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2五言古風短篇-55蘇武(소무)

耽古樓主 2024. 2. 4. 08:06

古文眞寶(고문진보)

소무(蘇武)-이백(李白)

▶ 蘇武(소무) : 나라 무제(武帝때의 사람漢書》 열전(列傳) 24에 다음과 같은 전기(傳記)가 있다.
()는 자가 자경(子卿). 젊어서 아버지의 벼슬을 따라 형제가 다 같이 낭()이 되었다가 얼마 뒤엔 移中廐監이 되었다그때 한나라는 연이어 오랑캐를 치고 자주 사신을 보내어 엿보았다匈奴는 한나라 사신 郭吉·路充國 등을 모두 잡아두어 전후 10여 명이 잡혔다흉노의 사신이 오면 한나라에서도 잡아두고 이에 대처하였다天寒 원년(기원전100) 흉노가 잡아두었던 한나라 사신들을 전부 돌려보내자 무제는 무()에게 중랑장(中郞將)이란 벼슬을 주고사신으로 절을 가지고 잡아놓았던 흉노 사신들을 데리고 가서 되돌려주게 하였다무는 부중랑장(副中郞將장승(張勝및 假吏 常惠 등과 백여 명을 이끌고 함께 갔다무가 흉노에 들어간 뒤 바로 변란이 생기어 흉노는 무를 큰 땅굴 속에 가두고 협박과 권유로 흉노에게 항복하기를 권하였다땅굴 속에 가두고 음식을 주지 않으니눈이 오자 무는 누워서 눈과 깃대 수술[旃毛]을 씹어 먹었다이리하여 며칠이 지나도 죽지 않으니 흉노는 그를 신()이라 여기었다이에 무를 北海가 사람 없는 곳으로 옮기어 숫양을 치게 하고 새끼를 낳으면 곧 돌려보내겠다 하였다무는 바닷가로 갔으나 식량도 보내주지 않아서 들쥐들이 감춰놓은 풀열매를 파먹고 살았다한나라의 절(:사신의 標識)을 지팡이로 짚고 양을 치는데 언제나 들고 있어 절모(節旄:쇠꼬리로 만든 의 장식)가 다 떨어졌다뒤에 이릉(李陵)이 북해 가로 와서 무에게 상(:武帝)이 돌아가셨음을 알렸다무는 이를 듣고 남쪽을 향하여 통곡하며 피를 토하였다昭帝가 즉위하고 수년 만에 흉노는 한나라와 화친하였다한나라가 무를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흉노는 그가 죽었다고 속이었다뒤에 한나라 사신이 다시 흉노에게 갔다이때 常惠가 그들을 지키고 있는 자에게 간청하여 함께 한나라 사신을 만나보고 모든 일을 얘기하고사신에게 선우(單于)께 다음과 같이 말해 달라고 하였다천자께서 상림원(上林苑)에서 기러기를 쏘아 잡았는데 다리에 편지가 매어 있었다거기에 무 일행이 모(澤中에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사신은 크게 기뻐하고 상혜의 말대로 하여 선우는 무를 돌려보내기로 하였다이에 이릉은 술자리를 벌여놓고 무에게 축하하여 말했다. (......) 이릉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무와 작별하였다무를 따라 돌아온 자 9명이었다무는 始元 6년 봄에 京師에 이르러 典屬國이 되었다무가 흉노에 머물기 19젊을 때 나가서 돌아올 때는 백발이 되어 있었다무는 나이 80여 세로 神爵 2(기원전 69)에 病卒하였다.[抄譯]
이 시는 파란 많은 일생을 절조로 살아온 蘇武의 생애를 읊은 것이다.

 

 

蘇武在匈奴十年持漢節.
소무는 흉노 땅에 잡혀 있으면서, 10년이나 한나라의 부절을 지녔다.
▶ 漢節(한절) : ()나라 사신의 절절은 부절이라고도 한 後漢書》 ()에 의하면 절은 대나무로 만드는데 자루의 길이가 8旄牛의 꼬리로 3중으로 절을 만들어 달았다周禮》 지관장절(地官掌節)의 주()에 '왕명(王命)으로 왕래함엔 반드시 절이 있어서 증거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白雁上林飛空傳一書札.
흰 기러기가 상림원까지 날아와편지를 전해도 소용없었고,
▶ 白雁(백안) : 흰 기러기.
▶ 上林(상림) : 상림원(上林苑). ()나라 궁전에 있던 원명(苑名). 여기서는 한서》 소무전(蘇武傳)과는 달리 실제로 소무가 편지를 보냈던 것처럼 읊고 있다.
▶ 書札(서찰) : 편지.

牧羊邊地苦落日歸心絕.
양치느라 변지에서 고생하노라니지는 해를 바라볼 적마다 돌아가고픈 마음 간절했다.
▶ 落日歸心絶 지는 해에 돌아가고픈 마음 절실해진다은 끊었다라기보다 절실의 ''과 같은 뜻.

渴飮月窟水飢餐天上雪.
목마르면 월굴의 물을 마시고배고프면 하늘에서 내린 눈을 먹었다.
▶ 月窟(월굴) : 서역(西域)에 있다는 달이 나온다는 굴여기선 흉노 땅에 비유한 것이다.
▶ 天上雪(천상설) : 하늘 위로부터 내린 눈.

東還沙塞遠北愴河梁別.
동쪽으로 돌아가려니 사막의 변방 아득한데북쪽 하수 다리에선 이릉과의 이별로 슬퍼했다.
▶ 東還(동환) : 동쪽 한()나라로 돌아가다.

泣把李陵衣相看淚成血.
울며 이릉의 옷자락을 잡고마주보며 피눈물을 흘렸단다.
▶ () : 사막.
▶ () : 변방국경.
▶ () : 슬퍼하다.
▶ 河梁(하량) : 하수(河水)의 다리소무(蘇武)는 한()나라로 돌아올 때 북쪽 黃河 상류의 다리 위에서 이릉(李陵)과 작별을 슬퍼했다이릉은 자가 소경(少卿). 한나라의 명장으로 흉노와 적은 병력으로 싸워오다 마침내는 잡히어 항복하였다그는 영영 한나라로 돌아가지 못하였으므로 소무와의 작별은 슬펐다.
▶ 淚成血 韓非子》 和氏편에도 나라 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곧 구슬을 안고 楚山 아래서 울었다三日三夜가 되자 눈물이 다하여 피가 이어 나왔다라고 하였다.

 

 

 해설


절조(節操)로 고난의 일생을 산 소무(蘇武)의 평생이 전기(傳記)를 읽는 것보다도 강력한 인상을 남겨주는 시이다. 소무는 흉노에 갇혀 있는 10여 년 동안 줄곧 한(漢)나라 사신의 부절을 손에 들고 있었다. 흉노의 모진 핍박 아래에서도 한인(漢人)으로서의 긍지와 자기의 임무를 잊지 않았으매,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서 천자에게 귀환 보고를 올리려 하였다. 그러기에 눈과 깃대 수술을 씹으면서도 살아왔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한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기러기가 편지를 전한다는 전설은 소무의 고사(故事)로부터 나왔다. 실은 소무가 기러기편에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사신이 單于에게 꾸며낸 얘기지만, 뒤에는 차차 소무가 실제로 편지를 보낸 듯이 전설화하여 이백(李白)도 그렇게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