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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曲禮曰 共食不飽 共飯不澤手 《禮記》〈曲禮〉 〈曲禮〉에 말하였다. “함께 음식을 먹을 때 배불리 먹지 않으며, 함께 밥을 먹을 때 손때를 묻지 않는다. 【集解】 食者 所食非一品 飯者 所食止飯而已. 食이란 먹는 것이 한 가지 품목이 아님이요, 飯이란 먹는 것이 다만 밥뿐인 것이다. 共食而求飽 非讓道也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배부름을 구함은 겸양의 도리가 아니다. 【集成】 張子曰 不澤手 必有物以取之 不使濡其手. 張子가 말씀하였다. “손때를 묻히지 않음은 반드시 물건[젓가락 따위]을 가지고 음식물을 취하여, 손을 적시지 않음이다.” 毋搏飯 毋放飯 毋流歠. 밥을 뭉치지 말며, 밥을 크게 뜨지 말며, 길게 들이키지 말라. 【集解】 取飯作搏 則易得多 是欲爭飽也. 밥을 뜨면서 뭉치면 많이 얻기가 쉬우니, 배부름을 다투려..
柳玭 嘗著書 戒其子弟曰 壞名災己 辱先喪家 其失尤大者五 宜深誌之 《柳氏家訓》 柳玭이 일찍이 글을 지어 그 자제들을 훈계하였다. “명예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해치며, 선조를 욕되게 하고 집안을 망침에, 그 과실이 더욱 큰 것이 다섯이니, 마땅히 깊이 기억해야 한다.” 【集說】 陳氏曰 玭 字直淸 唐柳公綽之孫 仲郢之子. 壞 敗也. 誌 記也 陳氏가 말하였다. “玭은 字는 直淸이니, 唐나라 柳公綽의 손자요, 仲郢의 아들이다. 壞는 무너짐이다. 誌는 기억함이다.” 其一 自求安逸 靡甘澹泊 苟利於己 不恤人言 그 첫째는 스스로 안일함을 구하고 담박함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만일 자기에게 이로우면 남의 말을 근심하지 않음이다. 【增註】 此 言不勤儉之失 . 靡 不也 恤 憂也. 이는 부지런하고 검소하지 않은 과실을 말한 것이다. ..
諸葛武侯戒子書曰 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非澹泊 無以明志 非寧靜 無以致遠 《武侯全書》 諸葛武侯가 아들을 경계하는 글에 말하였다. “군자의 행실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德을 기르니, 담박함이 아니면 뜻을 밝힐 수 없고, 안정됨이 아니면 원대함을 이룰 수 없다. 【集說】 吳氏曰 武侯 名亮 字孔明 諸葛 其姓也 . 躬耕南陽 昭烈 三顧而後 起爲丞相 諡忠武 子 名瞻 字思遠 . 靜 謂安靜 儉 謂儉約 澹泊 卽儉也 寧靜 卽靜也 . 言靜則心不逐於物而可以修身 儉則心不於欲而可以養德 非澹泊 則必昏昧而無以明其志也 非寧靜 則必躁動而無以致其遠也 吳氏가 말하였다. “武侯는 이름이 亮이요, 字는 孔明이니, 諸葛은 그의 姓이다. 몸소 南陽에서 밭을 갈았는데, 昭烈帝가 세 번 찾아간 뒤에 출사하여 丞相이 되었으니, 시호는 忠..
漢昭烈 將終 勅後主曰 勿以惡小而爲之 勿以善小而不爲 《三國志蜀志》〈先主傳註〉 漢나라 昭烈帝가 죽을 즈음에 後主에게 경계하여 말하였다. “惡을 작다고 여겨 행하지 말며, 善이 작다고 여겨 행하지 않지 말라.” 【集解】 昭烈漢帝 名備 字玄德. 昭烈은 漢[蜀漢]나라의 황제이니, 이름은 備요, 字는 玄德이다. 勅 戒也. 勅은 경계함이다. 後主 昭烈之子 名禪. 後主는 昭烈의 아들이니, 이름은 禪이다. 勿以惡小而爲之 謂禍之所生 不在大 勿以善小而不爲 謂慶之所積 由於小. 惡이 작다 하여 하지 말라는 것은 화가 생기는 곳이 큰 데 있지 않다는 말이요, 善이 작다 하여 행하지 않지 말라는 것은 경사가 쌓이는 곳이 작은 데서 말미암는다는 말이다. 朱子曰 善必積而後成 惡雖小而可懼. 朱子가 말씀하였다. “善은 반드시 작은 것이 ..
馬援 兄子嚴敦 並喜譏議而通輕俠客 . 馬援의 형의 아들[조카]인 嚴과 敦이 모두 비판하고 논평하기를 좋아하고, 경박하고 호협한 사람들과 通交하였다. 援 在交趾 還書誡之曰 吾欲汝曹聞人過失 如聞父母之名 耳可得聞 口不可得言也 《後漢書》〈馬援列傳〉 馬援이 交趾에 있으면서 글을 보내어 訓戒하였다. “나는 너희들이 남의 과실을 듣기를 부모의 이름을 듣듯이 하여, 귀로 들을지언정 입으로는 말하지 않기를 원한다.” 【集說】 吳氏曰 馬援 字文淵 茂陵人. 嚴, 敦 援兄二子名. 譏譏誚 議議論 . 俠 謂以權力俠輔人. 吳氏가 말하였다. “馬援은 字는 文淵이니, 茂陵 사람이다. 嚴과 敦은 馬援의 형의 두 아들 이름이다. 譏는 비판하여 꾸짖음이요, 議는 논평함이다. 俠은 권세와 힘으로써 남을 도움을 이른다.” 好議論人長短 妄是非政法..
