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耳陳餘列傳은 刎頸之交를 맺은 張耳와 陳餘의 合傳이다.
張耳와 陳餘는 전국 시대 말기 魏의 大梁 사람이다.
장이는 陳餘와 함께 刎頸之交를 맺었으며, 秦 2세 황제 호해 원년에 陳涉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여와 함께 校尉가 되어 武臣을 따라 趙 땅을 정벌하였다.
무신이 趙王이 되자 장이는 右丞相에 올랐고, 진여는 大將軍이 되었다. 그 후 장이와 진여는 사이가 벌어져 진여가 장이를 공격하자 장이는 劉邦에게 투항했고, 진여는 趙王 헐을 도와 趙王으로 세웠으나 漢의 장수 한신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 楚漢戰爭 : 기원전 206년 秦의 멸망 후 서쪽의 楚霸王 항우와 漢王 유방과의 5년에 걸친 전쟁. 秦의 급격한 통일 정책과 농민에 대한 과중한 賦役으로 기원전 210년 시황제의 죽음 이후 각지에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기원전 206년 옛 6국 중의 楚 귀족인 項羽가 秦을 타도하였다. 이후 항우와 그의 협력자였던 劉邦과의 5년간에 걸친 死鬪가 벌어졌다.
張耳者,大梁人也。
張耳는 大梁 사람이다.
其少時,及魏公子毋忌為客。
그가 젊었을 때 魏公子 毋忌에게 가서 빈객이 된 적이 있었다.
張耳嘗亡命游外黃。
장이는 일찍이 망명하여 外黃에서 객지 생활을 하였다.
外黃富人女甚美,嫁庸奴,亡其夫,去抵父客。
외황의 부잣집 딸이 매우 아름다웠는데, 용렬한 놈에게 시집갔다가 도망쳐서 아버지의 옛 빈객에게 가서 몸을 의지하였다.
父客素知張耳,乃謂女曰:
아버지의 빈객은 평소에 장이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말하였다.
「必欲求賢夫,從張耳。」
“꼭 현명한 남편을 구하려면, 장이를 따라라.”
▶ 大梁 : 魏의 수도. 지금의 하남 개봉시.
▶ 魏公子 毋忌: 위무기는 전국시대 魏의 저명한 군사가로 信陵에 봉해지면서 信陵君으로 불리었다. 전국시대 4공자 중 하나다.
▶ 外黃 : 趙의 땅.
▶ 父客 : 아버지의 옛 빈객.
▶ 抵 : 몸을 의탁하다.
女聽,乃卒為請決,嫁之張耳。
그녀는 말을 듣고, 마침내 남편과 이혼을 요구하고 장이에게 시집을 갔다.
張耳是時脫身游,女家厚奉給張耳,張耳以故致千里客。
장이는 이때 몸을 빼어 객지에서 생활하였으나, 여자의 집에서 장이를 후하게 돈을 대주어서 장이는 천리 밖의 빈객을 부를 수 있었다.
乃宦魏為外黃令。
魏에서 벼슬을 하여 外黃의 현령이 되었다.
名由此益賢。
명성이 이로 인하여 더욱 높아졌다.
陳餘者,亦大梁人也,好儒術,數游趙苦陘。
陳餘 또한 대량 사람이며 儒家의 학설을 좋아하여 趙의 苦陘에서 여러 차례 游學하였다.
富人公乘氏以其女妻之,亦知陳餘非庸人也。
부자 公乘氏가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는데, 이 또한 진여가 보통 사람이 아닌 줄 알았기 때문이다.
餘年少,父事張耳,兩人相與為刎頸交。
진여의 나이가 어렸으므로 장이를 아버지처럼 섬겼으며, 두 사람은 서로 刎頸之交를 맺었다.
秦之滅大梁也,張耳家外黃。
秦이 대량을 멸망시킬 때 장이는 외황에 살고 있었다.
高祖為布衣時,嘗數從張耳游,客數月。
漢高祖가 평민이었을 때 자주 장이를 따라 노닐기도 했으며, 몇 달 동안 식객이 되기도 하였다.
▶ 請決 : 이혼을 요구하다.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감.
▶ 宦 : 벼슬. 관직.
▶ 儒術 : 유가의 학설.
▶ 刎頸交 : 刎頸之交.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우정 또는 그런 벗’이라는 뜻으로 生死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을 말한다. 刎頸은 목을 벰.<사기 권81 廉頗藺相如列傳>
秦滅魏數歲,已聞此兩人魏之名士也,購求有得張耳千金,陳餘五百金。
秦이 魏를 멸망시킨 지 몇 년 후에 이 두 사람이 魏의 名士라는 소문을 듣고 현상금을 걸고 찾았는데 장이는 1천 금, 진여는 5백 금이었다.
張耳、陳餘乃變名姓,俱之陳,為里監門以自食。
장이와 진여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함께 陳縣으로 가서 어떤 마을의 문지기 노릇을 하며 살아갔다.
兩人相對。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문을 지키고 있었다.
▶ 布衣 : 평민. 백성.
▶ 高祖 : 漢 高祖. 漢나라 개국 군주 劉邦을 말한다.
▶ 購求 : 현상금을 걸어서 체포하다.
▶ 監門 : 문지기.
里吏嘗有過笞陳餘,陳餘欲起,張耳躡之,使受笞。
마을의 관리가 잘못이 있다고 진여를 매질한 적이 있는데, 진여가 일어나려 하자, 장이가 진여를 밟아 매를 맞도록 하였다.
吏去,張耳乃引陳餘之桑下而數之曰:
「始吾與公言何如?
今見小辱而欲死一吏乎?」
관리가 떠나자 장이가 진여를 뽕나무 아래로 데려가서 꾸짖었다.
“당초 나와 공이 어떻게 약속하였소?
지금 작은 모욕을 당했다고 일개 관리에게 죽으려고 하오?”
陳餘然之。
진여가 옳다고 여겼다.
秦詔書購求兩人,兩人亦反用門者以令里中。
秦이 詔書를 내려 현상금을 걸고 두 사람을 찾았는데, 두 사람은 오히려 문지기로서 마을에 조서를 알렸다.
▶ 笞 : 매질하다.
▶ 躡 : 밟다.
▶ 數 : 나무라다. 책망하다.
▶ 詔書 : 황제의 명령을 적은 문서.
陳涉起蘄,至入陳,兵數萬。
陳涉이 蘄에서 일어나 陳縣에 이르럼에, 군사가 數萬이었다.
張耳、陳餘上謁陳涉。
장이와 진여가 진섭에게 뵙기를 청하였다.
涉及左右生平數聞張耳、陳餘賢,未嘗見,見即大喜.
진섭과 측근들이 평생 장이와 진여가 현명하다고 자주 들었으나, 아직 만난 적이 없어서 만나자 매우 기뻐하였다.
陳中豪傑父老乃說陳涉曰:
「將軍身被堅執銳,率士卒以誅暴秦,復立楚社稷,存亡繼絕,功德宜為王。
且夫監臨天下諸將,不為王不可,願將軍立為楚王也。」
陳縣의 호걸과 원로들이 진섭을 설득하였다.
“장군이 몸소 갑옷을 입고 무기를 잡고 사졸을 거느리려 포악한 秦을 멸하고 楚의 社稷을 다시 세워서, 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후사를 이으셨으니, 공덕으로 마땅히 왕이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천하의 장수들을 감독함에, 왕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컨대 장군께서 즉위하여 초왕이 되십시오.”
▶ 陳涉 : 陳勝. 陽城 사람으로 字는 涉이다. 秦의 학정에 맨 먼저 반기를 들고 일어난 인물로, 본래 秦 농민 출신으로 戍卒로 가던 중 봉기하자 이곳저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秦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끝내 멸망하였다.<사기 권48. 陳涉世家>
▶ 數 : 자주.
▶ 被堅執銳 : 갑옷을 입고 무기를 잡다. 堅은 견고한 갑옷. 銳는 예리한 무기.
▶ 存亡繼絕 : 存亡斷絕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멸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단절된 후사를 지속되게 함.
▶ 監臨 : 감독에 임함.
陳涉問此兩人,兩人對曰:
진섭이 이를 두 사람에게 물으니, 두 사람이 대답하였다.
「夫秦為無道,破人國家,滅人社稷,絕人後世,罷百姓之力,盡百姓之財。
“저 秦은 無道하여 남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남의 사직을 없앴으며, 남의 후세를 끊어놓았고, 백성의 힘을 고달프게 하고 백성의 재물을 消盡하였습니다.
將軍瞋目張膽,出萬死不顧一生之計,為天下除殘也。
장군께서 눈을 부릅뜨고 용기를 내어서, 만 번 죽을지언정 한 번 살기를 돌보지 않는 계책을 내서 천하를 위하여 殘賊을 제거하려 하십니다.
今始至陳而王之,示天下私。
지금 비로소 陳縣에 도착하여 왕이 되심은 천하에 사욕을 보이는 것입니다.
願將軍毋王,急引兵而西,遣人立六國後,自為樹黨,為秦益敵也。
부디 장군께서는 왕이 되지 마십시오.
급히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사람을 파견하여 6국의 후손을 왕으로 세움은, 장군을 위하여 같은 편을 만드는 것이고, 秦에게는 적을 늘리는 것입니다.
