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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70

​列傳권70.張儀列傳(張儀열전)

​장의(張儀, ? ~ 기원전 309년)는 중국 전국시대 秦의 정치가·외교가이다. 친구 蘇秦과 함께 鬼谷先生에게서 수학한 적이 있었다. 그는 秦에 등용되기 전까지 갖은 수모를 겪다가 마침내 秦 혜문왕을 만나 정치 고문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재상으로 승진되었는데, 蜀를 평정하고 魏의 일부를 차지하는 공을 세웠다. 6년 뒤에 秦과 짜고 魏의 재상이 되었는데, 魏로 하여금 진을 섬기게 하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秦에게 몰래 연락해 魏가 크게 지도록 만들었다. 이듬해 齊가 魏를 공격하고 마침내 秦이 魏를 공격할 목적으로 먼저 韓를 쳐, 군사 8만 명을 몰살시켰다. 이에 장의는 魏王을 설득하여 소진이 이룩해낸 합종책의 약속을 깨고 秦과 화친했으며, 장의는 다시 秦으로 돌아가 재상이 되었다. 3년 뒤 ..

史記/列傳 2023.07.27

​列傳권69.蘇秦列傳(소진열전)

​ 蘇秦者, 東周雒陽人也.소진( ? ~ BC 284)은 東周의 雒陽 사람이다.東事師於齊, 而習之於鬼谷先生.스승을 찾아 동으로 제에 가서 鬼谷先生에게서 배웠다.出游數歲, 大困而歸.제후에게 유세하기 몇 해, 큰 어려움을 겪고 집으로 돌아왔다.▶ 鬼谷先生: 전국 때 제나라의 출신의 縱橫家로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일설에는 楚 출신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하남성 方城 부근의 穎川 陽城의 鬼谷이라는 곳에 은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鬼谷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였다. 鬼谷은 일설에는 지금의 섬서성 涇陽의 扶風의 池陽 부근이라고도 한다. 그의 사상은 黃老의 에서 출발하였다.세상의 일을 논하여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우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계를 거쳐,자기의 마음으로써 미루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에 이르러, 마침내 ..

史記/列傳 2023.07.24

列傳권68.商君列傳(상군열전)

​ 商鞅(기원전 390년 ~ 기원전 338년)은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 秦의 法家를 대표하는 중요한 정치가였다. 商을 분봉받아 후작이 되어 상앙으로 부르며 본래의 姓은 姬, 氏는 공公孫, 이름은 鞅이다. 또 다른 별칭으로 衛의 公族이라서 衛鞅이라 불렸다. 주나라 왕족과 위 공족의 후예였으며, 車裂刑의 창시자였는데 후일 그 자신이 거열형으로 처형된다.사상적인 면은 魏의 이회에게 크게 영향을 받았다. 오가작통법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什伍制를 만들었다. 또한, 동양 최초로 노예 제도의 부분적 폐지를 주장하였다. 부국강병의 술책으로 진효공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좌서장을 거쳐 총리 격인 大良造로 승진하여 정치개혁의 총설계자가 되었다. 두 차례의 변법을 성공시켜 약소국 秦을 일약 강대국으로 만들어냈다. 저서로는 ..

史記/列傳 2023.07.21

列傳권67.仲尼弟子列傳(중니제자열전)

孔子(기원전551년~기원전479년)는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이다. 본명은 孔丘이며 춘추시대 魯의 사람으로 유교의 始祖이다. 춘추시대의 정치가·사상가·교육자이고, 魯의 문신이자 작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하다. 공자는 제자 중 六藝에 통달한 자가 77명이라고 하였으며, 사마천은 論語 및 孔子世家, 春秋左氏傳 등을 인용하여 제자들을 낱낱이 설명하여 장문의 형식을 취하였다. 사마천은 “나는 공자의 제자들의 이름과 언행을 모두 ‘논어’에 나오는 사제 사이의 문답에서 취한 뒤 이를 차례로 정리하여 중니제자열전을 만들었다. 의심나는 것은 싣지 않았다.” 라고 기술하였다. 孔子曰 「受業身通者七十有七人」. 공자가 말하였다. “학업에 힘써 六藝에 통달한 자는 77명이다.” 皆異能之士也。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선비이다...

史記/列傳 2023.07.20

列傳권66.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伍子胥(? ~기원전484년)는 춘추시대의 정치가로, 이름은 員이며 子胥는 字이다. 楚출신으로 아버지가 費無忌의 흉계로 인하여 楚平王의 노여움을 샀다. 아버지와 형이 처형되자 楚를 탈출하였다.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吳로 망명하여 오왕 闔閭에게 등용되어 손무와 함께 초를 격파하고 복수하였으나, 오왕 합려가 죽고 아들인 夫差가 즉위하자 사이가 벌어지고 모함을 받아 자살하였다. 사마천은 “오자서는 모든 고초를 참고 견디며 공명을 이루었다.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라고 평하였다. 伍子胥者,楚人也,名員。 伍子胥는 楚사람이며 이름은 員이다. 員父曰伍奢。員兄曰伍尚。 원의 아버지는 伍奢이고, 원의 형은 伍尚이다. 其先曰伍舉,以直諫事楚莊王,有顯,故其後世有名於楚。 그의 선조는 伍舉인데, ..

