다.
此四君者,皆為大失,而天下非之,以其君為不明,以是籍於諸侯。
이 네 군주는 모두 커다란 실수를 범하여 천하 사람이 비난하고 있으며, 그 군주들이 현명하지 못하였다고 제후 사이에 藉藉합니다.
故曰『用道治者不殺無罪,而罰不加於無辜』。
그러므로 ‘도리로 다스리는 자는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며, 무고한 자를 벌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唯大夫留心!」
대부께서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使者知胡亥之意,不聽蒙毅之言,遂殺之。
사자는 호해의 뜻을 알고 있었으므로 몽의의 말을 듣지 않고 마침내 몽의를 죽였다.
▶ 以臣不能得先主之意: 以는 전치사로서 말하고자 하는 논점의 기준을 제시한다. 현대 중국어의 “以 … 論” 또는 “論 …”에 해당한다. “…으로 말하자면” [신이 선주의 뜻을 알 수 없음에 대하여 말하자면] 허사 以 참조
▶ 順幸: 총애를 받다.
▶ 飾詞: 구실. 핑계.
▶ 羞累: 선제의 명예에 누를 끼쳐 부끄럽다.
▶ 貴: 숭상하다.
▶ 秦穆公殺三良而死: 진목공39년, 목공이 죽자 雍에 안장하였으며, 177명을 순장했는데, 秦의 어진 신하였던 子車氏의 세 아들 俺息, 仲行, 鍼虎 세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秦의 사람들이 이들을 애도하며 ‘黃鳥’라는 시를 지어 노래하였다. <사기권5秦本紀>
▶ 罪百里奚: 진목공이 소를 키우던 백리해를 염소가죽 다섯 장을 楚에 예물로 보내서 秦으로 데려와 좌서장으로 임명하였고 진목공이 鄭을 치려하자 만류하였지만 진목공은 듣지 않고 鄭을 공격했으나 晉에 의해 대패하였다. <사기 권5진본기>
▶ 立號曰「繆」: 시호를 <繆>으로 받았다. 목은 繆(틀릴‘류’)로 발음될 수 있어 부정적인 의미의 시호를 받았으므로 잘못 받았다고 한 것이다.
▶ 昭襄王殺武安君白起: 백기는 長平전투에서 趙軍에 대승을 거둔 다음 항복한 趙軍 40여만 명을 하룻밤 사이에 구덩이에 묻어 죽여 천하를 경악시켰다. 그 후 秦이 邯鄲을 포위했다가 실패했는데, 백기는 원래 이 전투에 찬성하지 않아 병을 핑계로 참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士伍로 강등되고, 相國 범수와 틈이 벌어져 자결하고 말았다. <사기 권73백기왕전열전>
▶ 伍奢: 伍子胥의 아버지이며 費無忌의 흉계로 인하여 楚平王의 노여움을 사 아들 伍尙과 함께 처형되었으며 오자서는 吳로 달아났다. <사기 권66오자서열전>
▶ 吳王夫差殺伍子胥: 백비가 오자서를 모함하여 오왕 부차가 오자서에게 자결하도록 칼을 내리니 오자서는 한탄하며 자결하였다. 부차는 오자서의 시신을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담아 강에 던져 버렸다. <사기 권66오자서열전>
▶ 籍: 자자하다(籍藉--: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려 떠들썩하다) 籍=籍
二世又遣使者之陽周,令蒙恬曰:
「君之過多矣,而卿弟毅有大罪,法及內史。」
2세 황제는 다시 사자를 양주로 보내서 몽염에게 명령하였다.
“그대의 잘못이 많고 경의 동생 蒙毅가 큰 죄를 지었기에, 형벌이 內史에게 미쳤다.”
恬曰:
「自吾先人,及至子孫,積功信於秦三世矣。
몽염이 말하였다.
“저의 선조로부터 자손에 이르기까지 쌓은 공로가 진실로 秦 3대에 이릅니다.
今臣將兵三十餘萬,身雖囚系,其勢足以倍畔,然自知必死而守義者,不敢辱先人之教,以不忘先主也。
지금 신은 병사 30여 만을 이끌고 있기에 몸은 비록 감금되어 있으나, 그 세력이 배반하기에 충분한데도, 틀림없이 죽을 줄 자신이 알면서 신의를 지킴은 감히 선조의 가르침을 욕되게 할 수 없으며 선제의 은덕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昔周成王初立,未離襁緥周公旦負王以朝,卒定天下。
옛날 周 成王이 갓 즉위했을 때 아직 포대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주공 周公 旦이 왕을 업고 조정에 나와서 마침내 천하를 평정하였습니다.
