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85-呂不韋列傳(여불위열전)

耽古樓主 2023. 8. 12. 11:12

 

呂不韋(기원전292~기원전235년)는 의 商人 출신으로 秦의 정치가이다莊襄王 때 승상이 되었으며장양왕이 즉위한 지 3년 만에 죽자 여불위의 친자식이라고 기록된 태자 政이 왕위에 올랐으며 그가 진시황제이다이에 여불위는 相國을 지냈으며전국 말기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 呂氏春秋를 3000여 명의 빈객들의 학식을 모아 편찬하였다.
최고의 相國이 되어 仲父라는 칭호로 불리며 중용되었으나 太后와 밀통관계를 유지하였다여불위는 이 관계가 들통날까 두려워 노애라는 사내를 태후에게 보내어 정을 통하게 하였다태자 정이 성장하여 이 관계를 눈치채자 노애가 태자를 제거하려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극형을 당하였다여불위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상국에서 파면되어 촉 땅으로 귀양가게 되었다여불위는 점점 압박해오는 진왕 정의 중압감을 못 이겨 마침내 자살하였다.

 



呂不韋者,陽翟大賈人也。
呂不韋는 陽翟땅의 대상인이었다.

往來販賤賣貴,家累千金。
왕래하며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집에 천금의 재산을 쌓았다.

▶ 陽翟: 戰國策秦策에는 여불위가 濮陽사람으로 되어있다.
▶ 大賈人: 大商人.
▶ 販賤賣貴: 싸게 사서 비싸게 팔다. 販은 사다.

 

秦昭王四十年,太子死。
秦昭王40(기원전267), 태자가 죽었다.

其四十二年,以其次子安國君為太子。
秦昭王42(기원전265), 次子 安國君을 태자로 삼았다.

安國君有子二十餘人。
안국군에게 아들 20여 명이 있었다.

安國君有所甚愛姬,立以為正夫人,號曰華陽夫人。
안국군에게 매우 총애하는 첩이 있어서 정부인으로 세우고 華陽夫人이라고 칭하였다.

華陽夫人無子。
화양부인에게 아들이 없었다.

安國君中男名子楚,子楚母曰夏姬,毋愛。
안국군의 차남 이름은 子楚였는데자초의 생모는 夏姬로 총애를 받지 못하였다.

子楚為秦質子於趙。
자초가 을 위하여 에 인질이 되었다.

秦數攻趙,趙不甚禮子楚。
이 여러 차례 를 공격함에는 자초를 그다지 예우하지 않았다.

▶ 安國君: 성은 嬴, 名은 柱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安國君으로 불렸다. 시호는 孝文王(기원전302 ~기원전250). 秦의 제28대 군주인 昭襄王의 아들이며, 생모는 昭王의 후궁인 八子唐氏이다. 효문왕은 기원전267년 魏에 인질로 가 있던 昭王의 맏아들 悼太子가 죽자, 기원전265년에 태자로 봉해졌다. 그리고 기원전251년 가을에 아버지 昭王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 華陽夫人: 후일 효문왕의 총비. 후일 여불위가 친어머니처럼 사모하였다.
▶ 中男: 차남.
▶ 子楚: 嬴子楚. 후일 莊襄王, 기원전281 ~기원전247. 전국시대 秦의 왕으로 진 시황제의 아버지이다. 초명은 嬴異人이었지만, 楚 출신이었던 적모 효문왕의 정비의 양자가 된 후에 楚의 후예라는 뜻의 子楚로 嬴子楚로 불렸다. 아버지는 효문왕. 어머니는 夏姫이다.
▶ 毋愛: 총애를 받지 못함. 毋는 無.
▶ 質子: 人質. 볼모.

子楚,秦諸庶孽孫,質於諸侯,車乘進用不饒,居處困,不得意。
자초는 의 庶孼 손자로 제후에게 인질이 됨에수레와 재물이 넉넉하지 못하고 생활이 곤궁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呂不韋賈邯鄲,見而憐之,曰
「此奇貨可居」。
여불위가 邯鄲에서 장사하다 그를 만나 불쌍히 여기며 말하였다.
이것은 진기한 물건으로 쌓아 둘 만하다.”

