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鼓盆之痛(고분지통) 본문
鼓盆之痛
<莊子> 至樂
莊子妻死, 惠子弔之.
장자의 처가 죽으매, 혜자가 조문하였다.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
장자가 다리를 뻗고 철퍼덕 앉아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箕踞: 두 다리를 곧게 뻗고 철퍼덕 앉아 있는 모양으로 예절에 구속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箕는 그 모습이 곡식의 쭉정이를 까부는 키와 비슷함을 형용한 것이고, 踞는 거만한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惠子曰,
與人居長子老身 死不哭, 亦足矣. 又鼓盆而歌, 不亦甚乎.
혜자가 말했다.
“그대는 아내와 함께 살면서 자식을 길렀고 몸은 이미 늙었으니, 아내의 죽음에 울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름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莊子曰:
장자가 말했다.
不然, 其始死也, 我獨何能無槪然.
“그렇지 않네. 아내가 죽은 무렵에는 내 어찌 슬프지 않았겠나.
▶槪然: =慨然. 抑鬱하고 冤痛하여 몹시 憤함.
察其始而本無生, 非徒無生也而本無形, 非徒無形也而本無氣.
하지만 그 始初를 살펴보면 원래 생명이 없었고, 생명이 없었을 뿐 아니라 형체조차도 없었고, 형체는 고사하고 氣마저도 없었다네.
雜乎芒芴之間, 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是相與爲春秋冬夏四時行也.
흐릿하고 아득한 사이에 섞여 있다가 변해서 기가 생기고, 기가 변해서 형체를 이루고, 형체가 변해서 생명을 갖추었다가, 지금은 또 변해서 죽음으로 갔으매, 이것은 춘하추동의 四時가 운행을 좇는 것이네.
▶芴: 순무 물. 흐릿할 홀
人且偃然寢於巨室, 而我噭噭然隨而哭之, 自以爲不通乎命, 故止也.
아내가 지금 (천지 사이의) 큰 방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는데, 내가 큰 소리로 哭함은 천명에 통하지 못한다고 여겼으므로, 울음을 그쳤다네.”
▶偃然:거드름을 피우며 倨慢함. 成玄英은 “偃然은 편안히 쉬는 모양이다[偃然 安息貌也].”고 풀이했다.
▶巨室: 큰 집. 여기서는 천지 사이를 뜻한다. 成玄英은 “巨室은 천지 사이를 말함이다[巨室 謂天地之閒也].”고 풀이했다.
▶噭噭然(교교연): 크게 소리 내어 욺.
1. 유래 및 의미
위의 글에서 유래하여 아내가 죽은 슬픔을 말한다.
妻喪의 인사말에 쓰이는 말이 되었다.
2. 참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天崩之痛,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崩城之痛, 부인이 세상을 떠나면 鼓盆之痛, 형제가 세상을 떠나면 割半之痛, 자식이 세상을 떠나면 喪明之痛이라 표현했다.
3. 妻喪 인사말 例示
- 위로할 말씀이 없습니다.
- 옛 말에 叩盆之痛이라 했는데 얼마나 섭섭하십니까?
4. 참고
朝鮮 正祖 때의 문인 沈魯崇의 다음 詩句는 讀者의 心琴을 울린다.
歸來君病艾亦老(귀래군병애역노) 泣道行期何遲留(읍도행기하지류)
돌아와 보니 그대는 병들었고 쑥 또한 시들어, 그대 울면서 말하길 “유람이 왜 이리 길어졌나요”
時物如流不待人(시물여류부대인) 人生其間如蜉蝣(인생기간여부유)
계절 움식은 流水와 같아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우리네 인생은 하루살이 같아요.
我死明年艾復生(아사명년애부생) 見艾子能念我不(견애자능염아부)
제가 죽고 난 이듬해에도 쑥은 다시 나올 텐데, 그 쑥 보면 제 생각 나실까요?
今日偶從弟婦食(금일우종제부식) 盤中柔芽忽梗喉(반중유아홀경후)
오늘 우연히 제수씨가 차려준 음식 먹다가, 상 위의 여린 쑥에 갑자기 목이 메네.
當時爲我採艾人(당시위아채애인) 面上艾生土一坏(면상애생토일배)
그때 나를 위해 쑥 캐던 사람, 흙 덮힌 무덤 위에 쑥이 돋았겠지.
아내와 사별한 이듬해 봄, 아내와 함께 살던 옛집에 잠시 들렀더니 마당 한 모퉁이에는 쑥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平素 쑥 飮食을 즐겨 만들며 쑥을 보거든 자기인 양 여겨 달라던 아내는 이미 세상에 없다.
이런 맘 알 리 없는 제수씨는 쑥으로 만든 반찬을 시아주버니 밥상에 올린 것이다.
이를 대한 심노숭은 목이 멜 수밖에.
5. 喪明之痛
<禮記> 檀弓上
子夏喪其子而喪其明。
子夏가 아들을 잃고 상심하여 너무 많이 울어서 시력을 잃고 말았다.
曾子弔之曰 :
吾聞之也, 朋友喪明則哭之。
曾子가 조문하며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벗이 시력을 잃으면 그를 위해 哭을 해야 한다고 하네."
曾子哭, 子夏亦哭曰 :
天乎, 予之無罪也。
증자가 곡하니 자하도 곡하며 말했다.
“하늘이여, 저에게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曾子怒曰 :
商女何無罪也?
吾與女事夫子於洙泗之間, 退而老於西河之上, 使西河之民疑女於夫子, 爾罪一也;
喪爾親, 使民未有聞焉, 爾罪二也;
喪爾子, 喪爾明, 爾罪三也。
而曰女何無罪與。
증자가 화를 내며 말했다.
