伍子胥(? ~기원전484년)는 춘추시대의 정치가로, 이름은 員이며 子胥는 字이다. 楚출신으로 아버지가 費無忌의 흉계로 인하여 楚平王의 노여움을 샀다. 아버지와 형이 처형되자 楚를 탈출하였다.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吳로 망명하여 오왕 闔閭에게 등용되어 손무와 함께 초를 격파하고 복수하였으나, 오왕 합려가 죽고 아들인 夫差가 즉위하자 사이가 벌어지고 모함을 받아 자살하였다.
사마천은
“오자서는 모든 고초를 참고 견디며 공명을 이루었다.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라고 평하였다.
伍子胥者,楚人也,名員。
伍子胥는 楚사람이며 이름은 員이다.
員父曰伍奢。員兄曰伍尚。
원의 아버지는 伍奢이고, 원의 형은 伍尚이다.
其先曰伍舉,以直諫事楚莊王,有顯,故其後世有名於楚。
그의 선조는 伍舉인데, 直諫으로 楚莊王을 섬겨 顯達하였으므로, 그의 후손들도 楚에서 유명하였다.
▶ 先: 祖先.
▶ 楚莊王( ? ~기원전591년) : 楚의 제22대 군주이다. 이름은 侶이며 성왕의 손자이자 목왕의 아들이고, 공왕의 아버지이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 顯: 지위가 높고 귀하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楚平王有太子名曰建,使伍奢為太傅,費無忌為少傅。
楚평왕에게 建이라는 태자가 있었는데, 伍奢를 太傅로 삼고 費無忌를 少傅로 삼았다.
無忌不忠於太子建。
비무기는 태자에게 不忠하였다.
平王使無忌為太子取婦於秦,秦女好,無忌馳歸報平王曰:
「秦女絕美,王可自取,而更為太子取婦。」
평왕은 비무기를 시켜 秦에서 태자비를 맞으려 하였는데, 秦女는 미인이었으므로, 비무기는 말을 달려 돌아와서 평왕에게 고하였다.
“秦女는 絶世의 미인이오니 왕께서 왕비로 맞이하고, 다시 태자비를 취하십시오. ”
平王遂自取秦女而絕愛幸之,生子軫。
楚평왕은 그리하여 자신이 秦女를 側室로 삼고, 비할 바 없이 총애하여 아들 軫을 낳았다.
更為太子取婦。
태자에게는 따로 妃를 구해주었다.
▶ 楚平王(기원전?년~기원전516년) 춘추시대 楚의 제28대 왕. 이름은 棄疾이었는데, 즉위한 뒤에 居로 고쳤다. 기원전523년 평왕 기질은 아들 태자 建의 태자비를 秦으로부터 맞으려, 소부 費無忌를 秦에 보냈다. 그러나 비무기는 秦 공주의 아름다움을 보고, 秦 공주를 평왕의 측실로 삼자고 건의하였다. 楚평왕도 공주의 아름다운 용모가 마음에 들어서, 자신의 측실로 삼았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楚평왕은 비무기를 신뢰하게 되었다.
▶ 費無忌: ( ? ~기원전515년) 費無極이라고도 하며, 춘추시대 楚의 정치가이며 간신으로 유명하다.
▶ 取: =娶. 장가들다. 아내를 얻다.
▶ 更: 다시. 따로.
▶ 幸: 총애.
無忌既以秦女自媚於平王,因去太子而事平王。
비무기가 秦女로 인하여 환심을 사자, 태자를 떠나 楚평왕을 섬겼다.
恐一旦平王卒而太子立,殺己,乃因讒太子建。
비무기는 갑자기 평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여 자기를 죽일까 두려웠으므로 태자 건을 헐뜯었다.
建母,蔡女也,無寵於平王。
건의 어머니는 蔡女였고 평왕에게 총애를 받지 못하였다.
平王稍益疏建,使建守城父,備邊兵。
평왕은 점점 더 태자 건을 멀리했으며, 태자 건을 성보의 태수로 보내어 변경을 지켰다.
▶ 自媚: 남의 환심을 사려고 스스로 아첨함. 媚는 아첨할 ‘미’.
▶ 一旦: 하루아침. 어느 때.
▶ 稍: 점점.
▶ 城父: 楚북방의 성.
頃之,無忌又日夜言太子短於王曰:
「太子以秦女之故,不能無怨望,願王少自備也。
自太子居城父,將兵,外交諸侯,且欲入為亂矣。」
얼마 후 비무기는 또 밤낮으로 태자의 단점을 왕에게 고하였다.
“태자는 秦女의 일로 원망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원컨대 왕께서는 곧 자신을 방비하십시오.
태자가 성보에 지내는 이래 軍을 거느리고 밖으로 제후와 교제하면서, 장차 도성으로 쳐들어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
平王乃召其太傅伍奢考問之。
평왕은 태자의 太傅 伍奢를 불러다 심문하였다.
伍奢知無忌讒太子於平王,因曰:
「王獨柰何以讒賊小臣疏骨肉之親乎?」
오사는 비무기가 평왕에게 태자를 讒訴함을 알고 있었으므로 말하였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참소로써 남을 해치는 소인배의 말을 듣고 骨肉之親(골육인 친족)을 멀리하십니까?”
無忌曰:
「王今不制,其事成矣。王且見禽。」
비무기가 말하였다.
“왕께서 당장 태자를 제압하지 않으면 이들의 음모가 성사되어, 왕께서는 또 포로가 되실 터입니다. ”
於是平王怒,囚伍奢,而使城父司馬奮揚往殺太子。
이에 평왕이 노하여 오사를 감옥에 가두고, 성보의 司馬인 奮揚을 보내 태자를 죽이라고 하였다.
行未至,奮揚使人先告太子:
「太子急去,不然將誅。」
분양은 성보에 도착하기 전에 태자 건에게 사람을 보내어 먼저 알렸다.
“태자께서는 급히 떠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을 터입니다. ”
太子建亡奔宋。
태자 건은 황급히 宋으로 달아났다.
▶ 考問: 審問.
▶ 獨: 어찌.
▶ 讒賊小臣: 참언으로 남을 해치려는 소인배. 賊은 해치다.
▶ 見禽: 포로가 됨. 禽은 擒과 같다.
無忌言於平王曰:
「伍奢有二子,皆賢,不誅且為楚憂。
可以其父質而召之,不然且為楚患。」
비무기가 평왕에게 아뢰었다.
“오사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모두 현명하니 죽이지 않으면 장차 楚의 근심거리가 될 터입니다.
그 아비를 인질로 삼고 불러들이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楚의 후환이 될 터입니다. ”
王使使謂伍奢曰:
「能致汝二子則生,不能則死。」
평왕이 사신을 보내어 오사에게 일렀다.
“너의 두 아들을 오게 하면 네가 살겠지만, 불러들이지 못하면 죽을 터이다. ”
伍奢曰:
「尚為人仁,呼必來。
員為人剛戾忍訽,能成大事,彼見來之并禽,其勢必不來。」
오사가 말하였다.
“尙은 사람됨이 어질어서 부르면 필시 올 터입니다.
員은 고집이 세고 모진 데다 치욕을 참고 견디는 성격이라서 큰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애는 왔다가는 모두 잡힐 줄 알고, 형세를 보아 필시 오지 않을 터입니다. ”
王不聽,使人召二子曰:
「來,吾生汝父;不來,今殺奢也。」
평왕은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보내 두 아들을 불렀다.