乃往見子楚,說曰:
「吾能大子之門。」
이에 자초에게 가서 만나고 말하였다.
저는 그대의 가문을 크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子楚笑曰:
「且自大君之門,而乃大吾門!」
자초가 웃으며 말하였다.
우선 그대의 집안부터 크게 만든 뒤 내 가문을 크게 만들어주시오!”

呂不韋曰:
「子不知也,吾門待子門而大。」
여불위가 말하였다.
그대는 모르겠지만제 가문은 그대의 가문에 기대어 커질 터입니다.”

子楚心知所謂,乃引與坐,深語。
자초는 마음속으로 이르는 바를 알아채고불러 앉히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 庶孽孫: 첩의 손자.
▶ 進用: 재물의 씀씀이. 밑천.
▶ 奇貨可居: 진기한 값이 오를 때까지 쌓아 둘 만하다. 진기한 물건은 사서 잘 보관해 두면 장차 큰 이득을 본다는 말.
▶ 待: 依支하다, 기대다.
▶ 深語: 진정으로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말. 깊게 이야기하다.

 

呂不韋曰:
여불위가 말하였다.

「秦王老矣,安國君得為太子。
진왕은 늙었으며 안국군은 태자가 되었습니다.

竊聞安國君愛幸華陽夫人,華陽夫人無子,能立適嗣者獨華陽夫人耳。
삼가 들으니안국군은 화양부인을 총애하고 있으나화양부인에게 아들이 없으니 후사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화양부인뿐입니다.

今子兄弟二十餘人,子又居中,不甚見幸,久質諸侯。
그런데 그대의 형제는 20여 명이고 그대는 또 차남에다가 그다지 총애를 받지 못해서 오랫동안 제후의 인질이 되었습니다.

即大王薨,安國君立為王,則子毋幾得與長子及諸子旦暮在前者爭為太子矣。」
만약 대왕께서 薨逝하시면 안국군이 왕으로 즉위하고그대는 맏아들 및 동생들과 아침저녁으로 왕의 앞에서 태자 자리를 놓고 다툴 가망이 없습니다.”

▶ 竊聞: 몰래 듣다. 풍문에 듣다.
▶ 適嗣: 正妻 소생의 長子. 適은 嫡과 통한다.
▶ 即大王薨: 만약 대왕이 죽으면. 即은 만약 薨은죽다.
▶ 毋幾: 희망이 없다.
▶ 長子: 安國君의 장자인 이복형제 子傒.
▶ 旦暮: 아침과 저녁.

 

子楚曰:
「然。
為之柰何?」
자초가 말하였다.
그렇소.
어찌하면 좋겠소?”

呂不韋曰:
「子貧,客於此,非有以奉獻於親及結賓客也。
不韋雖貧,請以千金為子西游,事安國君及華陽夫人,立子為適嗣。」
여불위가 말하였다.
그대는 가난하고 이곳에 객으로 있으니 어버이를 모시거나 빈객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제가 비록 가난해도 그대를 위해 천금을 가지고 서쪽으로 가서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섬겨 그대를 후사로 세우겠습니다.”

子楚乃頓首曰:
「必如君策,請得分秦國與君共之。」
자초는 이에 머리를 숙이며 말하였다.
그대의 계책대로만 된다면 을 그대와 함께 나누어 공유하겠소.”

呂不韋乃以五百金與子楚,為進用,結賓客;
而復以五百金買奇物玩好,自奉而西游秦,求見華陽夫人姊,而皆以其物獻華陽夫人。
여불위가 5백 금을 자초에게 주어 자산으로 삼아 빈객을 사귀도록 하였으며,
또 5백 금으로 기이한 물건과 진귀한 노리개를 사서자신이 가지고 서쪽의 으로 가서화양부인의 언니를 만나기를 청하여그 물건을 모두 화양부인에게 바쳤다.

因言子楚賢智,結諸侯賓客遍天下,常曰「楚也以夫人為天,日夜泣思太子及夫人」。
이를 기회로 말하기를, ‘자초는 어질고 지혜로우며 제후의 빈객과 사귀기를 천하에 두루 합니다.’라고 하였고언제나 말하기를,
자초는 화양부인을 하늘처럼 여기고 밤낮으로 태자와 화양부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라고 하였다.

夫人大喜。
화양부인이 매우 기뻐하였다.

