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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也. 伯夷와 叔齊는 孤竹國 임금의 두 아들이었다. 父欲立叔齊 及父卒 叔齊讓伯夷. 아버지가 아우인 叔齊를 후계자로 세우려 하다가 아버지가 죽자, 叔齊는 伯夷에게 사양하였다. 伯夷曰 父命也 . 伯夷가 말하였다. “아버지의 명령이다.” 遂逃去 叔齊亦不肯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史記》〈伯夷列傳〉 하고 도망가자, 叔齊도 또한 즉위하려 하지 않고 도망가니, 나라 사람들이 가운데 아들을 세웠다. 【增註】 孤竹 國名 孤竹은 나라 이름이다. 【集解】 朱子曰 伯夷以父命爲尊 叔齊 以天倫爲重 其遜國也 皆求所以合乎天理之正而卽乎人心之安矣 朱子가 말씀하였다. “伯夷는 아버지의 명령을 존중하고 叔齊는 天倫을 중시하여, 그 나라를 사양함이 모두 天理의 바름에 합치되고 人心의 편안함에 나아가는 바를 구하였다.”
萬章問曰 象 日以殺舜爲事 立爲天子則放之 何也? 孟子曰 封之也 或曰放焉. 仁人之於弟也 不藏怒焉 不宿怨焉 親愛之而已矣 《孟子》〈萬章上〉 萬章이 물었다. “象은 날마다 舜임금을 죽임을 일삼았는데, 舜임금이 즉위하여 天子가 되어서는 그를 방치함은 무엇 때문입니까?” 孟子가 말씀하셨다. “그를 봉하신 것인데, 혹자가 방치했다고 말한다. 仁人은 동생에 대하여 노여움을 감춰두지 않으며, 원망을 묵혀 두지 않고, 친애할 뿐이다.” 【集說】 朱子曰 放 猶置也 置之於此 使不得去也. 萬章 疑舜何不誅之 孟子言舜實封之 而或者誤以爲放也. 藏怒 謂藏匿其怒 宿怨 謂留蓄其怨 朱子가 말씀하였다. “放은 置[한 곳에 留置함]와 같으니, 이곳에 가둬두어 떠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萬章은 ‘舜임금이 어찌하여 주벌하지 않았는가?’라고 의심..
蔡人妻 宋人之女也. 蔡나라 사람의 아내는 宋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旣嫁而夫有惡疾 其母將改嫁之 女曰 夫之不幸 乃妾之不幸也 奈何去之? 適人之道 一與之醮 終身不改. 不幸遇惡疾 彼無大故 又不遣妾 何以得去? 終不聽 《列女傳》 시집가자 남편에게 나쁜 병이 있으매 그의 어머니가 장차 개가시키려고 하자, 딸이 말하였다. “남편의 불행은 바로 저의 불행이니, 어찌 떠나겠습니까? 남에게 시집가는 도리는 한 번 더불어 초례를 올리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습니다. 불행히 나쁜 병을 만났으나, 그에게 큰 연고가 없고, 또 첩을 보내지도 않으니, 제가 어찌 떠날 수 있겠습니까?” 끝내 듣지 않았다. 【集說】 陳氏曰 婦人自稱曰妾. 酌而無酬酢曰醮 盖婚禮 贊者三酌婦而不酬酢也. 陳氏가 말하였다. “부인은 자칭하기를 妾이라 한다. 술을 따라..
衛共姜者 衛世子共伯之妻也. 衛나라 共姜은 衛나라 世子 共伯의 아내이다. 共伯 蚤死 共姜 守義 父母欲奪而嫁之. 共伯이 일찍 죽자 共姜은 절의를 지켰는데, 부모가 그의 뜻을 빼앗아 改嫁시키려 하였다. 共姜 不許 作柏舟之詩 以死自誓 《毛詩》〈鄘風柏舟序〉 共姜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柏舟詩〉를 지어 죽음으로써 스스로 맹세하였다. 【集解】 姜齊姓 嫁共伯 故曰共姜. 姜은 齊나라 姓[國姓]이니, 共伯에게 시집갔으므로 共姜이라고 하였다. 共伯 名餘 共伯은 이름이 餘이다.
公父文伯之母 季康子之從祖叔母也 康子往焉 䦱門而與之言 皆不踰閾. 仲尼聞之 以爲別於男女之禮矣 《國語》〈魯語〉 公父文伯의 어머니는 季康子의 從祖叔母였는데 季康子가 찾아가자, 門[寢門]을 열고 함께 말하며, 모두 문지방을 넘지 않았다. 仲尼[孔子]는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男女의 禮를 분별했다.” 【集解】 公父文伯 魯大夫 名歜 其母敬姜也. 公父文伯은 魯나라의 大夫이니, 이름이 歜이요, 그의 어머니는 敬姜이다. 季康子 魯卿 名肥. 季康子는 魯나라의 卿이니, 이름은 肥이다. 䦱開也 閾門限也. 䦱는 엶이요, 閾은 문의 한계[문지방]이다. 敬姜 以從祖母之尊 與從孫相見 而不踰 可謂能別矣. 敬姜은 從祖母의 높음으로서 從孫과 만남에도 문지방을 넘지 않았으니, 남녀간의 구별을 잘했다고 이를 만하다. 【正誤】從祖叔母 ..
