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81-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耽古樓主 2023. 8. 8.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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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 趙 말기에 활약했던 명장인 廉頗와 藺相如를 爲主하고 趙奢李牧 등의 열전을 함께 묶어서 구성한 것이다.
염파는 의 명장으로 과 魏 등과 싸워 여러 차례 적을 물리쳤으며 信平君의 칭호를 받았다같은 시대에 활약한 의 相國 藺相如와의 교우는 刎頸之交라는 고사의 유래가 되기도 하였다.
藺相如는 전국시대 의 相國으로이 속임수를 써서 뺏으려던 和氏璧을 지켜내고趙將 廉頗와 합심하여 趙를 굳건하게 지켜낸 일로 유명하다.
인상여가 의 사신으로 가서 화씨의 벽을 되찾아오는 데 공을 세워 相國의 자리에 올랐으나이를 시기한 염파를 자기편으로 끌여들여 負荊請罪로 刎頸之交가 된 고사는 유명하며完璧布衣之交兩鼠鬪穴膠柱鼓瑟 등의 고사성어가 나온다.

 

廉頗者,趙之良將也。
廉頗는 의 뛰어난 장수이다.

趙惠文王十六年,廉頗為趙將伐齊,大破之,取陽晉,拜為上卿,以勇氣聞於諸侯。
趙惠文王 16(기원전283), 염파는 趙將이 되어 를 공격하여 크게 무찌르고陽晉땅을 빼앗아 上卿이 되었으며이로써 勇氣가 제후에게 알려졌다.

藺相如者,趙人也,為趙宦者令繆賢舍人。
藺相如는 趙 사람으로 宦者令 繆賢의 舍人이었다.

▶ 趙惠文王: 기원전310년~기원전266년. 전국시대 趙의 제7대왕( 재위: 기원전298년~기원전266년)이다. 趙에서 최초로 ‘王’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성은 嬴, 씨는 趙, 휘는 何이며, 武靈王의 아들이며, 동생은 平原君이 있다.
▶ 陽晉: 齊의 城邑. 지금의 산동성 하봉현.
▶ 拜: 벼슬을 받다.
▶ 上卿: 전국시대 제후국 대신 중 최고의 관직.
▶ 宦者令: 환관의 우두머리.
▶ 舍人: 고관대작의 집에 기숙하는 食客. 시종.

趙惠文王時,得楚和氏璧。
趙惠文王 때 의 和氏璧을 얻게 되었다.

秦昭王聞之,使人遺趙王書,願以十五城請易璧。
秦昭王이 알고 사람을 시켜 조왕에게 편지를 보내어 열다섯 과 바꾸자고 하였다.

趙王與大將軍廉頗諸大臣謀:
欲予秦,秦城恐不可得,徒見欺;
欲勿予,即患秦兵之來。
조왕이 대장군 염파와 대신들과 상의하였다.
에 주자니 의 성을 아마 얻지 못하고 헛되이 기만을 당하겠고,
주지 않자니 秦軍이 쳐들어올까 걱정되었다.

計未定,求人可使報秦者,未得。
계획을 정하지 못하였고에 사자로 보낼 만한 사람을 구했으나 되지 않았다.

▶ 和氏璧: 春秋時代 楚사람 卞和가 楚山에서 璞玉(: 돌 속에 박혀 있는玉)을 채취하여 楚厲王에게 바치니, 여왕이 玉尹에게 감정하게 하였다. 옥윤이 옥이 아니고 돌이라고 아뢰니, 여왕은 왕을 속였다 하여 변화의 왼쪽 발꿈치를 잘랐다. 여왕이 죽고 武王이 즉위하니 변화는 또 그 박옥을 무왕에게 올렸다. 이번에도 옥윤이 돌이라고 아뢰니, 무왕은 왕을 속였다 하여 변화의 오른쪽 발꿈치를 잘랐다. 무왕이 죽고 文王이 즉위하니, 변화는 그 박옥을 안고서 초산 아래에서 사흘 동안 밤낮으로 통곡하였다. 이 말을 들은 문왕이 사람을 보내어 “천하에 발꿈치가 잘리는 형벌을 받은 자가 많은데, 너는 어째서 그리 슬피 우느냐?”라고 물으니, 변화는“寶玉을 돌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라 하기 때문에 이리 슬피 우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문왕이 사람을 시켜 그 박옥을 쪼개어 다듬게 하여 보옥을 얻고서 드디어 <和氏璧>이라고 명명하였다. <春秋戰國異辭><韓非子 和氏>
▶ 秦昭王: 기원전325년~기원전251년, 재위:기원전306년~기원전251년. 전국시대 秦의 제28대 군주이자 제3대 왕이다. 혜문왕의 서자이며, 성은 嬴, 휘는 稷이다. 효문왕의 아버지이다.
▶ 徒見欺: 헛되이 속임을 당하다.

宦者令繆賢曰:
「臣舍人藺相如可使。」
환자령 繆賢이 말하였다.
신의 舍人인 藺相如가 사자로 보낼 만합니다.”

王問:
「何以知之?」
조 혜문왕이 물었다.
어떻게 아는가?”

對曰:
무현이 대답하였다.

「臣嘗有罪,竊計欲亡走燕,臣舍人相如止臣,曰:
『君何以知燕王』
신이 일찍이 죄를 짓고 으로 달아나려고 남몰래 계획한 적이 있는데신의 舍人 상여가 신을 말리며 말하였습니다.
주군께서는 어찌 연왕을 알게 되었습니까?’

臣語曰:
『臣嘗從大王與燕王會境上,燕王私握臣手,曰「願結友」。
以此知之,故欲往。』
신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대왕을 모시고 연왕과 국경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연왕이 사사로이 내 손을 잡고 말하기를 <부디 교우를 맺고 싶소.>라고 하셨네.
이로써 연왕을 알게 되었으므로 가려 하네.’

相如謂臣曰:
『夫趙彊而燕弱,而君幸於趙王,故燕王欲結於君。
今君乃亡趙走燕,燕畏趙,其勢必不敢留君,而束君歸趙矣。
君不如肉袒伏斧質請罪,則幸得脫矣。』
인상여가 신에게 말하였습니다.
는 강하고 은 약하며주군께서는 왕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왕이 주군과 結交하려 한 터입니다.
그런데 주군께서 에서 도망쳐 에 달려가면은 가 두려워 형세상 분명 감히 머물게 하지 않고주군을 포박해서 로 돌려보낼 터입니다.
주군께서 웃통을 벗고 刑具를 지고 엎드려서 죄를 청함이 낫습니다요행히 죄를 벗을수도 있습니다.’

臣從其計,大王亦幸赦臣。
신이 그 계책을 따르자 대왕께서는 과연 다행히도 신을 사면하셨습니다.

臣竊以為其人勇士,有智謀,宜可使。」
신이 삼가 그의 사람됨이 勇士이고 지모가 있다고 여기니마땅히 사신으로 보낼 만합니다.”

▶ 竊: 남몰래. 살짝.
▶ 亡走: 도망가다. 달아나다.
▶ 境上: 국경부근. 燕과 越의 국경 부근.
▶ 幸: 총애.
▶ 肉袒伏斧質: 웃통을 벗고 벌을 받을 형구를 짊어지고 엎드림. 肉袒은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일.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낸다. 斧質은 刑具. 斧鉞의 형과 椹質의 형을 말한다.

於是王召見,問藺相如曰:
「秦王以十五城請易寡人之璧,可予不?」
이에 왕이 인상여를 불러서 만나보고 물었다.
진왕이 열다섯 으로 과인의 화씨벽과 바꾸자고 청하는데 주어야 하겠소안 주어야 하겠소?”