史記/列傳 2023.07.17

列傳권65.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孫子는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로 본명이 孫武이며 자는 長卿으로 齊 출신이다.(기원전545년경~기원전470년경). 吳왕 闔廬 때 등용되어 伍子胥와 함께 楚를 무찔렀다. 孫子는 경칭이며 13편을 지었으며 강태공의 六韜三略을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孫子武者,齊人也。 孫子 武는 齊 사람이다. 以兵法見於吳王闔廬。 병법으로 吳왕 闔閭를 뵙게 되었다. 闔廬曰: 「子之十三篇,吾盡觀之矣,可以小試勒兵乎?」 합려가 말하였다. “그대의 13편을 내가 모두 읽어보았는데 조금이라도 군대를 지휘해 보일 수 있겠소?” 對曰: 「可。」 손무가 대답하였다. “가능합니다. ” 闔廬曰: 「可試以婦人乎?」 합려가 말하였다. “부녀자라도 시험해볼 수 있겠소?” 曰: 「可。」 손무가 대답하였다. “가능합니다. ” ▶ 闔閭(합려, ?..

史記/列傳 2023.07.17

列傳권64.司馬穰苴列傳(사마양저열전)

司馬穰苴는 중국 춘추시대 齊의 장군으로, 성은 嬀(규), 씨는 田, 이름은 穰苴이다. 晏嬰이 경공의 신임을 얻어 재상의 지위에 올라 사마양저를 추천하여 등용된 후 齊의 번영에 공적을 올리자 景公이 대사마로 임명하였으며, 이때 司馬씨로 칭하여 사마양저라 불리었다. 사마씨를 칭하기 전의 씨인 田을 붙여 전양저로 불리기도 한다. 병법서 의 저자로 田完의 후예이다. 司馬穰苴者,田完之苗裔也。 司馬穰苴는 田完의 후손이다. 齊景公時,晉伐阿、甄,而燕侵河上,齊師敗績。 齊景公 때 晉이 阿·甄을 치고, 燕이 河上을 침입하였는데 齊軍이 무참하게 패하였다. 景公患之。 경공이 이것을 근심하였다. 晏嬰乃薦田穰苴曰: 「穰苴雖田氏庶孽,然其人文能附衆,武能威敵,願君試之。」 안영이 이에 田穰苴를 천거하며 말하였다. “양저는 비록 전씨의 서..

史記/列傳 2023.07.15

列傳권63.老子韓非列傳(노자한비열전)

1. 老子 老子者,楚苦縣厲鄉曲仁里人也,姓李氏,名耳,字耼,周守藏室之史也。 노자는 楚의 苦縣 厲鄉 曲仁里 사람이며,성은 李氏이며 이름은 耳,자는 耼이라고 하는데 周나라의 藏書室을 관리하는 史官이었다. ▶ 老子 : 태어나면서부터 흰색의 머리였으므로 노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 姓李氏,名耳 : 성은 李氏이며 이름은 耳. 神仙傳에는 하늘의 기운을 받았으나 이씨 집안에 태어났으므로 성은 이씨가 되었으며,이름은 重耳이며 字가 佰陽이라 하였다. ▶ 藏室之史 : 주나라의 왕실의 문서를 지키는 장리. 孔子適周,將問禮於老子。 孔子가 주나라에 가서,노자에게 禮에 관하여 물으려 했다. 老子曰: 「子所言者,其人與骨皆已朽矣,獨其言在耳。 且君子得其時則駕,不得其時則蓬累而行。 吾聞之,良賈深藏若虛,君子盛德容貌若愚。 去子之驕氣與多欲,態色與..

史記/列傳 2023.07.15

列傳권62.管晏列傳(관안열전)

管仲夷吾者,潁上人也。 管仲 夷吾는 潁上 사람이다. ▶ 管仲夷吾 : 管夷吾. 이름은 夷吾이며, 齊公子 糾에게 벼슬하여 후에 桓公과 적대관계이었다. 환공의 신하 鮑叔이 추천하여 환공의 신하로서 재상이 된 후 齊나라를 춘추시대의 5覇 중 제일가는 강국으로 만드는 공적을 세웠다. 제환공이 管夷吾를 존대하여 중보(仲父)라고 호칭하여 관중이라 불리게 되었다. ▶ 潁上 : 潁水의 물가. 지금의 河南省 登封縣. 少時常與鮑叔牙游,鮑叔知其賢。 젊어서 鮑叔牙와 交遊하였으며, 포숙은 그가 현명함을 알아주었다. ▶ 鮑叔牙 : 春秋時代 濟나라의 政治家. 管鮑之交라 일컬어지는 친구 管仲을 濟桓公에게 추천하여 桓公의 정치를 도왔다. 管仲貧困,常欺鮑叔,鮑叔終善遇之,不以為言。 관중은 가난해서 항상 포숙을 속였으나, 포숙은 끝까지 그를 ..

史記/列傳 2023.04.17

列傳권61.伯夷列傳(백이열전)

夫學者載籍極博, 猶考信於六藝. 대체로 학자들이 기록한 책은 매우 많으나 믿을 만한 것은 ​六藝(詩經,書經,易經,禮記,樂經,春秋)에서 찾을 수 있다. ▶六經 : 공자가 편찬한 詩經, 書經, 禮經, 樂經, 春秋, 易經을 말한다. 이중 악경은 일실되었고, 서경은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없어진 것을 후세 사람들이 다시 편집한 것이다. 詩書雖缺, 然虞夏之文可知也. 시경과 서경에도 缺落이 있기는 하나, 우나라와 하나라 때의 일은 알 수 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시경과 서경의 일부가 없어진 것을 말하며, 의 , , 편에 선양에 대한 상세한 기사가 있다. 堯將遜位, 讓於虞舜, 舜禹之閒, 岳牧咸薦, 乃試之於位, 典職數十年, 功用既興, 然後授政. 堯임금은 帝位를 양보하려고 하여 舜에게 군주자리를 물려 주었다. 舜과 禹..

史記/列傳 20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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