“오면 내 너희 아비를 살려주고, 오지 않으면 당장 오사를 죽이겠다. ”
▶ 質: 人質.
▶ 致: 부르다. 불러들이다.
▶ 使使: 사신을 보냄. 앞의 使는 보낼 ‘시’. 뒤의 使는 사신의 뜻.
▶ 剛戾忍訽: 성미가 강직하고 깔깔하며 사나우며 치욕을 견딤. 戾는 포악하다. 訽는 恥辱.
伍尚欲往,員曰:
「楚之召我兄弟,非欲以生我父也,恐有脫者後生患,故以父為質,詐召二子。
二子到,則父子俱死。
何益父之死?
往而令讎不得報耳。
不如奔他國,借力以雪父之恥,俱滅,無為也。」
오상이 가려 하자 오원이 말하였다.
“楚에서 우리 형제를 부름은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탈출하는 자가 있어서 후에 근심거리가 생김을 염려하여, 아버지를 인질로 삼고 거짓으로 우리를 부르는 것입니다.
두 아들이 도착하면 부자가 모두 죽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가면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못할 뿐입니다.
다른 나라로 달아나되, 힘을 빌려서 아버지의 치욕을 씻음이 낫지, 함께 誅滅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
▶ 讎: 원수.
▶ 雪父之恥: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씻다. 雪은 씻다.
▶ 無為: 의미가 없다.
伍尚曰:
「我知往終不能全父命。
然恨父召我以求生而不往,後不能雪恥,終為天下笑耳。」
오상이 말하였다.
“간다고 끝내 아버지의 목숨을 보전할 수 없음을 나도 안다.
그러나 아버지가 우리를 불러 목숨을 구하는데도 가지 않거나, 훗날 雪恥하지 못하면 결국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따름이다. ”
謂員:
「可去矣!
汝能報殺父之讎,我將歸死。」
이어 원에게 일렀다.
“너는 달아나거라!
너는 殺父之讎에게 보복할 수 있을 터이다. 나는 이제 가서 죽겠다.”
尚既就執,使者捕伍胥。
오상이 붙잡히고 나자, 사자가 오자서를 체포하려 하였다.
伍胥貫弓執矢向使者,使者不敢進,伍胥遂亡。
오자서가 활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잡아 사자에게 겨누니, 사자가 감히 다가오지 못하였고, 오자서는 마침내 달아났다.
聞太子建之在宋,往從之。
태자 건이 宋에 있음을 알고 가서 그를 隨從하였다.
奢聞子胥之亡也,曰:
「楚國君臣且苦兵矣。」
오사는 자서가 도망하였음을 듣고 말하였다.
“楚國의 君臣은 장차 전란에 시달릴 터이다.”
伍尚至楚,楚并殺奢與尚也。
오상이 楚에 이르자 楚는 오사와 오상을 모두 죽였다.
▶ 貫弓(만궁): 활시위를 당기다. 彎弓. 貫(당길 ‘만’)은 彎과 통함.
▶ 苦兵: 전쟁에 시달림.
伍胥既至宋,宋有華氏之亂,乃與太子建俱奔於鄭。
오자서가 宋에 이르자 宋에는 華氏의 난이 일어났으므로, 태자 건과 함께 鄭으로 달아났다.
鄭人甚善之。
鄭의 군주가 잘 대우하였다.
太子建又適晉,晉頃公曰:
「太子既善鄭,鄭信太子。
太子能為我內應,而我攻其外,滅鄭必矣。
滅鄭而封太子。」
태자 건은 鄭에서 다시 晉으로 갔는데, 晉頃公이 말하였다.
“태자는 鄭과 사이가 좋고 鄭은 태자를 신뢰하고 있소.
태자가 나를 위해 內應하고 내가 밖에서 공격하면, 鄭을 멸망시킴은 틀림이 없겠소.
鄭이 멸망하면 태자를 그곳에 봉하겠소. ”
太子乃還鄭。
태자 이에 鄭으로 돌아왔다.
事未會,會自私欲殺其從者,從者知其謀,乃告之於鄭。
거사의 시기가 되기 전에, 마침 태자가 사적인 일로 시종을 죽이려 하자, 謀議를 알고 있던 시종이 鄭에 태자를 고발하였다.
鄭定公與子產誅殺太子建。
鄭定公과 子產은 태자 건을 주살하였다.
▶ 華氏之亂: 宋 대부 화씨와 상씨가 일으킨 반란. 宋의 元公이 華氏, 向氏를 압박하자 華定·華亥·向寧 등이 난을 일으켜 공자 寅, 공자 御戎, 공자 朱, 공자 固, 公孫援, 公孫丁 등을 죽이고 向勝·向行을 감금한 후 元公을 협박하였다. <左傳·昭公二十年>
▶ 鄭: 鄭國(기원전806년~기원전375년). 서주 왕조와 춘추시대에 걸친 주나라의 제후국 중 하나이다. 작위는 백작이었으며, 공실의 성씨는 姬성으로 동성 제후국에 속하였다. 韓에 의해 기원전375년에 멸망하였다.
▶ 太子建又適晉: 鄭은 작은 나라라 태자 건에게 힘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晉으로 갔다. 適은 ‘가다’.
▶ 晉頃公: 姬棄疾. 기원전???년~기원전512년. 성은 희이며 씨는 진이며 휘는 기질이다. 晉의 제33대 군주. 晉소공의 아들.
▶ 內應: 내통하다. 안에서 호응하다.
▶ 事未會: 일의 시기가 오기 전에. 會는 時期.
▶ 會自私: 공교롭게도 자신의 사적인 일로. 會는 공교롭게도. 마침. 때맞추어
自私는 개인적인 일.
▶ 誅殺: 벌하여 죽이다.
建有子名勝。
태자 건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勝이었다.
伍胥懼,乃與勝俱奔吳。
오자서는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승과 함께 吳로 달아났다.
到昭關,昭關欲執之。
昭關에 당도하자 관문의 병사가 붙잡으려 하였다.
伍胥遂與勝獨身步走,幾不得脫。
오자서는 승과 헤어져 홀몸으로 걸어서 달아나는데 자칫하면 벗어날 수 없을 듯하였다.
追者在後。
추격자가 바로 뒤에 있었다.
至江,江上有一漁父乘船,知伍胥之急,乃渡伍胥。
강에 이르니, 강에는 어부가 배를 타고 있다가, 오자서의 위급함을 알고 오자서를 건너게 해주었다.
伍胥既渡,解其劍曰:
「此劍直百金,以與父。」
오자서가 강을 건너고 나서 그의 칼을 풀어주면서 말하였다.
“이 칼은 백 금의 가치가 있는데, 이것을 그대에게 주겠소. ”
父曰:
「楚國之法,得伍胥者賜粟五萬石,爵執珪,豈徒百金劍邪!」不受。
어부가 말하기를
“楚의 법에, 오자서를 잡는 사람에게는 곡식 5만 섬과 執圭의 작위를 내린다고 했거늘, 어찌 한갓 백 금의 칼이겠소!”라고 하며 받지 않았다.
伍胥未至吳而疾,止中道,乞食。
오자서는 吳에 이르지 못하여, 병이 나서 中道에 멈추기도 하고 乞食하기도 하였다.
至於吳,吳王僚方用事,公子光為將。
吳에 도착함에, 오왕 僚가 다스리고 있었고, 공자 光이 장군이었다.
伍胥乃因公子光以求見吳王。
오자서는 그리하여 공자 광을 통하여 오왕의 알현을 부탁하였다.