相如曰:
「秦彊而趙弱,不可不許。」
인상여가 말하였다.
은 강하고 는 약하니 허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王曰:
「取吾璧,不予我城,柰何?」
왕이 말하였다.
나의 화씨벽을 취하고 우리에게 을 주지 않으면 어찌하오?”

相如曰:
「秦以城求璧而趙不許,曲在趙。
趙予璧而秦不予趙城,曲在秦。
均之二策,寧許以負秦曲。」
인상여가 말하였다.
이 성으로써 벽을 요구했으니 가 불허하면 잘못은 에 있게 됩니다.
가 벽을 주었는데 이 에 성읍을 주지 않으면 잘못은 에 있게 됩니다.
두 계책을 따져볼 때 허락함으로써 잘못을 에 지움이 낫습니다.”

王曰:
「誰可使者?」
왕이 말하였다.
누가 사자로 가야 하겠소?”

相如曰:
「王必無人,臣願奉璧往使。
城入趙而璧留秦;
城不入,臣請完璧歸趙。」
인상여가 말하였다.
왕께 꼭 사람이 없으시면 신이 벽을 받들고 사자로 가겠습니다.
성이 에 들어오면 벽을 에 두고 오겠으나,
성이 들어오지 않으면 신이 벽을 온전히 하고 로 돌아오겠습니다.”

趙王於是遂遣相如奉璧西入秦。
조왕은 마침내 인상여를 보내니벽을 받들고 서쪽으로 에 들어갔다.

▶ 可予不: 옳은가 그른가의 여부. 不는否와 통한다.
▶ 曲: 바르지 않다. 이치가 닿지 않다.
▶ 均之二策: 두 계책을 따져보다. 均은 따져보다. 평가하다.
▶ 寧許以負秦曲: 秦의 책임으로 넘김. 寧許는 이와 같은.
▶ 完璧歸趙: 完璧은 完全無缺한 것을 비유하는 말의 고사성어이다. 완벽은 흠이 없는 완전한 璧이라는 뜻이며, 또한 구슬을 완전하게 보존한다는 뜻이다.

秦王坐章臺見相如,相如奉璧奏秦王。
秦王이 章臺에 앉아 인상여를 만나자 인상여는 을 받들어 秦昭王에게 바쳤다.

秦王大喜,傳以示美人及左右,左右皆呼萬歲。
秦王이 크게 기뻐하며 비빈들과 측근들에게 돌려가며 보여주자측근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다.

相如視秦王無意償趙城,乃前曰:
「璧有瑕,請指示王。」
인상여는 秦王이 에 성을 내줄 뜻이 없음을 보고앞으로 나가 말하였다.
벽에 작은 흠이 있는데 왕께 가리켜드리겠습니다.”

王授璧,相如因持璧卻立,倚柱,怒髪上沖冠,謂秦王曰:
이 을 주자 인상여는 을 잡고 물러서서 기둥에 기대었는데머리카락이 치솟아 관을 찌를 정도로 노하여 秦王에게 말하였다.

▶ 章台: 전국시대 秦의 離宮의 觀臺이름.
▶ 美人: 妃嬪. 제왕의 첩.
▶ 却立: 뒤로 물러서다.
▶ 怒髪上沖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다. 노발대발하다. 怒髪沖冠.

「大王欲得璧,使人發書至趙王,趙王悉召群臣議,皆曰
『秦貪,負其彊,以空言求璧,償城恐不可得』。
대왕께서 벽을 얻기 위해 사람을 시켜 편지를 조왕에게 보내니조왕이 신하를 모두 불러서 상의하였는데다들 말하였습니다.
은 탐욕스럽고 그의 강함을 믿고 빈말로 을 요구하니성을 보상받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議不欲予秦璧。
을 에 주지 않으려 의논하였습니다.

臣以為布衣之交尚不相欺,況大國乎!
신은 말하기를, ‘布衣之交에도 서로 속이지 않는데하물며 大國이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且以一璧之故逆彊秦之驩,不可。
또 璧 하나 때문에 강한 의 환심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於是趙王乃齋戒五日,使臣奉璧,拜送書於庭。
이에 조왕은 닷새 동안 재계하시고신을 시켜 벽을 받들고 삼가 조정에 書翰을 보냈습니다.

何者?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嚴大國之威以修敬也。
대국의 위엄을 존중하여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今臣至,大王見臣列觀,禮節甚倨;
得璧,傳之美人,以戲弄臣。
그런데 신이 도착하자 대왕께선 신을 觀臺에서 접견하며예절이 심히 거만하였고,
벽을 얻자 비빈들에게 전하여 신을 희롱하셨습니다.

臣觀大王無意償趙王城邑,故臣復取璧。
신은 대왕께 왕에게 성을 보상할 뜻이 없음을 알았으므로신이 다시 벽을 취하였습니다.

大王必欲急臣,臣頭今與璧俱碎於柱矣!」
대왕께서 기어이 신을 急迫하시면신의 머리는 당장 과 함께 기둥에서 부서질 터입니다!”

相如持其璧睨柱,欲以擊柱。
인상여가 을 쥐고 기둥을 노려보며 기둥에 부딪히려고 하였다.

▶ 布衣之交: 평민간의 교제. 벼슬이 없는 선비와 서민의 교제라는 뜻으로, 신분이나 지위를 떠나고, 이익 따위도 바라지 않는 교제를 비유하는 말.
▶ 齋戒: 부정한 일을 멀리하고 心身을 깨끗이 함
▶ 書: 월왕의 회답편지.
▶ 修敬: 경의를 표함.
▶ 列觀: 늘어선 樓觀. 章台를 말한다. 秦이 越 사신을 존중하지 않아 조정에서 접견하지 않고 觀臺에서 접견한 것을 뜻한다.
▶ 倨: 오만.
▶ 庭: 廷과 같으며 朝廷을 말한다.
▶ 睨: 노려보다.

秦王恐其破璧,乃辭謝固請,召有司案圖,指從此以往十五都予趙。
秦王은 그가 벽을 깨뜨릴까 염려하여이에 사과를 한사코 청하며有司를 불러서 지도를 펼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부터 뒤로 열다섯 성읍을 에 주라고 하였다.

相如度秦王特以詐詳為予趙城,實不可得,乃謂秦王曰:
「和氏璧,天下所共傳寶也,趙王恐,不敢不獻。
趙王送璧時,齋戒五日,今大王亦宜齋戒五日,設九賓於廷,臣乃敢上璧。」
인상여는 秦王이 단지 거짓으로 속여 에게 성을 주는 척할 뿐실제로 얻지 못하리라 여기고秦王에게 말하였다.
和氏璧은 천하가 함께 하는 보물로서趙王은 두려워하여 감히 바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왕이 벽을 보낼 때 닷새 동안 재계하였으니지금 대왕께서도 마땅히 닷새 동안 재계하시고 궁정에서 九賓의 예를 행하시면 신은 감히 벽을 바치겠습니다.”

▶ 辭謝: 완곡한 말로 사과하다.
▶ 固請: 억지로 청하다.
▶ 有司: 관리. 벼슬아치.
▶ 從此以往: 從此以後 여기부터 그 뒤 從今以往=從此以後
▶ 都: 城邑.
▶ 特: 다만. 오직.
▶ 詳為: 거짓으로 하다. 詳은 佯과 같으며 거짓.
▶ 九賓: 외교상의 최고의 예우를 말함. 구빈은 임금이 우대하는 아홉의 손님. 公ㆍ侯ㆍ伯ㆍ子ㆍ男ㆍ孤ㆍ卿ㆍ大夫ㆍ士를 일컬음

 

秦王度之,終不可彊奪,遂許齋五日,舍相如廣成傳。
秦王이 끝내 강제로는 빼앗지 못함을 헤아려재계 5일을 허락하고 인상여를 廣成傳에 묵게 하였다.