不韋因使其姊說夫人曰:
여불위는 그것을 기회로 그 언니에게 화양부인을 설득하게 하였다.

「吾聞之,以色事人者,色衰而愛弛。
제가 들으니 미모로 사람을 섬기는 자는 미모가 쇠하면 사랑도 식는다고 합니다.

今夫人事太子,甚愛而無子,不以此時蚤自結於諸子中賢孝者,舉立以為適而子之,夫在則重尊,夫百歲之後,所子者為王,終不失勢,此所謂一言而萬世之利也。
지금 부인께서 태자를 섬김에 매우 사랑받으나자식이 없으니,
이때를 이르다고 여기지 마시고아들 가운데 현명하고 효성스러운 자와 교류를 맺어 후사로 세워 양자로 삼으면남편께서 계실 때는 존중받고 남편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양자가 왕이 됨으로써 결국 권세를 잃지 않으니이것이 소위 한마디 말로 만세의 이익을 얻음입니다.

不以繁華時樹本,即色衰愛弛後,雖欲開一語,尚可得乎?
번화할 때 근본을 세우지 않으면미모가 스러지고 사랑이 식은 후에 비록 한마디 말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今子楚賢,而自知中男也,次不得為適,其母又不得幸,自附夫人,夫人誠以此時拔以為適,夫人則竟世有寵於秦矣。」
지금 자초는 현명하여 스스로 차남은 次序상 후사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고그의 생모도 또한 사랑을 받지 못하므로 스스로 부인을 따를 터이니부인께서 진심으로 이때 그를 후사로 삼는다면부인께서는 평생 에서 총애를 받을 터입니다.”

華陽夫人以為然,承太子閒,從容言子楚質於趙者絕賢,來往者皆稱譽之。
화양부인이 옳다고 생각하여 태자가 한가한 틈을 타서 침착한 어투로 말하기를에 인질로 있는 자초가 매우 현명하며왕래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한다고 하였다.

乃因涕泣曰:
「妾幸得充後宮,不幸無子,願得子楚立以為適嗣,以託妾身。」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첩은 다행히 후궁에 있으나 불행히도 아들이 없으니부디 자초를 후사로 세워 첩의 몸을 맡기도록 하십시오.”

安國君許之,乃與夫人刻玉符,約以為適嗣。
안국군이 허락하고 화양부인에게 玉符를 새겨주며 후사로 삼겠다고 약속하였다.

安國君及夫人因厚餽遺子楚,而請呂不韋傅之,子楚以此名譽益盛於諸侯。
안국군과 화양부인은 이 일로 인하여 후한 선물을 자초에게 보내고여불위에게 보좌하기를 청하니자초는 이 일로 제후에게 명성이 더욱 알려졌다.

▶ 玩好: 진귀한 노리갯감.
▶ 蚤: 早와 통하여 일찍.
▶ 從容: 조용하다. 침착하다.
▶ 玉符: 고대 朝廷의 일종의 증빙.
▶ 饋遺: 물건을 보내 줌. 선물하다.

 

呂不韋取邯鄲諸姬絕好善舞者與居,知有身。
여불위는 한단의 여자 중에 미모가 뛰어나고 춤을 잘 추는 여자와 함께 살았는데임신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子楚從不韋飲,見而說之,因起為壽,請之。
자초가 여불위와 술을 마시다가 그녀를 보고 반하여 일어나서 祝壽하고 그녀를 요구하였다.

呂不韋怒,念業已破家為子楚,欲以釣奇,乃遂獻其姬。
여불위는 화가 났으나 이미 자초를 위해 가산을 탕진하였음을 생각하고 기화를 낚으려 마침내 그녀를 바쳤다.

姬自匿有身,至大期時,生子政。
여자는 스스로 임신을 숨기고 만삭 때에 이르러 아들 嬴政을 낳았다.

子楚遂立姬為夫人。
자초는 마침내 趙姬를 부인으로 삼았다.