陳忠肅公曰 幼學之士 先要分別人品之上下 何者是聖賢所爲之事 何者是下愚所爲之事 向善背惡 去彼取此 此幼學所當先也 《了翁集》,《呂東萊辨志錄》 陳忠肅公이 말하였다. “幼學의 선비는 먼저 人品의 높고 낮음과 어느 것이 聖賢이 하는 일이며, 어느 것이 下愚[지극히 어리석은 사람]가 하는 일인가 분별하여, 善을 향하고 惡을 배척하여 저것[下愚의 일]을 버리고 이것[聖賢의 일]을 취함, 이것이 幼學이 마땅히 먼저 해야 할 바이다. 【集說】 吳氏曰 公 名瓘 字瑩中 號了翁 忠肅 諡也 延平人. 言所當向而取者 上品聖賢也 所當背而去者 下品下愚也 吳氏가 말하였다. “公은 이름은 瓘이요, 字는 瑩中이요, 호는 了翁이며, 忠肅은 시호이니, 延平사람이다. 마땅히 향하여 취해야 할 것은 上品의 聖賢이요, 마땅히 배척해서 버려야 할 것은 下..
伊川程先生曰 敎人 未見意趣 必不樂學 且敎之歌舞. 如古詩三百扁 皆古人 作之 如關雎之類 正家之始. 故 用之鄕人 用之邦國 日使人聞之 此等詩 其言 簡奧 今人 未易曉. 別欲作詩 略言敎童子灑掃應對事長之節 令朝夕歌之 似當有助 《二程全書》〈遺書〉 伊川程先生이 말씀하였다. “사람을 가르치되 意趣를 보이지 못하면 절대로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니, 우선 노래와 춤을 가르쳐야 한다. 古詩 3백 편 따위는 모두 옛사람이 지었으니, 〈關雎〉와 같은 따위는 집안을 바로잡는 시초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지방 사람들에게 사용하고 국가에도 사용하여 날마다 사람들이 듣게 하였으니, 이들 詩는 그 말이 간략하면서도 심오하여 지금 사람들이 쉽게 깨닫지 못한다. 나는 따로 詩를 지어 동자들에게 灑掃·應對·어른을 섬기는 예절을 간략히 말하고 가르쳐..
明道程先生曰 憂子弟之輕俊者 只敎以經學念書 不得令作文字. 子弟凡百玩好皆奪志 至於書札 於儒者事 最近 然 一向好著 亦自喪志 《二程全書》〈遺書〉 明道程先生이 말씀하였다. “子弟의 가볍고 준수함을 염려하는 자는 오직 經學과 글을 읽도록 가르쳐야지, 글을 짓게 해서는 안 된다. 자제들의 온갖 좋아함은 모두 뜻을 빼앗으니, 글씨와 편지를 말하자면 儒者의 일에 가장 가까우나 한결같이 좋아하면 또한 스스로 뜻을 잃게 된다.” 【集說】 陳氏曰 先生 名顥 字伯淳 河南人. 文潞公 題其墓曰 明道先生. 蓋少年之輕浮俊秀者 惟敎以學經讀書 則可以收其放心 而於道 知所向 若使作文字 貝心愈放而離道遠矣. 奪志 謂奪其求道之志. 書 習字 札 簡札 書札 固儒者之一事 若專攻乎此 亦喪其求道之志也 陳氏가 말하였다. “先生은 이름은 顥요, 字는 伯淳이니..
楊文公家訓曰 童穉之學 不止記誦 養其良知良能 當以先入之言 爲主 《楊文公家訓》 《楊文公家訓》에 말하였다. “어린이의 배움은 기억하고 외움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 良知와 良能을 길러야 하니, 마땅히 먼저 들어가는 말을 위주하여야 한다. 【集說】 吳氏曰 文公 名億 字大年 浦城人 . 良知者 本然之知 良能者 本然之能 愛親敬長 是也. 吳氏가 말하였다. “文公은 이름은 億이요, 字는 大年이니, 浦城 사람이다. 良知는 본연의 앎이요, 良能은 본연의 능함이니,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함이 그것이다.” 程子曰 人之幼也 知思未有所主 則當以格言至論 日陳於前 使盈耳充腹 久自安習 若固有之者 後雖有讒說搖惑 不能入也. 程子가 말하였다. “사람이 어릴 때는 지식과 생각에 주장하는 바가 있지 않으니, 마땅히 格言[바른 말]과 지극..
橫渠張先生曰 敎小兒 先要安詳恭敬 今世 學不講 男女從幼便驕惰壞了 到長益凶 只爲未嘗爲子弟之事. 則於其親 已有物我 不肯屈下 病根常在 又隨所居而長 至死只依舊 《張子全書》〈橫渠語錄〉 橫渠張先生이 말씀하였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되 먼저 안정되고 상세하며 공손하고 공경함을 요하니, 지금 세상에는 학문을 강하지 않아, 남녀가 어릴 때부터 곧 교만하고 나태함으로 파괴되어, 장성함에 이르면 더욱 포악하고 사나워지니, 이는 다만 일찍이 子弟의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부모에게 이미 남과 내가 있어 자신을 굽혀 낮추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여, 病根이 항상 있어 또 거처하는 바를 따라 자라나, 죽음에 이르도록 옛날 그대로이다.” 【集說】 吳氏曰 橫渠 地名 在鳳翔郿縣. 先生 名載 字子厚 安 謂安靜 詳 謂詳審 恭 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