臼季使過冀 見冀郤缺耨 其妻之饁 敬 相待如賓 與之歸 言諸文公曰 敬 德之聚也 能敬 必有德. 德以治民 君請用之. 臣聞 出門如賓 承事如祭 仁之則也. 文公 以爲下軍大夫. 《左傳》〈僖公三十二年〉 臼季가 사신이 되어 冀땅을 들렀을 적에, 冀땅의 郤缺이 김매고 그의 아내가 들밥을 내오되 공경하여 서로 손님처럼 대함을 보고, 그와 함께 돌아와 文公에게 말하였다. “敬은 德의 모임이매 능히 공경함에는 틀림없이 德이 있을 터입니다. 德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니, 군주께서는 청컨대 그를 등용하소서. 臣이 듣기에, 문을 나감에 손님을 뵙듯이 하고, 일을 받듦에 제사를 모시듯이 함은 仁의 법칙이라 하였습니다.” 文公이 郤缺을 下軍大夫로 삼았다. 【集說】 陳氏曰 臼季 晉大夫 名胥臣 文公 晉君 名重耳. 冀 邑名 缺 郤缺也. 耘苗曰耨 野..
王孫賈事齊閔王 王出走 賈失王之處. 王孫賈가 齊나라 閔王을 섬기다가 閔王이 패하여 도망하자, 王孫賈는 王이 있는 곳을 잃게 되었다. 其母曰 女朝去而晩來 則吾倚門而望 女莫出而不還 則吾倚閭而望. 女今事王 王出走 女不知其處 女尙何歸? 《戰國策》〈齊策〉 , 그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네가 아침에 나가 늦게 오면 나는 문에 기대어 기다리고, 네가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마을 문에 기대어 기다렸다. 네가 이제껏 임금을 섬기다가, 임금이 패주하셨는데도 너는 그 계신 곳을 알지 못하다니, 너는 어찌 그러고서도 돌아왔느냐?” 【集解】 王孫姓 賈名 齊大夫. 王孫은 姓이요, 賈는 이름이니, 齊나라 大夫이다. 閔王 名地 燕將樂毅破齊 閔王走. 閔王은 이름이 地로서, 燕나라 장군 樂毅가 齊나라를 격파하자, 閔王은 땅으..
趙襄子殺智伯 漆其頭 以爲飮器. 趙襄子가 智伯을 죽이고 그 머리뼈에 옻을 칠하여 飮器를 만들었다. 智伯之臣豫讓 欲爲之報仇 乃詐爲刑人 挾匕首 入襄子宮中 塗厠 左右欲殺之. 智伯의 신하 豫讓이 智伯을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여, 이에 거짓으로 형벌 받은 사람이 되어, 비수를 끼고 襄子의 宮으로 들어가서 뒷간의 벽을 바르고 있었는데, 측근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襄子曰 智伯死無後 而此人欲爲報仇 眞義士也. 吾謹避之耳 《史記》〈剌客列傳〉, 《戰國策》 襄子가 말하였다. “智伯이 죽고 후손도 없거늘, 이 사람이 그를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니, 진정한 義士이다. 내가 조심하며 피하면 된다.” 【集解】 襄子 名無恤 智伯 名瑤 皆晉大夫. 襄子는 이름이 無恤이요, 智伯은 이름이 瑤이니, 모두 晉나라의 대부이다. 飮器 韋昭云..
衛靈公 與夫人夜坐 聞車聲轔轔 至闕而止 過闕復有聲. 公問夫人曰 知此爲誰. 夫人曰 此 蘧伯玉也. 公曰 何以知之? 夫人曰 妾聞 禮 下公門式路馬 所以廣敬也. 夫忠臣與孝子 不爲昭昭信節 不爲冥冥惰行. 蘧伯玉衛之賢大夫也 仁而有智 敬於事上 此其人 必不以闇昧廢禮. 是以知之. 公使人視之 果伯玉也 《列女傳》 衛靈公이 부인과 함께 밤에 앉아 있다가, 수레 소리가 덜커덩 거리며 대궐 문에 이르러 그쳤다가 대궐 문을 지나 다시 소리가 남을 들었다. 靈公이 부인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오?” 부인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蘧伯玉입니다.” 靈公이 말하였다. “무엇으로 아시오?” 부인이 대답하였다. “첩이 듣기에, 禮에 公門[대궐문]에서는 수레에서 내리며 路馬[임금의 수레를 끄는 말]를 보고 경례함은 공경을 넓히는 방..
武王 伐紂 伯夷叔齊叩馬而諫 左右欲兵之. 武王이 紂王을 정벌함에 伯夷와 叔齊가 말고삐를 잡고 간하자, 측근이 병기로 죽이려 하였다. 太公曰 此 義人也. 太公이 말하였다. “이들은 의로운 사람이다.” 扶而去之 《史記》〈伯夷列傳〉 부축하여 가게 하였다. 【集解】 伯夷, 叔齊 孤竹君之二子. 伯夷와 叔齊는 孤竹國 임금의 두 아들이다. 叩 通作扣 說文云 牽馬也. 武王伐紂 夷齊以爲非義而諫之. 兵 猶殺也. 太公 呂望也. 叩는 扣와 통용되니, 《說文》에 말을 끄는 것이라고 하였다. 武王이 紂王을 치자, 伯夷와 叔齊는 義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간언하였다. 兵은 殺[죽임]과 같다. 太公은 呂望이다. 武王 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隱於首陽山 採薇而食之 遂餓而死. 武王이 殷나라의 어지러움을 평정하자 천하가 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