相如度秦王雖齋,決負約不償城,乃使其從者衣褐,懷其璧,從徑道亡,歸璧于趙。
인상여는 秦王이 비록 재계하나틀림없이 약속을 저버리고 성을 주지 않겠다고 판단하고從者를 시켜 허름한 옷을 입고벽을 품고지름길을 따라 달아나게 하여 로 벽을 돌려보냈다.

秦王齋五日後,乃設九賓禮於廷,引趙使者藺相如。
秦王이 재계 5일을 행한 후궁정에서 九賓의 예를 행하면서 의 사신 인상여를 引見하였다.

相如至,謂秦王曰:
인상여가 도착하여 秦昭王에게 말하였다.

「秦自繆公以來二十餘君,未嘗有堅明約束者也。
은 繆公 이래 20여 군주에堅實하고 명확하게 약속을 이행한 분이 없었습니다.

臣誠恐見欺於王而負趙,故令人持璧歸,閒至趙矣。
신은 진실로 왕에게 기만을 당하여 를 저버릴까 염려하였으므로사람을 시켜 을 갖고 돌아가게 했으니샛길로 에 이르렀을 터입니다.

且秦彊而趙弱,大王遣一介之使至趙,趙立奉璧來。
은 강하고 는 약하여대왕께서 사신 한 명을 에 보내자가 즉시 벽을 받들고 왔습니다.

今以秦之彊而先割十五都予趙,趙豈敢留璧而得罪於大王乎?
그러니 강한 이 먼저 열다섯 성읍을 떼어 에 준다면가 어찌 감히 벽에 미련을 두고 대왕께 죄를 짓겠습니까?

臣知欺大王之罪當誅,臣請就湯鑊,唯大王與群臣孰計議之。」
신은 대왕을 속인 죄가 죽어 마땅함을 알고 있으니끓는 가마솥에 나아가기를 청합니다대왕께서 신하들과 충분히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 舍: 묵게하다.
▶ 決: 틀림없이, 결코, 반드시,
▶ 衣褐: 허름한 옷.
▶ 徑道: 지름길. 사잇길.
▶ 繆公:秦穆公. 缪은 穆과 통한다. 嬴任好, (? ~기원전621년) (재위: 기원전659년~기원전621년.)
▶ 堅明約束: 단호하고 명확하게 맹약을 준수함.
▶ 閒至: 샛길로 이르다. 閒(間은 사잇길).
▶ 立: 즉시. 곧.
▶ 湯鑊:죄인을 죽이기 위하여 물이나 기름을 끓이는 가마솥. 고대 형벌의 일종으로 삶아 죽이는 烹刑이다.
▶ 唯: 바라건대
▶ 孰計議: 충분히 상의하다. 숙은 熟과 같다. 計議는 상의하다.

秦王與群臣相視而嘻。
秦王과 신하들은 서로 바라보며 놀라는 소리를 냈다.

左右或欲引相如去,秦王因曰:
「今殺相如,終不能得璧也,而絕秦趙之驩,不如因而厚遇之,使歸趙,趙王豈以一璧之故欺秦邪!」
측근 중 어떤 자가 인상여를 끌고 가려 했는데 秦王이 말하였다.
지금 인상여를 죽여도 끝내 벽을 얻을 수 없고과 의 우호를 끊을 터이라서후하게 대우하여 에 돌려보냄이 낫겠다조왕이 어찌 벽 하나를 이유로 을 속이겠는가!”

卒廷見相如,畢禮而歸之。
마침내 조정에서 인상여를 접견하고예를 마치자 돌려보냈다.

相如既歸,趙王以為賢大夫使不辱於諸侯,拜相如為上大夫。
인상여가 돌아오자 조왕은 현명한 대부가 사신이 되어 제후에게 욕보지 않았다고 여겨인상여를 上大夫로 삼았다.

秦亦不以城予趙,趙亦終不予秦璧。
은 과연 성을 에 주지 않았고趙 또한 끝내 에 벽을 주지 않았다.

其後秦伐趙,拔石城。
그 후 은 를 공격하여 石城을 점령하였다.

明年,復攻趙,殺二萬人。
이듬해다시 를 공격해 2만 명을 죽였다.

▶ 嘻: 놀란 목소리. 아. (뜻밖의 일을 당하여 놀라서 부르짖는 소리)
▶ 拔石城: 石城을 공격하여 빼앗음. 지금의 河南省林州.

 

秦王使使者告趙王,欲與王為好會於西河外澠池。
秦王이 사신을 보내 조왕에게 알리기를왕과 우호를 도모하고자 西河 밖의 澠池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趙王畏秦,欲毋行。
조왕은 을 두려워하여 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廉頗、藺相如計曰:
「王不行,示趙弱且怯也。」
염파와 인상여가 상의하여 말하였다.
왕께서 가시지 않으면 가 약하고 비겁한 나라로 보일 터입니다.”

趙王遂行,相如從。
조왕이 이에 出行함에 인상여가 隨從하였다.

廉頗送至境,與王訣曰:
「王行,度道里會遇之禮畢,還,不過三十日。
三十日不還,則請立太子為王。
以絕秦望。」
염파가 국경까지 전송하고 왕과 訣別하며 말하였다.
왕께서 가심에 길의 거리를 계산하면만남의 예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30일을 넘지 않을 터입니다.
30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시면 태자를 즉위시켜 왕으로 삼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의 야망을 끊겠습니다.”

王許之,遂與秦王會澠池。
왕이 허락하고 마침내 秦王과 민지에서 회합하였다.

▶ 爲好: 친선을 도모하다.
▶ 西河外渑池: 황하 서쪽 강변. 渑池는 지금 하남성 민지.
▶ 訣:고별.
▶ 道里: 旅程.

秦王飲酒酣,曰:
「寡人竊聞趙王好音,請奏瑟。」
秦王은 주연이 무르익자 말하였다.
과인은 삼가 조왕께서 음악을 좋아함을 아는데 거문고 연주를 부탁하오.”

趙王鼓瑟。
조왕이 거문고를 연주하였다.

秦御史前書曰
「某年月日,秦王與趙王會飲,令趙王鼓瑟」。
의 御史가 앞으로 나와서 적었다.
모년 모월 모일진왕이 조왕과 만나 술을 마시다가 조왕에게 거문고를 연주하게 하였다.”

藺相如前曰:
「趙王竊聞秦王善為秦聲,請奏盆缻秦王,以相娛樂。」
인상여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조왕께서는 삼가 진왕께서 의 노래를 잘함을 아오니盆缶를 진왕에게 올리니서로 즐기길 청합니다.”

秦王怒,不許。
秦王이 노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於是相如前進缻,因跪請秦王。
이에 인상여는 앞으로 나아가 분부를 바치며 꿇어앉아 진왕에게 청하였다.

秦王不肯擊缻。
진왕은 분부를 치려고 하지 않았다.

▶ 御史: 관직명. 국가 대사를 기록하는 관리.
▶ 秦聲: 秦의 음악.
▶ 盆缻: 토기로 만든 악기. 盆缶. 缶는 장군으로 아가리가 좁고 배가 불룩한 질그릇. 秦代사람은 연회 때 이것을 두들기며 장단을 맞추었다.