▶ 幾不得脫: 거의 벗어날 수 없다. 幾는 거의. 자칫하면.
▶ 直: =值. 가치.
▶ 爵執珪: 집규의 작위를 내리다.
▶ 吳王僚: ( ? ~기원전515년). 춘추시대 吳의 제21대 군주이다. 성은 姬. 휘는 僚 또는 州于이다.
▶ 公子光: 오왕 諸樊의 아들로 후일 吳왕 闔廬가 된다.
久之,楚平王以其邊邑鐘離與吳邊邑卑梁氏俱蠶,兩女子爭桑相攻,乃大怒,至於兩國舉兵相伐。
오랜 후, 楚邊邑 鐘離와 吳邊邑은 모두 누에를 쳤는데, 양쪽 여자들이 뽕잎을 다투어 마을이 서로 공격하였기 때문에, 楚평왕이 크게 화내자, 두 나라가 軍을 일으켜 서로 공격하게 되었다.
吳使公子光伐楚,拔其鐘離、居巢而歸。
吳는 공자 광을 시켜 楚를 공격하여, 楚의 鐘離·居巢를 빼앗고 돌아왔다.
伍子胥說吳王僚曰:
「楚可破也。
願復遣公子光。」
오자서가 오왕 요를 설득하였다.
“楚를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다시 공자 광을 보내십시오. ”
公子光謂吳王曰:
「彼伍胥父兄為戮於楚,而勸王伐楚者,欲以自報其讎耳。
伐楚未可破也。」
공자 광이 오왕 요에게 말하였다.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이 楚에 죽임을 당하였으므로, 왕에게 권유해서 楚를 공격함은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함일 뿐입니다.
楚를 치더라도 아직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
伍胥知公子光有內志,欲殺王而自立,未可說以外事,乃進專諸於公子光,退而與太子建之子勝耕於野。
오자서는 공자 광이 속셈을 가지고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고자 함을 알고, 아직은 외부 문제를 설득할 수 없으므로, 專諸라는 자객을 공자 광에게 천거하고, 자신은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인 승과 함께 초야에서 농사를 지었다.
▶ 兩女子爭桑相攻: 吳와 楚의 국경 마을에서 일어난 작은 싸움이 나라의 운명을 건 전쟁으로 발전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마을에는 양잠이 한창이라서, 누에 먹이가 되는 뽕잎을 대량으로 필요했었다. 그래서 근처에 뽕나무가 많이 자라났다. 吳의 마을 아이와 楚마을의 아이가 이 뽕나무 잎을 두고 다투어 싸움이 시작됐다. 그 일이 아이의 부모의 싸움으로 이어졌고, 吳 마을의 부모가 졌고, 이 마을을 통치하는 군수는 경비병을 보내어 진압을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楚왕은 분노하였고, 軍을 일으켜 吳 마을을 초토화하였다. 吳의 마을이 초토화됨을 들은 오왕 요는 격분하여 국경지대의 성을 점령하고 楚내부로 진격하였다. 楚도 軍을 보내었고 이에 요격하였다. 그러자 공자 광이 오왕 요에게 조언하였다. 오왕 요는 공자 광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가을 7월에 鷄父에서 오왕 요는 스스로 죄수 3천명을 병사로 삼아서 楚의 원군인 沈과 陳의 軍을 공격하였고, 우군을 공자 광, 좌군을 공자 엄여를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후에 沈의 군주를 포로로 삼았고, 陳의 大夫도 사로 잡았다. 이렇게 吳는 기세를 몰아 楚를 격파하였다. <오왕 요9년 기원전518년>
▶ 拔: 쳐서 빼앗다. 공략하다.
▶ 專諸: ( ? ~기원전515년). 춘추시대 吳堂邑사람으로 史記 86刺客列傳에 수록된 다섯 명 자객의 한 명이다.
五年而楚平王卒。
5년 뒤에 楚평왕이 죽었다.
初,平王所奪太子建秦女生子軫,及平王卒,軫竟立為後,是為昭王。
당초 평왕이 태자 건에게서 빼앗은 秦女가 낳은 軫은 평왕이 죽자 드디어 즉위하여 뒤를 이었으니 楚昭王이다.
吳王僚因楚喪,使二公子將兵往襲楚。
오왕 요는 楚의 國喪을 틈타 두 공자에게 병사를 이끌고 가서 楚를 기습 하게 하였다.
楚發兵絕吳兵之後,不得歸。
楚는 軍을 일으켜 吳軍의 퇴로를 끊으니, 吳軍은 돌아오지 못하였다.
吳國內空,而公子光乃令專諸襲刺吳王僚而自立,是為吳王闔廬。
吳의 국내가 텅 비자 공자 광은 專諸를 시켜 오왕 요를 찔러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니 오왕 闔廬이다.
闔廬既立,得志,乃召伍員以為行人,而與謀國事。
합려가 왕이 되어 뜻을 이루자 오자서를 불러들여 行人에 임명하고 함께 國事를 논의하였다.
▶ 二公子: 吳王僚의 어머니가 같은 형제 蓋余, 燭庸이다.
▶ 楚發兵絕吳兵之後: 오왕요13년(기원전516년) 봄, 楚에 국상이 난 틈을 타서 쳐들어가려고 하였다. 공자 盖餘와 燭庸이 대군을 이끌고 원정을 나가 楚의 六과 潛 두 고을을 포위하였다. 이어서 계찰을 당진에 사자로 보내 중원 제후국들의 정세를 살펴보게 하였다. 그러나 楚가 軍을 내어 吳軍의 퇴로를 끊으니 吳軍은 본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사기 권31, 吳太伯世家>
▶ 專諸襲刺吳王僚: 오왕 요12년(기원전515년) 공자 광이 오왕 요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여 전제에게 구운 생선 요리를 왕에게 올리게 했는데, 생선의 뱃속에는 비수가 숨겨져 있었다. 왕 앞에 나아간 전제는 생선을 찢어 가르고 그 비수로 요를 찔렀다. 요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고 전제도 왕의 측근들에게 살해되었다. <사기 권31, 吳太伯世家> <사기 자객열전>
▶ 闔廬: 춘추시대 吳의 왕. 이름은 光이다. 초를 무찌르고 위세를 떨쳤으나 월왕 句踐과 싸워 부상을 당하여 죽었다. <闔閭>라고도 한다.
▶ 行人: 옛날 朝覲·聘問의 일을 맡은 관직.
楚誅其大臣郤宛、伯州犁,伯州犁之孫伯嚭亡奔吳,吳亦以嚭為大夫。
楚는 대신 佰郤宛과 伯州犁를 주살하니, 백주리의 손자인 伯嚭가 吳로 망명해 왔고, 오왕 합려는 백비 역시 대부에 임명하였다.
前王僚所遣二公子將兵伐楚者,道絕不得歸。
前王 요가 두 공자를 보내어 군사를 이끌고 楚를 공격한 자들은 퇴로가 끊기어 돌아올 수 없었다.
後聞闔廬弒王僚自立,遂以其兵降楚,楚封之於舒。
뒤에 합려가 오왕 요를 죽이고 임금이 되었음을 알자, 軍을 거느린 채 楚에 항복하였고 楚는 그들을 舒 땅에 봉하였다.
闔廬立三年,乃興師與伍胥、伯嚭伐楚,拔舒,遂禽故吳反二將軍。
합려는 즉위한 지 3년, 軍을 일으켜 오자서·백비와 함께 楚를 공격하여 舒를 빼앗고 吳를 배반한 두 장군 蓋余, 燭庸을 사로잡았다.