"자네는 어째서 죄가 없다고 그러나?
나와 자네는 洙泗의 사이에서 부자를 섬기다가, 물러 나와 서하의 가에서 늙어가며, 서하의 백성이 자네를 부자로 의심하게 하였으니, 자네의 죄 하나이다.
자네의 親喪을 당해서는 백성이 본받을 바가 없게 하였으니, 자네의 죄 둘째이다.
자네의 아들을 잃고는 자네의 시력을 잃을 정도로 슬퍼하니, 자네의 죄 셋째이다.
그런데 자네에게 어찌 죄 없다고 말하느냐?”
子夏投其杖而拜曰 :
吾過矣, 吾過矣, 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
자하가 그의 지팡이를 던지고 절하며 말하였다.
"내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벗들을 떠나 혼자서 삶이 이미 오래이기 때문이네."
5-1. 상황
자하가 아들을 잃고 상심하여 통곡하다 시력을 잃고 말았다. 역시 공자의 뛰어난 제자 曾子가 문상했을 때, 자하는 더욱 서러워하며 죄도 없는데 아들이 죽었다고 하늘을 원망했다.
증자가 꾸짖기를, 서하의 백성이 그를 공자로 떠받들어도 변명하지 않았고, 부모상을 당했을 때 수범하지 못하고, 자식상에는 눈을 잃을 정도로 슬퍼하니 죄가 크다고 했다.
자하가 지팡이를 던지며 잘못을 시인했다.
5-2. 子夏(BC 507~1420 추정)
전국 시대 衛나라 사람이다. 晉나라 溫 사람이라고도 한다. 성명은 卜商이다. 孔子의 제자로 공자보다 44살 연하이며, 孔門十哲의 한 사람이다.
공자가 죽은 뒤에 魏文侯에게 초빙되어 스승이 되었지만 공자의 죽음을 슬퍼하여 失明했다고 한다. 또는 아들의 죽음 때문에 슬피 울어 실명했다고도 한다.
西河에서 講學했다. 李克과 吳起, 田子方, 段干木 등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배웠다.
魏文侯가 그를 스승으로 섬겨 藝를 배웠다. 학문은 시와 예에 통했고, 공자의 春秋를 전공하여 公羊傳과 穀梁傳의 원류를 이루었다.
주관적 내면성을 존중하는 曾子 등과 달리 禮의 객관적 형식을 존중하는 것이 특색이다. 論語에 그의 말이 적지 않게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 孔門에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詩序를 썼다고 전한다. 송나라 眞宗 大中祥符 2년(1009) 東阿公에 추증되었다.
5-3. 해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남 天崩, 또는 荼毒이라고 한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의 천붕은 임금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사용한다. 임금을 君父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도독의 荼는 씀바귀를 뜻하는데 쓰다는 뜻도 있다.
書經 湯誥편에
“흉하고 해로운 데 걸려서 荼毒을 견디지 못한다(罹其凶害不忍荼毒)”라는 말이 있는데, 그 주석에 “荼毒은 고통스러운 것으로서 그 가혹함을 참을 수 없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것이 참을 수 없이 괴롭다는 뜻이다.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은 자연의 순리지만 그 슬픔이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법이다.
하물며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喪이라는 뜻의 惡喪이 자식의 죽음을 뜻하는 용어지만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喪 중에 어찌 好喪이 있겠는가? 요즘 수명이 길어진 탓인지, 문상을 가보면 곡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고, 툭하면 호상이라고 웃는다.
필자가 寡聞한 탓이겠으나,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전에 호상이란 용어를 찾지 못했다.
어떤 불효자식이 만든 용어인지 몰라도 어찌 호상이 있겠는가? 악한 시대의 패악한 언어일 뿐이다.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을 慘慽이라고 표현하니, 참혹한 슬픔이라는 뜻이다. 大慽이라고도 하는데 역시 큰 슬픔이란 뜻이다.
성호 李瀷은 외아들 孟休가 영조 27년(1751년) 만 서른넷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나자 크게 상심한 나머지 건강을 해쳤다. 이때 이익의 나이 만 일흔이었음에도 그토록 슬픔이 컸다.
그래서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東史綱目을 썼던 順菴 安鼎福은 이익에게, “선생께서 또 大慽을 만나셔서 병환이 더 심해지셨는데 말씀하시지 않는 가운데서도 가슴 속에 쌓인 근심과 염려는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내 위로했다.
그런데 자식의 죽음에 대해서 참척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용어는 喪明이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버이의 고통을 ‘喪明之痛’이라고 한다. 밝음(明)을 잃었다(喪)는 뜻인데, 자식이 보낸 슬픔이 너무 커서 시력까지 상실했다는 뜻이다.
상명은 단순한 형용사가 아니고 공자의 제자 子夏에게 실제로 벌어졌던 실화이다. 공자 문하의 뛰어난 제자 열 명을 뜻하는 말이 孔門十哲인데, 그중 자하는 文學에 뛰어난 제자였다.
증자라고 어찌 자하의 슬픔이 와닿지 않았겠는가마는 슬픔 때문에 눈까지 멀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 것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寒岡 鄭逑는 일찍 죽은 朴震輝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부친을 이렇게 위로했다.
“크고 작은 고향 많이 돌아본 후생이라, 그대 부음 듣고 너무 슬펐네.
어머니 뒤를 따라 저승으로 돌아가니, 눈먼 부친 아픔 위로할 말 없네.”
多少鄕閭閱後生 自聞君訃最傷情.
萱堂隨引歸長夜 春府無辭慰喪明.
◈탐고루주 백
각시 박영진의 건강검진 豫後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걱정하는 마음과 별일 아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어보다.
202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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