相如曰:
「五步之內,相如請得以頸血濺大王矣!」
인상여가 말하였다.
다섯 걸음 안이니신은 목을 찔러 피를 대왕께 뿌려서라도 청하겠습니다!”

左右欲刃相如,相如張目叱之,左右皆靡。
측근이 인상여를 베려고 하였으나인상여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측근들이 모두 뒤로 물러났다.

於是秦王不懌,為一擊缻。
이에 秦王은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분부를 한 번 두드렸다.

相如顧召趙御史書曰
「某年月日,秦王為趙王擊缻」。
인상여가 돌아보며 趙 어사를 불러서 적게 하였다.
모년 모월 모일진왕이 조왕을 위해 분부를 두드렸다.”

秦之群臣曰:
「請以趙十五城為秦王壽」。
의 신하들이 말하였다.
는 15으로 진왕을 축수해 주시오.”

藺相如亦曰:
「請以秦之咸陽為趙王壽。」
인상여도 말하였다.
의 咸陽땅으로 조왕을 축수해 주시오.”

秦王竟酒,終不能加勝於趙。
秦王은 주연을 마칠 때까지 끝내 보다 능가하여 이기지 못하였다.

趙亦盛設兵以待秦,秦不敢動。
趙 또한 병사를 많이 배치하여 을 대비였으므로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 刃: 베어죽이다.
▶ 叱: 꾸짖다. 소리치다.
▶ 靡: 쓰러지다. 여기서는 후퇴하다는 뜻.
▶ 不懌: 불쾌하다.
▶ 為秦王壽: 秦王將를 빌다. 壽는 祝壽의 예를 올리다.
▶ 加: 凌駕,侵凌 [bully] 加勝於趙。——《史記·廉頗藺相如列傳》 趙나라보다 능가하여 이길 수 없었다

既罷歸國,以相如功大,拜為上卿,位在廉頗之右。
회합을 마치고 귀국하여 인상여의 공이 크다며 上卿으로 삼으니지위가 염파보다 높았다.

廉頗曰:
「我為趙將,有攻城野戰之大功,而藺相如徒以口舌為勞,而位居我上,且相如素賤人,吾羞,不忍為之下。」
염파가 말하였다.
나는 趙將성을 공격하고 들판에서 전투하는 큰 공을 세웠고인상여는 한갖 입과 혀를 놀려 지위가 나보다 지위가 높다또 인상여는 바탕이 천한 사람이므로 나는 부끄러워서 차마 그의 밑에 있지 못한다.”

宣言曰:
「我見相如,必辱之。」
선언하였다.
내가 인상여를 만나면 기필코 욕보이겠다.”

相如聞,不肯與會。
인상여가 알고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相如每朝時,常稱病,不欲與廉頗爭列。
인상여는 조회 때마다 언제나 稱病하며 염파와 서열을 다투려고 하지 않았다.

已而相如出,望見廉頗,相如引車避匿。
조회가 끝나서 상여가 외출함에 멀리서 염파를 보면 인상여는 수레를 끌고 피해 숨어버렸다.

▶ 右: 옛날에는 오른쪽을 윗자리로 여겼다.
▶ 攻城野戰: 要塞를 공격하는 戰鬪와 들판에서 하는 전투.
▶ 徒: 단지. 다만.
▶ 宣言: 선언하다. 揚言.

於是舍人相與諫曰:
「臣所以去親戚而事君者,徒慕君之高義也。
今君與廉頗同列,廉君宣惡言而君畏匿之,恐懼殊甚,且庸人尚羞之,況於將相乎!
臣等不肖,請辭去。」
이에 舍人들이 함께 간언하였다.
이 친척을 떠나 주군을 모심은 단지 그대의 높은 義氣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군은 염파와 同列인데, 염군이 악담을 하고 다녀도 그를 두려워하며 숨으며두려워함이 특별히 심하니평범한 사람도 오히려 부끄러울 터인데 하물며 將相이겠습니까!
신들은 못났으니 작별하겠습니다.”

▶ 相與: 함께.
▶ 惡言: 악담.

藺相如固止之,曰:
「公之視廉將軍孰與秦王?」
인상여가 완강히 말렸다.
공이 보기에 염장군을 秦王에 비교하면 어떻소?”

曰:
「不若也。」
舍人이 말하였다.
못합니다.”

相如曰:
인상여가 말하였다.

「夫以秦王之威,而相如廷叱之,辱其群臣,相如雖駑,獨畏廉將軍哉?
저 진왕의 위엄을 나는 조정에서 꾸짖고 그의 신하들을 욕보였는데내가 비록 愚鈍하지만 어찌 염장군을 두려워하겠소?

顧吾念之,彊秦之所以不敢加兵於趙者,徒以吾兩人在也。
나를 돌아보며 생각하건대강성한 이 감히 에 출병하지 않음은오직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今兩虎共鬬,其勢不俱生。
그런데 두 호랑이가 함께 싸우면 형세상 모두 살지 못할 터이오.

吾所以為此者,以先國家之急而後私讎也。」
내가 이렇게 행동함은국가의 위급을 우선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廉頗聞之,肉袒負荊,因賓客至藺相如門謝罪。
염파는 듣자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짊어진 채로 빈객을 통하여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였다.

曰:
「鄙賤之人,不知將軍寬之至此也。」
염파가 말하였다.
저는 비천한 사람으로장군의 너그러움이 여기에 미쳤음을 몰랐습니다.”

卒相與驩,為刎頸之交。
결국 서로 화해하고 刎頸之交를 맺었다.

▶ 孰與秦王: 秦王과 비교하다.
▶ 駑: 우둔하다. 무능하다. 둔한 말.
▶ 肉袒負荊: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짐. 잘못을 크게 뉘우침의 뜻.
肉袒은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일.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내며, 負荊은 가시나무를 진다는 뜻으로 사죄의 뜻을 나타냄.
▶ 因: 통과.
▶ 刎頸之交: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우정 또는 그런 벗을 뜻한다. 刎頸은 목을 벰.

刎頸之交

是歲,廉頗東攻齊,破其一軍。
그해에 염파는 동쪽으로 를 공격하여 한 부대를 무찔렀다.

居二年,廉頗復伐齊幾,拔之。
2년 뒤 염파가 다시 의 幾邑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後三年,廉頗攻魏之防陵、安陽,拔之。
3년 후에 염파는 의 防陵安陽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後四年,藺相如將而攻齊,至平邑而罷。
4년 후에 인상여가 장수가 되어 를 공격하여 平邑까지 진격했다가 돌아왔다.

其明年,趙奢破秦軍閼與下。
그 이듬해 趙奢가 秦軍을 閼與城에서 무찔렀다.

▶ 齊幾: 齊의 幾邑.

趙奢者,趙之田部吏也。
趙奢는 의 전답의 조세를 징수하는 관리였다.

收租稅而平原君家不肯出趙,奢以法治之,殺平原君用事者九人。
조세를 걷는데 平原君의 집에서 세금을 내려 하지 않자조사가 법에 따라 다스려평원군의 일 보는 사람 아홉 명을 죽였다.

平原君怒,將殺奢。
평원군이 노하여 조사를 죽이려고 하였다.

奢因說曰:
조사가 이로 인하여 설명하였다.

「君於趙為貴公子,今縱君家而不奉公則法削,法削則國弱,國弱則諸侯加兵,諸侯加兵是無趙也,君安得有此富乎?
군께서는 의 귀공자인데군의 집을 내버려 두어 公事를 받들지 않으면법이 깎이고법이 깎이면 나라가 약해지며나라가 약해지면 제후가 출병하고제후가출병하면 를 없앨 터인데군께서 어찌 이런 부를 가지겠습니까?