因欲至郢,將軍孫武曰:
「民勞,未可,且待之。」乃歸。
郢까지 쳐들어가려 했으나 장군 孫武가 말하기를
“백성이 지쳐 있어 아직 불가하니 잠시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했으므로 吳로 돌아왔다.
▶ 郤宛: 費無忌가 좌윤을 지낸 백극완을 꺼려 영윤 囊瓦에게 그를 모함해 낭와가 극완을 죽이고 극완의 동성인 극씨, 백씨, 진씨를 몰살시켰다.
▶ 伯州犁: 백비의 祖父인 伯犨犂는 楚로 망명하였을 때 楚共王이 백주리에게 太宰벼슬을 주어 策士로 삼았으나 후에 楚靈王에게 살해당하였다.
▶ 伯嚭: 백주리의 손자. 간신 費無忌가 아버지인 백극완을 영윤 囊瓦에게 모함하여 그의 일가족과 함께 살해당하게 만들었다. 伯嚭는 죽음을 피해 吳로 도망쳐 망명하고 있던 오자서를 찾았다. 오왕 합려는 백비를 大夫로 삼았다.
※오왕 闔閭 원년(기원전514년) 오자서를 불러 行人으로 삼아 吳의 국사를 의논하였다. 楚가 伯郤宛을 살해하자 그 아들 백비가 吳로 망명해 왔다. 吳는 백비를 대부로 삼았다. <사기 권31, 吳太伯世家>
※오왕 합려3년(기원전512년) 합려와 오자서, 백비 등이 軍을 이끌고 출전하여 楚를 공격하여 舒를 함락하고 楚에 항복했던 개여와 촉용을 붙잡아 죽였다. 합려가 내친 김에 楚의 도성 郢까지 진격하려고 했으나 장군 손무가 간하며 말렸다. <사기 권31, 吳太伯世家>
四年,吳伐楚,取六與灊。
오왕 합려4년, 吳는 楚를 쳐서 六과 灊 두 고을을 빼앗았다.
五年,伐越,敗之。
오왕 합려5년, 越를 쳐서 패퇴시켰다.
六年,楚昭王使公子囊瓦將兵伐吳。
오왕 합려6년, 楚소왕이 공자 囊瓦을 시켜 軍을 거느리고 吳를 공격하였다.
吳使伍員迎擊,大破楚軍於豫章,取楚之居巢。
吳는 오원을 시켜 맞아 싸워 楚軍을 豫章에서 대파하고 楚의 居巢를 빼앗았다.
▶ 四年: 오왕 합려4년(기원전511년). <사기 권31, 吳太伯世家>
▶ 囊瓦: 춘추시대 楚의 대부. 자는 子常.
九年,吳王闔廬謂子胥、孫武曰:
「始子言郢未可入,今果何如?」
오왕 합려9년, 오왕 합려가 오자서와 손무에게 물었다.
“예전에 경들은 아직 郢으로 쳐들어가서는 불가하다고 했는데, 지금은 과연 어떻소?”
二子對曰:
「楚將囊瓦貪,而唐、蔡皆怨之。
王必欲大伐之,必先得唐、蔡乃可。」
두 사람이 대답하였다.
“楚의 將帥 囊瓦의 탐욕 때문에 唐·蔡가 모두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왕께서 楚를 크게 치시려면, 먼저 唐과 蔡를 얻어야 가능합니다. ”
闔廬聽之,悉興師與唐、蔡伐楚,與楚夾漢水而陳。
합려는 그 말을 좇아, 전군을 동원하여 唐·蔡와 함께 楚로 쳐들어가니, 楚軍과 漢水를 끼고 對陣하였다.
吳王之弟夫概將兵請從,王不聽,遂以其屬五千人擊楚將子常。
오왕의 동생 夫概가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을 청했으나 왕이 듣지 않자, 자기가 거느린 軍士 5천을 이끌고 楚장수 子常(: 낭와)을 공격하였다.
己卯,楚昭王出奔。
이해 11월 기묘일에 초소왕이 달아났다.
庚辰,吳王入郢。
경진일에 오왕이 郢에 입성하였다.
子常敗走,奔鄭。
자상은 패하여 鄭으로 달아났다.
於是吳乘勝而前,五戰,遂至郢。
이것은 吳가 승세를 몰아 다섯 번의 전투를 치른 끝에 영에 도착한 것이다.
▶ 楚將囊瓦貪: 낭와의 탐욕에 대하여는 左傳定公二年에 자세한 기록이 있다.
▶ 夫概: 오왕 제번의 아들이며 오왕 합려의 동생.
▶ 己卯: 11월의 己卯日.
昭王出亡,入雲夢;盜擊王,王走鄖。
楚소왕은 도망하여 雲夢으로 갔다가, 도둑이 습격하자 鄖으로 달아났다.
鄖公弟懷曰:
「平王殺我父,我殺其子,不亦可乎!」
鄖公의 동생 懷가 말하였다.
“楚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내가 그의 아들을 죽임이 옳지 않은가!”
鄖公恐其弟殺王,與王奔隨。
운공은 그의 아우가 楚소왕을 죽일까 우려하여 소왕과 함께 隨로 달아났다.
吳兵圍隨,謂隨人曰:
「周之子孫在漢川者,楚盡滅之。」
吳軍는 수를 포위하고 隨의 사람에게 말하였다.
“주나라 자손으로 漢川에 있던 나라를 楚가 모두 멸망시켰다. ”
隨人欲殺王,王子綦匿王,己自為王以當之。
隨人이 왕을 죽이려 하자 왕자 綦는 楚소왕을 숨기고, 자기가 왕을 위하여 감당하려 하였다.
隨人卜與王於吳,不吉,乃謝吳不與王。
隨人이 소왕을 吳로 넘겨주는 일에 대하여 점을 쳐보니, 점괘가 불길하였으므로, 吳의 청을 거절하고 소왕을 넘겨주지 않았다.
▶ 鄖: 서주 초기에서 춘추시대까지의 周나라의 제후국으로 楚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 周之子孫在漢川者: 한수 유역의 땅은 주나라에 의해 제후에 봉해졌으며 주나라 천자와 同姓인 국가들이었으며 楚에 의해 멸망되었다.
始伍員與申包胥為交,員之亡也,謂包胥曰:
「我必覆楚。」
당초 오자서는 楚대부 申包胥와 交友하였는데, 오자서가 망명함에 신포서에게 말하였다.
“나는 기어코 楚를 뒤엎을 테다. ”
包胥曰:
「我必存之。」
포서가 말하였다.
“나는 반드시 楚를 보존하겠다. ”
及吳兵入郢,伍子胥求昭王。
吳軍이 영에 입성하자 오자서는 楚소왕을 잡으려 하였다.
既不得,乃掘楚平王墓,出其尸,鞭之三百,然後已。
잡지 못하자, 楚평왕의 무덤을 파헤쳐서 시체를 꺼내어 3백 번 채찍질하고 그만두었다.
申包胥亡於山中,使人謂子胥曰:
「子之報讎,其以甚乎!
吾聞之,人衆者勝天,天定亦能破人。
今子故平王之臣,親北面而事之,今至於僇死人,此豈其無天道之極乎!」
신포서는 산중으로 피난을 갔다가, 오자서에게 사람을 보내 전하였다.