敵多則力分,與眾則兵彊。
적이 많으면 힘이 분산되고, 무리와 함께하면 군사력이 강해집니다.
如此野無交兵,縣無守城,誅暴秦,據咸陽以令諸侯。
이렇게 하면 들에서는 싸우는 병사가 없어지고, 縣에서는 성을 지키는 자가 없어져서, 포악한 진을 誅罰할 수 있으니, 咸陽을 차지하여 제후를 호령하십시오.
諸侯亡而得立,以德服之,如此則帝業成矣。
제후는 망하였다가 복위하였으니, 덕으로써 복종시키십시오. 그러면 帝業을 이룰 수 있습니다.
今獨王陳,恐天下解也。」
이제 다만 陳縣의 왕이 되시어 천하의 제후가 와해될까 염려됩니다.”
▶ 罷 : 고달프다. 罷는 고달플 ‘피’.
▶ 瞋目 : 두 눈을 부릅뜸. 눈을 부라리다.
▶ 張膽 : (담을 크게 하여) 용기를 내다.
▶ 瞋目張膽 : 대단히 용기를 냄을 이르는 말
▶ 六國 ; 당시의 韓, 衛, 趙, 燕, 齊, 楚의 6국.
▶ 後 : 후대.
▶ 樹黨 : 당을 결성하다. 당파를 세우다.
▶ 解 : 瓦解.
陳涉不聽,遂立為王。
진섭이 듣지 않고 왕위에 올랐다.
陳餘乃復說陳王曰:
「大王舉梁、楚而西,務在入關,未及收河北也。
진여는 이에 다시 陳王을 설득하였다.
“대왕께서는 梁과 楚의 병사를 일으켜 서쪽으로 감에 힘쓰시느라, 아직 河北을 수복하지 못하셨습니다.
臣嘗游趙,知其豪桀及地形,願請奇兵北略趙地。」
신이 趙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서 그곳의 호걸과 지형을 잘 알고 있으니, 부디 奇兵이 북쪽으로 趙 땅을 공략하기를 청합니다.”
於是陳王以故所善陳人武臣為將軍,邵騷為護軍,以張耳、陳餘為左右校尉,予卒三千人,北略趙地。
이에 陳王이 이전부터 친하던 陳縣 사람 武臣을 장군으로 삼고, 邵騷를 護軍으로 삼았으며, 장이와 진여로써 좌우 校尉로 삼아서, 3천 명의 병사를 주어 북쪽으로 趙 땅을 공략하게 하였다.
武臣等從白馬渡河,至諸縣,說其豪桀曰:
武臣 등이 白馬津에서 황하를 건너 여러 현에 들르며 그곳의 호걸들을 설득하였다.
「秦為亂政虐刑以殘賊天下,數十年矣。
“秦이 어지러운 정치와 가혹한 형벌로써 백성을 잔혹하게 해친 지 수십 년입니다.
北有長城之役,南有五嶺之戍,外內騷動,百姓罷敝,頭會箕斂,以供軍費,財匱力盡,民不聊生。
북쪽에 長城을 쌓는 奴役이 있고, 남쪽에 五嶺을 戍자리가 있어서, 안팎으로 騷動이 있고 백성들이 피폐한 실정인데도,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여서 군비로 충당하니, 재물과 기력이 다하였으므로,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重之以苛法峻刑,使天下父子不相安。
게다가 가혹한 법령과 혹독한 형벌을 더하니, 천하 사람들이 서로 불안하였습니다.
陳王奮臂為天下倡始,王楚之地,方二千里,莫不響應,家自為怒,人自為鬬,各報其怨而攻其讎,縣殺其令丞,郡殺其守尉。
陳王께서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천하를 위해 倡始하여 초 땅에서 왕이 되시니, 사방 2천 리의 땅에서 호응하지 않음이 없어서, 집마다 자신을 위하여 분노하고 사람마다 자신을 위하여 싸워서, 제각기 그들의 원한을 갚고 원수를 공격하여, 縣에서는 縣令과 縣丞을 죽이고, 郡에서는 郡守와 軍尉를 죽였습니다.
今已張大楚,王陳,使吳廣、周文將卒百萬西擊秦。
이제 이미 大楚國을 건립하여 陳에서 왕위에 오르시고는 吳廣과 周文에게 군사 백만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秦을 공격하게 하셨습니다.
於此時而不成封侯之業者,非人豪也。
이때를 틈타서 封侯의 대업을 이루지 못하는 자는 사람 중에 호걸이 아닙니다.
諸君試相與計之!
그대들 한번 서로 잘 생각해보십시오!
夫天下同心而苦秦久矣。
천하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秦에 시달리기가 오래되었다고 느낍니다.
因天下之力而攻無道之君,報父兄之怨而成割地有土之業,此士之一時也。」
천하의 힘에 의지하여 무도한 군주를 공격하여, 부모와 형제의 원수를 갚고 땅을 나누어 봉토를 가지는 대업을 이룸에, 이번이 대장부의 좋은 기회일 터입니다.”
▶ 武臣 : 秦末 陳 출신으로 陳勝이 왕을 칭한 뒤 장군에 임명되자 張耳와 陳餘를 左右校尉로 삼고, 병사 3천을 이끌고 북쪽으로 趙 땅을 공략한 뒤 邯鄲으로 진격하여 스스로 趙王이 되었다.
▶ 殘賊天下 : 천하 백성을 잔인하게 해침. 賊은 해치다.
▶ 長城之役 : 秦 始皇 33년(기원전 214년)몽염에게 3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장성을 쌓으며 지형에 따라서 험난한 요새를 만들었으며, 서쪽 臨洮에서 동쪽 遼東까지 길이가 일만여 리를 뻗어갔다.<사기 권88. 몽염열전>
▶ 五嶺 : 大庾嶺, 越城嶺, 騎田嶺, 萌渚嶺, 都龐嶺을 말한다.
▶ 頭會箕斂 : 사람 수에 따라 곡식을 내게 하여 키로 쓸어 모으듯이 거두어들임. 곧,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함을 이름.
▶ 匱 : 다하다. 상자.
▶ 苛法峻刑 : 가혹한 법령에 혹독한 형벌.
▶ 奮臂 : 팔을 치켜들다. 팔뚝을 걷어붙임.
▶ 倡始 : 앞장서다.
▶ 張大楚 : 陳勝이 농민정권을 세우고자 국호를 <張楚>라 하였다. 張은 楚의 세력을 확대한다는 뜻.
豪桀皆然其言。
호걸들이 모두 이 말에 수긍하였다.
乃行收兵,得數萬人,號武臣為武信君。
이리하여 행군하며 군사를 거두어 수만을 얻었고, 武臣을 武信君이라고 칭하였다.
下趙十城,餘皆城守,莫肯下。
趙 땅의 10여 城을 함락시켰으나, 나머지는 성을 지키며 항복하려 하지 않았다.
乃引兵東北擊范陽。
이에 군사를 이끌고 동북쪽으로 가서 范陽을 공격하였다.
范陽人蒯通說范陽令曰:
「竊聞公之將死,故弔。
雖然,賀公得通而生。」
범양 사람인 蒯通이 범양 현령을 설득하였다.
“삼가 공께서 곧 돌아가신다고 듣고 조문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공께서 이 괴통을 얻어 살게 되심을 축하합니다.”
范陽令曰:
「何以弔之?」
범양 현령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조문한다는 말이오?”
▶ 莫肯下 : 항복하지 않다. 下는 항복.
▶ 蒯通 : 蒯徹. 前漢 涿郡 范陽 사람으로 본명은 徹이다. 陳勝이 반란을 일으켜 武臣을 보내 趙 땅을 차지하자 그가 범양 현령을 설득해 항복하게 하는 한편 무신을 설득해 맞이하게 하였다. 무신이 그 계책을 받아들여 싸우지 않고도 燕·趙의 30여 성을 차지할 수 있었다. 나중에 韓信에게 유방에게서 독립하라고 권했는데, 듣지 않자 미친 사람처럼 행세하며 숨어 지냈다.<漢書 권45 蒯通列傳>
對曰:
「秦法重,足下為范陽令十年矣,殺人之父,孤人之子,斷人之足,黥人之首,不可勝數。
괴통이 대답하였다.
“秦의 법이 준엄하여 공께서 범양 현령이 된 지 10년, 백성의 아버지를 죽여 백성의 아들을 고아로 만들고, 백성의 발을 자르고 백성의 머리에 墨刑을 가함을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然而慈父孝子莫敢倳刃公之腹中者,畏秦法耳。
그렇지만 慈父나 효자가 감히 공의 배에 비수를 꽂지 못함은, 秦의 법이 두려워하였을 뿐입니다.
今天下大亂,秦法不施,然則慈父孝子且倳刃公之腹中以成其名,此臣之所以弔公也。
지금 천하가 크게 혼란하여 秦의 법이 시행되지 않으니, 그렇다면 慈父·孝子가 공의 배에 비수를 꽂아 명성을 얻으려고 할 터이니, 이것이 臣이 공을 조문하는 까닭입니다.