▶ 絕好: 뛰어나게 아름답다.
▶ 有身: 임신.
▶ 釣奇: 큰 이익을 얻으려고 생각함을 말함. 앞에서의 ‘奇貨可居’의 의미.
▶ 大期: 임신한 여자가 아이를 낳을 달.
▶ 嬴政: 후일의 秦始皇. 통일 秦의 開國皇帝이자 탁월한 정치가, 전략가, 개혁가이다. 秦莊襄王의 아들로 趙의 수도인 邯鄲에서 출생하였다. 13세에 王位를 계승했고, 39세에 皇帝를 칭하였다.
▶ 趙姬: 趙출신으로 본래 상인 呂不韋와 함께 살았으나 여불위가 영자초에게 바치니 그의 부인이 되었다. 子楚夫人이라고도 하며, 진 시황제의 생모이다. 죽은 후의 시호는 帝太后이다.

 

秦昭王五十年,使王齮圍邯鄲,急,趙欲殺子楚。
秦昭王50(기원전257), 王齮로 하여금 한단을 포위하게 하자다급해진 는 자초를 죽이고자 하였다.

子楚與呂不韋謀,行金六百斤予守者吏,得脫,亡赴秦軍,遂以得歸。
자초가 여불위와 모의하여떠날 때 6백 근의 금을 자초를 지키던 관리에게 주고 탈출하여 秦軍으로 도망침으로써마침내 귀국할 수 있었다.

趙欲殺子楚妻子,子楚夫人趙豪家女也,得匿,以故母子竟得活。
는 자초의 처자를 죽이고자 했으나자초의 부인은 趙 호족의 딸이었기에 몸을 숨길 수 있었고그리하여 모자는 마침내 살 수 있었다.

秦昭王五十六年,薨,太子安國君立為王,華陽夫人為王后,子楚為太子。
秦昭王56년에 昭王이 훙서하고 태자 안국군이 즉위하여 왕이 되고 화양부인은 왕후자초는 태자가 되었다.

趙亦奉子楚夫人及子政歸秦。
趙 또한 자초부인과 아들 영정을 받들어 으로 돌려보냈다.

▶ 王齮: 王齕로도 쓴다. 전국시대 秦의 사람. 昭王 때 左庶長에 임명되어, 軍을 이끌고 韓과 趙를 공격하여 韓의 上黨과 趙의 皮牢를 탈취하였다. 일찍이 尉裨將으로 白起와 함께 長平에서 싸워 趙軍을 대파하였다. 나중에 王陵을 대신해 장수가 되어 趙의 수도 邯鄲을 포위했지만 함락시키지는 못하였다. 莊襄王 3년 上黨 및 여러 성을 공격하여 수중에 넣었다.

 

 

秦王立一年,薨,謚為孝文王。
진왕 즉위 1훙서하자 시호를 孝文王이라 하였다.

太子子楚代立,是為莊襄王。
태자 자초가 대를 이어 즉위하니 莊襄王이다.

莊襄王所母華陽后為華陽太后,真母夏姬尊以為夏太后。
장양왕의 양모 화양후는 화양태후가 되고생모 夏姬는 하태후로 높였다.

莊襄王元年,以呂不韋為丞相,封為文信侯,食河南雒陽十萬戶。
장양왕 원년(기원전249),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아서 文信侯에 봉했으며하남 雒陽의 10만 호를 식읍으로 내렸다.

▶ 謚: 諡號. 帝王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追贈하는 칭호.
▶ 所母: 義母.
▶ 真母: 生母.
▶ 食: 食邑. 국가에서 공신에게 조세를 부과하는 권한을 준 고을.

 

莊襄王即位三年,薨,太子政立為王,尊呂不韋為相國,號稱「仲父」
장양왕이 즉위 3년 만에 훙서허자 태자 영정이 즉위하여 왕이 되고여불위를 상국으로 높이고 仲父라 불렀다.

秦王年少,太后時時竊私通呂不韋。
진왕이 나이가 어렸기에 조태후는 때때로 남몰래 여불위와 사통하였다.

不韋家僮萬人。
여불위의 하인이 1만 명이나 되었다.

▶ 仲父: 父는 어버이와 같이 섬긴다는 뜻으로 ‘보’로 읽는다.
▶ 秦王年少: 당시 후일의 秦始皇인 진왕은 13세였다.