“그대의 복수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듣건대 ‘사람이 많으면 한때 하늘을 이기지만,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또 능히 사람을 깨뜨린다.’라고 하였다.
그대는 원래 평왕의 신하로서 몸소 北面하여 그를 섬겼는데, 지금 죽은 사람을 모욕함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어찌 무도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伍子胥曰:
「為我謝申包胥曰,吾日莫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
오자서가 말하였다.
“나를 위해 신포서에게 사과해 주시오.
‘해는 저물고 길은 멀어서, 차례를 바꾸어 거꾸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라고.”
▶ 申包胥: 춘추시대 楚의 정치가. 성은 羋, 씨는 申, 이름은 包胥이다. 또한 王孫包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楚평왕, 楚소왕, 楚혜왕 등 楚3대 임금을 섬겼으며, 吳의 침공으로 楚가 위태로울 때 吳의 열병이 된 옛 친구 오자서에게 저항하였다.
▶ 鞭之三百: 자서와 백비는 평왕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어 채찍으로 때려 그 부친의 원수를 갚았다. <사기 권31, 吳太伯世家>
▶ 北面: 신하가 군주를 뵐 때 북면하므로 臣下를 일컬음.
▶ 僇: 侮辱.
▶ 莫: 暮와 같으며 저물다는 뜻.
於是申包胥走秦告急,求救於秦。秦不許。
그래서 신포서는 秦으로 달려가서 위급을 말하고 秦에 구원을 청하였으나 秦은 허락하지 않았다.
包胥立於秦廷,晝夜哭,七日七夜不絕其聲。
신포서는 秦의 조정에서 밤낮으로 통곡하니, 칠일 밤낮으로 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秦哀公憐之,曰:
「楚雖無道,有臣若是,可無存乎!」
秦哀公이 불쌍히 여겨 말하였다.
“楚가 비록 무도하였지만, 이런 신하가 있는데, 망하게 하겠는가!”
乃遣車五百乘救楚擊吳。
이에 전차 5백 승을 보내 楚를 구원하고 吳를 쳤다.
六月,敗吳兵於稷。
그해 6월 稷에서 吳軍을 패퇴시켰다.
會吳王久留楚求昭王,而闔廬弟夫概乃亡歸,自立為王。
오왕이 오랫동안 楚에 머무르며 소왕을 찾고 있음을 기회로, 합려의 아우 夫概가 도망쳐 귀국하더니 스스로 즉위하여 왕이 되었다.
闔廬聞之,乃釋楚而歸,擊其弟夫概。
합려가 알자 楚를 포기하고 귀국하여 동생 부개를 공격하였다.
夫概敗走,遂奔楚。
부개는 敗走하여 楚로 달아났다.
楚昭王見吳有內亂,乃復入郢。
吳에 내란이 있음을 알고 楚소왕은 다시 영으로 돌아왔다.
封夫概於堂谿,為堂谿氏。
부개를 堂谿에 봉하니, 당계씨가 되었다.
楚復與吳戰,敗吳,吳王乃歸。
楚는 다시 吳와 교전하여 吳를 패퇴시키니 오왕은 돌아갔다.
▶ 乘: 고대에는 4마리 말이 끄는 수레 하나를 一乘이라 하였다.
▶ 六月:오왕 합려10년6월. <초세가에는 소왕11년6월로 나온다>
▶ 堂谿: 지금의 하남성 西平縣서남.
後二歲,闔廬使太子夫差將兵伐楚,取番。
2년 뒤 합려는 태자 夫差에게 軍을 거느리고 楚를 치게하여 番邑을 점령하였다.
楚懼吳復大來,乃去郢,徙於鄀。
楚는 吳가 다시 크게 쳐들어올까 두려워하여 郢을 떠나 鄀으로 천도하였다.
當是時,吳以伍子胥、孫武之謀,西破彊楚,北威齊晉,南服越人。
당시에 吳는 오자서와 손무의 계책 덕분에 西로 강한 楚를 격파하고, 北으로 齊와 秦를 위협하고 南으로 越을 굴복시켰다.
▶ 後二歲: 오왕 합려11년(기원전504년), 오왕의 명을 받은 태자 夫差는 楚를 공격하게 番邑을 점령하였다. 초왕은 이를 매우 두려워하여 영성을 버리고 鄀으로 천도하였다. <사기 권31, 吳太伯世家>
소왕12년에 吳가 다시 楚를 공격하여 番邑을 취하였다. 楚는 두려워해 영도를 버리고 북쪽 鄀邑으로 옮겼다. <사기 권40, 楚世家>
※春秋時代 : 기원전770~403. 주나라의 동천[東周]이후 秦의 중국 통일까지 시기를 부르는 춘추전국시대 전반기에 해당한다.
※春秋五覇 : 고대 춘추시대 제후 간 회맹의 맹주를 가리킨다. 춘추시대의 5대 강국을 일컫기도 한다. 이들 패자는 모두 尊王攘夷를 내세웠다. 춘추오패는 齊환공, 晉문공, 楚장왕, 吳왕 합려, 越왕 구천을 가리키며, 기록에 따라서 秦목공, 宋양공 또는 吳왕 부차 등을 꼽는 경우가 있다.
其後四年,孔子相魯。
그 후 4년, 공자가 魯의 재상이 되었다.
後五年,伐越。
그 후 5년, 吳가 越을 쳤다.
越王句踐迎擊,敗吳於姑蘇,傷闔廬指,軍卻。
越왕 구천이 맞서 싸워 姑蘇에서 吳軍을 패퇴시키고, 합려의 손가락에 상처를 입히니, 吳軍은 퇴각하였다.
闔廬病創將死,謂太子夫差曰:
「爾忘句踐殺爾父乎?」
합려가 創傷을 앓다가 죽음에 임하여, 태자 夫差에게 말하였다.
“너는 구천이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을 테냐?”
夫差對曰:
「不敢忘。」
부차가 대답하였다.
“감히 잊을 수 없습니다.”
是夕,闔廬死。
그날 저녁 합려가 죽었다.
▶ 其後四年: 오왕 합려15년.
▶ 後五年: 그 후5년. 오왕 합려19년,
▶ 指: 손가락. 발가락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 卻: 철군.
夫差既立為王,以伯嚭為太宰,習戰射。
부차가 왕이 되자 伯嚭를 太宰로 삼고, 전투와 활쏘기를 훈련하였다.
二年後伐越,敗越於夫湫。
2년 뒤에 越을 쳐서 夫湫山에서 越를 패퇴시켰다.
越王句踐乃以餘兵五千人棲於會稽之上,使大夫種厚幣遺吳太宰嚭以請和,求委國為臣妾。
월왕 句踐은 패잔병 5천 명을 이끌고 會稽山 꼭대기에 머무르며, 대부 文種을 시켜 吳태제 백비에게 후한 예물을 보내고 강화를 요청하며, 나라를 바치고 臣妾이 되겠다고 요청하였다.다.
吳王將許之。
오왕이 허락하려 하였다.
伍子胥諫曰:
「越王為人能辛苦。
今王不滅,後必悔之。」
오자서가 간하였다.
“월왕은 爲人이 고생을 잘 견딥니다.
지금 왕께서 그를 없애지 않으면 뒷날 틀림없이 후회하실 터입니다. ”
吳王不聽,用太宰嚭計,與越平。
오왕은 듣지 않고, 태제 백비의 계책을 써서 越과 강화하였다.