今諸侯畔秦矣,武信君兵且至,而君堅守范陽,少年皆爭殺君,下武信君。
이제 제후들이 秦을 배반하였으며, 무신군의 군사가 곧 도착하고 공께서 범양을 굳게 지키려 하면, 젊은이들이 모두 앞다투어 공을 죽이고 무신군에 항복할 터입니다.
君急遣臣見武信君,可轉禍為福,在今矣。」
공께서 급히 신을 보내어 무신군을 만나보게 하여 전화위복할 수 있는데, 지금입니다.”
范陽令乃使蒯通見武信君曰:
「足下必將戰勝然後略地,攻得然後下城,臣竊以為過矣。
誠聽臣之計,可不攻而降城,不戰而略地,傳檄而千里定,可乎?」
범양 현령이 이에 괴통에게 무신군을 만나게 하니, 무신군에게 말하였다.
“귀하께서는 꼭 싸워 이긴 뒤에 땅을 얻고, 공격하여 성공한 뒤에 성을 함락하려고 하시는데, 신은 삼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계책을 들으시면 공격하지 않고도 성을 함락하고, 싸우지 않고도 땅을 얻을 수 있으며, 檄文만 전하고도 천 리를 평정할 수가 있을 터인데, 어떻습니까?”
武信君曰:
「何謂也?」
무신군이 물었다.
“무엇을 말하오?”
蒯通曰:
「今范陽令宜整頓其士卒以守戰者也,怯而畏死,貪而重富貴,故欲先天下降,畏君以為秦所置吏,誅殺如前十城也。
괴통이 말하였다.
“지금 범양 현령이 마땅히 그 병사를 정돈하여 막아 싸워야 할 터인데, 겁내어 죽음을 두려워하고, 탐욕스러워 부귀를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천하의 누구보다도 먼저 항복하려고 하나, 군께서 秦이 배치한 관리를 이전의 10城처럼 죽일까 두려워합니다.
然今范陽少年亦方殺其令,自以城距君。
그런데 지금 범양의 젊은이들도 바야흐로 현령을 죽이고 자신들이 성을 들어서 군에게 항거하려 합니다.
君何不齎臣侯印,拜范陽令,
范陽令則以城下君,少年亦不敢殺其令。
군께서는 어찌하여 臣에게 제후의 印을 가져가게 하여 그를 범양 현령에 임명하지 않으십니까?
범양 현령이 城을 들어서 군께 항복할 터이고, 젊은이들도 감히 그 현령을 죽이지 않을 터입니다.
令范陽令乘朱輪華轂,使驅馳燕、趙郊。
범양 현령에게 명하여 화려하게 장식한 수레를 타고 燕과 趙의 교외를 달리게 하십시오.
燕、趙郊見之,皆曰此范陽令,先下者也,即喜矣,燕、趙城可毋戰而降也。
연과 조의 교외에서 보고 모두 말하기를, ‘이 사람은 범양 현령인데, 먼저 항복한 사람이다.’라며 기뻐할 터이니, 연과 조의 성은 싸우지 않고서도 항복 받을 수 있겠습니다.
此臣之所謂傳檄而千里定者也。」
이것이 신의 소위 ‘격문을 전함으로써 천 리를 평정함.’입니다.”
武信君從其計,因使蒯通賜范陽令侯印。
무신군이 그 계책을 좇아 괴통을 사자로 보내어 범양 현령에게 제후의 인을 하사하였다.
趙地聞之,不戰以城下者三十餘城。
趙 땅에서 소문을 듣고, 싸우지 않고 성을 들어 항복한 것이 30여 城이었다.
▶ 黥 : 墨刑. 이마에 죄인이라는 표시를 먹실로 새기는 고대 형벌.
▶ 倳刃 : 칼로 찌르다. 倳: 찌를 ‘사’
▶ 檄 : 격문. 급히 알리려고 보내는 글.
▶ 距 : 拒와 통하여 항거하다.
▶ 齎 : 가져가다. 가져오다. 주다.
▶ 朱輪華轂 : 여러 가지 빛깔로 장식한 수레. 朱輪은 붉은 빛깔로 칠한 수레바퀴. 華轂은 화려한 바퀴통. 옛날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던 수레를 이르는 말.
▶ 驅馳 : 말을 몰아 빨리 달리다.
至邯鄲,張耳、陳餘聞周章軍入關,至戲卻;
邯鄲에 도착함에, 장이와 진여는 周章의 군대가 關中에 들어가서 戲水까지 이르렀다가 퇴각했음을 알았다.
又聞諸將為陳王徇地,多以讒毀得罪誅,怨陳王不其筴不以為將而以為校尉。
또 장수들이 陳王을 위해 땅을 빼앗았으나, 참소와 비방으로 죽임을 당함이 많고, 진왕이 자신들의 계책을 채택하지 않았고, 자신들을 장군이 아니라 校尉로 삼았음을 원망하고 있음을 알았다.
乃說武臣曰:
「陳王起蘄,至陳而王,非必立六國後。
이에 무신을 설득하였다.
“진왕이 蘄 땅에서 봉기한 뒤 陳縣에 이르러 왕이 되고, 꼭 六國의 後代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將軍今以三千人下趙數十城,獨介居河北,不王無以填之。
장군께서는 현재 3천 명의 군대로써 趙의 수십여 城을 항복받고 홀로 河北에 주둔하고 계시지만, 장군께서 왕이 되지 않고서는 진정시킬 수 없습니다.
且陳王聽讒,還報,恐不脫於禍。
게다가 진왕이 참소를 듣고 있으니, 돌아가서 보고하여도 화를 면치 못할까 두렵습니다.
又不如立其兄弟;不,即立趙後。
그의 형제를 왕위에 세움이 좋을 터이나, 안된다면 즉각 즉위하여 趙를 이으십시오.
將軍毋失時,時閒不容息。」
장군께서는 시기를 놓치지 마십시오. 시간이 숨쉬는 것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武臣乃聽之,遂立為趙王。
무신이 이 말을 듣고 趙王으로 즉위하였다.
以陳餘為大將軍,張耳為右丞相,邵騷為左丞相。
진여를 大將軍으로 삼고, 장이를 우승상, 邵騷를 좌승상으로 삼았다.
使人報陳王,陳王大怒,欲盡族武臣等家,而發兵擊趙。
사람을 시켜 陳王에게 알리니, 진왕이 크게 노하여 무신 등의 집안을 모두 멸족하고 군사를 보내어 趙를 공격하려 하였다.
陳王相國房君諫曰:
「秦未亡而誅武臣等家,此又生一秦也。
不如因而賀之,使急引兵西擊秦。」
그때 진왕의 相國인 房君이 간하였다.
“秦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는데 武臣 등의 집안을 죽인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秦을 낳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축하하되, 급히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秦을 치게 함이 좋겠습니다.”
陳王然之,從其計,徙系武臣等家宮中,封張耳子敖為成都君。
진왕이 옳다고 여기고, 그의 계책에 따라 무신 등의 집안사람을 궁중으로 옮겨 연금하고, 장이의 아들 敖를 成都君에 봉하였다.
▶ 周章 : 진섭의 部將.
▶ 卻 : 退卻.
▶ 徇地 : 군대를 인솔하여 점령한 땅을 순시함.
▶ 讒毀 : 참소하여 비방하다.
▶ 筴 : 계책. 筴은 점대 ‘책’.
▶ 介居 : 홀로 머물다. 介는 간격.
▶ 填 : 鎮과 통하여 진정시키다. 누르다. 塡은 진정할 ‘진’.
▶ 時間不容息 : 시간이 긴박함.
▶ 盡族 : 모두 멸족함. 族은 씨족은 멸하다.
▶ 又生一秦 : 또 秦처럼 강한 적이 생긴다는 뜻.
▶ 徙系 : 옮겨 가두다.
陳王使使者賀趙,令趣發兵西入關。
진왕이 사자를 보내어 趙에 하례하고, 군대를 일으켜 서쪽으로 關中에 들어가라고 재촉하였다.
張耳、陳餘說武臣曰:
「王王趙,非楚意,特以計賀王。
장이와 진여는 무신을 설득하였다.
“왕께서 趙王이 되심은 楚의 뜻이 아니며, 계책으로 왕께 축하했을 뿐입니다.
楚已滅秦,必加兵於趙。
楚는 秦을 멸하고 나면 틀림없이 趙를 공격할 터입니다.
願王毋西兵,北徇燕、代,南收河內以自廣。
왕께서는 서쪽에서 싸우지 마시고, 북쪽의 燕과 代를 빼앗고, 남쪽의 河內를 거두어서, 자신의 세력을 넓히시기 바랍니다.
趙南據大河,北有燕、代,楚雖勝秦,必不敢制趙。」
조가 남쪽으로 大河를 의지하고, 북쪽으로 연과 대를 차지하면, 楚가 비록 秦을 이기더라도 감히 조를 제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趙王以為然,因不西兵,而使韓廣略燕,李良略常山,張黡略上黨。
趙王이 옳다고 여겨 군대를 서쪽에서 싸우지 않고, 韓廣에게는 연을, 李良에게는 常山을, 張黶에게는 上黨을 각각 공략하게 하였다.
▶ 趣 : 促과 통하여 서두르다. 재촉하다.
