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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본문
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해석
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당신의) 봄바람처럼 온화한 인품은 만물을 다 용납할 수 있고, 가을 물처럼 냉철한 문장은 먼지에 물들지 않을 터이다.
▶春:봄 춘/ 風:바람 풍/ 雅:맑을 아, 바를 아/ 能:능할 능, 능히 능/ 容:얼굴 용, 용납할 용/ 物물건 물, 秋:가을 추/ 章:글 장/ 染:물들 염/ 塵:티끌 진, 먼지 진
大雅의 의미와 詞性相同의 원칙
이 작품은 글씨도 글씨려니와 문장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작품이다. 이 문장의 해석에 이견이 많은 이유는 ' 大雅'라는 말 때문이다. '雅'는 본래 맑다, 바르다, 온화하다, 고상하다는 의미를 가진 글자이다. 따라서, 첫 구절만 보자면 글자의 뜻을 그대로 적용하여 '봄바람은 매우 온화하여 만물을 다 용납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석할 경우, 다음 구절의 '文章'이라는 단어와 전혀 對(짝)를 이룰 수 없다. 앞 구의 '大雅'는 부사(大:매우)+형용사(雅:온화하다)의 구조인 데 반하여, 뒷 구의 '文章'은 명사(文:글)+명사(章:글)로 이루어진 合義複詞이기 때문에 앞뒤 구절이 對를 이루기 위해서는 對의 위치에 있는 글자의 품사가 같아야 한다는 이른바 詞性相同의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春風大雅'를 '봄바람은 매우 온화하여'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런 까닭에 혹자는 大雅를 '詩'나 '음악'의 의미로 풀기도 한다. 중국 최초의 시가 총집인 《詩經》은 성격이 다른 네 종류의 시를 모아 놓은 것인데 그중 하나가 雅라는 성격의 시이다. 雅는 다시 〈大雅〉와 〈小雅〉로 나누어지는데 대아든 소아든 雅는 당시의 표준어인 '바른말(雅=正)'로 지은 노래로서 대아는 외국의 首長이나 사신이 왔을 때 의전과 연회에 주로 사용하던 음악이고, 소아는 국내의 정치행사에 주로 사용하던 음악이다.
이런 이유로, 大雅를 시 혹은 음악의 의미로 풀이하며 '春風大雅'를 '大雅春風'의 倒置로 보고 "시(혹은 음악)는 봄바람과 같아서..."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아든 소아든 《시경》에 수록되어 있는 雅라는 성격의 시가 대부분 정치적 목적에 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大雅를 '정치'라는 뜻으로 풀어서 "정치는 봄바람과 같아서..."라는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다 일리가 있는 해석이다.
그런데 필자는 大雅를 상대방에 대한 존칭으로서 상대방의 '인품(아량:雅量)'을 칭송하는 말로 풀이하였다. 국어사전도 大雅를 "나이가 서로 비슷한 친구나 문인에 대하여 존경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으며, '雅量'을 '너그럽고 속이 깊은 마음씨'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구절 '春風大雅能容物'은 '봄바람처럼 온화한 인품(아량)은 만물을 다 용납할 수 있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뒷 구절 '秋水文章不染塵'은 '가을 물처럼 냉철한 문장은 먼지에 물들지 않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대아'와 '문장'이 '인품'과 '문장'이라는 의미의 명사로서 對를 이루고, 나머지 글자들도 빈틈없이 詞性相同의 對를 이루어 전후 문장이 완벽한 對句가 된다.
더욱이 추사와 같은 시기 청나라의 유명 서예가인 鄧石如가 이미 이 대구를 작품으로 쓴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추사가 鄧石如의 글을 인용하여 이 작품을 쓴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등석여의 원작에는 ‘春塘大兄雅鑑(:춘당 큰 형께서 고아하게 감상하시기를 바라며)'라는 쌍낙관이 있다. 등석여는 '春'자가 들어 있는 '春塘'이라는 호를 사용하는 친구에게 '春'자로 시작하는 이 구절을 써줌으로써 친구에 대해 '봄바람처럼 온화한 당신의 인품 만물을 다 용납할 수 있을 것이고, 가을 물처럼 냉철한 당신의 문장은 결코 먼지에 물들지 않을 터'이라는 칭송을 한 것이다.
이 작품을 추사의 眞跡이라 볼 것인가?
원작자인 등석여가 '春塘大兄雅鑑'이라는 쌍낙관을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는데, 추사가 이 대구에 담긴 그런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추사도 이 작품을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서 썼을 테고, 주기 위해서 썼다면 받을 사람을 밝히는 쌍낙관을 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추사는 이 작품에 쌍낙관을 하기는커녕 이름이나 호도 쓰지 않고 달랑 도장만 두 개 찍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게다가 찍은 도장도 문제가 있다. 이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의 낙관 도장이 찍힌 자리 아래쪽에 원래 도장을 찍었다가 지운 자국이 불그레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점선 원 부분) 처음부터 추사가 쓴 작품이라면 도장을 찍었다가 지우고 그보다 위쪽에 다시 찍어야 할 이유가 없다.
설령 도장을 찍은 위치가 맘에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찍은 도장을 애써 지우고 다시 찍기까지 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중국이나 한국 서예사를 돌아보면 시대에 따른 작품의 형식 변화도 다양하다.
對句의 문장을 쓰고 쌍낙관을 하는 형식의 대련 작품은 중국에서도 청나라 때에 이르러서야 보편화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추사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창작하기 시작했다. 당시 청나라에서 유행한 새로운 형식의 대련작품을 추사가 조선 서단에 받아들여 선구적으로 선보인 것이다.
따라서 추사의 진품으로 확정할 수 있는 대련 작품에는 어김없이 쌍낙관이 있거나 협서(脅書)가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글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반드시 쌍낙관이 있어야 할 글임에도 불구하고, 쌍낙관이 없는 데다가 도장을 찍었다가 지운 흔적이 너무 역력하기 때문에 필자는 추사의 작품이라고 확정하기를 보류하고 '傳추사'의 작품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글은 다음 전북일보의 칼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2025.2.19 탐고루주
[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26)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27)春風大雅, 秋水文章(춘풍대아, 추수문장)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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