▶ 法及: 연좌하다. 연루되다.
▶ 倍畔: 背叛. 倍는 背와 통하여 배반하다. 畔은 叛과 통한다.
▶ 襁褓: 포대기.
▶ 周公 旦: 周나라 文王의 아들이자 武王의 동생이다. 성은 姬, 이름은 旦, 시호는 文公이다. 아들이 魯의 제후로 봉해진 이래 노의 시조로서 받들어졌다. 통칭은 周公이라고 불린다. 형인 무왕을 보좌하였고, 무왕 사후엔 그의 어린 아들인 성왕을 보좌하고 주나라 건국 이후의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켰다. 강태공과 소공 석과 함께 주의 창업 공신의 한 사람이다. <史記 卷33. 魯周公世家>
及成王有病甚殆,公旦自揃其爪以沈於河,曰:
『王未有識,是旦執事。
有罪殃,旦受其不祥。』
成王이 병들어 위독하자 주공은 자신의 손톱을 자르고 황하에 던지며 말하였습니다
‘왕에게 아직 식견이 없어서 제가 나랏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죄와 재앙이 있다면 제가 그 不祥함을 받겠습니다.’
乃書而藏之記府,可謂信矣。
그리고는 문서로 적어서 기록보관소에 간직했으니 충성스럽다고 할 만합니다.
及王能治國,有賊臣言:
『周公旦欲為亂久矣,王若不備,必有大事。』
왕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되자 賊臣이 말하였습니다.
‘주공 단은 반란을 일으키려 한 지 오래되었으니 왕께서 만약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큰일이 날 터입니다.’
王乃大怒,周公旦走而奔於楚。
왕이 크게 노하자 주공 단은 楚로 달아났습니다.
成王觀於記府,得周公旦沈書,乃流涕曰:
『孰謂周公旦欲為亂乎!』
성왕이 문서보관소에서 기록을 보다가, 주공 단이 물에 손톱을 가라앉히며 작성한 글을 발견하자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습니다.
‘어떤 놈이 주공 단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말했는가!’
殺言之者而反周公旦。
말한 자를 죽이고 주공 단을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 殆:위태하다.
▶ 公旦自揃其爪以沈於河: 당초 王이 어렸을 때 병이 났는데 주공은 바로 자신의 손톱을 잘라 황하에 던지며 “왕이 아직 어려서 식견이 없습니다. 神의 명을 어긴 자는 이 단이옵니다.”라고 축원하였다. 그리고 축문은 보관소에 간직하였다. 성왕의 병이 모두 나았다. (初, 成王少時, 病, 周公乃自揃其蚤沈之河, 以祝於神曰:
「王少未有識, 奸神命者乃旦也.」亦蔵其策於府. 成王病有瘳. <史記. 卷33魯周公世家>
▶ 揃爪: 손톱을 자르다.
▶ 不祥: 불길함. 상서롭지 못함. 재앙
▶ 記府: 문서를 간직하여 두던 곳. 기록보관소.
▶ 周公旦欲為亂久矣: 성왕이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자, 누군가가 주공을 중상했고, 주공은 楚로 달아났다. 성왕이 보관소를 열어 주공의 축문을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주공을 돌아오게 하였다. (及成王用事, 人或譖周公, 周公奔楚. 成王発府, 見周公祷書, 乃泣, 反周公. <史記 卷33魯周公世家>
▶ 大事: 여기서는 반란을 말한다.
故《周書》曰
『必參而伍之』。
그래서 <周書>에서 말하였습니다.
‘반드시 반복하여 자세히 살펴라.’
今恬之宗,世無二心,而事卒如此,是必孽臣逆亂,內陵之道也。
지금 신의 종족은 대대로 두 마음을 품지 않았는데 일이 갑자기 이렇게 됨은 틀림없이 불충한 신하가 반란하려 안으로 능멸하는 말을 했기 때문일 터입니다.
夫成王失而復振則卒昌;
桀殺關龍逢,紂殺王子比干而不悔,身死則國亡。
成王은 실수하고도 다시 떨치고 일어나 마침내 창성하였으며,
桀王은 關龍逢을 죽이고 紂王은 왕자 比干을 죽이고도 뉘우치지 않아서 자신은 죽고 나라는 망하였습니다.