▶ 計 : 책략. 계책.
▶ 加兵 : ⒈ 谓发动战争,以武力进攻。 ⒉ 谓增加兵力。
▶ 河內 : 지금의 하남 북부와 하북 남부 일대. 황하 이북을 하내라 하며 전국시대에 魏의 영토였다.
韓廣至燕,燕人因立廣為燕王。
한광의 군대가 연 땅에 이르자, 연 사람들이 한광을 燕王으로 옹립하였다.
趙王乃與張耳、陳餘北略地燕界。
趙王이 장이, 진여와 함께 북쪽으로 연의 변경을 공격하였다.
趙王閒出,為燕軍所得。
趙王이 짬을 내어 외출했다가 燕軍에게 사로잡혔다.
燕將囚之,欲與分趙地半,乃歸王。
燕將은 그를 가두어두고 조 땅의 절반을 나누어주면 왕을 돌려보내려 하였다.
使者往,燕輒殺之以求地。
사자가 가면 燕은 번번이 사자를 죽이고 땅을 요구하였다.
張耳、陳餘患之。
장이와 진여는 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有廝養卒謝其舍中曰:
「吾為公說燕,與趙王載歸。」
그때 잡일을 하는 병사가 막사의 동료들과 헤어지며 말하였다.
“내가 公을 위해 燕을 설득하여 趙王과 함께 수레를 타고 돌아오겠다.”
舍中皆笑曰:
「使者往十餘輩,輒死,若何以能得王?」
동료들이 모두 비웃었다.
“사자가 감이 10여 팀이지만 번번이 죽었는데, 네가 무슨 수로 왕을 구하겠느냐?”
▶ 韓廣 : 秦 말기에서 초한전쟁 시 燕王. 趙 上谷의 관리였는데 진승, 오광의 난 때 무신이 조 땅을 취하고 한광을 연 땅으로 파견했는데 연왕이 되었다.
▶ 閒出 : 한가한 틈을 타 외출하다.
▶ 廝養卒 : 잡일을 하는 병사. 廝:하인 시
乃走燕壁。
이에 연의 군영으로 달려갔다.
燕將見之,問燕將曰:
「知臣何欲?」
燕將이 만나보자 燕將에게 물었다.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십니까?”
燕將曰:
「若欲得趙王耳。」
燕將이 대답하였다.
“너는 趙王을 구출하고 싶겠지.”
曰:
「君知張耳、陳餘何如人也?」
물었다.
“장군께서는 장이와 진여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고 계십니까?”
燕將曰:
「賢人也。」
燕將이 대답하였다.
“현인이다.”
曰:
「知其志何欲?」
물었다.
“그들의 뜻에 무엇을 원하는지 아십니까?”
曰:
「欲得其王耳。」
말하였다.
“그들의 왕을 구하고 싶겠지.”
趙養卒乃笑曰:
「君未知此兩人所欲也。
趙의 잡일을 하는 병사가 이에 웃으며 말하였다.
“장군께서는 이 두 사람이 원하는 바를 알지 못하시는군요.
夫武臣、張耳、陳餘杖馬箠下趙數十城,此亦各欲南面而王,豈欲為卿相終己邪?
저 무신, 장이, 진여는 말채찍을 손에 쥔 것만으로 조의 수십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들도 제각기 南面하고서 왕이 되고자 하지, 어찌 卿相으로 일생을 마치려고 하겠습니까?
夫臣與主豈可同日而道哉.
무릇 신하와 왕의 지위를 어찌 같이 말할 수 있겠습니까?
顧其勢初定,未敢參分而王,且以少長先立武臣為王,以持趙心。
조의 세력이 처음 안정되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감히 땅을 셋으로 나누어 왕이 될 수가 없어서, 우선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먼저 무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서, 趙의 민심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今趙地已服,此兩人亦欲分趙而王,時未可耳。
이제 趙의 땅이 복종하고 나니, 이 두 사람 역시 조를 나누어 왕이 되려고 하나, 때가 아직 가능하지 않을 뿐입니다.
今君乃囚趙王。
그런데 공께서 趙王을 감금하고 계십니다.
此兩人名為求趙王,實欲燕殺之,此兩人分趙自立。
이 두 사람이 명분상 趙王을 구한다고 하지만, 실은 연이 그를 죽여서 이 두 사람이 조를 나누어 자립하기를 원합니다.
夫以一趙尚易燕,況以兩賢王左提右挈,而責殺王之罪,滅燕易矣。」
하나의 趙도 燕을 가볍게 여기는데, 하물며 두 현명한 왕이 서로 도와 趙王을 죽인 죄를 질책한다면, 燕을 멸망시킴은 쉽겠습니다.”
燕將以為然,乃歸趙王,養卒為御而歸。
燕將이 옳다고 여겨 趙王을 돌려보내니, 잡일을 하는 병사가 왕을 모시고 돌아왔다.
▶ 壁 : 軍壘. 軍營을 말한다.
▶ 杖馬箠 : 채찍을 쥐고 있다. 杖 : 가지고 있다. 箠 : 채찍.
▶ 左提右挈 : 왼쪽으로 끌고, 오른쪽으로 이끈다는 뜻으로, 서로 依支하고 도움을 이르는 말. 서로 부조하다. 挈은 이끌다.
李良已定常山,還報,趙王復使良略太原。
李良이 상산을 평정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니, 趙王은 다시 이량에게 太原을 공략하게 하였다.
至石邑,秦兵塞井陘,未能前。
이량이 石邑에 이르자 秦軍이 井陘을 봉쇄하여 전진할 수 없었다.
秦將詐稱二世使人遺李良書,不封,曰:
「良嘗事我得顯幸。
良誠能反趙為秦,赦良罪,貴良。」
秦將이 2세의 사자라고 속여 이량에게 서신을 보냈는데, 봉하지 않았다.
“그대는 일찍이 나를 섬기어 현달과 총애를 얻었다.
그대가 趙를 배반하고 秦을 위한다면, 그대의 죄를 용서하고 귀하게 대해주겠다.”
良得書,疑不信。
이량은 글을 받고 의심하고 믿지 않았다.
乃還之邯鄲,益請兵。
그래서 한단으로 돌아가서 원군을 청하려 하였다.
未至,道逢趙王姊出飲,從百餘騎。
한단에 도착하기 전에 길에서 趙王의 누나가 연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행렬과 마주쳤는데, 백여 기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李良望見,以為王,伏謁道旁。
이량이 멀리서 보고 왕이라 여겨서 길옆으로 비켜서 엎드려 자신의 성명을 말하였다.
王姊醉,不知其將,使騎謝李良。
왕의 누나는 술에 취해 그가 장군인 줄도 모르고 騎兵을 시켜서 이량에게 답례하게 하였다.
李良素貴,起,慚其從官。
이량은 본래 귀인 출신이었으므로, 길에서 일어나자 자신을 따르는 관리에게 부끄러웠다.
從官有一人曰:
「天下畔秦,能者先立。
且趙王素出將軍下,今女兒乃不為將軍下車,請追殺之。」
부관 한 사람이 말하였다.
“천하가 秦을 배반하니, 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왕이 됩니다.
게다가 趙王은 본래 장군의 휘하에서 나왔는데, 지금 여자조차 장군을 위해 수레에서 내리지 않으니, 쫓아가서 죽이겠습니다.”
李良已得秦書,固欲反趙,未決,因此怒,遣人追殺王姊道中,乃遂將其兵襲邯鄲。
이량은 이미 진의 서신을 받고, 본래 趙를 배반하려 하였으나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일로 화가 나서 사람을 보내어 길에서 왕의 누나를 죽이고,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한단을 습격하였다.
邯鄲不知,竟殺武臣、邵騷。
한단에서는 모르고 있었고, 결국 무신과 소소를 죽였다.
趙人多為張耳、陳餘耳目者,以故得脫出。
趙의 사람 중에는 장이와 진여의 耳目이 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무사히 탈출할 수가 있었다.
收其兵,得數萬人。
병사를 수습하여 수만 명을 얻었다.
客有說張耳曰:
「兩君羈旅,而欲附趙,難;
獨立趙後,扶以義,可就功。」
빈객이 있어 장이를 설득하였다.
“두 분께서는 나그네의 몸이기 때문에 조에 귀순하려 해도 어렵습니다.
홀로 趙의 후손을 왕으로 세워 정의로써 돕는다면 공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다.”
乃求得趙歇,立為趙王,居信都。
이에 趙歇을 찾아내어 趙王으로 세우고, 信都에 거주하였다.
李良進兵擊陳餘,陳餘敗李良,李良走歸章邯。
이량이 진군하여 진여를 공격했으나, 진여가 이량을 패퇴시키니 이량은 달아나서 秦將 章邯에게 의탁하였다.
▶ 李良 : 秦 말기 趙王 武臣의 部將. 무신의 누나를 죽이고 한단을 공격하여 趙王 무신을 죽였다. 후에 장이와 진여를 공격하다 실패하여 秦將 章邯에게 항복하였다.
▶ 伏謁 : 지체가 높은 사람 앞에 엎드려 뵙고 자신의 성명을 말함.
▶ 羈旅 : 객지에 머물러 있는 나그네.
▶ 獨 : 오직. 다만.