以君之貴,奉公如法則上下平,上下平則國彊,國彊則趙固,而君為貴戚,豈輕於天下邪?」
군의 존귀함으로 법대로 公事를 받들면 위아래가 공평하고위아래가 공평하면 나라가 강해지며나라가 강해지면 는 견고할 터이니군께서 貴戚임이 어찌 천하에 가볍겠습니까?”

平原君以為賢,言之於王。
평원군은 현명하다고 여기고 왕에게 소개하였다.

王用之治國賦,國賦大平,民富而府庫實。
왕이 그를 등용하여 국세를 관리하자국세가 크게 공평하였으며백성은 부유하고 국고도 충실하였다.

▶ 趙奢(?~?): 전국시대 趙의 관료이자 장군이다. 趙 말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명장으로 손꼽힌다. 趙括의 아버지이다. 馬服君의 칭호를 받았다.
▶ 田部吏: 田畓의 조세 징수를 맡은 관리.
▶ 縱: 방임하다. 내버려두다.
▶ 奉公: 공적인 일을 위해 힘쓰다.
▶ 削: 약해지다.
▶ 貴戚: 왕의 인척.

 

秦伐韓,軍於閼與。
이 을 침공하여 閼與에 주둔하였다.

王召廉頗而問曰:
「可救不?」
왕이 염파를 불러서 물었다.
알여를 구원할 수 있겠소?”

對曰:
「道遠險狹,難救。」
염파가 대답하였다.
길이 멀고 험하며 좁으니 구원하기 어렵습니다.”

又召樂乘而問焉,樂乘對如廉頗言。
또 樂乘을 불러서 물으니 악승의 대답도 염파의 말과 같았다.

又召問趙奢,奢對曰:
「其道遠險狹,譬之猶兩鼠鬬於穴中,將勇者勝。」
또 조사를 불러서 물으니 조사가 대답하였다.
길이 멀고 험하며 좁으니비유하면 두 마리 쥐가 구멍 속에서 싸움이니 장수가 용감한 쪽이 이길 터입니다.”

王乃令趙奢將,救之。
왕은 이에 조사를 장수로 삼아 알여를 구원하였다.

▶ 閼與: 지금의 山西省和順의 서쪽.
▶ 兩鼠鬪穴: 좁은 구멍에서 두 마리의 쥐가 싸우면 용감한 쥐가 이긴다. 즉, 의미없는 싸움을 말한다.

兵去邯鄲三十里,而令軍中曰:
「有以軍事諫者死。」
군대가 邯鄲을 떠나서 30리쯤에서 조사가 군중에 명령하였다.
軍事를 간언하는 자가 있다면 죽일 터이다.”

秦軍軍武安西,秦軍鼓譟勒兵,武安屋瓦盡振。
秦軍이 武安의 서쪽에서 진을 쳤는데秦軍은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대오를 정돈하니 무안성의 기와가 모두 떠는 듯하였다.

軍中候有一人言急救武安,趙奢立斬之。
군중의 斥候 한 명이 무안을 급히 구원하자고 말하자조사는 그 자리에서 그를 참수하였다.

堅壁,留二十八日不行,復益增壘。
보루를 견고히 하고 28일 동안 움직이지 않고 머물며다시 보루를 더욱 증가하였다.

秦閒來入,趙奢善食而遣之。
의 간첩이 들어왔으나 조사는 좋은 잘 먹여 돌려보냈다.

閒以報秦將,秦將大喜曰:
「夫去國三十里而軍不行,乃增壘,閼與非趙地也。」
간첩이 秦將에게 보고하자 秦將이 매우 기뻐하며 말하였다.
무릇 도성에서 30리를 가서 주둔하며 움직이지 않고 보루만 쌓고 있으니閼與는 의 땅이 아닐 터이다.”

▶ 秦軍軍: 秦軍이 진을 치다. 뒤의 軍은 陣을 치다.
▶ 鼓噪: 出陣할 때 북을 치고 함성을 질러서 기세를 올림.
▶ 勒兵: 軍의 대오를 정돈하고 점검함.
▶ 候: 척후. 염탐꾼.
▶ 堅壁: 군영의 堡壘를 견고히 하다.
▶ 秦閒: 秦의 間諜.
▶ 去國: 도성을 떠나다. 國은 都城.

趙奢既已遣秦閒,卷甲而趨之,二日一夜至,今善射者去閼與五十里而軍。
조사는 의 간첩을 돌려보내고 나서갑옷을 벗고 뒤쫓게 하니 12일 만에 도착하였고궁수들을 알여에서 50리 떨어진 곳에 주둔시켰다.

軍壘成,秦人聞之,悉甲而至。
군대가 보루를 완성하자 秦軍이 알고 병사를 총동원하여 쳐들어왔다.

軍士許歷請以軍事諫,趙奢曰:
「內之。」
의 병사 許歷이 軍事를 간언하겠다고 청하자조사가 말하였다.
들여라.”

許歷曰:
「秦人不意趙師至此,其來氣盛,將軍必厚集其陣以待之。
不然,必敗。」
허력이 말하였다.
秦軍은 趙軍이 여기에 오리라고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세 좋게 올 터이니,
장군께서는 반드시 진지를 두텁게 안정시킴으로써 대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패할 터입니다.”

趙奢曰:
「請受令。」
조사가 말하였다.
말을 따르겠네.”

▶ 卷甲: 갑옷을 말아두다.

許歷曰:
「請就鈇質之誅。」
허력이 말하였다.
제게 鈇鑕을 죽임에 나아가겠습니다.”

趙奢曰:
「胥後令邯鄲。」
조사가 말하였다.
훗날 한단의 명령을 기다려라.”

許歷復請諫,曰:
「先據北山上者勝,後至者敗。」
허력이 또 간언하겠다며 말하였다.
먼저 北山을 점거하는 자가 이길 터이며나중에 이르는 자는 패할 터입니다.”

趙奢許諾,即發萬人趨之。
조사가 허락하여 곧 병사 1만을 뽑아 달려가게 하였다.

秦兵後至,爭山不得上,趙奢縱兵擊之,大破秦軍。
秦軍이 나중에 도착해서 정상을 다투었으나 오를 수 없었고조사는 을 풀어서 을 치니 秦軍을 크게 격파하였다.

秦軍解而走,遂解閼與之圍而歸。
秦軍이 포위를 풀고 달아나니마침내 알여의 포위를 풀고 돌아왔다.

趙惠文王賜奢號為馬服君,以許歷為國尉。
조혜문왕은 조사에게 馬服君의 칭호를 내리고 허력을 國尉로 삼았다.

趙奢於是與廉頗、藺相如同位。
조사는 이에 염파 및 인상여와 같은 지위에 올랐다.

▶ 鈇質: =斧質. 刑具. 斧鉞의 형과 椹質의 형을 말한다.
▶ 胥後令邯郸: 한단에 돌아가서 왕의 명령을 받고 처리함. 胥는 須와 통하여 ‘기다리다’.

後四年,趙惠文王卒,子孝成王立。
4년 후조혜문왕이 죽고 아들 趙孝成王이 즉위하였다.

七年,秦與趙兵相距長平,時趙奢已死,而藺相如病甐,趙使廉頗將攻秦,秦數敗趙軍,趙軍固壁不戰。
즉위 칠년과 의 병사가 長平에서 대치했는데이때 조사는 이미 죽었으며 인상여는 병이 위중하여는 염파를 장수로 삼아 을 공격하니은 여러 번 趙軍을 물리쳤으나 趙軍은 보루를 굳게 하고 싸우지 않았다.

