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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白馬江懷古-翠仙 晩泊臯蘭寺 西風獨倚樓.龍亡江萬古 花落月千秋.저물녁에 고란사에 배 대어놓고, 서풍에 홀로 누대에 기대어 섰네.용은 간 데 없고 강은 만고에 흐르고, 꽃은 졌어도 달은 천추에 밝구나. 출전 淸脾錄二 詩妓 작자 취선(翠仙). 호는 설죽(雪竹) 김철손(金哲孫)의 소실. 혹은 안동 권씨 집안의 여종으로 남편은 석전(石田) 정로(鄭輅,1550~1615)라고도 한다. 어느 것이 정확한지 알 길이 없다.
江西寒食-南孝溫天陰籬外夕煙生 寒食東風野水明.無限滿船商客語 柳花時節故鄕情.흐린날 울타리 밖 저녁 연기 피어오르고, 한식날 봄바람 불고 들판에 흐르는 물은 맑다.무한히 계속되는 배에 가득한 상인들 이야기, 버들꽃 피는 시절에 그리운 고향의 마음이어라.
滿空山翠適人衣 草綠池塘白鳥飛.宿霧夜棲深樹在 午風吹作雨霏霏.공산 가득 푸른 기운 옷깃을 적시는 듯, 못가에 무성한 풀 새들도 나네.어젯밤 수풀 사이 끼였던 안개, 한나절 바람에 보슬비 오네. ▶李瑱은 李齊賢의 아버지이다.
絶命詩-黃玹 절명시 一 亂離滾到白頭年 幾合損生却未然.今日眞成無可奈 輝輝風燭照蒼天.난리를 겪다 보니 白頭年이 되었구나.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오늘날 참으로 어찌할 수 없고 보니, 바람 앞에 가물거리는 촛불이 蒼天을 비추도다.▷滾-물이 세차게 흐르는 모양, ▷白頭-머리가 세다(나이가 들다), ▷幾合-얼마ㆍ몇 번, ▷無可奈-어찌할 수 없다, ▷輝輝-빛이 밝은 모양, ▷蒼天-하늘. 연▷亂離 : 전쟁 재해 등으로 세상이 소란하고 질사가 어지러운 상태.▷捐生 : =捐命. 산 목숨을 버림.▷未然 : 아직 정하여지지 아니함. 절명시 二 妖氛晻翳帝星移 九闕沈沈晝漏漏.詔勅從今無復有 琳琅一紙淚千絲.요망한 기운이 가려서 帝星이 옮겨지니, 久闕은 침침하여 晝漏가 더디구나.이제부터 조칙을 받을 길이 없..
偶吟-洪顯周 旅夢啼鳥喚 歸思繞春樹.落花滿空山 何處故鄕路.새 울음에 나그네 꿈 깨어나니, 고향생각은 봄 나무를 맴도는구나 낙화는 온산을 뒤덮으니, 어느 곳이 고향 가는 길인가.▷ 喚:부를환 繞:두를요 작자-洪顯周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세숙(世叔), 호는 해거재(海居齋)·약헌(約軒). 아버지는 홍인모(洪仁謨)이며, 우의정 홍석주(洪奭周)의 아우이다. 정조의 사위이다. 정조의 둘째딸 숙선옹주(淑善翁主)와 혼인하여 영명위(永明尉)에 봉하여졌다. 1815년(순조 15) 지돈녕부사가 되었다. 문장에 뛰어나 당대에 명성을 떨쳤다. 저서로는 『해거시집』이 있다.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南溪暮泛-宋翼弼 迷花歸棹晩(미화귀도만) 待月下灘遲(대월하탄지).醉裏猶垂釣(취이유수조) 舟移夢不移(주이몽불이).꽃에 홀려 돌아오기 하마 늦었고, 달 뜨기 기다리다 여울 내려오기 더디네.술에 취하여 낚싯대 드리우니, 배는 흘러가도 꿈은 그대로. 해설 송익필(宋翼弼)의 자는 운장(雲長), 호는 귀봉(龜峯)으로 흉인(凶人) 사련(祀連)의 아들이다. 본디 사천(私賤)의 자식이나, 문학의 조예가 뛰어나서 우계(牛溪) 성혼(成渾),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서로 친했다. 아우 한필(翰弼)은 자는 사로(師魯), 호는 운곡(雲谷)인데 역시 시를 잘했다. 익필(翼弼)의 저물녘 남계에 배를 띄우다[南溪暮泛]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迷花歸棹晩 待月下灘遲醉裏猶垂釣 舟移夢不移
郡事-洪禹績 醉臥西窓下 孤眠到夕陽.覺來推戶看 微雨過方塘.술에 취하여 서쪽 창 아래 누워, 홀로 단잠을 자니 석양이 되었네.잠을 깨서 문을 열고 보니, 가랑비가 못에 지나가네. 해설 술에 만취되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서쪽 창 아래 떨어져서 정신없이 코를 골며 곤히 잠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깨어보니 어느덧 해는 서산에 기울어져 가고 있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창문을 밀치고 밖을 내다보니 가랑비가 뜰 앞에 있는 못에 빗방울을 남기고 막 지나가고 있다. 꿈속에서 꿈길을 걷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구나.
春日訪山寺-李奎報 風和日暖鳥聲喧 垂柳陰中半掩門. 滿地落花僧醉臥 山家猶帶太平痕. 따뜻한 봄날 새소리 즐겁고, 수양버들 그늘 아래 문 반만큼 닫혔네.땅위엔 온통 꽃잎 지고 스님은 취하여 누우셨는데, 산골마을 마냥 태평이로다.
紫霞洞-河偉量 松花金粉落 春澗玉聲寒.盤石客來坐 仙人舊有壇.송화는 금가루로 떨어지고, 봄냇가 옥소리 차가워라.나그네 찾아와 반석 위에 앉으니, 옛날에 신선의 단이 있었지. 해설 지은이 군수(君受) 하위량(河偉量, 1554~미상)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1585년(선조 18)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자세한 인적사항은 알 길이 없다. 조선시대 자하동(紫霞洞)이란 명칭은 종로구 청운동에도 있었고, 관악구 신림동에도 있었다. 두 곳 모두 ‘붉은 노을 속에 잠긴 마을’이란 뜻이다. 원래 자하(紫霞)는 부처님 몸속에서 나오는 보랏빛 금색 안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종로구에 있던 자하동은 백악산과 인왕산을 잇는 경계선에 세운 자하문(紫霞門, 일명 창의문)에서 유래되었다. 관악구에 있던 ..
安裕의 시 1수 香燈處處皆祈佛 絲管家家競祀神.唯有數間孔子廟 滿庭秋草寂無人. 향과 등불로 곳곳에서 모두 부처에게 빌고 , 풍악 소리는 집집마다 다투어 신을 제사 지내네. 다만 몇 칸의 공자묘에, 가을 풀이 뜰에 가득하고 적막하여 사람이 없구나. 해설 안유(安裕)가 지은 시의 일부분으로, 당시 불교가 성행한 것에 대해 노래한 것이다. 《지봉유설》 권13 〈문장부(文章部)6〉에 이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문성공 안유의 시에 이르기를 ‘향과 등불로 곳곳에서 모두 부처에게 빌고, 풍악 소리는 집집마다 다투어 신을 제사 지내네. 다만 몇 칸의 공자묘에, 가을 풀이 뜰에 가득하고 적막하여 사람이 없구나.’ 하였다. 대개 당시는 고려 말기로 다투어 불교를 숭상하였으나, 공은 개연히 이처럼 사문에 뜻이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