▶ 趙歇 : ? ~ 기원전 205년. 秦 말기 趙의 왕족 출신이며, 재건된 趙의 왕으로 옹립되었다.
章邯引兵至邯鄲,皆徙其民河內,夷其城郭。
秦將 章邯은 군대를 이끌고 한단에 도착하여 그 백성을 모두 河內로 옮기고, 그 城郭을 허물었다.
張耳與趙王歇走入鉅鹿城,王離圍之。
장이는 趙王 헐과 함께 달아나 巨鹿城으로 들어갔는데, 秦將 王離가 포위하였다.
陳餘北收常山兵,得數萬人,軍鉅鹿北。
진여는 북쪽으로 가서 상산의 병력을 거두어 수만을 얻고 거록성의 북쪽에 주둔하였다.
章邯軍鉅鹿南棘原,筑甬道屬河,餉王離。
장한은 거록성의 남쪽 棘原에 주둔하고 甬道를 만들어 황하까지 연결하여 왕리에게 군량을 공급하였다.
王離兵食多,急攻鉅鹿。
왕리의 군대는 군량이 풍부하자 맹렬하게 거록성을 공격하였다.
鉅鹿城中食盡兵少,張耳數使人召前陳餘,陳餘自度兵少,不敵秦,不敢前。
거록성에는 군량이 다하고 병력이 적어서, 장이가 자주 사람을 보내 진여에게 전진하라고 했으나, 진여는 병력이 적어서 秦軍을 대적할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감히 전진하지 못하였다.
數月,張耳大怒,怨陳餘,使張黶、陳澤往讓陳餘曰:
「始吾與公為刎頸交,今王與耳旦暮且死,而公擁兵數萬,不肯相救,安在其相為死!
茍必信,胡不赴秦軍俱死?
且有十一二相全。」
몇 개월이 지나자 장이는 크게 노하여 진여를 원망했으며, 張黶과 陳澤을 진여에게 보내 말하였다.
“처음에 나는 공과 刎頸之交를 맺었는데, 지금 왕과 내가 곧 죽을 지경인데도, 공은 수만 병사를 끼고 구원하려고 하지 않으니, 서로를 위해 죽겠다던 의리는 어디에 있소!
만약 신의가 있다면 어찌하여 秦軍에 달려들어 함께 죽으려 하지 않소?
그리하면 열에 한둘은 서로 온전할 수 있소.”
▶ 章邯 : 秦 말기의 장수로 진승과 오광이 일으킨 농민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 조고의 박해를 받아 항우에게 투항하였다
▶ 夷 : 때려 부수다. 평정하다.
▶ 王離 : 秦 말기의 장군으로 秦의 명장. 왕전의 손자이자 왕분의 아들이다. 진 시황제 시기에 무성후의 작위를 받았고, 진 이세황제 시기에 변경 수비의 책임자가 되었다가 다시 반란 진압에 동원되었으나 거록 대전에서 항우에게 패하여 포로가 되었다.
▶ 軍鉅鹿北 : 거록 북쪽에 주둔하다. 鉅鹿은 秦에서 趙 땅을 빼앗아 설치한 郡이름. 하북성 남쪽에서 藁城 일대 지역. 軍은 주둔하다.
▶ 甬道 : 참호. 양쪽에 담을 쌓은 길.。高樓之間帶有頂棚的通道;走廊;兩邊有牆的通道.
▶ 屬 : 연결하다. 잇다.
▶ 餉 : 군량.
▶ 讓 : 책망하다.
▶ 茍 : 만약.
▶ 十一二相全 : 십분의 일이나 이 정도로 이길 희망이 있다.
陳餘曰:
「吾度前終不能救趙,徒盡亡軍。
且餘所以不俱死,欲為趙王、張君報秦。
今必俱死,如以肉委餓虎,何益?」
그러자 진여가 말하였다.
“나는 전진해보았자 결국 조를 구원할 수 없고, 헛되이 군사만 모두 잃는다고 생각하오.
또 내가 함께 죽기를 각오하지 않음은 趙王과 장이를 위하여 진에 복수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꼭 함께 죽고자 한다면,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맡김과 같으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소?”
張黶、陳澤曰:
「事已急,要以俱死立信,安知後慮!」
이에 장염과 진택이 말하였다.
“사태가 이미 급박하니 함께 죽음으로써 신의를 지켜야지, 어찌 뒷날의 염려를 알겠습니까!”
陳餘曰:
「吾死顧以為無益。必如公言。」
진여가 말하였다.
“나의 죽음에 아무 이익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대들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소.”
乃使五千人令張黶、陳澤先嘗秦軍,至皆沒。
이에 5천 명의 군사에게 장염과 진택을 따르게 하여 우선 秦軍을 시험하였으나 몰살되고 말았다.
當是時,燕、齊、楚聞趙急,皆來救。
이때 燕, 齊, 楚는 趙의 위급함을 듣고 모두 달려와 구원하였다.
張敖亦北收代兵,得萬餘人,來,皆壁餘旁,未敢擊秦。
張敖도 북쪽 代 땅의 군사를 거두어 만여 명을 얻었는데 이들을 이끌고 와서 모두 진여의 군영 곁에 주둔했으나, 감히 秦을 공격하지 못하였다.
項羽兵數絕章邯甬道,王離軍乏食,項羽悉引兵渡河,遂破章邯。
項羽의 군대가 章邯의 甬道를 여러 번 차단하니, 王離의 군대는 군량이 부족하였고, 항우가 全軍을 이끌고 黃河를 건너 마침내 장한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章邯引兵解,諸侯軍乃敢擊圍鉅鹿秦軍,遂虜王離。
장한이 군사를 이끌고 포위를 풀자, 제후의 군사는 鉅鹿城을 포위한 秦軍을 용감히 공격하여 마침내 왕리를 사로잡았다.
涉閒自殺。
涉間은 자살하였다.
卒存鉅鹿者,楚力也。
결국 거록성을 보존한 것은 楚의 힘이었다.
▶ 度 : 생각하다.
▶ 徒 : 다만. 단지.
▶ 嘗 : 시험하여 보다.
▶ 張敖 : ? ~ 기원전 181년. 중국 秦 말기 조경왕 장이의 아들로, 장이가 장초의 진왕(진승)의 명령을 받고 무신을 따라 옛 趙 영역을 공략하러 갔을 때 장초에 남아 있었다. 장이가 무신을 권해 장초에서 독립해 趙王이 되게 하자 분노한 진승에게 다른 권속들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마음을 바꾸고 무신 일당을 회유하려는 진승에게서 풀려나 성도군에 봉해졌다.
▶ 代 : 기원전 201년? ~ 기원전 114년. 전한의 제후왕국.
▶ 壁 : 군영의 보루. 진지를 구축하고 주둔하다.
▶ 章邯 : 秦 말기의 장수로 진승과 오광이 일으킨 농민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 조고의 박해를 받아 항우에게 투항하였다
▶ 項羽 :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02년. 秦 말기의 군인이자, 초한전쟁 때 楚의 군주로, 우는 자이며, 이름은 籍이다. 楚가 秦에 의해 멸망한 후 陳勝, 吳廣의 난이 일어나고 秦이 혼란에 빠지자, 숙부 항량과 함께 봉기하여 회계군수 은통을 참살한 뒤, 8천여 군사를 이끌고 차례로 주변 세력을 병합하였다. 후에 양부나 다름없던 숙부 항량이 진의 장한의 계책에 죽자 격분하여 스스로 상장군이라 칭한 뒤 河北에서 章邯을 항복시키고 도처에서 秦軍를 무찔러 진의 세력을 소탕하였다.
▶ 涉間 : 秦의 장수. 건록대전에서 패하게 되자 불길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於是趙王歇、張耳乃得出鉅鹿,謝諸侯。
이리하여 趙王 헐과 장이는 거록성에서 나와 제후에게 사례하였다.
張耳與陳餘相見,責讓陳餘以不肯救趙,及問張黶、陳澤所在。
장이는 진여와 만나자, 진여가 조를 구원하려고 하지 않음을 꾸짖고 장염과 진택의 소재를 물었다.
陳餘怒曰:
「張黶、陳澤以必死責臣,臣使將五千人先嘗秦軍,皆沒不出。」
진여가 노하여 말하였다.
“장염과 진택은 반드시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고 저를 책망했기에, 제가 그들에게 5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秦軍에 시험해보도록 했는데, 모두 몰살당하여 빠져나오지 못했소.”
張耳不信,以為殺之,數問陳餘。
장이가 믿지 못하고 진여가 그들을 죽였다고 생각하여 자주 진여를 문책하였다.
陳餘怒曰:
「不意君之望臣深也!
豈以臣為重去將哉?」
진여가 노하여 말하였다.
“공께서 저를 책망함이 이렇게 심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소!
어찌 제가 將軍職에서 떠남을 크게 생각하겠소?”
乃脫解印綬,推予張耳。
그러고는 장군의 印綬를 풀어서 장이에게 내밀었다.
張耳亦愕不受。
장이도 깜짝 놀라서 받지 않았다.
陳餘起如廁。
진여가 일어나 측간으로 갔다.
