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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젊은이(少年子)-이백(李白) ▶ 少年子 : 이것도 옛 樂府의 歌曲名이다. 《樂府詩集》권66 雜曲歌辭에 들어 있다. 《李太白詩集》에는 권6에 실려 있으며,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놀이로 세월을 보내고 있음을 풍자한 것이다. 靑春少年子, 挾彈章臺左. 청춘의 젊은이가, 彈弓을 끼고 장대 같은 호화로운 누대 왼편에 노네. ▶ 靑春 : 싱싱한 푸른 봄같이 나이가 한창인 때. ▶ 少年子 : 지금의 말로는 '少年'보다는 '靑年'에 가까운 말이다. ▶ 挾(협) : 끼다. 지니다. ▶ 彈(탄) : 彈弓. 알로써 새 같은 것을 쏘도록 만들어진 활 ▶ 草臺(장대) : 楚나라 靈王이 지금의 華容縣에 章華臺란 화려한 누대를 세웠다. 장대란 장화대를 뜻하며, 여기서는 화려한 長安의 누대를 가리킨다. ▶ 左(좌) : 왼쪽의 숲을 말한..
자첨이 해남으로 귀양을 감(子瞻謫海南)-황정견(黃庭堅) ▶ 子瞻 : 蘇軾( 號 東坡)의 字. ▶ 謫(적) : 귀양가다. 소동파는 紹聖 元年(:1094) 廣東省의 惠州로 귀양갔고, 3년 뒤엔 다시 海南島로 옮겨졌다. 이 시는 江西詩派의 창건자인 黃庭堅(:호는 山谷)이 그의 스승 소식의 귀양살이 모습을 읊은 것이다. 《豫章黃先生文集》권7에 실려 있는데, 거기엔 〈跋子瞻和陶詩〉라 題하고 있다. 곧 소식이 陶淵明의 시운에 화하여 지은 시 뒤에 붙여 읊은 시라는 뜻이다. ▶ 海南 : 《예장황선생문집》에는 '嶺南'으로 되어 있다. 동파는 처음엔 혜주로 귀양갔다가 뒤에 해남도(당시엔 瓊州라 불렀음)로 옮겨졌다. 영남은 5嶺의 남쪽이란 뜻으로 지금의 廣東·廣西·安南 지방의 일부를 가리킨다. 子瞻謫海南, 時宰欲殺之. 자..
유공권의 연구를 채움(足柳公權聯句)-소식(蘇軾) ▶ 柳公權(유공권, 777~865) : 華原 사람. 公綽의 아우로 元和 초 進士에 급제, 侍學士를 거쳐 太子太保를 지냈다. 《唐詩紀》에 의하면 당나라 제10대 황제 文宗(827~840 재위)이 여름날 學士들과 聯句를 지었다. 문종이 ‘人皆苦炎熱, 我愛夏日長’이라고 읊자, 유공권이 이어 '薰風自南來, 殿閣生微涼'라고 읊고, 學士들이 이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문종은 오직 유공권의 두 구만을 읊조렸다. 그리고 문종은 그 연구를 벽 위에 써놓도록 하였는데, 그 글자를 보고 옛날의 鍾繇나 王羲之 같은 명필에 못지않다고 찬탄하였다 한다. 그러나 蘇東坡는 유명한 이 연구에 만족치 못하고 자신이 네 구를 더 지어 붙이어 시로 완성시킨 것이다. 《東坡先生詩》에는 戱足柳公權..
1 鍾太傅書以唐摸賀捷表爲第一. 鍾太傅의 書는 唐摸의 賀捷表를 第一로 여긴다. 幽深古雅 一正一偏 具有法外之妙. 幽深하고 古雅하여 한편으로는 正鋒이고 한편으로는 偏鋒으로 法外의 玄妙함을갖추고 있다. 力命表摸榻失真 了乏勝概. 力命表는 摸榻으로 眞實을 잃어 결국 훌륭함이 없다. 季直乃是偽跡 了乏賀捷勝概不足觀也. 季直은 僞跡으로 결국 賀捷이 지니는 훌륭함이 없어 볼 가치가 없다. 論古에서는 法書로 간주되는 古名跡의 考證과 評論을 하고, 아울러 學書者에게 提言하고 있다. 法書의 評論에 관해서는 古來로 많은 學者들의 異見이 있다. 그러므로 本書는 虛舟의 思想을 상세히 전달함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文意를 충실히 해설하고 그친다. 따라서 讀者에게 虛舟의 사상에 의심되는 바가 있으면 다른 書品論에 관해서 깊이 연구하기를 ..