▶ 伯嚭為太宰: 오왕 부차 원년 기원전495년, 대부 백비를 태재로 삼았다. 伯嚭는 백주리의 손자이며 간신 費無忌가 모함하여 아버지인 백극완을 영윤 囊瓦에게 그의 일가족과 함께 살해하게 하여 吳로 망명하였다.
▶ 越王句踐: ? ~기원전464년. 춘추전국시대 후기의 越 군주로 允常의 아들이다. 책사 범려의 뒷받침으로 당시 화남에서 강세를 자랑하고 있던 吳를 멸망시켰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이다.
▶ 會稽山: 지금의 浙江省紹興縣에 있는 산
▶ 越王為人能辛苦: ‘월왕은 고생을 잘 견디는 사람입니다.’ 월왕 구천이 곰의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다짐하고, 밖으로는 부차에게 경국지색이라 불리는 서시를 보내고, 온갖 진귀한 조공품이며 軍을 지원해 주는 등 진실한 신하로 보이며 20년을 기다렸다. 부차가 齊와 楚를 두 강국을 굴복시키고 중원의 강국 晋을 굴복시키고 천자의 자리에 오르려는 틈을 타서 오국을 기습, 라오허 산에서 화공과 수전의 대승으로 吳를 패퇴시켰다. 이후 구천은 부차를 죽이고 오국을 합병하였다. 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겼으며 ‘장작에 누워 복수를 다짐하고 곰의 쓸개를 핥으며 노력해서 고난을 이겨낸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呉既赦越, 越王句践反国, 乃苦身焦思, 置胆於坐, 坐臥即仰胆, 飲食亦嘗胆也. 曰:
「女忘会稽之恥邪?」<史記 卷四十一. 越王句踐世家>
▶ 辛苦: 고생.
▶ 平: 講和. 교전국끼리 싸움을 그만두고 서로 화해함.
其後五年,而吳王聞齊景公死而大臣爭寵,新君弱,乃興師北伐齊。
5년 뒤 오왕은 齊景公이 죽고 대신들은 총애를 다투며 새 군주가 나약함을 알고 軍을 일으켜 북으로 齊를 치려 하였다.
伍子胥諫曰:
「句踐食不重味,弔死問疾,且欲有所用之也。
此人不死,必為吳患。
今吳之有越,猶人之有腹心疾也。
而王不先越而乃務齊,不亦謬乎!」
오자서가 간하였다.
“구천은 두 가지 이상의 반찬을 먹지 않으며, 죽은 사람을 조상하고 병든 자를 위문하여 뒷날 그들을 쓰려 합니다.
그 사람이 죽지 않으면 필시 吳의 우환이 될 터입니다.
지금 吳에게 越이 있음은 사람이 뱃속의 질병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왕께서 越를 우선하지 않으시고 齊에 힘쓰니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吳王不聽,伐齊,大敗齊師於艾陵,遂威鄒魯之君以歸。
오왕은 듣지 않고 齊를 쳐서 齊軍을 艾陵에서 대파하고, 鄒·魯의 君主를 위협하고 돌아왔다.
益疏子胥之謀。
점점 오자서의 계책을 멀리하였다.
▶ 句踐食不重味,弔死問疾: “월왕 구천은 식사를 할 때는 두 가지 이상의 반찬을 먹지 않으며, 옷을 입을 때는 두 가지 색 이상의 채색 옷을 입지 않으며, 백성들의 집에 상을 당하면 일일이 다 방문하여 조상을 가고 병자가 있는 집은 문안을 간다고 합니다. 이것은 구천이 백성들의 마음을 사서 쓰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越王句踐食不重味,衣不重采,弔死問疾,且欲有所用其衆. ”<사기 권31. 오태백세가>
其後四年,吳王將北伐齊,越王句踐用子貢之謀,乃率其衆以助吳,而重寶以獻遺太宰嚭。
그 후 4년, 오왕은 북으로 齊를 치려 하자, 월왕 구천은 子貢의 계책을 써서 軍을 이끌고 吳를 도우며 귀중한 보물을 태제 백비에게 바쳤다.
太宰嚭既數受越賂,其愛信越殊甚,日夜為言於吳王。
백비는 이미 여러 차례 越의 뇌물을 받았으므로, 그의 越을 좋아하고 신임함이 매우 심하여, 밤낮으로 오왕에게 越을 두둔하였다.
吳王信用嚭之計。
오왕은 백비의 계책을 믿었다.
▶ 子貢: 端木賜. 춘추시대 魏의 유학자이자 관료로 자는 子貢이며 공자가 아끼는 제자로서 말솜씨와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魯·魏의 재상을 지냈다.
伍子胥諫曰:
「夫越,腹心之病,今信其浮辭詐偽而貪齊。
破齊,譬猶石田,無所用之。
且盤庚之誥曰:
『有顛越不恭,劓殄滅之,俾無遺育,無使易種于茲邑。』
此商之所以興。
願王釋齊而先越;若不然,後將悔之無及。」
오자서가 간하였다.
“무릇 越은 뱃속의 질병인데, 지금 그의 허황된 말과 속임수를 믿고 齊를 탐내고 계십니다.
齊를 쳐 빼앗을지라도 비유하면 石田이어서 소용이 없습니다.
또 書經(: 尙書)의 盤庚之誥에 이르기를,
‘법도를 어기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코를 베고 온 집안을 모두 죽여 자손까지도 남기지 않아서, 이 새로운 땅에 種子가 옮겨가지 않도록 할 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商나라가 흥성한 까닭입니다.
바라건대 왕께서는 齊를 단념하고 越을 우선하십시오.
그렇지 못하면 뒷날 후회막급일 터입니다. ”
而吳王不聽,使子胥於齊。
오왕 부차는 듣지 않고 오자서를 齊에 사신으로 보냈다.
子胥臨行,謂其子曰:
「吾數諫王,王不用,吾今見吳之亡矣。
汝與吳俱亡,無益也。」
자서는 떠나기에 앞서 그의 아들에게 일렀다.
“내가 여러 차례 왕에게 간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으니, 나는 이제 吳가 망함을 보게 되겠다.
네가 吳와 함께 망함은 무익하다. ”
乃屬其子於齊鮑牧,而還報吳。
그리하여 그의 아들을 齊 대부 鮑牧에게 맡기고, 돌아와서 오왕에게 정세를 보고하였다.
▶ 浮辭: 겉치레로 하는 말.
▶ 石田: 돌밭. 무용지물.
▶ 盤庚之誥: 書經(: 尚書)의 盤庚中篇에 실려 있는 말로 殷나라 중흥 시기의 군주 盤庚이 奄에서 殷으로 遷都하려 할 때에 백성들이 새 거주지로 가려하지 않자, 여러 근심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맹세하는 말을 기록한 것이다.
※<원문>尚書
(乃有不吉不迪,顛越不恭,暫遇姦宄,我乃劓殄滅之,無遺育,無俾易種于茲新邑. )
만약 선량하지 못하고 양순하지 않아, 법도를 어기고 명령을 따르지 않고, 속이고 간사하고 나라 안팎으로 나쁜 짓을 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그의 온 집안을 깡그리 죽여 버리고, 자손까지도 남겨놓지 않아, 이 새로운 도읍으로 씨가 옮겨가지 않도록 할 것이오. 《尚書·盤庚》
▶ 顛越: 전락하다. 법도를 어김.
▶ 劓: 코를 베다. 코를 베는 형벌.
▶ 殄滅: 죽여 없애 버림.
▶ 俾: 하여금.
▶ 易: 전파하다.