客有說張耳曰:
「臣聞『天與不取,反受其咎』。
今陳將軍與君印,君不受,反天不祥。
急取之!」
그때 빈객 한 사람이 장이에게 말하였다.
“신이 듣기에, ‘하늘이 주는데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는다.’라고 합니다.
지금 진장군께서 군께 인수를 주시는 데 군께서 받지 아니하시니, 이는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상서롭지 못합니다.
속히 받으십시오.”
張耳乃佩其印,收其麾下。
장이는 이에 인수를 차고 그 휘하의 사람을 거두었다.
而陳餘還,亦望張耳不讓,遂趨出。
진여는 돌아와서 장이가 인수를 돌려주지 않음을 책망하며 마침내 급히 나와 버렸다.
張耳遂收其兵。
장이는 마침내 진여의 군사를 거두었다.
陳餘獨與麾下所善數百人之河上澤中漁獵。
진여는 홀로 휘하에서 친하게 지내던 수백 명과 함께 황하의 물가로 가서 낚시와 사냥을 하며 지냈다.
由此陳餘、張耳遂有卻。
이로 인하여 진여와 장이는 결국 틈이 생겼다.
▶ 望 : 책망하다.
▶ 印綬 : 官印. 권력의 증거. 綬는 도장을 묶은 끈.
▶ 愕 : 깜짝 놀라다.
▶ 天與不取,反受其咎 :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고,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행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天與不取 反受其咎 時至不行 反受其殃.)<사기 권92 淮陰侯列傳>
때를 얻으면 태만하지 말라. 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하늘이 주는데도 이를 받지 않으면 그것이 도리어 재앙이 된다. (得時無怠,時不再來,天予不取,反為之災.범려가 월왕 구천에게 간한 말)<國語·越語>
▶ 麾下 : 장군의 지휘아래. 麾는 고대의 大將旗.
▶ 趨 : 빨리 가다. 질주.
▶ 漁獵 : 고기잡이와 사냥.
▶ 郤 : 틈.
趙王歇復居信都。
趙王 헐은 다시 신도에 머물렀다.
張耳從項羽諸侯入關。
장이는 항우와 제후를 따라서 함곡관으로 들어갔다.
漢元年二月,項羽立諸侯王,張耳雅游,人多為之言,項羽亦素數聞張耳賢,乃分趙立張耳為常山王,治信都。
漢원년(기원전 206년) 2월에 항우가 제후를 왕에 봉함에, 장이는 평소에 널리 교유하였으므로 그를 위해 말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항우도 평소 장이의 현명함을 자주 들었기 때문에, 조 땅을 나누어서 장이를 常山王에 봉하고, 信都를 다스리게 하였다.
信都更名襄國。
신도의 이름을 襄國으로 바꾸었다.
陳餘客多說項羽曰:
「陳餘、張耳一體有功於趙。」
진여의 빈객에 항우에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진여와 장이는 똑같이 趙에 공이 있습니다.”
項羽以陳餘不從入關,聞其在南皮,即以南皮旁三縣以封之,而徙趙王歇王代。
항우는 진여가 함곡관에 따르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南皮에 있음을 알고 곧 남피 부근의 세 縣을 봉해주었으며, 趙王 헐은 代王으로 옮겼다.
張耳之國,陳餘愈益怒,曰:
「張耳與餘功等也,今張耳王,餘獨侯,此項羽不平。」
장이가 襄國으로 가자, 진여는 더욱 노하여 말하였다.
“장이와 나는 공이 같은데 장이는 왕이 되고, 나는 단지 侯가 되었으니, 이것은 항우가 공평하지 못함이다.”
及齊王田榮畔楚,陳餘乃使夏說說田榮曰:
「項羽為天下宰不平,盡王諸將善地,徙故王王惡地,今趙王乃居代!
願王假臣兵,請以南皮為捍蔽。」
齊王 田榮이 초를 배반하자, 진여는 이에 夏說을 전영에게 보내 설득하였다.
“항우는 천하를 다스림이 공평하지 못하여, 장수들을 모두 좋은 땅에 왕으로 봉해주고, 이전의 왕은 나쁜 땅의 왕으로 삼으니, 그래서 趙王 헐은 代 땅에 머물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신에게 군대를 빌려주시면, 南皮로써 가림막이 되겠습니다.”
田榮欲樹黨於趙以反楚,乃遣兵從陳餘。
전영은 趙에 세력을 결성하여 楚를 배반하고자 하여 군사를 보내 진여를 따르게 하였다.
陳餘因悉三縣兵襲常山王張耳。
진여는 이로 인하여 3현의 군사를 모두 이끌고 상산왕 張耳를 습격하였다.
張耳敗走,念諸侯無可歸者,曰:
「漢王與我有舊故,而項羽又彊,立我,我欲之楚。」
장이는 敗走하며 의탁할 만한 제후가 없다고 생각하고 말하였다.
“漢王과 나는 옛날의 친분이 있기는 하지만, 항우가 강한 데다 나를 왕으로 세웠으니 나는 楚로 가려 한다.”
▶ 漢元年 : 한 高祖 206년. 劉邦은 항우에 의해 기원전 206년 서부 漢中에 좌천되어 漢王으로 봉해졌으나, 동진하여 기원전 202년 垓下에서 항우를 토벌하고 전한을 세웠다.
▶ 信都 : 멸망했다 다시 일어난 趙의 수도.
▶ 雅游 : 평소부터 교유함. 雅는 평소부터.
▶ 田榮 : ? ~ 기원전 205년. 항우의 분봉에서 소외되자 불만을 품고, 같은 불만을 품은 趙의 陳餘와 손잡고 항우에게 반기를 들어 전도를 공격해 楚로 쫓아냈다.
▶ 假 : 빌려주다.
▶ 捍蔽 : 호위를 하기 위한 방어막. 捍 호위하다.
▶ 樹黨 : 당을 조직하다.
甘公曰:
「漢王之入關,五星聚東井。
東井者,秦分也。
先至必霸。
楚雖彊,後必屬漢。」
甘公이 말하였다.
“한왕이 함곡관에 들어가자 다섯 개의 별이 東井에 모여들었습니다.
동정은 秦의 영역입니다.
그곳에 먼저 가는 사람이 반드시 패자가 됩니다.
楚가 비록 강하지만 나중에는 틀림없이 한에 귀속될 터입니다.”
故耳走漢。
그래서 장이가 漢으로 逃走하였다.
漢王亦還定三秦,方圍章邯廢丘。
한왕도 三秦을 평정하고 돌아와서 章邯의 군사를 廢口에서 포위하고 있었다.
張耳謁漢王,漢王厚遇之。
장이가 한왕을 알현하자 漢王이 후하게 대우하였다.
陳餘已敗張耳,皆復收趙地,迎趙王於代,復為趙王。
진여가 장이를 패퇴시키고 나서 趙 땅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代에서 趙王 헐을 맞이하여 趙王으로 복위하였다.
趙王德陳餘,立以為代王。
趙王은 진여에게 은덕을 느껴 그를 代王으로 삼았다.
陳餘為趙王弱,國初定,不之國,留傅趙王,而使夏說以相國守代。
진여는 趙王이 약하고, 나라가 막 안정되었다고 여겨 봉국으로 가지 않고 머무르며 趙王을 보좌했으며, 하열을 상국으로 삼아 代를 지키게 하였다.
漢二年,東擊楚,使使告趙,欲與俱。
漢王 2년(기원전 205년), 동쪽으로 楚를 공격함에 사신을 趙에 보내어 함께 공격하자고 제의하였다.
陳餘曰:
「漢殺張耳乃從。」
진여가 말하였다.
“漢이 장이를 죽인다면 따르겠소.”
於是漢王求人類張耳者斬之,持其頭遺陳餘。
漢王은 장이를 닮은 사람을 찾아 그를 참수하고, 그의 수급을 진여에게 보내었다.
(아! 장의를 닮은 사람은 무슨 죄인가! 설사 죄수 중에서 해당자를 구하였다 할지라도 꼭 사형에 처할 사람이었을까? 戰國時代와 楚漢戰爭에서 희생된 軍士와 良民이 흘린 피가 실로 절굿공이를 떠다니게 하지 않았겠는가?
슬프도다. 전쟁의 참혹함이여!
더욱 슬프도다. 現代戰의 더욱 참혹함이여!
전쟁의 慘狀이 이러하니,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함에 국가의 總力을 傾注해야 할 것 아닌가? 2023.8.18. 耽古樓主 喟然歎之)
陳餘乃遣兵助漢。
진여가 이리하여 군대를 파견하여 漢을 도왔다.
漢之敗於彭城西,陳餘亦復覺張耳不死,即背漢。
漢이 彭城의 서쪽에서 패하고, 진여도 장이가 죽지 않았음을 알고 곧 漢을 배반하였다.
▶ 五星聚 : 五星聚合.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5개 행성이 天球에서 근접한 위치에 모여드는 현상으로 왕조의 교체나 天命의 변화 등의 정치적인 변동을 상징하는 천문 현상이다.
▶ 東井者,秦分也 : 天球 구역의 변화가 지상 구역에 길흉의 변화의 조짐을 보이며 하늘의 東井은 지상에서 秦의 영역임을 뜻한다.