 

 

當是時,魏有信陵君,楚有春申君,趙有平原君,齊有孟嘗君,皆下士喜賓客以相傾。
당시 에는 信陵君이 있으며에는 春申君이 있고에는 平原君이 있고에는 孟嘗君이 있어서모두 선비들에게 겸손하게 대하고 빈객을 좋아하여 서로 경쟁하였다.

呂不韋以秦之彊,羞不如,亦招致士,厚遇之,至食客三千人。

여불위는 이 강국인데도 그들만 못함을 부끄러워하며역시 선비를 불러 후대하니 모인 식객이 3천 명이었다.

是時諸侯多辯士,如荀卿之徒,著書布天下。
당시 제후에게는 辯士들이 많았는데 荀卿같은 무리는 책을 지어 세상에 유포하였다.

※戰國四君: 齊의 맹상군 孟嘗君 田文, 趙의 平原君 趙勝, 魏의 信陵君 魏無忌, 楚의 春申君 黃歇을 말하며, 전국 칠웅 간에 외교활동으로 강국 秦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활약을 했었다.
▶ 下士: 선비들에게 겸손하게 대함

▶ 傾: 다투다, 경쟁하다(競爭--)

 

呂不韋乃使其客人人著所聞,集論以為八覽、六論、十二紀,二十餘萬言。
여불위는 이에 그의 빈객에게 사람마다 보고 들은 바를 쓰게 하여논한 바를 모아 八覽六論十二紀라 하니 20여 만자이었다.

以為備天地萬物古今之事,號曰呂氏春秋。
천지만물에 관하여 고금의 일을 갖추었다며 <呂氏春秋>라고 불렀다.

布咸陽市門,懸千金其上,延諸侯游士賓客有能增損一字者予千金。
이를 咸陽의 시장 문에 벌여놓고 그 위에 천금을 매달아 제후의 유세가나 빈객을 초빙하여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하였다.

▶ 呂氏春秋: 기원전239년 秦의 相國인 여불위가 주도하여 편집한 백과사전이다. 제자백가 중 잡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呂覽》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거상이자 진의 相國인 여불위가 전국의 논객을 모아 춘추전국시대의 모든 사상을 절충·통합시키고 세밀하게 분석하여 정치와 율령의 참고로 삼기 위해 저술하게 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총26권 160편으로, 연감에 해당하는 紀 12권, 보고서에 해당하는 覽 8권, 논문에 해당하는 論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禮記》의 〈月令篇〉 이들 중 十二紀, 즉 紀 12권의 요약이라고 한다. 다루고 있는 학설 중에는 道家의 것이 가장 많고 儒家·兵家·農家·法家의 주장과 이론도 섞여 있다. 여불위는 이 책을 진의 수도 함양 저잣거리에 전시해 놓고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고칠 수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 때문에 一字千金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위키백과>
▶ 延: 초빙하다.

 

 

始皇帝益壯,太后淫不止。
秦始皇帝가 장년이 되었는데도 조태후의 음행은 그치지 않았다.

呂不韋恐覺禍及己,乃私求大陰人嫪毐以為舍人,時縱倡樂,使毐以其陰關桐輪而行,令太后聞之,以啗太后。
여불위는 일이 발각되어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하여사적으로 음경이 큰 嫪毐를 구하여 舍人으로 삼아서때때로 광대에게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노애에게 음경에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걸고 걷게 하여조태후가 알게 함으로써 조태후를 꾀어냈다.

太后聞,果欲私得之。
조태후가 듣고 과연 은밀히 노애를 얻고자 하였다.

呂不韋乃進嫪毐,詐令人以腐罪告之。
여불위는 노애를 바치고 거짓으로 사람을 시켜서 腐罪에 처하도록 고발하였다.

▶ 太后: 조태후. 莊襄王의 아내이며 秦始皇의 生母. 呂不韋의 애첩으로 趙邯鄲에 와 있던 子楚(: 후에莊襄王)에게 呂不韋의 아이를 가진 채 안국군에게 가서 후에 后가 되었다. 계속 여불위와 私通하다가 여불위가 꾀를 써서 嫪毐를 소개해 주자 몰래 두 아이를 낳았다.
▶ 大陰: 생식기가 큼.
▶ 嫪毐 : 秦의 사람으로 환관이다. 太后의 총애를 받아 長信侯에 봉해졌다. 문하에 식객이 1천 명이었고, 하인도 수천 명을 두었다. 秦의 太后와 사통하고 진시황 政의 즉위식 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뒤 車裂刑을 당하였다.
▶ 關: 관통하다.
▶ 啗: 꾀다. 유혹하다.
▶ 腐罪: 腐刑에 처하는 죄. 腐刑은 宮刑을 말하며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

 

不韋又陰謂太后曰:
「可事詐腐,則得給事中。」

여불위는 또 은밀히 조태후에게 말하였다.
거짓으로 腐刑을 다스리고 給事中으로 삼으십시오.”