臣故曰過可振而諫可覺也。
그러므로 신은 ‘잘못을 바로잡고 간언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씀드립니다.
察於參伍,上聖之法也。
반복하여 자세히 살핌이 위로 聖君의 도리입니다.
凡臣之言,非以求免於咎也,將以諫而死,願陛下為萬民思從道也。」
신의 말씀은 모두 허물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차 간언하여 죽으려 함이니, 부디 폐하께서는 만민을 위해 생각하시되 도리를 따르십시오.”
▶ 周書: 원본이 분실되고 남은 편들로 구성된 周書를 말한다.
▶ 必參而伍之: 경험에 비추어 공적을 비교하고 반복하여 자세히 살펴 실수를 꾸짖음. <韓非子 備內> 參伍는 여러 가지 징후를 비교하고 분석하여 진단함을 말한다.
▶ 孽臣: 불충한 신하. 趙高를 말한다.
▶ 內陵: 내부에서 능멸하다. 陵은 우롱하다. 능멸하다.
▶ 桀殺關龍逢: 夏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걸왕의 충신 關龍逢이 直諫을 하다 걸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 紂殺王子比干: 은나라 紂王의 숙부인 비간은 주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심장을 가르는 형벌로 죽임을 당하였다. <史記 卷3殷本紀>
▶ 咎: 허물. 죄과
使者曰:
「臣受詔行法於將軍,不敢以將軍言聞於上也。」
사자가 말하였다.
“신은 조서를 받들어 장군에게 법을 집행할 뿐, 감히 장군의 말을 주상에게 아뢰지는 못합니다.”
蒙恬喟然太息曰:
「我何罪於天,無過而死乎?」
몽염이 탄식하하였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잘못도 없이 죽는가?”
良久,徐曰:
「恬罪固當死矣。
起臨洮屬之遼東,城塹萬餘里,此其中不能無絕地脈哉?
此乃恬之罪也。」
한참 지나서 천천히 말하였다.
“내 죄는 참으로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시작하여 요동에 닿기까지 장성을 일만 여리나 쌓았으니, 그중에 地脈을 끊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나의 죄로다.”
乃吞藥自殺。
이에 약을 삼키고 자살하였다.
▶ 詔: 詔書. 황제의 명령을 적은 문서.
▶ 喟然: 한숨을 쉬며 서글프게 탄식하는 모양
▶ 太息: 탄식.
▶ 良久: 아주 오랫동안. 꽤 오래.
▶ 屬: 서로 잇닿다.
太史公曰:
吾適北邊,自直道歸,行觀蒙恬所為秦筑長城亭障,塹山堙谷,通直道,固輕百姓力矣。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북쪽 변방에 갔다가 곧은 길을 통해 돌아왔는데, 길을 가면서 몽염이 秦을 위해 쌓은 장성과 亭障을 보니, 산을 깎고 계곡을 메워 곧은 길로 통하게 했으니 백성의 勞力을 가벼이 여겼음이 분명하다.
夫秦之初滅諸侯,天下之心未定,痍傷者未瘳,而恬為名將,不以此時彊諫,振百姓之急,養老存孤,務修眾庶之和,而阿意興功,此其兄弟遇誅,不亦宜乎!
秦이 갓 제후을 멸함에, 천하의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고 상처 입은 사람도 낫지 않았는데, 몽염은 명색이 장군이면서, 이때 강력히 간언하거나 백성의 위급함을 바로잡거나, 노인과 고아들을 돌보거나, 백성의 화합을 닦음에 힘쓰지 않고
진시황의 뜻에 영합하여 공을 세웠으니, 이렇게 형제가 죽임을 당함도 마땅한 일이 아닌가!
何乃罪地脈哉?
어찌하여 지맥에 죄를 묻는가?”
▶ 亭障: 요새. 亭은 망루에서 관망하는 자가 머무는 곳이고, 障은 산속의 작은 城이다. 변방의 要害處에 별도로 성을 쌓고 관리와 軍을 배치하여 적을 막았다.
▶ 痍傷: 전쟁으로 인한 상처.
▶ 未瘳: 아직 낫지 않음.
▶ 創痍未瘳: 칼에 맞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뜻으로, 전란의 피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음을 이르는 말.
▶ 存孤: 고아와 약한 자를 돌보다.
▶ 阿意: 군주의 뜻에 영합하다. 阿는 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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