▶ 傅 : 보좌하다.:輔佐。
▶ 漢二年 : 漢王 2년(기원전 205년). 한왕이 동쪽 지역 공략에 나섰다.<史記 卷8. 高祖本紀>
한왕 劉邦은 항우에 의해 기원전 206년 서부 漢中에 좌천되어 漢王으로 봉해졌으나, 동진하여 기원전 202년 垓下에서 항우를 토벌하고 전한을 세우고 황제에 올랐다.
漢三年,韓信已定魏地,遣張耳與韓信擊破趙井陘,斬陳餘泜水上,追殺趙王歇襄國。
漢王 3년, 韓信이 이미 魏 땅을 평정하니, 漢은 장이와 한신을 보내 趙를 井陘에서 격파하고, 泜水에서 진여를 베고 趙王 헐을 추격하여 양국에서 죽였다.
漢立張耳為趙王。
漢은 장이를 趙王으로 세웠다.
漢五年,張耳薨,謚為景王。
한왕 5년(기원전 202년), 장이가 죽자 시호를 景王이라 하였다.
子敖嗣立為趙王。
아들 張敖가 후사로 즉위하여 趙王이 되었다.
高祖長女魯元公主為趙王敖后。
高祖의 장녀인 魯元公主가 趙王 장오의 왕후가 되었다.
漢七年,高祖從平城過趙,趙王朝夕袒韛蔽,自上食,禮甚卑,有子婿禮。
漢7년(기원전 200년), 高祖는 平城으로부터 趙에 들림에, 趙王은 아침저녁으로 웃통을 벗고 토시를 끼고 몸소 음식을 올리면서 예를 몹시 겸손하게 행함으로써 사위로서의 예를 갖추었다.
高祖箕踞詈,甚慢易之。
高祖는 다리를 뻗고 앉아서 꾸짖는 등, 趙王을 몹시 업신여겼다.
趙相貫高、趙午等年六十餘,故張耳客也。
趙의 재상인 貫高와 趙午 등은 나이가 예순이 넘었고 예전부터 장이의 빈객이었다.
生平為氣,乃怒曰:
「吾王孱王也!」
평생에 기백이 있어 이에 노하여 말하였다.
“우리의 왕은 나약한 왕이다!”
說王曰:
「夫天下豪桀并起,能者先立。
今王事高祖甚恭,而高祖無禮,請為王殺之!」
왕을 설득하였다.
“무릇 천하의 호걸이 함께 일어남에, 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왕이 됩니다.
지금 왕께서 高祖를 몹시 공손하게 섬기는데 高祖는 무례하니, 대왕을 위해 그를 죽이겠습니다!”
張敖齧其指出血,曰:
「君何言之誤!
且先人亡國,賴高祖得復國,德流子孫,秋豪皆高祖力也。
願君無復出口。」
장오가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고 말하였다.
“공들은 어찌 그리 잘못되게 말하시오!
선왕께서 나라를 잃으셨을 때 高祖에게 의지하여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으며, 은덕이 자손에 미치고 있으니 털끝같이 작은 것도 모두 高祖의 덕분이오.
공들께서는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마시오.”
貫高、趙午等十餘人皆相謂曰:
「乃吾等非也。
吾王長者,不倍德。
且吾等義不辱,今怨高祖辱我王,故欲殺之,何乃汙王為乎?
令事成歸王,事敗獨身坐耳。」
관고와 조오 등 10여 명은 모두 서로 말하였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오.
우리 왕은 덕행이 있는 분으로 은덕을 배반하지 아니하시오.
게다가 우리의 뜻은 모욕당하지 않음이라, 高祖가 우리 왕을 모욕함을 원망하므로 그를 죽이려 할 뿐, 어찌 왕을 더럽히려 함이겠소?
일이 성공하면 공을 왕께 돌리고, 일이 실패하면 우리만 벌을 받을 뿐이오.”
▶ 韓信 : 漢의 무장. 楚의 항량·항우를 섬겼으나 중용되지 않아 한왕 유방의 수하가 되어 대장군이 되었다.
▶ 謚 : 諡號. 고대 제왕이나 대신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추증하는 칭호.
▶ 袒 : 웃통을 벗다. (몸의 일부를드러내다). 肉袒은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것이며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낸다.
▶ 韛蔽 : 토시를 끼다. 韛은 가죽주머니.
▶ 卑 : 겸손하다.
▶ 箕踞 : 두 다리를 뻗고 앉음. 즉, 오만불손하게 앉음.
▶ 詈(리) : 꾸짖다.
▶ 慢易 : 업신여기며 공손하지 못함.
▶ 孱(잔) : 나약하다. 잔약하다.
▶ 齧 : 깨물다.
▶ 長者 : 나이가 많고 덕이 있는 사람.
▶ 倍 : 背와 통하여 배반하다.
▶ 污 : 모욕당하다. 더럽히다.
▶ 坐 :죄를 받다. 연좌되다.
漢八年,上從東垣還,過趙,貫高等乃壁人柏人,要之置廁。
漢 8년, 高祖가 東垣에서 돌아오며 趙에 들렀는데, 貫高 등이 柏人縣 館舍 벽에 자객을 붙이되, 置廁에 두라고 하였다.
上過欲宿,心動,問曰:
「縣名為何?」
高祖가 그곳에 들러 묵으려고 하는데 가슴이 뛰어서 물었다.
“현의 이름이 무엇인가?”
曰:
「柏人。」
“柏人입니다.”
「柏人者,迫於人也!」
“백인이란 남에게 핍박당함이 아닌가!”
不宿而去。
묵지 아니하고 떠났다.
▶ 上 : 황제.
▶ 壁人 : 이중벽에 사람을 숨겨 놓다.
▶ 要之置廁 : 置厠은 사람을 두 겹의 벽 안에 두는 것
▶ 柏人 : 옛날의 地名. 지금의 河北省 柏鄕縣 부근이다.
▶ 迫於人 : 남을 핍박하다. 柏과 迫이 중국어 발음상 비슷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백의 시 고어과하읍에서는 이를 인용하였다. 萬乘慎出入,柏人以爲識. [全唐詩] 枯魚過河泣
※貫高의 사건 : 貫高는 漢나라 때 趙王 張敖의 정승으로 高祖가 趙에 들렀을 때 趙王을 모욕하자, 이를 분하게 여겨 高祖가 묵을 柏人縣의 관사 벽 속에다 사람을 숨겨두고 高祖가 묵기를 기다려 시해하도록 모의했던 일을 가리킨다. 이 음모가 발각되었고 高祖는 관고를 용서하였으나, 그는 결국 자살하였다.
漢九年,貫高怨家知其謀,乃上變告之。
漢 9년, 관고와 원한이 있는 집안에서 그 음모를 알고 글을 올려 고발하였다.
於是上皆并逮捕趙王、貫高等。
이에 임금이 趙王과 관고 등을 모두 체포하였다.
十餘人皆爭自剄,貫高獨怒罵曰:
「誰令公為之?
今王實無謀,而并捕王;
公等皆死,誰白王不反者!」
10여 명이 앞다투어 自剄하되, 관고 홀로 노하여 꾸짖었다.
“누가 공들에게 그 일을 시켰는가?
지금 왕께서는 진실로 모의하지 않으셨는데, 왕까지 함께 체포하였다.
공들이 모두 죽어버리면, 누가 왕께서 반역하지 않았음을 밝히겠는가!”
乃轞車膠致,與王詣長安。
轞車에 꼼짝 못하게 실려 趙王과 함께 長安에 이르렀다.
治張敖之罪。
高祖가 장오의 죄를 다스렸다.
上乃詔趙群臣賓客有敢從王皆族。
高祖는 신하와 빈객으로서 감히 趙王을 쫓아오는 사람은 모두 멸족하라고 조칙을 내렸다.
貫高與客孟舒等十餘人,皆自髡鉗,為王家奴,從來。
관고와 그의 빈객 孟舒 등 10여 명은 모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칼을 쓴 채 왕실의 종이 되어 왕을 따라왔다.
貫高至,對獄,曰:
「獨吾屬為之,王實不知。」
관고가 도착하여 옥관의 심문에 대답하였다.
“단지 우리가 그 일을 하였으며, 왕께서는 진실로 모르시오.”
▶ 上變告之 : 황제에게 관고가 모반한 비밀을 보고하다.
▶ 剄 : 목을 베다.
▶ 白 : 변명하다. 벗다.
▶ 轞車 : 죄수를 호송하는 수레.
▶ 膠致 : 밀폐하여 열 수 없도록 함. 致는 촘촘하다. =緻
▶ 詣 : 도착하다. 다다르다.
▶ 髡鉗 : 일종의 형벌로 머리를 깎고 칼을 목에 씌우는 형벌을 말한다.
▶ 對獄 : 심문에 대답하다.
▶ 屬 : 무리. 우리들.
吏治榜笞數千,刺剟,身無可擊者,終不復言。
옥리가 수천 번 매질하고, 쇠로 살을 찔러 더 이상 때릴 곳이 없어도 끝내 관고는 다시 말하지 않았다.
呂后數言張王以魯元公主故,不宜有此。
呂后가 여러번 말하기를, 趙王은 노원공주 때문에 이런 짓을 했을 리 없다고 했다.