秦數挑戰,廉頗不肯。
이 數次 싸움을 걸었으나 염파는 응하지 않았다.

趙王信秦之閒。
趙王이 의 간첩의 말을 믿었다.

秦之閒言曰:
「秦之所惡,獨畏馬服君趙奢之子趙括為將耳。」
의 간첩이 말하였다.
이 싫어하는 바가 있으니오직 마복군 조사의 아들 趙括이 장수가 됨을 두려워한다.”

趙王因以括為將,代廉頗。
趙王은 이 때문에 조괄을 장수로 삼아 염파를 대신하려고 하였다.

藺相如曰:
「王以名使括,若膠柱而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傳,不知合變也。」
인상여가 말하였다.
왕께서 명성만 듣고 조괄을 부리려 하시는데 膠柱鼓瑟과 같습니다.
조괄은 단지 아버지가 글로 전한 것을 읽었을 뿐임기응변을 모릅니다.”

趙王不聽,遂將之。
趙王이 듣지 않고 조괄을 장수로 삼았다.

▶ 病甐(병린): =病篤. 병이 위중하다. 篤은 위중하다.
▶ 趙王因以括為將,代廉頗: 趙孝成王은 이 때문에 조괄을 장수로 삼아 염파를 대신하게 하려고 하였다. 염파가 秦과 전투 중에 보루를 쌓고 싸움에 응하지 않자 范睢가 趙에 사람을 보내 반간계를 펼쳤다.
“秦이 두려워함은 오직 馬服君趙奢의 아들 趙括이 장수가 되는 것이며, 염파는 쉬운 상대이므로 장차 싸움에 지고 秦에 항복할 것이다.”
趙孝成王은 염파의 軍에 죽은 자나 도망친 자가 많고, 싸움에서 여러 번 졌는데 도리어 굳게 지킬 뿐 감히 싸우지 않으니 노하였는데, 또 秦의 반간계를 듣자 조괄을 염파 대신 장수로 삼고 秦을 쳤다. <史記 卷73白起王翦列傳>
▶ 膠柱而鼓瑟: =膠柱鼓瑟. 고지식하여 조금도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한 말. 거문고의 기러기 발을 아교로 붙여 고정해 두고 거문고를 타면 조율을 할 수 없게 되어 한 가지 소리밖에 낼 수 없다는 뜻. 柱는 기러기발.

趙括自少時學兵法,言兵事,以天下莫能當。
趙括은 어릴 때부터 병법을 배워서 말하기를軍事에 관해서는 천하 사람으로도 그를 당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嘗與其父奢言兵事,奢不能難,然不謂善。
일찍이 그 아버지 趙奢와 兵事를 논할 적에 조사도 반박하지 못했으나아들이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았다.

括母問奢其故,奢曰:
「兵,死地也,而括易言之。
使趙不將括即已,若必將之,破趙軍者必括也。」
조괄의 어머니가 조사에게 그 이유를 묻자 조사가 대답하였다.
이란 死地인데 괄은 쉽게 그것을 말하오.
가 괄을 장수로 삼지 않으면 그만이나기어이 장수로 삼으면 趙軍을 망칠 자는 틀림없이 괄일 터이오.”

及括將行,其母上書言於王曰:
「括不可使將。」
조괄이 출발하려고 하자그 어머니가 왕에게 글을 올렸다.
조괄을 장수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 莫能當: 당할 자가 없다. 當은 대항하다.
▶ 不能難: 반박하지 못하다. 難은 반박하다.
※紙上談兵: 조괄이 병법을 논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종이 위에서 병법을 말한다는 뜻이며 실제적인 쓰임에서는 필요 없음을 말한다.
▶ 不將括即已: 조괄을 장수로 삼지 않다. 即은則과 같다.

王曰:
「何以?」
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對曰:
대답하였다.

「始妾事其父,時為將,身所奉飯飲而進食者以十數,所友者以百數,大王及宗室所賞賜者盡以予軍吏士大夫,受命之日,不問家事。
옛날 첩이 그의 아버지를 모심에그때 장군이었는데몸소 음식을 바쳐 밥을 먹이는 사람이 수십이었고친구는 수백이었으며대왕과 종실에서 상으로 하사한 것은 모조리 軍吏나 사대부에게 주었고출정 명령을 받는 날이면 집안일을 묻지도 않았습니다.

今括一旦為將,東向而朝,軍吏無敢仰視之者,王所賜金帛,歸藏於家,而日視便利田宅可買者買之。
그런데 괄은 하루아침에 장수가 되어 동쪽을 향하여 문안을 받고軍吏에 감히 쳐다보는 자가 없으며왕께서 하사하신 金帛을 집으로 가져와 저장하고날마다 이익이 되는 田宅을 살펴서 살 만한 것을 사들입니다.

王以為何如其父?
왕께서는 어찌 그의 아버지와 같다고 여기십니까?

父子異心,願王勿遣。」
父子의 마음이 다르니왕께서는 장군으로 보내지 마시옵소서.”

王曰:
「母置之,吾已決矣。」
이 말하였다.
어머니는 내버려 두시오과인은 이미 결정했소.”

括母因曰:
「王終遣之,即有如不稱,妾得無隨坐乎?」
조괄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왕께서 끝내 보내시려거든, (괄에게직무를 감당하지 못함이 있어도첩이 연좌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王許諾。
이 허락하였다.

▶ 東向: 서쪽에 앉아 동쪽을 보다. 옛날 제왕들은 南面하였으며, 公侯將相은 東面하였다.
▶ 不稱: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다.
▶ 隨坐: 連坐하다. 연루되다.

 

趙括既代廉頗,悉更約束,易置軍吏。
조괄은 염파를 대신하게 되자 모든 군령을 고치고 軍吏의 위치를 바꿨다.

秦將白起聞之,縱奇兵,詳敗走,而絕其糧道,分斷其軍為二,士卒離心。
秦將 白起가 듣고 奇兵을 보내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면서 보급로를 끊어서軍隊를 둘로 분단하고병사들의 마음을 분산시켰다.

四十餘日,軍餓,趙括出銳卒自博戰,秦軍射殺趙括。
40여 일이 지나 軍士가 굶주리자 조괄이 정예병을 내어 직접 싸웠으나秦軍이 조괄을 활로 쏴 죽였다.

括軍敗,數十萬之衆遂降秦,秦悉阬之。
조괄의 은 패하고 수십만의 병사는 마침내 에 항복했으나은 모두 생매장하였다.

趙前後所亡凡四十五萬。
가 前後하여 잃은 병사가 총 45만이었다.

明年,秦兵遂圍邯鄲,歲餘,幾不得脫。
이듬해秦軍이 마침내 한단을 포위하니, 1년여에 거의 벗어날 수 없었다.

賴楚、魏諸侯來救,乃得解邯鄲之圍。
와 에 의뢰하여 제후가 와서 구원하니한단 땅의 포위를 풀 수 있었다.

趙王亦以括母先言,竟不誅也。
趙王은 조괄의 어머니가 예전에 한 말 때문에 마침내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 約束: 군령.
▶ 易置: 바꾸어 놓음.
▶ 銳卒: 精兵. 날쌔고 용감한 병사.
▶ 阬: =坑. 생매장하다.