太后乃陰厚賜主腐者吏,詐論之,拔其須眉為宦者,遂得侍太后。
태후는 은밀히 부형을 집행하는 관리에게 후한 뇌물을 주고 거짓으로 부형을 집행하고수염과 눈썹을 뽑아 내시처럼 만들어 태후를 모시게 하였다.

太后私與通,絕愛之。
태후는 은밀히 사통하며 더없이 사랑하였다.

有身,太后恐人知之,詐卜當避時,徙宮居雍。
임신하자 태후는 남이 알까 두려워하여거짓으로 점을 치고 피해야 할 때이라며 궁궐을 으로 옮겨 살았다.

嫪毐常從,賞賜甚厚,事皆決於嫪毐。
노애가 늘 따르니 賞賜가 매우 후하였고정사가 모두 노애에게서 결정되었다.

嫪毐家僮數千人,諸客求宦為嫪毐舍人千餘人。
노애의 家僮은 수천 명이었고빈객으로 벼슬을 구하여 노애의 舍人이 된 자가 천여 명이었다.

▶ 避時: 재앙을 피하기 위해 거처를 바꿈.

 

始皇七年,莊襄王母夏太后薨。
진 시황7(기원전240), 장양왕의 생모인 하태후가 훙서하였다.

孝文王后曰華陽太后,與孝文王會葬壽陵。
효문왕후인 화양태후는 효문왕과 함께 壽陵에 합장되었었다.

夏太后子莊襄王葬芷陽,故夏太后獨別葬杜東,曰

「東望吾子,西望吾夫。
後百年,旁當有萬家邑」。
하태후의 아들 장양왕은 芷陽에 매장되었기 때문에 하태후는 홀로 떨어져서 杜原의 동쪽에 매장되었는데 말하기를

동쪽으로 내 아들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내 남편을 바라볼 수 있다.
백년 후에는 그 주변에 1만 호의 읍이 생길 것이다.”라고 하였다.

▶ 芷陽: 雍州의 萬年縣동북쪽25리 지점. 漢 文帝때 霸陵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전한다. <漢書 地理志>

 

始皇九年,有告嫪毐實非宦者,常與太后私亂,生子二人,皆匿之。與太后謀曰
「王即薨,以子為後」。
시황9(기원전238), 嫪毐는 실제로 환관이 아니며늘 조태후와 몰래 간음하면서 자식 두 명을 낳아 모두 숨겨놓았다는 고발이 있었는데 조태후와 모의하며,

왕이 죽으면 아들을 후사로 삼읍시다.”
라고 말했다고 하였다.

於是秦王下吏治,具得情實,事連相國呂不韋。
이에 진왕이 법관을 보내 조사하여 진상을 자세히 알아보니사건에 상국 여불위가 연루되어 있었다.

九月,夷嫪毐三族,殺太后所生兩子,而遂遷太后於雍。
9노애의 삼족을 주살하고 태후가 낳은 두 아들을 죽이고 마침내 태후를 옹 땅으로 내쫓았다.

諸嫪毐舍人皆沒其家而遷之蜀。
노애의 舍人은 모두 그 집의 재산을 몰수하고 땅으로 추방하였다.

王欲誅相國,為其奉先王功大,及賓客辯士為游說者衆,王不忍致法。
진왕이 상국 여불위를 죽이려 하였으나 그가 선왕을 받든 공이 컸고빈객과 변사 중에 그를 변호하는 자가 많았으므로진왕은 법대로 처벌하지 못하였다.

▶ 下吏治: 法官을 보내 심문하다.
▶ 具: 俱와 통하여 모두.
▶ 夷: 죽이다.

.

秦王十年十月,免相國呂不韋。
진왕10(기원전237) 10상국 여불위를 면직시켰다.