上怒曰:
「使張敖據天下,豈少而女乎!」
高祖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만일 장오가 천하를 차지한다면, 당신 딸과 같은 여자가 어찌 줄어들겠소!”
不聽。
여후의 말을 듣지 않았다.
廷尉以貫高事辭聞,上曰:
「壯士!
誰知者,以私問之。」
廷尉가 관고를 문초한 일을 보고하니 高祖가 말하였다.
“장사로다!
누가 그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그대가 사사로이 물어 보아라.”
中大夫泄公曰:
「臣之邑子,素知之。
此固趙國立名義不侵為然諾者也。」
中大夫인 泄公이 말하였다.
“신의 읍내에서 살던 儒生으로, 신이 평소에 그를 알고 있습니다.
관고는 본래 趙國에서 평판이 좋고, 의리상 약속한 말을 저버리지 않는 자입니다.”
▶ 榜笞 : 때리다. 치다.
▶ 邑子 : 同鄉人.
▶ 然諾 : 허락하다. 약속했던 말.
上使泄公持節問之箯輿前。
高祖가 설공에게 符節을 가지고 대나무 침상 앞으로 가서 관고에게 묻게 하였다.
仰視曰:
「泄公邪?」
관고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 말하였다.
“설공인가?”
泄公勞苦如生平驩,與語,問張王果有計謀不。
설공이 위로하며 평소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趙王 장오가 과연 역모를 계획했는지 안 했는지 물어보았다.
高曰:
「人情寧不各愛其父母妻子乎?
今吾三族皆以論死,豈以王易吾親哉!
顧為王實不反,獨吾等為之。」
관고가 대답하였다.
“인정상 어찌 자기의 부모와 처자를 아끼지 않겠는가?
지금 나는 三族이 모두 이미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어찌 왕과 나의 육친을 바꾸겠는가!
진실로 대왕께서는 모반하지 않으셨으며, 단지 우리가 행하였네.”
具道本指所以為者王不知狀。
관고는 사건의 진상과 王이 일을 행한 자를 모른다는 정황을 자세히 말하였다.
於是泄公入,具以報,上乃赦趙王。
이에 설공이 황궁에 들어가서 모두 보고했고, 高祖는 趙王을 사면하였다.
▶ 節 : 符節. 군주의 명령을 전하는 신표.
▶ 箯輿 : 대나무로 만든 침상.
▶ 三族 : 부모, 형제. 처자.
▶ 以論死 : 이미 사형을 선고 받다. 以는 已와 통하여 이미. 論은 판결을 받다.
▶ 具道 : 자세히 말하다.
▶ 本指 : 본래의 취지. 指는 旨와 통한다.
▶ 狀 : 情況.
上賢貫高為人能立然諾,使泄公具告之,曰:
「張王已出。」
高祖는 관고의 사람됨이 약속한 바를 잘 지킴을 높게 평가하여, 설공에게 모두 알려주게 하였다.
“趙王은 이미 석방되었소.”
因赦貫高。
인하여 관고를 풀어주었다.
貫高喜曰:
「吾王審出乎?」
관고는 기뻐하며 말하였다.
“우리 대왕께서 확실히 석방되셨는가?”
泄公曰:
「然。」
설공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泄公曰:
「上多足下,故赦足下。」
설공이 이어서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그대를 칭찬하며 그대도 사면하셨네.”
貫高曰:
「所以不死一身無餘者,白張王不反也。
今王已出,吾責已塞,死不恨矣。
且人臣有篡殺之名,何面目復事上哉!
縱上不殺我,我不愧於心乎?」
관고가 말하였다.
“일신에 성한 곳이 없으면서도 죽지 않음은, 趙王께서 모반하지 않았음을 밝히기 위해서였다네.
그런데 왕께서 석방되셔서 나의 책임을 이미 채웠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네.
하물며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려 했다는 오명을 가지고, 무슨 면목으로 다시 임금을 섬기겠는가?
설령 황제께서 나를 죽이지 않으셔도, 내 마음에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乃仰絕骯,遂死。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목구멍을 끊고 죽었다.
當此之時,名聞天下。
당시 이일로 그의 이름이 천하에 널리 알려졌다.
▶ 賢 : 칭찬하다. 높이 평가하다.
▶ 然諾 : 허락하다. 약속했던 말.
▶ 審 : 확실하다.
▶ 多 : 높이 평가하다. 칭송하다.
▶ 塞 : 충만하다. 만족시키다
▶ 篡殺 : 시해하다.
▶ 骯(항) : 목구멍. 인후. 또는 頸大脈이라고도 한다.
張敖已出,以尚魯元公主故,封為宣平侯。
장오는 석방되어 나온 뒤, 노원공주의 남편이기에 宣平侯에 봉해졌다.
於是上賢張王諸客,以鉗奴從張王入關,無不為諸侯相、郡守者。
高祖가 趙王의 빈객들을 높이 평가하여, 목에 칼을 쓴 죄인이 되어 趙王을 따라 入關한 사람치고 제후의 재상이나 군수로 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及孝惠、高后、文帝、孝景時,張王客子孫皆得為二千石。
孝惠, 高后, 文帝, 孝景 때에 이르러 趙王 장오의 빈객들의 자손은 모두 2천 석의 녹을 받았다.
張敖,高后六年薨。
趙王 장오는 高后 6년(기원전 182년)에 죽었다.
子偃為魯元王。
아들인 偃은 魯元王이 되었다.
以母呂后女故,呂后封為魯元王。
그의 어머니가 呂后의 딸이었기 때문에 여후가 노원왕에 봉한 것이다.
元王弱,兄弟少,乃封張敖他姬子二人:
壽為樂昌侯,侈為信都侯。
노원왕은 나약하고 형제가 적어서 장오의 다른 부인에게서 얻은 두 아들을 봉했는데, 張壽는 樂唱侯가 되었고, 張侈는 信都侯가 되었다.
高后崩,諸呂無道,大臣誅之,而廢魯元王及樂昌侯、信諸侯。
고후가 죽자 呂氏 일족이 無道했기 때문에 대신들이 그들을 죽이고, 노원왕과 낙창후, 신도후도 폐위시켰다.
孝文帝即位,復封故魯元王偃為南宮侯,續張氏。
효문제가 즉위하자 다시 노원왕 언을 南宮侯에 봉해 장씨의 후대를 잇게 하였다.
▶ 尚 : 결혼하다. 고대에는 신하가 군주의 딸과 혼인함을 ‘尚’이라 한다.
▶ 鉗奴 : 목에 칼을 쓴 죄인.
▶ 高后 : 呂后. 前漢의 시조 劉邦(高祖)의 황후. 이름은 稚이며, 자는 娥姁, 高后로도 불린다. 유방이 죽은 뒤 실권을 잡고 여씨 일족을 등용시켜 여씨 정권을 수립하였다.
太史公曰:
張耳、陳餘,世傳所稱賢者;
태사공은 말한다.
“張耳와 陳餘는 세상에 전하기를 賢者라고 칭찬하는 자이다.
其賓客廝役,莫非天下俊桀,所居國無不取卿相者。
그들의 빈객과 종까지도 천하의 준걸이 아님이 없어서, 그들이 사는 나라에서 卿相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然張耳、陳餘始居約時,相然信以死,豈顧問哉。
그러나 당초 장이와 진여가 빈천할 때 서로 죽음을 무릅쓰고 신의를 지켰으니, 어찌 망설임이 있었겠는가?
及據國爭權,卒相滅亡,何鄉者相慕用之誠,後相倍之戾也!
나라를 움켜쥐고 권력을 다투다가, 마침내 서로를 멸망시켰으니, 어찌해 예전에는 서로 사모하고 신뢰함이 진실하더니, 뒤에는 서로 배반하며 비뚤어지게 되었는가!
豈非以勢利交哉?
어찌 권세와 이익으로써 사귄 탓이 아니겠는가?
名譽雖高,賓客雖盛,所由殆與大伯、延陵季子異矣。
비록 명예가 높고, 빈객이 많았을지라도 太伯이나 延陵季子와는 다르기 때문이리라.”
▶ 廝役 : 종. 머슴.
▶ 始居約時 : 당초 빈천하게 살았을 때. 約은 빈천함.
▶ 顧問 : 고려하다. 주저하다.
▶ 鄉 : 向과 같다. 종전. 과거.
▶ 戾 : 어긋나다. 성질이 비뚤어지다.
▶ 所由 : 이유. 말미암은 바.
▶ 殆 : 대개. 아마 ~일 것이다.
▶ 吳太伯 : 춘추시대 吳의 초대 군주이자, 吳의 시조이다. 周의 古公亶父의 장남이다. 형제로는 仲雍과 季歷과 조카로는 주 문왕이 있었다. 성은 姬. 太伯으로도 호칭되며, 자기 대신 동생 季歷에게 후계를 넘기려는 아버지의 뜻을 알아채고 동생 仲雍과 함께 이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달아났다.
▶ 延陵季子 : 季札. 춘추 시대 吳王 壽夢의 네 아들 중 막내다. 延陵에 봉해져 延陵季子라고 부른다. 왕의 자리를 넘겨주려 했으나, 계찰은 이를 받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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