▶ 茲邑: 이 도읍. 신 도읍인 殷을 말함.
▶ 屬: 囑과 같으며 ‘부탁하다’는 뜻.
▶ 鮑牧: 포숙아의 후손으로 포국의 증손이다. 춘추시대 齊의 대부. 제경공이 죽자 魯에 망명한 공자 陽生을 불러 군주로 옹립하였다.
吳太宰嚭既與子胥有隙,因讒曰:
吳의 태제 백비는 이미 오자서와 사이가 나빴으므로 헐뜯었다.
「子胥為人剛暴,少恩,猜賊,其怨望恐為深禍也。
“오자서는 위인이 난폭하며, 인정이 없고, 시기하여 남을 해치는데, 그의 원한이 아마 큰 화근이 될 터입니다.
前日王欲伐齊,子胥以為不可,王卒伐之而有大功。
앞서 왕께서 齊를 치려 하심에, 자서는 불가하다고 말하였지만 왕께서는 끝내 齊를 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子胥恥其計謀不用,乃反怨望。
오자서는 그의 計謀가 쓰이지 않음이 부끄러워 도리어 원망을 품었습니다.
而今王又復伐齊,子胥專愎彊諫,沮毀用事,徒幸吳之敗以自勝其計謀耳。
지금 왕께서 다시 齊를 치려 하심에, 자서는 고집을 부리고 강력히 간언하여 정사를 막으니, 헛되이 吳가 패해서 자기의 계모가 뛰어나다고 여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 有隙: 사이가 나쁘다.
▶ 剛暴: 난폭하다.
▶ 猜賊: 시기하며 악독하다. 賊은 사악함.
▶ 專愎: =剛愎. 성미가 깐깐하고 고집이 셈. 愎은 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세다.
▶ 沮毀: 훼방하여 막다.
▶ 徒幸: 단지 희망하다.
今王自行,悉國中武力以伐齊,而子胥諫不用,因輟謝,詳病不行。
이제 왕께서 몸소 출정하시고 국내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齊를 치려 하는데, 오자서는 간하여도 채용되지 않으니, 중지시키려 하고 병난 체하고 가지 않을 터입니다.
王不可不備,此起禍不難。
왕께서 대비하지 않으시면 안 되니, 그가 화란을 일으킴은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且嚭使人微伺之,其使於齊也,乃屬其子於齊之鮑氏。
또 제가 사람을 시켜 몰래 알아보니, 자서는 齊에 사신으로 감에, 그의 아들을 齊 鮑氏에게 맡겼습니다.
夫為人臣,內不得意,外倚諸侯,自以為先王之謀臣,今不見用,常鞅鞅怨望。
신하된 자로서 안으로 뜻을 얻지 못했다고 밖으로 제후에 의지하며, 선왕의 謀臣으로서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고 항상 앙심을 품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願王早圖之。」
원컨대 왕께서는 속히 대비책을 세우십시오. ”
▶ 輟謝: 핑계로 꾸며대는 말로 중지시키려 하다.
▶ 詳: 佯(거짓 ‘양’)과 통하여 ‘거짓으로 꾸미다’.
▶ 微伺: 몰래 살피다. 伺는 엿보다.
▶ 謀臣: 지모가 뛰어난 신하.
▶ 鞅鞅: 「怏怏」과 통하여 섭섭하여 앙심을 품은 모양을 말한다.
吳王曰:
「微子之言,吾亦疑之。」
오왕 부차가 말하였다.
“그대의 말이 아니어도 나 역시 의심하였소. ”
乃使使賜伍子胥屬鏤之劍,曰:
「子以此死。」
그리고는 오자서에게 사람을 보내 屬鏤라는 칼을 내리고 말하였다.
“그대는 이 칼로 자결하라. ”
伍子胥仰天嘆曰:
「嗟乎!
讒臣嚭為亂矣,王乃反誅我。
我令若父霸。
自若未立時,諸公子爭立,我以死爭之於先王,幾不得立。
若既得立,欲分吳國予我,我顧不敢望也。
然今若聽諛臣言以殺長者。」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였다.
“슬프다!
讒臣 백비가 나라를 어지럽히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이는구나.
나는 너의 아버지를 패자로 만들었다.
또 네가 즉위하기 전에 공자들이 보위를 다툴 때, 죽음을 무릅쓰고 선왕에게 즉위를 다투었으며 하마터면 태자가 될 수 없었다.
그대가 즉위하고 吳를 내게 나누어 주려 하였으니, 나는 감히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너는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 長者를 죽이는가?”
乃告其舍人曰:
「必樹吾墓上以梓,令可以為器;
而抉吾眼縣吳東門之上,以觀越寇之入滅吳也。」
그리고 그의 시종에게 말하였다.
“내 무덤에 가래나무를 꼭 심어서 오왕의 관을 짤 수 있게 하라.
그리고 내 눈알을 도려서 吳 도성의 동문 위에 걸어 두어라.
越軍이 쳐들어와서 吳를 멸함을 볼 터이다. ”
乃自剄死。
그리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吳王聞之大怒,乃取子胥尸盛以鴟夷革,浮之江中。
오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오자서의 시체를 끌어내다가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강에 띄워 보냈다.
吳人憐之,為立祠於江上,因命曰胥山。
吳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강기슭에 사당을 세우고 이름을 胥山이라 불렀다.
▶ 微子之言: 그대가 말하지 않았어도. 微는 非. 子는 당신.
▶ 讒臣: 참소를 잘하는 신하. 諛臣은 아첨하는 신하.
▶ 若: 너. 당신.
▶ 舍人: 측근. 시종.
▶ 必樹吾墓上以梓,令可以為器 : “내가 죽거든 내 무덤 앞에 가래나무를 심어 그것이 자라면 오왕을 위한 관을 짜도록 해라! 그리고 나의 시신에서 두 눈을 떼어내어 吳城의 동문 위에 걸어라, 나는 越이 쳐들어와 吳를 멸망시킴을 보겠다!”<사기 권31. 吳太伯世家> 樹는 심다. 梓는 가래나무, 器는 棺을 말한다.
▶ 抉: 도려내다.
▶ 鴟夷:가죽 부대.
吳王既誅伍子胥,遂伐齊。
오왕은 오자서를 죽이고 나서 마침내 齊를 공격하였다.
齊鮑氏殺其君悼公而立陽生。
齊 대부 鮑氏가 군주 悼公을 죽이고 陽生을 군주로 세웠다.
吳王欲討其賊,不勝而去。
오왕은 역적을 토벌하고자 했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其後二年,吳王召魯衛之君會之橐皋。
2년 뒤에 오왕은 魯와 魏의 君主를 불러 橐皋에서 회맹하였다.
其明年,因北大會諸侯於黃池,以令周室。
이듬해에 북쪽의 黃池에서 제후들을 크게 모아 회맹하여 주나라 왕실을 등에 업고 패자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였다.
越王句踐襲殺吳太子,破吳兵。
월왕 句踐이 기습하여 吳의 태자를 죽이고 吳軍을 격파하였다.
吳王聞之,乃歸,使使厚幣與越平。
오왕은 소식을 듣고 돌아와서 사신을 시켜 후한 예물을 보내고 越과 강화하였다.