及齊人茅焦說秦王,秦王乃迎太后於雍,歸復咸陽,而出文信侯就國河南。
齊 사람 茅焦가 진왕을 설득하자 진왕은 에서 태후를 불러들여 다시 함양으로 돌아오게 했으며문신후 여불위를 내보내어 봉국인 하남으로 가게 하였다.

▶ 茅焦: 秦始皇 때 사람으로 秦太后가 嫪毐와 사통하고 몰래 모의하여 난을 일으켰는데, 일이 발각되자 始皇이 노애를 車裂刑에 처하고 태후를 萯陽宮으로 옮기고 나서 영을 내리기를 ‘감히 태후의 일로 諫하는 자는 죽일 것이다.’하고, 전후로 간하는 사람 27명을 죽였다. 이때 齊 빈객인 茅焦가 죽음을 무릅쓰고 나아가 간하여 설득시켰다. <說苑 正諫>

 

歲餘,諸侯賓客使者相望於道,請文信侯。
1년 동안에 제후의 빈객과 사자가 길에서 얼굴을 마주칠 정도로 문신후에게 문안하였다.

秦王恐其為變,乃賜文信侯書曰:
「君何功於秦?秦封君河南,食十萬戶。
君何親於秦?號稱仲父。
其與家屬徙處蜀!」

진왕은 그가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문신후에게 글을 보냈다.
그대는 에 무슨 공을 세웠기에 그대를 하남에 봉하고 10만 호의 식읍을 내렸는가?
그대는 과 무슨 친족이기에 중보라고 불렸는가?
가족과 함께 촉으로 거처를 옮겨라!”


呂不韋自度稍侵,恐誅,乃飲酖而死。
여불위는 점점 압박해옴을 스스로 판단하고주살당할까 두려워 酖酒를 마시고 죽었다.

秦王所加怒呂不韋、嫪毐皆已死,乃皆復歸嫪毐舍人遷蜀者。
진왕이 노여워하는 사람인 여불위와 노애가 모두 죽자노애의 사인으로 촉에 추방했던 자들을 모두 복귀시켰다.

始皇十九年,太后薨,謚為帝太后,與莊襄王會葬茝陽。
시황19(기원전228), 태후가 세상을 떠나자 시호를 帝太后로 하고 장양왕과 채양땅에 합장하였다.

▶ 請: 문안드리다.
▶ 酖: 鴆(짐새‘짐’)과 통하여 毒酒. 마시면 죽는 독주인 짐새의 깃을 술에 담근 독주의 독.

▶ 茝陽: 芷陽을 말한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不韋及嫪毐貴,封號文信侯。
여불위와 노애가 존귀하여 文信侯에 봉해졌다.

人之告嫪毐,毐聞之。
어떤 자가 노애를 고발함을 노애도 알았다.

秦王驗左右,未發。
진왕인 측근에게 증거를 검증하여 아직 발표하지 않았을 때다.

上之雍郊,毐恐禍起,乃與黨謀,矯太后璽發卒以反蘄年宮。
진왕이 옹에 가서 제사를 지내자 노애는 재앙이 생길까 두려워하여 그 黨人과 모의하여 태후의 인장을 위조하여 軍士를 일으켜 蘄年宮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發吏攻毐,毐敗亡走,追斬之好畤,遂滅其宗。
진왕이 官軍을 보내 노애를 공격함에 노애가 패하여 도망치자추격하여 好畤에서 목을 베고 마침내 그의 일족을 멸하였다.

而呂不韋由此絀矣。
여불위가 이 일 때문에 파면되었다.

孔子之所謂「聞」者 其呂子乎?”
孔子가 말한 이른바 명성만 얻고 실속이 없는 자란 여불위인가?

▶ 驗: 증거를 검증하다.
▶ 郊: 옛날 천자가 천지에 지내는 제사.
▶ 矯太后璽: 태후의 인장을 위조하다.
▶ 絀: 黜과 통하여. 파면하다. 면직하다.
▶ 孔子之所謂「聞」者: 論語顏淵에

“聞이란 얼굴빛은 仁을 취하나 행실은 실제 위배되며 그대로 머물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난다.”라고 하였으니, 명성만 얻고 실속이 없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