위소주의 시운을 따라 지어 등도사에게 부침 (和韋蘇州詩寄鄧道士)-소식(蘇軾) ▶ 韋蘇州(위소주) : 앞의 시를 지은 위응물(韋應物). 그가 소주자사(蘇州刺史) 벼슬을 지냈기 때문에 위소주라 부른 것이다. 등도사(鄧道士)는 소식(蘇戱)의 친구. 앞에 나온 위응물의 〈전초산 속의 도사에게 부침> 시의 운(韻) ‘客·石·夕·迹'에 화(和)하여 시를 지어 등도사에게 부친다는 제목이다. 《東坡詩》권4에 이 시가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작자의 주(注)가 붙어 있다. '나부산(羅浮山)에 야인(野人)이 있는데 갈치천(葛稚川)의 예(隷)라 전한다. 등도사 守安은 그 산중에서 도를 닦는 사람이다. 일찍이 그의 암자 앞에서 야인의 두 자가 넘는 발자국을 보았다 한다. 紹聖 2년(1095) 정월 10일, 나는 우..
전초산의 도사에게 부침(寄全椒山中道士)-위응물(韋應物) ▶ 全椒(전초) : 섬서성(陝西省) 봉상현(鳳翔縣)에 있는 지명. 이때 위응물(韋應物)은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있었다. 날이 쌀쌀해지자 위응물은 전초산중(全椒山中)에서 도(道)를 닦고 있는 친구를 생각하고 이 시를 지었다. 이 시는 《韋江州集》권3에도 실려 있다. 今朝郡齋冷, 忽念山中客. 오늘 아침엔 군청도 쌀쌀하니, 갑자기 산속의 친구 생각이 나네. ▶ 郡齋(군재) : 군청 안의 자사(刺史)가 일을 보는 서재. ▶ 山中客(산중객) : 산중에서 수도(修道)하고 있는 친구. 객(客)은 도사(道士)를 가리킨다. 澗底束荊薪, 歸來煮白石. 시냇가 산골짜기에서 땔나무하고, 돌아와서는 흰 돌을 찌고 있겠지. ▶ 澗底(간저) : 산골짜기 시냇물이 흐르는 낮은 바..
장난삼아 정광문에게 써주며 아울러 소사업에게도 보냄(戱簡鄭廣文兼呈蘇司業)-두보(杜甫) ▶ 戱簡(희간) : 장난삼아 편지하다. ▶ 鄭廣文(정광문) : 정건(鄭虔). 정주(鄭州) 사람으로 고사(高士)라 불렸다. 소허공(蘇許公)이 재상일 때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맺어 그의 추천으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다. 현종(玄宗)은 정건을 좋아하여 좌우에 두었으나 일을 안 하므로 개원(開元) 25년(737) 광문관(廣文館)을 열고 그곳의 박사(博士)에 임명했다. 얼마 안 가서 광문관은 국자감(國子監)과 병합되어 없어졌는데, 두보(杜甫)는 이밖에도 라는 시도 지어 그에 대한 동정을 표시하고 있다. 정건이 광문관 박사였으므로 정광문이라 부른 것이다. ▶ 蘇司業(소사업) : 이름은 원명(源明), 자가 약(弱夫). 국자사업(國..
용문 봉선사에서 노닐며(遊龍門奉先寺)-두보(杜甫) ▶ 龍門(용문) : 하남성(河南省) 하남부(河南府) 이궐현(伊闕縣) 북쪽 45리에 있는 산 이름. 이궐(伊闕) 또는 궐구(闕口)라고도 부른다. 용문석굴(龍門石窟)로 특히 유명하다. 이 시는 용문산에 있는 봉선사(奉先寺)에 가 놀았던 때의 정경을 읊은 것으로 《杜少陵集》권1의 첫머리에 실려 있다. 已從招提遊, 更宿招提境. 이미 스님 좇아 놀고서, 또 절 경내에 묵도다. ▶ 招提(초제) : 梵語로서 본지는 '척제(拓提)'라 하였다. 《玄應音義)》에 ‘초제(招提)는 拓鬪提奢란 말로서 사방을 뜻한다. 번역하는 사람이 투(鬪)와 사(奢)는 빼버렸고, 척(拓)은 초(招)라 잘못 쓰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열반경(涅槃經)》에는 '초제는 승방(僧坊)이라 하였는데 ..
술 사오기를 기다리며(待酒不至)-이백(李白) ▶ 待酒不至(대주부지) : '술을 사러 보내고 기다려도 빨리 오지 않는다', 이 시는 술을 사 오라 해놓고 꽃을 바라보며 술을 기다리다 술이 오자 꾀꼬리 노랫소리를 들으며 동산(東山) 아래서 술을 마시며 즐긴다는 내용이다. 玉壺繫靑絲, 沽酒來何遲? 구슬병에 파란 실을 매고 술을 사러 갔는데 어찌 이리 늦게 오나? ▶ 玉壺(옥호) : 백옥(白玉)으로 만든 술병. ▶ 繫靑絲(계청사) : 파란 실로 들기 편하도록 술병 목에 끈을 맨 것. ▶ 沽(고) : 사다. ▶ 來何遲(하지) : 오는 게 어찌 더딘가? 山花向我笑, 正好銜盃時. 산꽃은 나를 향해 방긋하니, 술잔을 기울이기 마침 좋은 때라. ▶ 銜盃(함배) : 술잔을 입에 물다. 곧 술을 마시다. 晚酌東山下, 流麗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