 

自邯鄲圍解五年,而燕用栗腹之謀,曰
「趙壯者盡於長平,其孤未壯」,舉兵擊趙。
한단의 포위가 풀리고 5이 栗腹의 계책을 채용했는데그 계책이란 의 壯丁은 장평 싸움에서 모두 죽고그들의 고아는 아직 장성하지 않았다.”라는 것이고이에 병사를 일으켜 를 쳤다.

趙使廉頗將,擊,大破燕軍於鄗,殺栗腹,遂圍燕。
는 염파를 장수로 삼아 공격하여 에서 燕軍을 대파하고율복을 죽였으며을 포위하였다.

燕割五城請和,乃聽之。
이 다섯 을 떼어주며 화친을 청하자 들어주었다.

趙以尉文封廉頗為信平君,為假相國。
는 尉文에 염파를 봉하고 信平君으로 삼으니임시 相國이 되었다.

▶ 栗腹: 인명. 燕의 相國.
▶ 燕用栗腹之謀: 연왕이 율복의 계책을 사용하다. 燕王 喜가 栗腹에게 1백 금을 주어 趙 孝成王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으로 삼았다. 율복은 趙에서 사흘 동안의 잔치를 끝내고 돌아와 이렇게 보고하였다.
“趙 백성들은 나이가 壯年인 자는 모두 장평싸움에서 죽고, 그 유족 어린애들은 아직 자라지 않아 칠 만합니다.”

율복에게 40만 군으로 趙의 鄗땅을 공격하게 하고 慶秦에게는 20만으로 代를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자 趙에서는 이에 맞서 廉頗에게 8만 軍으로 䧚에서 율복을 맞아 싸우도록 하고, 樂乘에게는 5만 군으로 代에서 경진을 막도록 하였다. 싸움은 燕이 크게 패하였다. <戰國策31卷 燕策473. 燕王喜使栗腹>
▶ 孤: 고아. 장평의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의 고아.
▶ 假: 代理. 임시.

 

廉頗之免長平歸也,失勢之時,故客盡去。
염파가 장평에서 면직되어 돌아옴에권세를 잃었을 때는 예전의 빈객들이 모두 떠났었다.

及復用為將,客又復至。
다시 기용되어 장군이 되자 빈객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廉頗曰:
「客退矣!」

염파가 말하였다.
빈객들은 물러가라!”


客曰:
「吁!君何見之晚也?
夫天下以市道交,君有勢,我則從君,君無勢則去,此固其理也,有何怨乎?」

빈객이 말하였다.
군께서는 어찌 그리 소견이 뒤떨어지십니까?
무릇 천하 사람들은 시장의 도리로 사귀므로군께 권세가 있으면 군을 따르고군께 권세가 없으면 떠나니이것은 본래의 이치인데무슨 원망을 가지십니까?”




居六年,趙使廉頗伐魏之繁陽,拔之。
6년 뒤는 염파를 보내 의 繁陽을 공격해 함락하였다.

▶ 見: 見解.
▶ 晚: 둔하다. 무디다.
▶ 市道: 장사의 商道.

 

趙孝成王卒,子悼襄王立,使樂乘代廉頗。
趙孝成王이 죽고 아들 悼襄王이 즉위하자 악승으로 염파를 대신하게 하였다.

廉頗怒,攻樂乘,樂乘走。
염파가 노하여 악승을 공격하자 악승이 달아났다.

廉頗遂奔魏之大梁。
염파도 결국 의 大梁으로 달아났다.

其明年,趙乃以李牧為將而攻燕,拔武遂、方城。
이듬해는 李牧을 장수로 삼아 을 공격해 武遂와 方城을 함락하였다.

▶ 李牧: 趙將으로 염파는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우고 강한 秦軍을 맞아 잘 싸웠으며, 李牧은 북쪽 변경을 수비하면서 匈奴와 東胡를 대파하였다.

 

廉頗居梁久之,魏不能信用。
염파가 대량에 머무른 지 오래되었으나는 信用하지 않았다.

趙以數困於秦兵,趙王思復得廉頗,廉頗亦思復用於趙。
는 秦軍에게 여러 번 시달렸으므로조왕은 다시 염파를 얻으려고 생각했고염파도 다시 에 등용되고 싶었다.

趙王使使者視廉頗尚可用否。
조왕은 사자를 보내 염파가 아직도 쓸 만한지 보게 하였다.

廉頗之仇郭開多與使者金,令毀之。
염파의 원수 郭開가 사신에게 많은 돈을 주고 모함하게 하였다.

趙使者既見廉頗,廉頗為之一飯斗米,肉十斤,被甲上馬,以示尚可用。
의 사신이 염파를 만나자염파는 한 말의 쌀로 지은 밥을 먹고고기 열 근을 먹었으며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아직도 쓸 만함을 보였다.

趙使還報王曰:
「廉將軍雖老,尚善飯,然與臣坐,頃之三遺矢矣。」

의 사자가 돌아가서 왕에게 보고하였다.
염장군은 비록 늙었으나 아직도 식사를 잘했습니다그러나 신과 함께 앉아 있음에 그동안에 세 번이나 대변을 보았습니다.”


趙王以為老,遂不召。
왕은 염파가 늙었다고 여기고 부르지 않았다.

▶ 毀: 비방하다. 중상하다.
▶ 遺矢: 대변을 보다. 矢는 屎(대변 ‘시’)와 같다.

 

楚聞廉頗在魏,陰使人迎之。
는 염파가 에 있음을 알고 은밀히 사람을 보내 그를 맞아들였다.

廉頗一為楚將,無功,曰:
「我思用趙人。」
염파는 한 차례 의 장수가 되었으나 공을 세우지 못하자 말하였다.
나는 의 사람을 쓰고 싶다.”


廉頗卒死于壽春。
염파는 마침내 壽春에서 죽었다.

▶ 壽春: 지금의 安徽省壽縣.

 

李牧者,趙之北邊良將也。
李牧은 의 북쪽 변방의 良將이다.

常居代鴈門,備匈奴。
늘 땅의 鴈門에 주둔하면서 흉노에 대비하였다.

以便宜置吏,市租皆輸入莫府,為士卒費。
편의에 따라 관리를 두고시장의 조세를 모두 莫府로 들여보내 병사를 위해 썼다.

日擊數牛饗士,習射騎,謹烽火,多閒諜,厚遇戰士。
날마다 몇 마리의 소를 잡아서 병사들을 대접하며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히게 했고봉화에 조심하고많은 간첩을 풀었으며 전사들을 후하게 대우하였다.

為約曰:
「匈奴即入盜,急入收保,有敢捕虜者斬。」

이목은 군령을 내렸다.
흉노가 들어와 도적질하면 급히 들어와서 성을 지켜라감히 사로잡으려는 자가 있다면 참형에 처할 터이다.”


匈奴每入,烽火謹,輒入收保,不敢戰。
흉노가 침입할 때마다 봉화를 근엄하게 하고그때마다 성안으로 들어와서 지키고 싸우지 않았다.

如是數歲,亦不亡失。
이같이 하여 몇 년이 지나도죽거나 손실이 없었다.

然匈奴以李牧為怯,雖趙邊兵亦以為吾將怯。
그러나 흉노는 이목을 겁쟁이로 여기고趙 변방의 병사들조차 자신의 장군을 겁쟁이라고 여겼다.

趙王讓李牧,李牧如故。
조왕이 이목을 꾸짖었으나 이목은 예전과 같았다.

趙王怒,召之,使他人代將。
조왕이 노하여 이목을 불러들이고 다른 사람을 시켜 장군을 대신하였다.