後九年,越王句踐遂滅吳,殺王夫差;
而誅太宰嚭,以不忠於其君,而外受重賂,與己比周也。
그 후 9년, 월왕 구천이 마침내 吳를 멸망시키고 오왕 부차를 죽였으며, 태제 백비를 죽였는데, 그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고, 외부에서 많은 뇌물을 받고 자신과 한패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 齊鮑氏殺其君悼公而立陽生: 齊의 대부 鮑氏가 제悼公을 죽였다. 오왕이 이를 듣고는 군문 밖에서 사흘을 통곡하고는 바닷길을 통해 제를 공격하였다. 齊가 吳를 물리쳤고, 오왕은 軍을 거두어 돌아왔다. <사기 오태백세가>
▶ 其後二年: 오왕 부차13년.
▶ 吳王召魯衛之君會之橐皋: 오왕 부차13년 오왕이 노애공을 橐皐로 불러 회맹하고, 다시 위출공을 鄖땅으로 불러 회견하였다. <사기 오태백세가>
▶ 北大會諸侯於黃池: 오왕 부차14기원전482. 오왕은 북쪽으로 나아가 제후들을 黃池에 소집하여 주실을 등에 업고 패자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였다.(十四年春,吳王北會諸侯于黄池,欲霸中國以全周室.) <사기 오태백세가>
黃池는 지금의 하남성 封邱縣서남쪽.
▶ 比周: 패거리를 지음. 論語為政에 “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 군자는 사람을 넓게 사귀어도 패거리를 짓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지을 뿐 사람을 넓게 사귀지 않는다.) ”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伍子胥初所與俱亡故楚太子建之子勝者,在於吳。
오자서와 처음에 함께 도망했던 楚태자 건의 아들인 勝은 吳에 있었다.
吳王夫差之時,楚惠王欲召勝歸楚。
오왕 부차 시절 楚惠王이 승을 楚로 불러들이려 하였다.
葉公諫曰:
「勝好勇而陰求死士,殆有私乎!」
葉公 심제량이 간하였다.
“승은 용맹을 좋아하여 남몰래 결사대를 찾고 있으니, 틀림없이 사적인 목적이 있을 터입니다!”
惠王不聽。
혜왕은 듣지 않았다.
遂召勝,使居楚之邊邑鄢,號為白公。
마침내 승을 불러들여 楚변경인 鄢땅에 살게 하고 白公이라 불렀다.
白公歸楚三年而吳誅子胥。
백공이 楚로 돌아온 지 3년 되던 해에 吳가 오자서를 죽였다.
▶ 楚惠王(? ~기원전432년): 楚의 제30대 군주(재위: 기원전488년~기원전432년)이다. 이름은 章이다. 소왕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昭夫人이다.
기원전487년, 영윤 자서가 이전에 폐위된 태자 建의 아들 勝을 불러 楚로 돌아오게 했고, 白邑(지금의 허난성 시현 동쪽)을 주고 白公으로 봉하였다.
▶ 葉公: 성은 沈, 이름은 諸梁, 자는 子高. 楚의 대부로 섭현을 다스렸다.
▶ 陰求: 남몰래 찾다.
▶ 死士: 죽음을 각오한軍.
白公勝既歸楚,怨鄭之殺其父,乃陰養死士求報鄭。
백공 승은 楚로 돌아오자 鄭이 아버지를 죽였음에 원한을 품고 몰래 결사대를 기르며 鄭에 원수를 갚으려 했다.
歸楚五年,請伐鄭,楚令尹子西許之。
楚로 돌아온 지 5년, 鄭을 치기를 청하니, 楚영윤 子西가 허락하였다.
兵未發而晉伐鄭,鄭請救於楚。
출병하기 전에 晉이 鄭을 쳤으므로 鄭은 楚에 구원을 청하였다.
楚使子西往救,與盟而還。
楚는 자서를 보내 鄭을 구원하니, 자서가 晉과 맹약을 맺고 돌아왔다.
白公勝怒曰:
「非鄭之仇,乃子西也。」
백공 승은 노하여 말하였다.
“이제는 鄭이 원수가 아니라 子西가 원수이다. ”
勝自礪劍,人問曰:
「何以為?」
승이 스스로 칼을 갈자 누군가가 물었다.
“무엇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勝曰:
「欲以殺子西。」
승이 말하였다.
“자서를 죽일 작정이다. ”
子西聞之,笑曰:
「勝如卵耳,何能為也。」
자서가 전해 듣고 웃으며 말하였다.
“승은 알과 같을 뿐이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子西: 초평왕의 아들 공자 公子 申. 자는 자서이며 楚令尹의 직위에 있었다.
▶ 礪劍: 칼을 갈다. 礪는 숫돌.
其後四歲,白公勝與石乞襲殺楚令尹子西、司馬子綦於朝。
그 후 4년, 백공 승은 石乞과 함께 조정에서 楚영윤 자서와 司馬子綦를 습격하여 죽였다.
石乞曰:
「不殺王,不可。」
석걸이 말하였다.
“왕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
乃劫之王如高府。
이에 혜왕을 급습하였으나 혜왕은 高府로 달아났다.
石乞從者屈固負楚惠王亡走昭夫人之宮。
석걸의 시종 屈固가 초혜왕을 등에 업고 소왕의 부인이 있는 궁으로 달아났다.
葉公聞白公為亂,率其國人攻白公。
섭공이 백공의 반란 소식을 듣고 백성들을 이끌고 백공을 공격하였다.
白公之徒敗,亡走山中,自殺。
백공의 무리가 패하자 백공은 산속으로 달아나서 자살하였다.
而虜石乞,而問白公尸處,不言將亨。
섭공은 석걸을 시로잡고 백공의 시체가 있는 곳을 물었으나 말하지 않았으므로 삶아 죽이려고 하였다.
石乞曰:
「事成為卿,不成而亨,固其職也。」
석걸이 말하였다.
“일이 성공하였으면 경이 되었을 터인데, 실패하였으니 삶김이 마땅하다. ”
終不肯告其尸處。
끝내 백공의 시체가 있는 곳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遂亨石乞,而求惠王復立之。
마침내 석걸을 삶아 죽이고, 초혜왕을 찾아내어 다시 왕으로 세웠다.
▶ 劫: 협박하다. 납치하다. 급습하다
▶ 如: 가다. 이르다.
▶ 亨: 烹과 같음. 삶아서 죽이는 벌.
太史公曰:
怨毒之於人甚矣哉!
王者尚不能行之於臣下,況同列乎!
向令伍子胥從奢俱死,何異螻蟻。
棄小義,雪大恥,名垂於後世,悲夫!
方子胥窘於江上,道乞食,志豈嘗須臾忘郢邪?
故隱忍就功名,非烈丈夫孰能致此哉?
白公如不自立為君者,其功謀亦不可勝道者哉!
태사공은 말한다.
“원한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실로 크구나!
왕도 오히려 그 신하에게 원한을 사는 행동을 할 수 없는데, 하물며 같은 반열의 사람이겠는가!
가령 오자서가 아버지 오사를 따라 함께 죽고 말았다면 어찌 땅강아지 개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작은 義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음으로써 이름을 후세에 남겼으니 슬프다!
오자서가 楚에 쫓기어 강기슭에서 군색함에 길에서 乞食하였지만, 뜻은 잠시라도 郢을 잊은 적이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참고 견디며 공명을 얻었으니,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고야 누가 이것을 이루었겠는가?
백공 승도 자신이 군주가 되려고 하지 않았으면, 그의 공적과 계책에 대해 이루 다 말할 수 있었겠는가!”
▶ 怨毒: 원한.
▶ 同列: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
▶ 向: 만일. 가령.
▶ 螻蟻: 땅강아지와 개미. 미천한 생명을 비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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