▶ 代雁門: 代땅의 雁門郡.
▶ 莫府: 幕府. 莫은 幕과 통한다. 옛날 장수들이 전쟁 중에 사무 보던 곳.
▶ 饗: 술과 음식을 대접하다.

▶ 入盜: 도둑 떼가 쳐들어옴.
▶ 收保: 성을 지킴. 保는堡와 같다.
▶ 輒: 곧. 즉시.
▶ 讓: 꾸짖다.

 

歲餘,匈奴每來,出戰。
1년여흉노가 침입할 때마다 나가서 싸웠다.

出戰,數不利,失亡多,邊不得田畜。
나가서 싸웠으나 여러 차례 불리하여잃는 것이 많아서변방에서 농사와 목축을 할 수 없었다.

復請李牧。
조왕은 다시 이목을 청하였다.

牧杜門不出,固稱疾。
이목은 杜門不出하며 한사코 병을 핑계하였다.

趙王乃復彊起使將兵。
조왕이 거듭 억지로 나오게 하고 병사를 이끌게 하였다.

牧曰:
「王必用臣,臣如前,乃敢奉令。」

이목이 말하였다.
왕께서 기어이 신을 쓰려 하시니신이 이전처럼 해도 된다면 감히 명을 받들겠습니다.”


王許之。
왕이 허락하였다.


李牧至,如故約。
이목이 도착하여 전과 같이 군령을 내렸다.

匈奴數歲無所得。
흉노는 몇 년 동안 소득이 없었다.

終以為怯。
끝내는 겁쟁이라고 여겼다.

邊士日得賞賜而不用,皆願一戰。
변방의 병사들이 날마다 상을 받으면서도 쓰이지 않자모두 한 번 싸우기를 바랐다.

於是乃具選車得千三百乘,選騎得萬三千匹,百金之士五萬人,彀者十萬人,悉勒習戰。
이목은 전차를 골라 1,300 을 갖추고기마 13천 필을 골라서百金의 勇士 5만 명과 활을 잘 쏘는 병사 10만 명을 뽑아 모두 전투를 익히게 하였다.

大縱畜牧,人民滿野。
가축을 온통 들에 풀어 놓았고백성이 들에 가득하였다.

匈奴小入,詳北不勝,以數千人委之。
흉노가 조금 쳐들어오자 거짓으로 패하며 달아나며수천 명을 내버려두었다.

單于聞之,大率衆來入。
單于가 이를 듣고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李牧多為奇陳,張左右翼擊之,大破殺匈奴十餘萬騎。
이목에게 기이한 진법을 씀이 많아서좌우의 날개를 펴서 공격하고 대파하여 흉노 10여 만의 기병을 죽였다.

滅襜襤,破東胡,降林胡,單于奔走。
襜襤을 멸하고 東胡를 무찌르고 林胡를 항복시키자 선우가 달아났다.

其後十餘歲,匈奴不敢近趙邊城。
그 후 10여 년흉노는 감히 의 邊城에 가까이하지 못하였다.

▶ 田畜: 농사와 목축.
▶ 乃復: 거듭.
▶ 百金之士: 매우 큰 공을 세운 용사. 백금을 받은 용사.
▶ 彀者: 활을 잘 쏘는자.
▶ 詳北不勝: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다. 詳은 거짓. 北은 달아나다.
▶ 委: 버리다. 내버려두다.
▶ 單于: 흉노가 군주나 추장을 높이어 부르던 칭호.
▶ 襜襤: 부족명. 代땅의 북쪽.
▶ 東胡: 부족명. 흉노의 동쪽.
▶ 林胡: 부족명. 지금의 산서성 삭현.

趙悼襄王元年,廉頗既亡入魏,趙使李牧攻燕,拔武遂、方城。
조도양왕 원년(기원전244), 염파는 이미 에 망명했으므로는 이목으로 하여금 을 공격하여 武遂方城을 함락하였다.

居二年,龐煖破燕軍,殺劇辛。
2년 뒤龐煖은 燕軍을 무찌르고 劇辛을 죽였다.

後七年,秦破殺趙將扈輒於武遂,斬首十萬。
7년 후이 武遂에서 趙將 扈輒을 무찔러 죽였으며, 10만을 참수하였다.

趙乃以李牧為大將軍,擊秦軍於宜安,大破秦軍,走秦將桓齮。
는 이에 이목을 대장군으로 삼아서 宜安에서 秦軍을 쳐서秦軍을 크게 무찔렀으며秦將 桓齮를 달아나게 하였다.

封李牧為武安君。
이목을 武安君에 봉하였다.

居三年,秦攻番吾,李牧擊破秦軍,南距韓、魏。
3년 뒤이 番吾를 공격하자 이목이 秦軍을 격파하고남쪽에서 .와 대치하였다.

趙悼襄王: 전국시대 의 군주. 이름은 이고, 孝成王의 아들이다.

▶ 劇辛: 전국시대 趙 사람으로 燕昭王때 趙에서 燕으로 와 국정을 맡고, 秦과 楚, 三晋을 연합시켜 齊를 공격하였다. 燕王 喜 13년 燕將가 되어 趙를 공격하다가, 趙將 龐煖에게 살해당하였다.

 

趙王遷七年,秦使王翦攻趙,趙使李牧、司馬尚御之。
趙王 遷 7(기원전229), 은 王翦으로 하여금 를 공격하게 하자 는 이목과 司馬尚으로 방어하게 하였다.

秦多與趙王寵臣郭開金,為反閒,言李牧、司馬尚欲反。

이 조왕의 寵臣 郭開에게 뇌물을 많이 주고 반간계를 써서 이목과 사마상이 반란을 꾀한다고 말하게 하였다.

趙王乃使趙蔥及齊將顏聚代李牧。
조왕은 이에 趙蔥과 齊將 顏聚를 보내 이목을 대신하게 하였다.

李牧不受命,趙使人微捕得李牧,斬之。
이목이 명령을 따르지 않자 는 사람을 보내 남몰래 조사하고 체포하여 참수하였다.

廢司馬尚。
사마상을 해임하였다.

後三月,王翦因急擊趙,大破殺趙蔥,虜趙王遷及其將顏聚,遂滅趙。
석 달 후왕전은 급히 를 공격해서 대파하고 조총을 죽였으며조왕 천과 將帥 顏聚를 포로로 잡고드디어 를 멸하였다.

▶ 趙王遷: 趙遷. 趙 최후의 임금. 幽繆王.
▶ 王翦: 전국시대 秦將로서 趙와 楚 등을 점령해 진의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웠다.
▶ 微捕: 몰래 조사하여 체포하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知死必勇,非死者難也,處死者難。
죽음을 알면 틀림없이 용기가 생기니죽음이라는 것이 어렵지 않고 죽음에 대처함이 어렵다.

方藺相如引璧睨柱,及叱秦王左右,勢不過誅,然士或怯懦而不敢發。
인상여가 을 끌어안고 기둥을 노려보며 秦昭王과 측근을 꾸짖을 때형세는 사형에 불과하다그러나 선비 중에 어떤 이는 겁이 많고 나약하여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相如一奮其氣,威信敵國,退而讓頗,名重太山,其處智勇,可謂兼之矣!
인상여가 한 번 그 의기를 떨치자 위엄이 적국에 퍼졌으나염파에게 退讓하여 명성이 태산처럼 무거웠다그가 지혜와 용기에 처함이여가히 겸전하였다고 이르겠다.

▶ 處死: 죽음에 대처하다. 處는 대처하다.
▶ 怯懦: 겁이 많고 나약하다. 비겁하다.
▶ 信: 伸과 통하여. 펼치다.
▶ 太山:=泰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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